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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
최기종
전주공원묘지에 어머니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니
야광패 팔각 자개농이 비척거린다.
어머니 시집 와서 목단꽃 화알짝 피워내던
송학이 날고 공작이 춤추던 십장생 장롱이
반백이 넘어서 할 일 다했다며 시무룩하다.
새각시 시절 살림살이 늘인다고
두꺼운 솜이불도 받아주고 반짇고리, 자부동이며 베개도 포개주고
내복이며 속옷이며 치마, 저고리, 버선류까지 차곡차곡 개어주고
장신구도 나들이 옷가지도 철따라 챙겨주던 장롱이
이젠 포화상태 되어 허릿끈 풀어놓고 허덕인다.
당신 살아생전 위로가 되어서
매운 시집살이 눈물 닦아주고 등밀어 주고
동반이 되어서 부끄럼도 내밀함도 숨겨주고
가난도 부귀도 낙담도 욕망도 담아주고
날이면 날마다 눈으로 손으로 쓰다듬고 닦아 주었는데
이젠 우러러 보이던 그 키도 작아지고
세상살이 담아내던 몸집도 줄어들고
늘어진 고무줄처럼 생기도 촉기도 없어져서
묵은 짐짝 들인 듯 먼지만 쌓였는데
거기 깊숙히 헤집고 들어가니
내 어머니, 반백의 냄새 풍긴다.
어머니 남겨둔 쌈지돈 찾는다고
그 아늑한 품에 들었는데
배내옷 입은 새파란 아이야
눈물도 한숨도 땟물도 씻겨진다.
박하사탕 곳감 냄새에 코를 박아대고
동동구루무 분내에 얼굴 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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