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동주를 마시면서
- 고 김대중 대통령 추모시
최 기 종
인동초로 내린 술
연노랑 탁주 한 사발
단숨에 들이킵니다.
가시지 않는 갈증
애리는 애간장 달래려고
얼굴 가리며 마십니다.
예전엔 당신의 향취 느끼면서
한모금씩 약주로 여기며 마시던 것을
오늘은 북받치는 벌주로 들이킵니다.
당신, /'/내 몸 반이 무너지는 아픔/'/이라고 하셨는데
오늘은 이 몸뚱이 전부가 무너졌다고 하문해야 할까요.
청천이 우지끈 내려 앉아서
밭은 눈물샘 채우듯이 마십니다.
인동초로 내린 술
한겨울에도 푸른빛 잃지 않던
인동초 뿌리로 다져진 인동주
쇠창살로도 가두지 못했던 그 고유명사를
슬픔으로 분노로 절망으로
밑 빠진 독에 들이 부었습니다.
조국의 푸른 하늘이 뒷걸음치는데
남누리 북누리 초례청도 휴업인데
당신은 차마 떨치고 가셨습니다.
인동초 꿀샘꽃 떨어지고
온나라 누룩냄새 무럭무럭 피어나면
동작동 가시는 당신의 웃음까지 마시면
대들보 쓰러진 민주주의도 살아날까요.
당신은 뒤돌지도 않고 쌩하니 가십니다.
맛도 향기도 색깔도 기호도 없이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허공을 마십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국민의 대통령으로 당신은
평양 순안공항 내리던 따스한 햇빛으로
불멸의 이념이 되고 가슴이 되고 자연인이 되시는 겁니까?
|
게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