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특별호(통권 58호)

[동화]

어깨 어깨 어깨할멈

김성진

우리는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웠다. 코를 훌쩍거리며 준희가 졸라댔다. 나도 할머니를 재촉했다.
―할머니, 옛날이야기 해주세요.
―가만있자,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요 녀석들이 잠을 자려나?
―빨리요, 빨리!
―옳지! 아주 요상한 도깨비 이야기 하나 해줘야겠다.
―좋아요, 좋아!
―이 할미가 여섯 살 때였나, 아! 우리 준희만 했을 때구나. 어느 날, 엄마 심부름으로 외할머니 집에 갔지. 이 할미의 외할머니는 바로 옆 마을에 혼자 살고 있었거든.
―그래서요? 심부름을 갔는데요?
―할머니, 심부름 왔어요! 하고 외쳤는데도 할머니가 나오지 않는 거야. 그래서 방문을 열어봤지. 할머니가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낮잠을 자고 있더구나. 그래서 난 옳다구니 하고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갔지.
―왜요?
―할머니 방에는 꿀단지가 감춰져 있었거든. 할머니네 갈 때마다 애들이 호시탐탐 노리던 물건이었지. 그런데 할머니는 그 꿀단지를 벽장 안에 깊숙이 넣어두고 꺼내주질 않았어. 그러니 꼬마들이 얼마나 애가 탔겠니. 그 꿀단지에 있는 꿀은 한번 맛을 보면 평생 잊을 수가 없다고 들었거든!
―그래서 꿀을 먹었어요?
―더 들어보렴. 나는 조심조심 깨금발로 들어가 벽장문을 열었어. 손을 쑤욱 넣어 옷가지들을 이리저리 치워 보니 반들반들한 꿀단지가 손에 잡히는 거야.
―우아, 드디어 할머니 손에 꿀단지가 들어왔네요.
―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난 숨도 쉬지 못하고 그대로 멈췄지. 우리 외할머니는 동네에서도 호랑이할머니라고 소문날 정도로 무서웠거든.
―그럼 할머니한테 들킨 거예요?
―이제 다 틀렸구나, 하고 할머니 불호령만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드르렁드르렁 소리가 더 크게 나는 거야.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할머니 쪽을 돌아봤지. 에구머니나, 하마터면 꿀단지를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지 뭐냐.
―왜요? 할머니가 눈을 뜬 채 코를 골고 있었어요?
―아니, 할머니가 눈을 뜨고 있었던 게 아니라 할머니 어깨에 웬 괴상망측하게 생긴 것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살피고 있었던 거야.
―으악!
―우리는 눈이 딱 마주쳤단다. 할머니 어깨에 앉은 건 희끗한 머리에 쪽을 지고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게 영락없이 할머니 도깨비인 거야. 그래도 할머니라는 생각에 금세 겁이 사라졌지.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그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어. 자기는 할머니 어깨에서 사는 ‘어깨할멈’이라는 도깨비라고 말이다. 왜 거기에 사시냐고 물었더니, 어깨할멈이 하는 말이 자기네 도깨비들은 수천 아니 수만 가지 역할을 담당한다는 거야. 그중 어깨할멈 도깨비들은 할머니 어깨에 붙어살면서 세상 구경을 한대. 그러다가 심통이 나면 할머니 어깨를 아프게 해서 자기네 화를 푼다고 했지.
―그래서 할머니도 어깨 아프다고 두드리나요? 그런데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 어깨할멈이 이가 다 빠진 입을 오물거리며 계속 입맛을 다셔 대는 거야. 그러고는 나한테 말했어. 자기네 어깨할멈들은 달짝지근한 음식을 아주 좋아하니까 꿀을 같이 먹자고. 그러더니 어깨할멈이 꿀단지 뚜껑을 열려고 하는 거야.
―열었어요?
―아니지. 나는 어깨할멈을 꿀단지에서 떼어내려고 애를 썼단다. 그러다가 어깨할멈이 손을 헛짚는 바람에 꿀단지 속으로 풍덩 빠져버렸지 뭐냐. 그런데, 그때! 바깥에서 누가 할머니를 찾는 거야. 나는 어쩔 수 없이 잽싸게 뚜껑을 닫아 꿀단지를 벽장 속으로 밀어 넣었지. 그리고 벽장문을 휙 닫는 순간 할머니가 기지개를 켜며 눈을 떴단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어.
―휴우, 그럼 할머니한테는 안 들킨 거네요? 그런데 어깨할멈은요?
―그렇지, 들키지 않은 건 다행인데 어깨할멈이 문제였지. 할머니가 묻는 말이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그냥 심부름도 제대로 못하고 집으로 부리나케 달렸단다. 사실 내가 어깨할멈을 꿀단지에 빠뜨린 것도 아닌데……,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어.
―그 뒤로 어깨할멈은 어떻게 됐어요?
―나야 모르지. 그 일이 자꾸 생각나서 외할머니네는 가지도 못했거든. 그리고 그 뒤로는 외할머니 어깨에서 어깨할멈을 다시 만난 일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일이 잊혀졌지.
―결국은 잘된 일이네요. 어깨할멈은 할머니 어깨를 괴롭히는 도깨비였으니까요.
―그래도 어쩐지 나는 어깨할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드는구나. 자, 이제 그만 자자꾸나. 할미 이야기보따리는 잘 묶어뒀다 다음 방학 때 풀어 보여주마.

얼마쯤 지났을까, 오줌이 마려워 눈을 떴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마루로 나가 요강에 오줌을 누었다. 밤바람이 너무 차가워 잠이 다 달아날 정도였다.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런데, 그때! 돌아누운 할머니 어깨에서 무언가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나는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그것은 바로 아까 할머니가 말한 어깨할멈 도깨비였다. 내가 눈만 껌벅거리며 멍하니 있자 어깨할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초저녁부터 늘어지게 잤더니 너무 일찍 깨 버렸네. 네가 괜히 왔다 갔다 해서 그렇잖아.”
“죄송해요, 저 때문에.”
나도 모르게 높임말이 나왔다. 그리고 공손해졌다.
“어린것이 예의는 있군. 됐으니까 신경 쓰지 말거라.”
어깨할멈은 어설프게 잠에서 깬 게 못마땅했는지, 잔뜩 심통이 나 있었다. 할머니 어깨에서 쿵쿵 뛰기도 하고 꼬집어 대기도 하면서 분풀이를 했다. 잠든 할머니는 연신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뒤척거렸다.
“저는 이준구라고 해요. 저기, 어―깨―할―멈―님 맞으시죠?”
나는 더듬거리며 조심히 물었다.
“어라, 너 날 어떻게 아니? 하여튼 요즘 애들은 정말 영악하다니까.”
순간 어깨할멈들이 달짝지근한 음식을 좋아한다는 게 떠올랐다. 그리고 심통이 나면 할머니 어깨를 계속 괴롭힌다는 것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아요. 저기, 반가워서 그러는데요, 제가 가지고 온 초콜릿사탕 좀 드릴까요?”
“뭐, 초콜릿사탕?”
“네, 얼마나 맛 좋다고요! 이 세상에서 최고로 달고 맛있어요.”
“그래? 그럼, 어서 줘 보렴.”
나는 가방에서 초콜릿사탕 몇 개를 꺼내 방바닥에 굴렸다. 어깨할멈은 할머니 어깨에서 내려와 초콜릿사탕을 쪽쪽 빨기 시작했다. 초콜릿사탕 하나가 어깨할멈의 얼굴만 했다.
“초콜릿사탕은 굴려가면서 먹어야 더 맛있어요.”
“그래?”
어깨할멈은 내 말대로 초콜릿사탕을 열심히 굴리며 쪽쪽 빨아먹었다. 그러다가 열린 문틈 사이로 초콜릿사탕과 함께 빠져나가 버렸다. 문 사이로 내다보니 어깨할멈은 초콜릿사탕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역시 어깨할멈은 달짝지근한 걸 좋아하는구나. 그러니 어리석게 꿀단지 속에 빠지고 말았지.”
나는 어깨할멈을 살피며 혼잣말을 했다.
“뭐라고? 너 좀 전에 꿀단지라고 했지?”
어깨할멈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눈을 치켜떴다. 나는 대답하지 못 한 채 머뭇머뭇했다. 어깨할멈은 귀가 밝은 모양이었다.
“아, 그러니까…….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니야, 꿀단지 얘기를 한 게 분명해! 너 꿀단지에 대해 뭐 아는 게 있니? 그놈에 꿀단지 때문에 우리 왕할머니가…….”
갑자기 어깨할멈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꺽꺽 소리를 냈다.
“왕할머니한테 무슨 일이 있으셨나 봐요?”
내가 조심스레 묻자, 어깨할멈은 순순히 대답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 우리 어깨할멈들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왕할머니가…… 흑흑, 어이없게도 그만 꿀단지에 빠져 돌아가시고 말았어.”
“돌아가셨다고요?”
할머니한테 들었던 꿀단지 속 어깨할멈이 결국 죽었다니, 짐작은 했지만 사실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꾸민 일이 분명하지만, 목격자가 없으니 아직까지 범인을 잡진 못했어.”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 사건이 있은 뒤, 우리 어깨할멈들은 왕할머니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 맡은 일에 더욱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단다. 그래서 아주 열심히, 부지런히 할머니들의 어깨를 괴롭히고 있지.”
어깨할멈은 잠시 마음을 다잡는 듯했다. 순간 머릿속에 꾀 하나가 번뜩 스쳐 지나갔다.
“그럼 초콜릿사탕을 좀 더 많이 드시는 게 좋겠어요. 초콜릿사탕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힘이 솟거든요. 요즈음 아주 힘센 할아버지랑 할머니들이 많은데, 그게 다 초콜릿사탕 덕분이래요.”
“그래? 그렇다면 나도 초콜릿사탕을 먹고 알통 좀 만들어야겠구나. 요즘 통 힘을 못 써서 말이야.”
“저는 어깨할멈님 편이에요. 반드시 건강해지셔서 할머니의 어깨를 마구 괴롭히세요.”
“오호, 그래그래. 너 참 마음에 드는구나. 내 손자 녀석으로 삼고 싶은걸.”
어깨할멈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거렸다.
“자, 어서 절 따라오세요. 저기 장독대까지 가야 해요.”
“장독대? 초콜릿사탕이 왜 거기에 있단 말이냐?”
“어깨할멈님 못지않게 우리 할머니도 초콜릿사탕을 무진장 좋아하거든요. 이건 저만 알고 있는 건데요, 장독대 항아리 안에 글쎄, 초콜릿사탕이 가득 담겨 있지 뭐예요. 그러니 어서 가서 드세요.”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하지만 어깨할멈은 내 말을 철석같이 믿는 눈치였다. 마당으로 내려서서 장독대까지 걸어가는데, 어찌된 게 어깨할멈이 나보다 빨랐다.
장독대 앞에 멈춰 서자, 어깨할멈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안달을 냈다. 나는 항아리 뚜껑을 슬쩍슬쩍 열어 보았다.
“자, 이게 바로 초콜릿사탕 항아리예요! 어서 항아리 안으로 들어가 맘껏 초콜릿사탕을 드세요. 이건 지금 여기에서 꺼낸 초콜릿사탕이에요.”
나는 손에 쥐고 왔던 초콜릿사탕 하나를 주며 말했다. 그러자 어깨할멈은 초콜릿사탕을 움켜쥔 채 항아리 위로 성큼 뛰어올랐다.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거니? 깜깜해서 뭐가 보여야 말이지.”
“걱정 마세요. 초콜릿사탕이 쫙 깔려 있어서 푹신푹신할 거예요. 저는 나오실 때까지 여기에서 기다릴게요.”
“그래, 그럼 난 이제 초콜릿사탕을 실컷 좀 먹고 오마.”
휙― 풍덩―
“아이고, 이게 뭐야! 아, 짜다 짜! 살려 줘!”
어깨할멈이 된장 항아리 안에서 허우적거리며 소리쳤다. 그 바람에 된장이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왜 할머니 어깨를 괴롭혀요! 짠맛도 한번 실컷 맛보시라고요.”  
나는 항아리 뚜껑을 꽉 눌러 닫고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었다. 마당을 한번 휘 둘러보았다. 할머니가 장독대 쪽에서 항아리 뚜껑을 열고 있었다.
‘앗, 된장 항아리는 열면 안 되는데…….’
바로 그때, 장독대에서 어이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깨할멈이 다시 살아난 게 아닌가 싶어 방문을 박차고 툇마루로 뛰어나갔다.
할머니는 된장을 퍼 담은 뚝배기를 들고 한쪽 손으로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할머니의 어깨를 살폈다. 다행히 어깨할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못된 어깨할멈이 언제 다시 할머니의 어깨에 달라붙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오늘 밤에는 할머니 어깨를 주무르면서 할머니 어깨에서 영원히 어깨할멈을 떼어낼 정말 달콤한 방법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