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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필
최기종
비 오는 날이면
분필이 잘도 부러진다 판서 할 때
눌러 쓰는 버릇이 있는 나에게
분필은 조심스런 존재이다.
분필은 일회용품이지만
주인의 애용에 따라서
그 수명이 길어지기도 한다.
얽히고 설킨 실타래 풀리듯이
딸각발이 딸각딸각 걸어가듯이
분필은 몸보시로 길을 낸다.
분필은 백악질 어둠이지만
미망의 여울을 만나면
창공의 새가 되기도 한다.
靑바다에서 나비들이 춤추듯이
행운유수 참꽃들을 피워내듯이
분필은 침묵에다 빛을 뿌린다.
비 오는 날이면
분필의 행각은 조심스럽다.
동이(東夷) 청동경으로
지난 세기의 환영(幻影)들 보여 주지만
어느 순간 분필은 뚝 부러져서
날으는 화살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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