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자율성 훼손, 예술가들이 직접 막아야 합니다.>


1. 예술가들을 위해 쓰여야할 문예진흥기금 40억 원이 사라졌습니다.

  2009년 1월 9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문예진흥기금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기금이 예치된 펀드(100억원)를 강제 해지하도록 강압하였습니다. 그 펀드를 지금 시점에서 해지할 경우, 40여억 원의 원금이 사라지게 됩니다. 40억으로 예술가들에게 창작기금을 지원한다면, 천만 원씩 400개의 단체에 지원이 가능한 금액입니다. 400개의 단체 및 개인예술가들이 한 해 동안 걱정 없이 예술 활동에 전념하도록 도울 수 있는 귀중한 기금인 것입니다.

  문화부는 그 펀드가 만기일에 도달하였고, 손실 또한 크기 때문에 중도 해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거의 모든 펀드가 반토막난 상황입니다. 비단 문예진흥기금 100억원이 예치되어 있는 펀드(친디아주식형펀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연기금의 사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정책당국은 이러한 대형 연기금의 손실을 막기 위해 원금이 회복될 때까지 만기를 연장하며 보유하고 있을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1월 8일에 열린 자산운용위원회 회의에서 이에 대해 논의한 결과, 전원 환매조치 불가 판정을 내렸습니다. 자산운용 전문가들이 현재 환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진단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문화부는 결국 이 펀드를 해지하였습니다. 그 동안 기금을 지키기 위해 명령에 불복종하였던 담당직원은 부당한 인사 조치를 당했고, 오광수 위원장 직무대행은 예술위원회의 대표 명의를 본인으로 변경하고 사업자등록을 다시 해 직접 펀드를 해지하였습니다. 이는 국가재정법 제84조 “공무원이 기금의 자산운용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기금관리주체 그 밖에 기금의 자산운용을 담당하는 자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기금에 손해를 끼친 경우 당해 공무원은 제1항의 규정에 따른 책임이 있는 자와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에 따라 처벌해야 할 명백한 위법 사항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문화부의 이러한 지시는 기금운용적인 측면 외에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김정헌 전 위원장을 기금 손실이라는 이유로 해임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기금의 수익률은 장세가 좋아지면 언제든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문제의 펀드를 팔아서 원금을 날려버렸을 때에만 진정한 손실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 문화부는 지금 김정헌 전 위원장의 해임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귀중한 기금 40억을 날려버린 것입니다. 응당 예술가를 위해 쓰여야 할 기금이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사태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예술가인 것입니다.

2. 문화부는 예술위원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낙하산 인사를 단행하였습니다.

  문화부는 예술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 예술의 자율성을 훼손하기 위해 1월 9일 사무처장 윤정국을 임명하였습니다. 현재 오광수 위원이 위원장 공석을 메우기 위해 직무대행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응당 새로운 위원장이 와서 자신과 함께 일할 사무처장을 임명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문화부의 지시를 받아 위원장과 10일 위원은 윤정국 사무처장 임명을 단행하였습니다.

  유진룡 위원 한 명만이 자신의 양심을 걸고 이를 반대하였고, 현재 언론을 통해 이것이 부당한 인사 조치였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문화부는 예술위원회를 식물기관으로 만들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기 위해 급하게 사무처장을 내려 보낸 것입니다. 이에 대해 자신의 소신이나 철학 없이 그대로 수용해서 시행한 2기 위원들 및 오광수 위원장 직무대행은 반드시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예술가들을 위해 자율성을 확보하고 소신 있는 역할을 해줘야 할 위원들이 문화부의 손에 의해 움직이는 장기 말이 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예술가들 스스로 이 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술가의 입장을 대변하고 예술가를 위해서 판단해야 할 예술위원회 위원들이 문화부 공무원들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 이 사태의 핵심입니다. 이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3.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예술가에 의한, 예술가를 위한, 예술가의 기관이어야 합니다.

   지난 2005년 문예진흥원이 민간자율기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예술가들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도록 예술인들로 구성된 예술위원회를 만들어 공권력의 간섭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뿐이고 문화부는 여전히 예술위원회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예술가 대표 10명으로 구성된 예술위원회쯤은 쉽게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 땅의 모든 예술가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권력으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술가는, 또한 그 예술가들을 대표하는 기구인 예술위원회는 공무원들이 마음대로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예술가가 누구입니까? 시대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시대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며, 세상을 웃기고 울리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역사를 진일보시키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화부는 지금 그런 예술가들을 권력의 손에 놀아나는 어릿광대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술위원회 노동조합은 지금 이 사태를 막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근무시간을 피해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낙하산 사무처장 윤정국의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고, 6시부터 오후 집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처장실과 위원장실도 점거한 상태입니다. 저희는 이 상황이 문예진흥원 역사를 합하여 역사 이래 최대 위기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예술위원회를 무력화시키려는 문화부의 의도가 받아들여질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술가들입니다. 문화부가 원하는대로 예술위원회를 있으나마나한 식물기관으로 만들어 예술가들의 지원이나 예술정책이 문화부에 의해 좌지우지될 때, 예술가들은 어떤 입장에 놓이게 될까요? 현재 문화부에서 예술을 관할하는 곳은 예술국입니다. 예술국은 문화부의 10개국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정부기관의 특성상 실국의 편성은 아주 쉽게 바뀌며 없애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정권의 색깔에 따라서 예술에 대한 지원을 뒤로 하는 것이 매우 쉬워집니다. 문화부의 관할 아래 있는 관광산업은 매우 큰 수익을 낼 수 있으며 체육은 독재정권일 수록 그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정권의 입맛에 따라 예술, 그 중에서도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은 아예 할 필요가 없다며 지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현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고 찬양하는 예술을 위주로 지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될까요? 평생을 예술을 위해 바친 이 땅의 예술가들은 기댈 곳이 없어집니다. 경제적인 지원만 끊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는 작업의 가치 전체를 부정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예술인들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켜져야 합니다. 그 고유의 가치와 자율성이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술위원회는 예술가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그 가치를 높이며 정권의 바람을 최소한으로 막는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예술가들이 힘써 주셔야 합니다. 문화부의 검은 의도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이 시대의 양심이 되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는 예술가들마저 권력 아래 줄 세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예술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이제는 나서서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예술위원회 노조는 지금 밥그릇 투쟁이나 치졸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봉을 올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것도 아니며 근무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예술의 가치와 자율성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자부해왔습니다. 지금 그것이 훼손당하고 있는 상황을 참을 수 없어 싸우고 있습니다. 문화부는 이를 불법 투쟁이라며 경찰을 동원해서 진압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백 명이 채 안 되는 노조원들이 근무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평화시위를 하고 있을 뿐인데 공권력 투입까지 생각하고 있다니 저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힘으로 우리를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부의 폭력적인 발상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예술에 대해서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을지는 물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마저도 권력 아래 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술위원회 노조는 문화부가 어떤 식의 압력을 행사하든,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예술의 가치와 자율성을 지키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에게 힘을 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지금 힘겹게 펼치고 있는 이 싸움은 예술가들의 지지 없이는 정당성을 얻기 힘듭니다. 부디 저희의 진정성을 알아주시고 음으로 양으로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