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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사
최기종
이제 더 이상 전사가 필요 없는 시대라고 한다.
민주화된 세상에서 법질서가 유지되면서
화염병이나 최루탄은 사라졌다고 한다.
이제 피비린내 풍기는 전사들은
개혁의 대상일 뿐이라고 한다.
독재타도를 외치던 날선 함성도
저자거리를 누비던 발 빠른 용기도
바리게이트를 무너뜨리던 대물결도
이젠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라고 한다.
혹자는 투쟁이니 농성이니 파업이니
이런 용어들이 신물 난다고 한다.
세상이 무늬만 달라졌을 뿐인데
나팔수들의 마녀놀이에 흘깃 했는지
제 발등 찍는 스크린에 한눈 파는 격이다.
이제 민주화된 법치주의 세상이라며
더 이상 전사는 필요 없다고 한다.
국민이 원하면 그대로 가는 거라고
도로교통법이 바이블처럼 애용되면서
갑오년의 죽창들이 광으로 들어갔다.
기미년의 흰 저고리도, 4월의 깃발도
오월의 혁명도, 유월 항쟁도 부유물이 되었다.
전사들은 팔뚝의 굵은 심줄을 감추고
괭이 들고 망치 들고 서툰 밥벌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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