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 울
도 종 환
개울은 제가 그저 개울인 줄 안다
산골짝에서 이름없는 돌멩이나 매만지며
밤에는 별을 안아 흐르고 낮에는 구름을 풀어
색깔을 내며 이렇게 소리없이
낮은 곳을 지키다 가는 물줄기인 줄 안다
물론 그렇게 겸손해서 개울은 미덥다
개울은 제가 바다의 핏줄임을 모른다
바다의 시작이요 맥박임을 모른다
아무도 눈여겨보아주지 않는
소읍의 변두리를 흐린 낯빛으로 지나가거나
어떤 때는 살아 있음의 의미조차 잊은 채
떠밀려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고 있는 줄로 안다
쏘가리나 피라미를 키우는 산골짝 물인지 안다
그러나 가슴속 그 물빛으로 마침내
수천 수만 바닷고기를 자라게 하고
어선만한 고래도 살게 하는 것이다
언젠가 개울은 알게 될 것이다
제가 곧 바다의 출발이며 완성이었음을
멈추지 않고 흐른다면
그토록 꿈꾸던 바다에 이미 닿아 있다는 걸
살아 움직이며 쉼없이 흐른다면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고 늘 깨어 흐른다면
=========================================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의 인항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교편을 잡고 있는 송문산이라고 합니다.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꽃샘추위도 아마 개울물에 다 씻겨 내려가리라 봅니다.
(시인께 인사도 드릴 겸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메일을 쓰고 싶어도 알 수가 없던 차에 요 며칠 전 길담서원 강연 소식을 신문으로 접하고 이 곳 사무총장님으로 계신다기에......)
젊어서부터 그저 시가 좋아서(소설도 좋지만요...) 여러 시를 읽고 제 나름의 해석도 해보고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시집을 하나 둘 씩 모으게 된 것이 현재는 50권이 넘습니다. 그 중에 도종환 시인님 것도...(잠시만요...) 지금 세어보니 여섯 권이네요.
정말 정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맨 위에 먼저 `개울`을 보여 드린 건 바로 그 시 전문이 올해 제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의 급훈이라는 걸 알려드리려구요. 몇 년 전부터 반별 수업시간에 가끔씩 아니면 자주 시를 인쇄하여 나눠주고 있습니다. 인문계고등학교 3학년 교실의 색다른(?) 풍경일 수도 있구요. 급훈을 시로 정해보자는 계획을 해서 작년에는 정안면 시인의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로 했구요. 올해의 급훈은 어렵게 어렵게 골라서 도종환 시인님의 `개울`을 골랐습니다. 이 시 안에 제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다 들어 있는 듯해서요. 그러니 정말 정말 감사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소주 한 잔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참 약주는 하시나요? 저같은 평범한 독자와의 만남도 가지시나요? 만의 하나라도 제가 근무하는 학교를 방문하시어 학생들에게 간단하게 말씀이라도 한번 해주신다면...... 그런데 제가 도종환 시인님께 뭐 드릴게 별로 없어서......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꿈을 꿔보는 저를 너무 욕하지 마시구요 제가 너무 욕심이 과한거만 아니라면, 언젠가 제가 더욱더 도종환 시인님의 시를 사랑하고 나아가 시를 사랑하면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 함께 소주 한 잔...... 와 생각만해도 좋습니다!!!
제가 너무 횡설수설이네요, 시인께 이런 편지와도 같은 글 처음이라서 좀 떨리네요. 지난 길담서원 강연 때 얼마전 길을 가다가 멈추어 처음보는 꽃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고 하셨죠? 저는 시인님을 흉내내느라 그저께 내린 때늦은 눈발을 다 맞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가 쭈그리고 앉아 한참동안 쌓여가는 눈을 쳐다 보았습니다. 제 책상 모니터 옆에는 `흔들리며 피는 꽃‘도 붙여 놨구요. 아 제가 왜이러죠? 허허
아무쪼록 늘 건강하시고 많이 웃으시는 하루하루 되시구요. 10년 후라도 좋으니까요 제가 소주 한 잔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시가 참 좋은 송문산 드림
|
게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