통일을 기다리는 사람의 꿈



박상규




통일을 위해 만난 높은 두 사람
남녘의 대통령이 북녘의 국방위원장을 만나러 가는 날입니다.
남녘에서는 대통령이 제일 높은 사람이고, 북녘에서는 국방위원장이 제일 높은 사람입니다.
남녘 사람들은 대통령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서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잘 웃으시는 대통령이 오늘은 걱정스런 얼굴입니다.
꼭 모험을 하러 떠나가는 사람 얼굴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자동차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대통령께서 잘 다녀오셔야 할텐데......”
남녘 사람들은 걱정을 했습니다.

남녘과 북녘은 원래 한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한 겨레입니다.
그런데 두 나라로 갈리고 나서는 서로 원수로 지냈습니다.
서로 욕하고 헐뜯고 전쟁까지 하고 미워하면서 50년을 넘게 지내 왔습니다.
나라가 둘로 갈라지면서 한 집에서 같이 살던 가족도 남북으로 헤어져서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두 나라가 다시 하나로 통일이 된다면 헤어졌던 가족도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살수 있습니다.
남녘 사람 북녘 사람 모두가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태까지 통일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남녘의 대통령이 북녘의 국방위원장을 찾아가는 것은 통일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방위원장과 만나 겨레의 소원인 통일의 주춧돌을 튼튼하게 놓고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남녘 사람들은 거리에 나와서 대통령을 배웅했습니다.
대통령은 자동차에서 내려서 배웅을 나온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대통령임 잘 다녀오세요.”
“통일의 주춧돌을 꼭 놓고 오세요.”
“대통령임 건강에 조심하세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갑자기 대통령 앞으로 쑥 나타났습니다.
경비하는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돌쇠네 가족은 그 장면을 보고 더욱 놀랐습니다.
“아니, 저 사람은 우리 증조 할아버지 아니야?”
“증조 할아버지가 왜 저기 가 계실까? 경비원에게 잡혀가면 어쩌지?”
돌쇠네 가족은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다정하게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습니다.
“할아버지, 무슨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세요.”
“예, 대통령임께 꼭 할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말해 보세요.”
“대통령임, 이 사진을 보세요.”
할아버지는 빛 바랜 낡은 사진 한 장을 대통령께 보였습니다.
대통령은 사진을 한참 동안 드려다 보았습니다.
사진 속에는 네 사람의 가족이 다정한 모습으로 얼굴을 맞대고 있었습니다.
젊은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쯤 되 보이는 두 아이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입니다.
사진은 아주 오래 되어 누렇게 빛이 바랬습니다.
얼마나 만지고 또 만졌는지 사진은 닳고닳았습니다.
“대통령임 50여년전에 헤어진 우리 가족입니다.”
“...........”
“대통령임. 이번에 북녘에 가시거든 헤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 만나서 얼굴이라도 볼 수 있도록 해 주세요.”
“.............”
“대통령임, 헤어진 가족들이 보고 싶습니다.”
“.............”
“대통령임, 헤어진 가족들이 그립습니다.”
“............”
“대통령임,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 고향 땅을 밟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통령임 잘 다녀오세요.”
할아버지는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헤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의 아픔을 풀어줄 결심을 하고 다시 자동차에 올라탔습니다.
남녘이 대통령은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탔습니다.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가 북녘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비행기가 남녘을 떠난 지 한 시간쯤 지나서 북녘의 비행장에 도착했습니다.
북녘에서 이루어지는 모습들이 텔레비전에 나타났습니다.
“와-”
“만세- 만세-
마중 나온 북녘 사람들이 남녘 대통령이 탄 비행기를 보고 큰 소리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북녘 사람들은 손에 손에 붉은 꽃을 들고 펄떡펄떡 뛰면서 뜨겁게 남녘의 대통령을 맞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북녘의 국방위원장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남녘의 대통령을 맞으러 직접 비행장으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드문 일이기에 남녘 사람들은 놀라워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비행장까지 나와서 맞아 주는 국방위원장에게 감사했습니다.
북녘의 국방위원장은 남녘의 대통령이 타고 있는 비행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북녘의 국방위원장은 키가 좀 작은 편이었습니다.
살이 통통하게 찐 몸이 탄탄해 보였습니다.
곱슬곱슬 머리에 얼굴은 둥글고 안경을 썼습니다.
목은 굵고 짧았습니다.
국방색 점퍼 차림으로 넥타이도 매지 않았습니다.
배가 애기 가진 어머니처럼 불룩 나왔습니다.
북녘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데도 하나도 꾸미지 않았습니다.
수수한 차림의 국방위원장은 동네에서 흔히 보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사람 냄새가 풍기는 보통 사람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걸음은 아주 힘차고 당당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여유 만만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습니다.
무엇인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을 주었습니다.
남녘의 대통령이 탄 비행기 문 앞에는 빨간 카페트가 깔렸습니다.
북녘의 국방위원장은 비행기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습니다.
비행기 문이 열렸습니다.
남녘의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북녘의 국방위원장이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습니다.
남녘의 대통령은 활짝 웃으며 북녘의 국방위원장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드디어 두 분은 만났습니다.
첫 만남이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람들처럼 두 사람은 너무나 반가운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다가선 두 분은 서로 손을 꼭 잡았습니다.
너무 감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남녘 나라 사람들은 가슴이 벅차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막혔던 답답함이 싹 씻겨져 내려가는 듯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남녘 대통령과 북녘 국방 위원장은 웃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이제 통일은 시작되는구나.”
사람들은 두 분의 만나는 모습을 보고 통일의 그 날을 꿈꾸며 들떠 있었습니다.
북녘의 국방위원장은 남녘의 대통령을 극진하게 높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발 뒤에서 걸으며 깍듯이 예절을 지켜 주었습니다.
남녘 사람들은 그런 북녘 국방위원장이 좋아졌습니다.
두 분은 북녘 나라 군대의 인사도 함께 받았습니다.
남녘의 대통령은 비행장을 떠나기 위해 자동차에 탔습니다.
그런데 북녘의 국방위원장이 남녘 나라 대통령이 탄 자동차의 문을 열고 함께 타는 것이었습니다.
남녘 사람들은 그런 국방위원장을 보고 또 한번 감격했습니다.
두 분이 함께 탄 자동차가 지나가는 길 양쪽에는 북녘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붉은 꽃을 힘차게 흔들며 아주 뜨겁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힘찬 소리는 통일을 이루어 달라는 애타는 호소 같았습니다.
두 분도 남녘과 북녘의모든 사람들이 통일을 목마르게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두 분은 통일의 선물을 모든 겨레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남 녘 나라 대통령은 자동차를 멈추게 했습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반겨주는 북쪽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남녘의 대통령은 자동차에서 내려 북녘 사람들의 손을 잡았습니다.
북녘 사람들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습니다.
겨레의 정이 물씬 느껴졌습니다.
북녘 사람들의 손은 남녘 사람의 손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마음은 어느덧 통일로 가득 찼습니다.
남녘의 대통령은 사흘 동안 북쪽 나라에 머물면서 북녘의 국방 위원장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분이 만나서 통일을 이루려고 애쓰는 모습은 날마다 텔레비전으로 바로바로 남녘까지 전해졌습니다.
두 분이 진정으로 통일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온 겨레는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통일의 꿈과 희망은 어느 때보다도 밝았습니다.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은 통일을 상상하며 행복을 꿈꿨습니다.
겨레들의 가슴이 부풀어올랐습니다.
북녘에 아들과 아내를 두고 온 돌쇠 할아버지는 누구보다도 기뻤습니다.
돌쇠네는 서울의 뒷골목에서 식당을 하고 있습니다.
돌쇠 할아버지는 기쁨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잔치를 열어 기쁨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돌쇠 할아버지는 큰 종이에 큰 글씨로 이렇게 써서 식당 문 앞에다 붙였습니다.

『오늘은 기쁜 날. 통일이 보이는 날.
오늘은 공짜의날. 들어오셔서 밥과
술을 마음껏 잡수시고 즐기세요.』

지나가던 사람이 이것을 보고 모두 들어와 식당 안은 금방 잔치 집같이 되었습니다.
돌쇠 할아버지는 정말로 기쁜 마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서 대접했습니다.
술도 마음껏 먹도록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통일 이야기를 즐거워했습니다.
“통일이 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돌쇠 할아버지는 정말로 통일이 되는 날을 맞고 싶었습니다.

남녘의 대통령은 북녘의 국방위원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북쪽 나라 국방위원장의 따뜻한 대접을 받고 왔다며 기분 좋아했습니다.
대통령은 헤어져서 슬프게 살고 있는 가족들이 고향을 찾아가 서로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헤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을 너무 기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절로 만세를 불렀습니다.
돌쇠 증조 할아버지의 마음은 벌써 북쪽에 두고 온 고향에 가 있었습니다.
50여년 전에 헤어진 아들과 부인을 만나는 꿈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갈리고, 헤어진 이야기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36년 동안 빼앗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돌쇠 증조 할아버지가 30 살의 젊은 청년일 때 우리 나라는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돌쇠의 증조 할아버지의 이름은 재복입니다.
재복은 결혼을 해서 아들을 둘 낳았습니다.
큰아들 이름은 무삼이고 나이는 9 살이었습니다.
작은아들 이름은 문삼이고 나이는 7 살이었습니다.
재복은 큰아들 무삼이를 데리고 서울에서 식당을 하는 친척집에 와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았던 38선이란 경계선이 생기고 나라는 둘로 갈라졌습니다.
둘로 갈라진 남녘 나라와 북녘 나라는 서로 욕하며 원수 지내더니 마침내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겨레이면서도 큰 전쟁을 해서 많은 사람이 죽고 집들이 부서졌습니다.
3 년 가까이 전쟁을 했지만 어느 쪽도 이기지 못하고 38선 대신휴전선이란 경계선을 만들었습니다.
휴전선에는 강아지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촘촘하게 철조망을 치고 군대들이 밤낮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은 50년 넘는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9 살이었던 큰아들 무삼은 청년이 되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름을 만영이라고 지었습니다.
청년이던 재복이는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만영이가 커서 25 살이 되어 결혼을 해서 남매를 낳았습니다.
첫 째 아이는 아들이고 지금 8 살이고 이름은 돌쇠입니다.
둘 째 아이는 딸이고 지금 6 살이고이름은 순덕입니다.
재복 할아버지는 돌쇠와 순덕이의 증조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돌쇠네는 증조 할아버지를 모시고 식당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의 올해 연세는 85 살이지만 아직도 건강해서 식당일을 도우며 부지런히 살고 있습니다.
돌쇠 증조 할아버지가 건강에 힘쓰고 오래 살려고 애쓰는 것은 북녘 나라에 두고 온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북녘에 두고 온 부인과 작은아들은 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식구들은 어떻게 불어났으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몰라 항상 안타까운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쇠 할아버지가 북녘 고향 가는 꿈이 이루어지게 되었 습니다.
헤어져 소식을 모르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꿈이 마침내 이루지게 되었습니다.
남녘의 대통령과 북녘의 국방위원장이 이번에 만나서 흩어진 가족들의 꿈을 이루주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운 고향 북녘 땅을 찾아가는 사람
돌쇠네 가족은 북녘 고향을 찾아갈 수 있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3 일 동안만 고향에 있다가 다시 돌아와야 된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3일은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헤어졌던 가족을 만나러 간다는 일은 아주 기쁜 일이었습니다.
돌쇠네 가족은 북녘 나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돌쇠와 순덕이,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증조 할아버지.
돌쇠네 가족은 이렇게 7명입니다.
버스에는 북녘으로 가족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었습니다.
버스는 남녘과 북녘을 갈라놓은 휴전선을 넘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휴전선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철조망으로 촘촘히 얽어서 강아지 한 마리도 지나갈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총을 높이 든 군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무시무시했습니다.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증조 할아버지 저 휴전선 때문에 남북을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건가요?”
“그렇단다.”
“저 휴전선을 끊어 버리면 통일이 되는 건가요?”
“그렇단다.”
“그럼 바로 끊어버리면 되잖아요?”
“어떻게?”
“철사를 끊는 큰 절단가위로 뚝뚝 끊어 버리면 되잖아요.”
“그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 누가 할 수 있나요?”
“그 일을 앞장서서 할 수 있는 사람은 남녘의 대통령과 북녘의국방위원장이지.”
“그럼 두 분에게 휴전선 철조망을 끊어 달라는 부탁을 하면 되겠네요?”
“.............”
“내가 철물점에 가서 철사를 끊는 큰 절단가위를 사서 대통령임과 국방위장님에게 드리고 휴전선의 철조망을 끊어 달라고 말해야겠어요.”
“우리 돌쇠가 참 재미난 생각을 하는구나.”
“제가 꼭 그렇게 하겠어요.”
“정말?”
“두고 보세요, 제가 꼭 그렇게 할 거예요.”
버스에 탄 사람들은 돌쇠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빙그레 웃었습니다.
버스는 휴전선을 지나서 북녘으로 달려갔습니다.
멀고도 먼 나라 같이 느껴졌던 북녘 땅.
아주 이상하고 색다른 나라 같이 생각되던 북녘 땅은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여기가 다른 나라인가요?”
“아니다. 저 푸른 들판을 봐라 남녘의 나라와 무엇이 다르냐?”
“하나도 다른 것이 없어요.”
“저 산, 저 소나무들이 못 보던 거냐?”
“아니요, 남녘에서 날마다 보던 것과 똑 같아요.”
“저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냐?”
“모두 우리나라 사람과 꼭 같아요, 하나도 낯설지 않아요.”
“이런 것들만 봐도 남녘과 북녘은 다른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왜 둘로 갈라져 살아요?”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길단다. 분명 한 것은 하나의 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란다.”
“그럴 수도 있나요?”
돌쇠는 증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좀더 커서 역사 공부를 하면 잘 알 수 있다고 더 이상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버스는 북녘 땅 이 곳 저곳을 다니며헤어진 가족들의 고향에서 사람들을 내려 주었습니다.
드디어 돌쇠 증조 할아버지가 살던 고향 마을 동구 밖에서 버스가 섰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돌쇠 증조 할아버지는 감격한 듯 고향 마을을 한 참 바라보았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저 느티나무는 아직도 변함 없이 고향을 지키고 있구나.”
증조 할아버지는 느티나무를 향해서 엎드려 큰절을 했습니다.
“아, 내 고향. 제가 50 여 년 만에 왔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고향 땅 바닥 입을 맞추었습니다.
“내 어릴 때 뛰놀던 뒷동산도 그 모습 그대로 있네.”
“뒷동산 밑에 있는 동네에 우리 집이 있었는데......”
증조 할아버지는 고향 마을 향해 걸었습니다.
식구들도 뒤따라 걸었습니다.
그런데 마을 쪽에서 돌쇠 네를 보고 허둥지둥 걸어오는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80 살이 넘었지만 아직 건강하신 할머니가 앞장을 섰습니다.
“아니 저 할멈이..........”
증조 할아버지는 목이 매어 우시며 할머니를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여보-”
“여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서로 꽉 부둥켜안았습니다.
그리고 엉엉 울었습니다.
두 분은 곁에서 많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것도 모르고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고 울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뒤에는 남녘에서 간 돌쇠네 가족들이 서서 지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뒤에는 또 한 가족이 이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와 증조 할머니는 눈물이 뒤범벅이 된 얼굴로 말을 이었습니다.
“여보,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어요?”
“당신도 고생이 많았죠?”
“여기 당신의 피붙이들을 모두 데리고 왔어요.”
증조 할아버지가 남녘에서 간 가족들을 하나하나 소개했습니다.
증조 할머니는 돌쇠 와 순덕 이를 양팔로 끌어안으며
“아이고 내 강아지들 귀엽기 도해라.”
하면서 얼굴에 입맞춤을 했습니다.
증조 할머니는 같이 살고 있는 북녘 가족들을 소개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증손자인 길동 이와 증손녀인 복실 이를 끌어안고 핏줄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증조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가족도 7 명이었습니다.
길동이 증조 할머니 , 길동이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길동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길동이, 여동생 복실이 입니다.
길동 이는 9살이고복실 이는 7 살로 돌쇠 와 순덕 이와 6촌 형제자매 사이인 것입니다.
남녘과 북녘에서 흩어져 살던 가족이 만나니 모두 14명이나 되었습니다.
14 명의 가족이 모여 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들판 길이 꽉 차게 걸으니 갑자기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
모두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들판 길을 지나서 뒷동산 밑에 있는 집을 찾아갔습니다.
고치고 단장을 했지만 집 모양은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이 집이 증조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살던 집입니다.
증조 할머니는 아직도 50여전에 살던 그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대문을 들어섰습니다.
“멍멍-멍 멍멍-”
누런 개가 낯선 사람들을 보고 마구 짖었습니다.
“누렁아, 짖지마, 모두 우리 가족들이야.”
“길동 이가 누렁이를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마구 짖던 누렁이도 말귀를 알아듣고 꼬리를 살레 살레 흔들며 남녘에서 온 가족들을 반겨 주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습니다.
행낭 채에는 외양간이 있고 살찐 황소가 여물을 먹고 이었습니다.
마당가에는 잘 가꾼 꽃밭에 꽃들이 한창 피어 있었습니다.
채송화, 백일홍, 배추국화(과꽃), 봉숭아꽃이옛날 모습 그대로 피어 있었습니다.
증조 할머니가 해마다 꽃밭을 옛날 그대로 가꿔왔다고 말했습니다.
마당은 아이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놀만큼 넓었습니다.
아이들은 벌써 어울려서 마당에서 뛰며 놀았습니다.
“야, 어머니야, 분꽃이 폈다. 빨리 저녁밥을 지어라.”
증조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분꽃은 해가 넘어갈 무렵에 피는 꽃입니다.
옛날 시계가 없던 시절에 살던 사람들은 분꽃 피는 것보고 저녁밥을 지었습니다.
여자들은 모두 부엌에 모여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사람 사는 같구나.”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여서 부엌에서 일 하는 것을 보고 증조 할머니는 행복한 얼굴을 하셨습니다.
남자 어른들은 마당을 쓸고 큰 멍석 두 장을 붙여 깔았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큰상을 놓았습니다.
단체 손님이 앉는 음식점 상같았습니다.
부엌에서 만든 음식을 날라다 상에 차렸습니다.
여럿이 먹을 음식을 큰그릇에 푸짐하게 담았습니다.
부글부글 끓는 된장 냄새가 구수했습니다.
김치, 깍두기, 고추장, 산나물 무침, 더덕구이, 생선 조림, 두부 찌개, 콩자반, 호박 부침, 감자 볶음 등이 커다란 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모두 집에서 만든 반찬들이었습니다.
수저를 총총히 놓았습니다.
수저는 모두 14 개나 되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와 증조 할머니의 수저를 나란히 놓았습니다.
식구들이 모두 둘러앉았습니다.
50 여 년 만에 같은 핏줄의 가족들이 다 모여 같이 먹는 밥상이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와 증조 할머니는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서 수저를 먼저 드세요.”
“그래 먹자.”
두 분이 수저를 들자 모두들 수저를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 맛있다.”
돌쇠 와 순덕 이가 밥과 반찬을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남녘에서 휴전선을 넘어 먼길을 오느라고 배가 고팠던 모양이구나 많이 먹어라.”
길동 이와 복실 이도 맛있게 밥을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모여서 함께 밥 먹는 것 보니까 참으로 좋구나.”
“아이들이 보배 같아요.”
“암 보배구 말구, 제일 크고 값진 선물이기도 하죠.”
“이 아이들이 함께 놀면서 크면은 얼마나 좋을까?”
“통일이 되고 휴전선이 없어진다면 만나고 싶을 때 언제라도 가고 아서 만날 수 있을 텐데....”
“아예 같이 모여서 살면 더 좋지 않겠어요?”
“그랬으면 참 좋겠어요. ”
돌쇠 가 말했습니다.
“우리 날마다 같이 놀면서 같이 공부하면서 지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길동 이가 말했습니다.
“통일만 되면 다 이루워 질 수 있는 일인데.......”
“그런데 통일을 왜 안 하는 거요?”
“글쎄 말이다. 통일을 하기가 무척 어렵고 문제점이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보지....”
“우리처럼 이렇게 만나서 하나 되는 것이 통일 아닌가요?”
“그래 바로 통일은 그런 거야.”
“우리 이렇게 모여서 함께 있으니까 좋기만 하네요. 하나도 이상한 것도 없고 문제되는 것도 없네요.”
“우리는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른들은 왜 통일이 어렵다고 하지?”
아이들은 통일을 안 하는 어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머리를 갸웃둥 했습니다.
“누가 앞장을 서서 빨리 서둘러야 하잖아요?”
“우리 국민 모두가 서둘러야 되지만 아무래도 제일 큰 힘을 가진 남녘의 대통령과 북녘의 국방위원장이 앞장을 서서 서둘러야 통일이 빨리 이루어질 것 같아요.”
“그 두 분이 나란히 앞장서서 휴전선의 철조망을 끊는다면 얼마나 멋있을까요?”
“멋있다 뿐이겠어요? 그 모습은 어떤 공사의 준공식 테이프를 끊는 것보다도 멋지고 값질 겁니다.”
“그런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나가면 세계 사람 모두가 힘찬 박수를 보내줄걸요.”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역사와 세계 역사에 빛나는 일로 기록될 겁니다.”
“우리가 두 분께 멋진 일을 하도록 만들까요?”
“어떡해?”
“그 두 분께 휴전선의 철조망을 끊는 절단가위를 선물하는 거요.”
“그 참 멋진 생각이네.”
통일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 꿈같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 녘 밥상이 치우고도 가족들은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에 그대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땅거미가 지고 사방이 어두워졌습니다.
까만 하늘에 초록별들이 총총하게 빛났습니다.
별빛은 오늘 따라 더 깨끗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이 아기의 눈빛 같았습니다.
둥근 달도 떠올랐습니다.
은은한 달빛은 모처럼 모여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춰줬습니다.
“오늘 따라 달빛이 더 밝은데요.”
“별 빛도 초롱초롱하고요.”
“오늘 우리들의 만남을 축하해주는 것 같아요.”
“같은 달빛과 같은 별빛 아래서 이렇게 만나니 통일이 된 것 같아요.”
“그렇게 말이요.”
“통일은 이렇게 쉬울 수 있는데 왜들 통일을 어렵게 생각할까요?”
“글세 말이요.”
“저 달과 저 별들은 남녘에서 바라 볼 때와 어쩌면 저렇게 똑 같을까요?”
“남녘에서 뜨는 달과 별은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지.”
“그럼 저 달과 별은 벌써 통일이 되었네요?”
“저 달과 별은 갈라지지도 않았지요.”
“땅 덩어리를 가르고 편을 나누며 미워하고 싸웠던 모습을 보고 흉도 많이 보았겠네요?”
“그렇겠지요.”
“그럼 우리는 바보 아니요?”
“맞아요. 우리는 바보였어요. 여태 바보처럼 살아왔어요.”
“이제 우리는 바보처럼 살지 말아야지요.”
“그럼요.”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빨리 통일이 되게 하는 거요.”
달과 별빛 아래서 작을 토론회가 열리고 있는 동안 찐 감자와 옥수수를나왔습니다.
커다란 그릇에 수북하게 담아 내온 옥수수와 감자에서 김이 무럭무럭 났습니다.
옥수수를 먹고 싶은 사람은 옥수수를 감자를 먹고 싶은 사람은 감자를 집어들고 먹었습니다.
뜨거운 것을 훌훌 불어가면서 먹는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혼자서 먹을 때보다도 헤어졌던 가족이 만나서 같이 먹으니까 몇 배 더 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배 더 행복했습니다.
통일이 되면 이런 행복을 더 많이 가질 것입니다.
돌쇠와 순덕이는 연한 옥수수를 골라 알을 따서 증조 할머니 입에다 넣어 주었습니다.
길동이 와 복실 이는 증조 할아버지 입에다 넣어 드렸습니다.
“너희들이 효자다.”
증조 할아버지와 증조 할머니는 너무 흐뭇해 하셨습니다.
“효자 노릇을 하고 싶어도 곁에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 놈의 휴전선이 뭔지 남북으로 갈라놓고 자식들이 효자 노릇도 못하게 하고 있으니.......”
“그렇게 말입니다.”
“빨리 통일이 되야 할텐데.......”
“우리가 죽기 전에 통일이 되어 모여 살고 싶다.”
증조 할아버지가 말하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통일을 얘기하느라고 밤이 깊어 가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는 동안 길동이 어머니는 봉숭아꽃잎을 찧어 가지고 왔습니다.
“아이들은 이리와 봉숭아물을 드리자.”
아이들은 마루로 갔습니다.
봉숭아꽃과 잎과 백반을 섞어서 찧은 것을 아이들의 작은 손톱 위에 소복이 얹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주까리 잎으로 꼭꼭 싼 다음 하얀 무명 실로 칭칭 동겨 매주었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 갔습니다.
“밤이 꽤 오래 된 것 같다. 어서 자야지.”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자고 어른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한 방에서 자도록 해라.”
증조 할머니의 말 한 마디에 모두 그렇게 했습니다.
방은 남녘 가족을 맞이하려고 새로 도배를 해서 깨끗했습니다.
이부자리와 베개도 모두 새로 빨아서 깨끗했습니다.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어른들은 잠자리에 누어서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이방 저 방에서 정답게 흘러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속옷 바람으로 장난을 치다가 고단해서 이리저지 쓰러져 정신 모르고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행복한 아침
아이들은 고단해서 이튿날 아침 늦게 일어났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일찍 일어나서 답싸리 비로 마당을 쓸고 계셨습니다.
비 자국이 선명하게 난 마당은 깨끗했습니다.
부지런한길동 아버지는 산에 가서 풀을 한 짐 베어 가지고 왔습니다.
산에서 금방 베어온풀에서 싱싱한 냄새가 풍겨 났습니다.
풀 냄새를 맡으니 산에 온 것처럼 상쾌했습니다.
남자 어른들이 풀을 작두로 썩둑썩둑 썰었습니다.
외양간에서는 누런 황소가 눈을 끔벅거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풀을 한 아름 안아서 황소에게 주었습니다.
배가 고픈 황소는 풀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황소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어, 그놈 살도 많이 쪘네. 힘도 세고 일도 잘하겠네.”
“이 소가 우리 집 보배입니다. 농사일 다하고 무거운 짐 다 나르지요.”
“내가 젊어서도 우리 집에는 소는 꼭 길렀지. 그때는 내가 도맡아 풀도 베어다 주고 쇠죽도 끓여줬지, 동네에서 우리 소가 일을 제일 잘 했지.”
증조 할아버지는 옛날 젊은 시절의 소 기르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얘들아 우리 앞개울에 가서 세수하자.”
“예.”
증조 할아버지가 앞장을 서고 남자들은 어른들과 아이들은 동네 앞에 있는 시냇물로 갔습니다.
길동 아버지는 족대 를 들고 갔습니다.
개울로 가는 길 양편 논에는 잘 자란 벼가 가득 했습니다.
아침 이슬이 볏잎 에 구슬처럼 달려 있었습니다.
이슬은 햇빛을 받아 아기 눈빛처럼 빛났습니다.
들판 위로 잠자리가 날고 있었습니다.
잠자리의 날개에도 햇살이 내려앉아 반짝였습니다.
시냇물은 먹고 싶을 정도로 맑았습니다.
맑은 물 속에 깔린 돌이 깨끗하고 예뻤습니다.
비탈진 곳을 흐르는 냇물은 여울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돌 틈을 부디 치고 빠져나가며 흐르는 시냇물은
“돌돌돌.......”
맑은 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야, 물이 너무 맑다. 먹어도 되겠다.”
돌쇠 가 말했습니다.
“옛날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이 물을 먹고살았단다. 남자들은 물지게로 물을 날랐고 여자들은 물동이를 이고 물을 날랐지.”
증조 할아버지는 또 옛날 살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야, 어서 세수하자.”
모두 냇물로 들어가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세수를 했습니다.
아주 시원하고 깨끗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이 흐르며 발목을 간 질렀습니다.
“고기 봐.”
“어디?”
“여기 많아.”
자세히 보니 커다란 고기가 이리 저리 헤엄쳐 다니고 있었습니다.
맑은 물 속에 사는 고기는 싱싱하고 활기 찼습니다.
“우리 고기 잡자.”
세수하던 사람들은 어느새 고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고기를 쫓아 뛰어 다니다 보니 물이 튀어 옷을 다 적셨습니다.
그러나 재미있었습니다.
고기는 놀라서 이리저리 도망을 쳤습니다.
고기는 달아나다 돌 틈과 풀숲으로 숨었습니다.
길동이는 돌 틈으로 양쪽 손을 넣어 물고기를 움켜잡았습니다.
“야, 잡았다.”
길동이는 비늘이 반짝반짝 빛나는 고기를 높이 쳐들어 보였습니다.
조금 있다가 복실이도 한 마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남녘에서 간 돌쇠 순덕이는 아무리 애를 써도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돌쇠와 순덕이는 고기를 잘 잡는 길동이와 복실이가 부러웠습니다.
어른들은 물가 풀숲을 뒤져서 큰 고기를 잡았습니다.
족대를 대고 풀숲을 꾹꾹 밟으면 고기가 도망치러 나오다 족대에 걸려 잡히고 말았습니다.
길동 아버지는 고기 잡는데는 일등이었습니다.
“나도 옛날에는 이 시냇가에서 물고기를 꽤 잘 잡았었는데....”
증조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증조 할아버지에게는 모든 것이 추억이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물가에 있는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겼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버드나무에 잡은 물고기를 받아서 꿰었습니다.
가족끼리 모여서 냇가에서 고기를 잡으니 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고기는 잠깐 사이에 두 꿰미나 되었습니다.
“우리 그만 집에 가서 매운탕 끓여서 아침밥 먹자.”
증조 할아버지의 말씀에 모두 시냇물에 나와서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집에서는 여자 어른들이 텃밭에 나가 배추와 무와 파를 뽑고 호박과 고추와 가지를 따서 다듬고 씻어서 반찬을 만들었습니다.
큰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에다 마른 장작을 때서 밥을 지었습니다.
국도 끓였습니다.
밥짓는 냄새가 퍼졌습니다. 된장 끓이는 냄새가 퍼졌습니다.
행복한 냄새가 퍼졌습니다.
사람 사는 재미가 집안에 가득했습니다.
금방 잡아온 물고기로 매운탕까지 끓이니 반찬은 너무 많았습니다.
밥맛은 꿀맛이었습니다.
헤어졌던 가족이 만나서 이렇게 어울려 같이 밥을 먹고 있는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세상에서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지금 통일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조상의 산소에 성묘도 하고...
“아침 밥 먹고는 모두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자.”
“네.”
아침밥을 먹고 모두들 산소가 있는 산으로 갔습니다.
좁은 산길로 14 명이나 되는 가족들은 길게 한 줄로 늘어서서 걸었습니다.
꽤 많아 보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우리 피붙이란 말이지.”
증조 할아버지는 길게 늘어서 산길을 오르는 가족들을 보고 또 한번 감격에 졌었습니다.
산 중턱 양지 바른 곳에 봉긋한 무덤 두 개가 나란히 있었습니다.
고조 할아버지(증조할아버지의 아버지)와 고조 할머니(증조할아버지의 어머니)의 산소입니다.
산소는 미리 풀을 잘 깎아서 깨끗하고 예뻤습니다.
산소 옆에는 어제 저녘에 핀 노란 달맞이꽃이 아직 지지 않고 피어 있었습니다.
달맞이꽃 곁에 있는 파란 달개비 꽃도 피어 있었습니다.
달맞이꽃과 달개비 꽃이 왠지 정답게 느껴졌습니다.
14명의 가족들은 산소 앞에 나란히 섰습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술도 한 잔 따라 놓았습니다.
“아버님 남녘에서 살고 있는 아들 재복이가 왔습니다. 돌아가시는 것도 못 뵙고 성묘도 못한 불효 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증조 할아버지는 울먹이는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의 울음소리에 다른 가족들도 눈물이 왈칵 나왔습니다.
향을 피우고 모두 절을 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남녘에서 온 가족들을 따로 산소 앞에 세워 놓고 하나씩 소개를 했습니다.
성묘를 마치고 가족들은 산을 내려 왔습니다.
길옆에는 콩밭이 있었습니다. 그 옛날에 증조 할아버지가 부치던 밭이었습니다.
“이 밭은 지금 누구의 것이냐?”
“지금도 우리 밭이지요. 이 밭은 콩이 아주 잘 되지요 해마다 콩을 심어서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해서 살림에 보태 쓰지요.”
길동 할아버지가 설명을 했습니다.
“우리 어릴 때는 남의 콩밭에서 콩서리를 많이 해 먹었지.”
할아버지는 또 옛날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겼습니다.
“증조 할아버지 콩서리가 뭐예요?”
돌쇠 물었습니다.
“주인 몰래 콩가지를 꺾어다가 불을 놓고 구어서 먹는 거란다.”
“주인한테 들키면 어떡해요.”
“그러면 아이들은 줄 행낭을 치는 거야.”
“주인이 경찰서에 신고하면 붙잡혀 가잖아요?”
“그 때는 인심이 좋아서 콩밭 주인이 그냥 콩서리하는 아이들을
쫓고 말지 경찰서에 신고는 하지 않았단다.”
“증조 할아버지, 콩서리해 먹으면 맛있나요?”
“그럼 아주 맛이 좋지. 불에 그른 콩깍지를 까 먹다보면 아이들 입은 모두 시커먼 검둥이가 되고 말지.”
“증조 할아버지 우리 콩서리 먹고 싶어요.”
“그래 우리 콩서리 해먹자. 콩서리는 원래 남의 것을 몰래 훔쳐해 먹는 것이지만 오늘은 우리 콩을 꺾어서 해 먹자.”
“예-”
가족들은 콩밭 둘레에 있는 나뭇가지를 주어 모으고 콩가지를 꺾어왔습니다.
나무에다 불을 지르고 젖은 콩 가지를 불 위다 척척 얹어 놓았습니다.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 올라갔습니다.
콩꼬투리가 시커멓게 타며 익어갔습니다.
“자 모두들 먹고 싶은 대로 주어다 까먹어라.”
가족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불에 콩가지를 주어 가지고 까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콩꼬투리를 까니 포르스럼 한 익은 콩이 나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은 뜨거웠습니다.
들판에서 서리한 콩을 까먹는 재미는 정말 좋았습니다.
돌쇠와 순덕이이는 처음 먹어보는 콩맛에 반했습니다.
콩꼬투리를 까는 손과 입은 모두 새까맣게 되었습니다.
“우리 식구가 모두 아프리카 깜둥이가 됐네. 하하하.”
“하하 하하-”
“호호 호호-”
모두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었습니다.
콩밭 가에는 밤나무가 있었습니다.
“저 밤나무를 내가 심었는데 벌써 고목이 되었구나. 올밤 나무로 밤 맛이 아주 좋지.”
“예, 아주 밤 맛이 고소해요. 따 드니까요?”
“그래 한 번 맛을볼까? 옛날에 우리 어릴 적에는 나무 막대로 팔매질을 해서 밤을 땄지.”
“어디 그렇게 한 번 따 보시겠어요?”
“그래 한 번 해 볼까?”
증조 할아버지는 막대기를 밤나무에 힘껏 던졌습니다.
그러나 힘차지 못했습니다.
“난 이제 늙었나 보다 옛날처럼 힘이 없어, 너희들이 팔매질을 해서 따 보아라.”
“너희들도 밤 따고 싶지?”
“예.”
길동 아버지가 아이들보고 말했습니다.
“돌멩이든지 나뭇가지든지 마음대로 주어서 힘껏 던져 봐.”
가족들은 돌이고 나뭇가지고 닥치는 대로 주어서 밤나무를 향해서 던졌습니다.
후드득후드득 밤송이가 떨어졌습니다.
“이제 그만 하고 밤을 주어 먹자.”
식구들은 밤나무 밑으로 가서 밤송이를 발로 밟고 나뭇가지로 벌려서 알밤을 꺼냈습니다.
토실토실 알밤은 윤기가 흘렀습니다.
밤 껍질을 이로 까서 먹었습니다.
금방 딴 밤은 아삭아삭 씹혔습니다.
꼬소 했습니다.
맛있었습니다.
헤어져 살던 한 핏줄 가족은 이렇게 재미있게 살고 싶습니다.
통일이 되면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통일 손님을 반기는 동네 사람들
산에서 내려오니 벌써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동네 어른 한 분이 산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고향 찾아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동네에 귀하신 통일 손님이 오신 것은 영광입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환영회를 하려고 모여 있습니다. 어서 가시죠.”
돌쇠네 가족은 그 어른을 따라 갔습니다.
동네에서 집이 제일 크고 마당이 제일 넓은 집에는 어른 아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잔치 집처럼 음식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통일 손님이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 힘차게 환영합시다.”
어른 한 분이 소리 높여 말했습니다.
그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농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신명나는 농악 소리가 끝나자 동네 사람들은 모두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봉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노인이나 젊은이, 아이들, 모두 합창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남녘 사람과 북녘 사람이 모여서 한 목소리로 노래를 함께 부르니 벌써 통일이 다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겨레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즐거워하는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통일을 바라고 마음이 하나 같기 때문입니다.
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은 음식을 나눠 먹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돌쇠네 증조 할아버지에게 음식과 술을 자꾸만 드렸습니다.
돌쇠 증조 할아버지는 술이 취해서 춤을 덩실덩실 추었습니다.
“통일이 되면 온 나라에 이런 기쁨이 넘쳐나겠지요.”
“그럼은요 통일처럼 기쁜 일이 어디 또 있겠어요.”
“통일은 빨리 해야지요?”
“그럼은요 빨리 해야지요.”
“우리 하루 빨리 통일을 이루어 헤어졌던 가족끼리 모여 살고
만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찾아가서 만나면 참 좋겠지요?”
“그럼은요. 참 좋다마다요.”
술이 기분 좋게 취한 어른들은 통일에 대한 이야기만 했습니다.
북녘 아이들은 남녘에서 온 돌쇠와 순덕이가 있는 상으로 몰려와 음식을 먹었습니다.
북쪽 나라 아이들은 참 착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으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북녘 아이들은 남녘 아이들의 생활을 퍽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궁금한 것을 자꾸 물어 보았습니다.
돌쇠와 순덕이는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남녘 아이들의 생활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금방 친해졌습니다.
모두들 함께 재미나게 어울려 놀고 싶었습니다.
“우리 잔치 끝나고 아이들끼리 따로 모여서 놀까?”
“그래 우리 아주 재미나게 놀자.”
아이들은 함께 놀고싶었습니다.
통일 잔치는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우리 오늘 잔치는 아리랑 노래를 합창하는 것으로 끝냅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와요 이 강산 삼천리 풍년이 와요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세상만사를 헤아리니 물위에 둥둥 뜬 거품이라.

우리의 민요 아리랑도 못 부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또 헤어져야 하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슬픔과 아쉬움이 숨어있는 목소리의 노래였습니다.

금방 친해지고 어울려 노는 남북 아이들
어른들은 헤어지고 넓은 마당에는 아이들만 남았습니다.
“우리 뭐하고 놀까?”
“북쪽 나라에서 하는 놀이를 따라하고 싶어.”
돌쇠가 말했습니다.
“제기차기 할 줄 아니?”
“그럼 알지.”
“사방치기 할 줄 아니?”
“그럼 알지.”
“비석 치기도 할 줄 아니?”
“그럼 알지.”
“팽이치기도 할 줄 아니?”
“그럼 알지.”
“고무줄 놀이도 할 줄 아니?”
“그럼 알지.”
“줄넘기도 할 줄 아니?”
“그럼 알지.”
“강강 수월레도 할 줄 아니?”
“그럼 알지.”
“수건돌리기도 할 줄 아니?”
“그럼 알지.”
“남녘 나라 아이들도 못 하는 것이 없구나. 우리하고 무얼 하고 놀아도 되겠구나.”
“통일이 되면 아이들은 금방 어울려서 재미나게 놀 수 있을 거야.”
“맞아, 빨리 통일이 되어서 재미나게 놀고 싶다.”
“오늘은 준비 없이도 모두 함께 놀 수 있는 수건놀이를 할까?”
“그래 그래 그 것이 좋겠다.”
모두 손에 손을 잡고 둥그런 원을 만든 다음 앉았습니다.
북녘 아이들은 남녘에서 온 돌쇠와 순덕이를 서로 옆에 앉히려고 했습니다.
수건을 돌릴 때도 돌쇠와 순덕이 뒤에만 자꾸만 놓았습니다.
쇠돌이와 순덕이는 재빨리 눈치 채고 수건을 집어 가지고 힘껏 뛰었지만 술래에게 잡힐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재주 부려봐.”
북녘 아이들은 남쪽 아이들의 재주를 보고싶어 했습니다.
돌쇠는 학교 오락 시간에 하던 궁둥이 글씨를 썼습니다.
“내가 궁둥이로 글씨를 쓸 테니 알아맞혀 봐.”
돌쇠는 궁둥이를 돌려서 글씨를 썼습니다.
아이들은 돌쇠의 궁둥이가 어떤 글자 모양으로 움직이나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빨리 통일을 하자.』
돌쇠는 이렇게 궁둥이 글씨를 썼습니다.
“뭐라고 썼는지 잘 모르겠다. 아주 천천히 다시 써봐.”
돌쇠는 아주 천천히 다시 궁둥이를 움직여 글씨를 썼습니다.
“아- 알았다. 우리 빨리 통일하자 라고 썼지?”
“그래, 맞다.”
“정말 우리 빨리 통일을 해서 남녘과 북녘 아이들이 모두 만나서 재미나게 놀도록 하자.”
“그래 그렇게 하자.”
아이들은 모두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여서 노는 시간은 너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밥 먹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돌쇠야, 길동아, 순덕아, 복실아 그만 놀고 저녁밥 먹어라.”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아쉽지만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함께 일하며 살고 싶은 가족
마당에는 어제처럼 멍석이 두 잎이 깔리고 커다란 상에는 벌써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습니다.
오늘도 밥상에는 고기 만찬에 찌개에 생선 반찬까지 차려져 있었습니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는 큰어머니가 봉숭아물을 또 드려 주었습니다.
“봉숭아물은 몇 번을 계속 드려야 곱게 든단다.”
봉숭아 꽃물을 드려 주려고 아주까리 잎으로 손톱을 싸매서 실로 칭칭 감아주는 큰어머니의 모습은 남녘으로 돌아가서도 오래 잊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식구들은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느라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한 식구들은 이튿날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모두들 뒤란 텃밭으로 나와라.”
증조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뒤란에는 교실 크기 만한 텃밭이 있었습니다.
길동 아버지는 황소에 쟁기를 매어서 텃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모두 맨발로 밭에 들어와 풀을 골라내라.”
증조 할아버지의 말에 식구들은 맨발로 밭에 들어가서 풀을 고라 냈습니다.
황소가 깊숙이 갈아 놓은 밭흙은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맨발에 닿은 흙의 촉감은 차곰차곰했습니다.
고향의 흙은 부드럽고 정다웠습니다.
풀을 골라내고 흙덩이를 손으로 잘게 부쉈습니다.
촉촉한 흙은 잘 부서졌습니다.
흙 만지니 흙장난을 치며 놀고 싶어졌습니다.
밭고랑을 만들고 배추씨와 무씨를 뿌렸습니다.
배추씨와 무씨를 조심스럽게 뿌리고 흙을 살짝 덮어 주었습니다.
가족이 모여 밭에서 일하는 재미도 좋았습니다.
일을 하는 가족들의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땀을 흘리는 가족의 모습은 건강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오늘 수고들 했다. 오늘 우리가 뿌린 씨앗은 통일의 씨앗이다.
이 씨앗이 자라서 거둬드릴 때도 모여 통일의 수확을 함께 했으 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가족들은 또 통일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을 하고 나서 몸을 씻으니 더 상쾌했습니다.
일을 해서 아침 밥맛은 몇 배 더 좋았습니다.

벌써 친구가 된 남북 아이들
아침밥을 먹고 과일을 먹고 있는데
“돌쇠야- 나와 놀자-”
동네 아이들이 대문 밖에서 소리쳤습니다.
“그래 잠깐 기다려.”
돌쇠, 길동이, 순덕이, 복실이는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어제 수건돌리기를 하며 놀던 동네 아이들이 모두 왔습니다.
“잘 잤니?”
“응, 너희들도 잘 잤니?”
아이들은 서로 인사를 했습니다.
오랫동안 사귀어 온 친구처럼 정다웠습니다.
“오늘은 뭐하고 놀까?”
“줄넘기도 하고 고무줄넘기를 하며 놀자.”
“그래, 그래, 그렇게 놀자.”
아이들은 긴 줄넘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하나씩 넘기, 둘씩 넘기, 여럿이 함께 넘기, 재주 부리며 넘기,
노래 부르며 넘기 등 여러 가지 넘기를 했습니다.
팔딱팔딱 뛰면서 놀 때는 누가 남녘 아이고 누가 북녘 아이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연습을 하지 않아도 잘 어울렸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방법도 비슷해서 곧바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고무줄 놀이도 재미있게 했습니다.
햇볕이 쨍쨍 쬐고 땀이 뻘뻘 흘리면서도 아이들은 놀이가 재미있어 쉬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지치지 않았습니다.
“야, 더운데 시냇가에 가서 물놀이를 하자.”
“그래, 그래, 시냇물로 가자.”
아이들은 우르르 시냇물로 달려갔습니다.
아이들은 옷을 훌훌 벗어서 자갈밭에 아무렇게나 던졌습니다.
그리고 팬티 하나만 입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물이 튀어 올랐습니다. 튀어 오르는 물을 맞으니 시원했습니다.
아이들은 두 손으로 물을 퍼서 던지며 물싸움을 했습니다.
물이 몸에 닿아 숨이 막히고 눈을 뜰 수 없어도 물싸움은 재미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물장구도 쳐보고 물 속에 얼굴을 넣어 조약돌도 주웠습니다.
아이들은 물가에서 모래로 집을 짓기도 하고 샘을 파서 작을 물고기를 가두어 길러 보기도 했습니다.
소꿉놀이도 했습니다.
시냇물에서 옷을 벗고 노는 아이들은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얘들아, 노느라고 배고프지? 이 거 먹고 놀아라.”
돌쇠 어머니와 길동이 어머니가 감자와 옥수수를 쪄 가지고 나왔습니다.
“와, 맛있다.”
아이들은 뜨거운 감자와 옥수수를 아주 맛있게 아주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물놀이를 마친 아이들은 느티나무 그늘로 가서 쉬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너희들 제기 찰 줄 아니?”
“예 알아요.”
“그럼 이 제기 한 번 차 봐라. 이 제기는 옛날 엽전에 종이를 싸서 내가 만든 거란다.”
증조 할아버지는 제기 몇 개를 아이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남녘에서 파는 비닐 제기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증조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제기는 아이들 차기에 알맞았습니다.
아이들은 편을 갈라 제기를 찼습니다.
진 편이 벌로 이긴 편에게 제기를 던져주면 이긴 편은 발로 제기를 멀리 차 버립니다. 진 편을 제기를 다시 주어다 이긴 편에게 던져 주어야 합니다.
이긴 편은 신이 나고 진 편은 약이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긴 편이나 진편 모두 재미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벌써 친한 친구가 되어 하루 종일 모여서 놀았습니다.
남북 아이들은 날마다 재미있게 놀고 싶었습니다.

만남은 짧고 헤어짐은 길고
북녘 고향에서 지내도록 허락 받은 3일 간의 시간도 벌써 다 지나갔습니다.
북녘에서 지내는 마지막 밤이 되었습니다.
만날 때 반갑고 기쁜 마음은 헤어져야하는 아쉬움과 슬픔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족들은 밤에도 자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헤어져야하는 아침이 되었습니다.
남녘으로 가는 버스가 아침 일찍 오기로 되어 있어 서둘러 짐을 쌌습니다.
다시 헤어져야만 하는 가족들은 서로 얼싸 안고 울었습니다.
“통일이 되면 이런 이별의 슬픔은 없을 텐데......”
“이별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야.....”
가족들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이별을 해야만 했습니다.
벌써 남녘 가족을 싣고 갈 버스가 동구밖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녘 가족이 떠나느 것을 보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남녘 가족들은 떠나고 싶지 않은 발길을 옮겨 버스를 탔습니다.
“잘가. 또 와.”
“통일이 되면 고향에서 모여 살자.”
가족들은 흑흑 흐느끼느라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헤어지는 가족의 슬픔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통일의 노래를 부르며 슬픔을 달래 주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동네 사람들은 버스가 떠날 때까지 노래를 계속 불렀습니다.
떠나는 남녘 식구들은 목이 메어서 그저 흐느껴 울기만 했습니다.
버스가 떠났습니다.
버스가 동구 밖 산모롱이를 돌아서서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보내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들은 손을 흔들었습니다.
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짧은 만남이 즐겁기도 했지만 다시 헤어지는 가슴은 아프기만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남녘으로 돌아올 때도 휴전선을 지나왔습니다.
촘촘하게 얽어놓은 휴전선의 철조망은남과 북을 꽉 막아 놓았습니다.
남녘과 북녘을 오고 가지 못하게 꽉 막아놓은 휴전선이 미웠습니다.
“저 놈의 휴전선 철조망을 빨리 끊어 없애야 해.”
증조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맞아요. 저 철조망을 뚝뚝 끊어 버리고 통일을 해야 해요.”
버스에 탄 사람들 모두가 말했습니다.
휴전선 철조망을 지나고 나서는 집으로 오는데는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멀기만 한 줄 알았던 북녘 고향도 잠깐이면 오고 갈 수 있는 곳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돌쇠는 북녘 고향에 다녀온 다음부터 통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통일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박상규1937년 충북 제천 출생. 1966년충청일보, 1980년 서울신문신춘문예 등단. 작품집으로 [고향을 지키는 아이들][바람을 헤치고 크는 아이][참나무 선생님][벙어리 엄마][바보춤][작은 천사들의 노래] 등이 있음. 한국어린이 문학 협의회 부회장, 충주전통문화회 고문, 충주시 문화예술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