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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풀이
최기종
가난은
표주박에 물 말아 먹어도
토담집 온기 다 끊어져도
떨어지지 않는다.
거기서 벗어나려고
누구나 발버둥치지만
그것은 찰거머리처럼 쫓아 다닌다.
주홍글씨처럼 못 박힌 업보
노숙자는 길거리에서 노동자는 일터에서 관리자는 책상머리에서 가난하다.
농민은 농토에서 어민은 바다에서 상인은 시장에서 가난하다.
소년은 학교에서 장년은 재화에서 노년은 황혼에서 가난하다.
못 사는 사람은 못 살아서 잘 사는 사람은 잘 살아서 가난하다.
가난은
잡수고 싶은 것 맘껏 잡숴도
운조루 아흔아홉 저택에 살아도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가까이하면 할수록 인정머리 살아나고
멀리하면 할수록 산해진미 풍족해지지만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측은지심 쌓이고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마음자리 헐벗는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만들기도 하고
유에서 무로 돌아가기도 하는 것이었다.
가난은
딸각발이 과거 급제해도
자린고비 만승지주 되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퇴화된 꼬리뼈 흔적,
빙산의 일각처럼 유영한다.
지하도 밑바닥에서 몸집을 불리고
마천루 정상에서 알몸 드러내는
역삼각형, 가난의 이력
거기 머물러 있으면 그냥 든든하고
떠나 있으면 허한 이방인이 되게 하는
가난은 떨어지지도 끝나지도 않는 안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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