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는데 진동으로 바꾸어 놓은 핸드폰이 주머니 속에서 부르르 몸을 떨며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열어보니 긴 멀티메일이었습니다. 누가 보냈을까? 메일을 살펴보았더니 친한 선배시인이었습니다.
"돈으로 집을 살 수 있지만 가정을 살 수 없다. / 돈으로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 /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잠은 살 수 없다. / 돈으로 책을 살 수 있어도 지식은 살 수 없다. / 돈으로 의사는 살 수 있어도 건강은 살 수 없다. / 돈으로 직위는 살 수 있어도 존경은 살 수 없다. / 돈으로 피는 살 수 있어도 생명은 살 수 없다. / 돈으로 섹스는 살 수 있어도 사랑은 살 수 없다."
네덜란드에서 유래되었다는 이 속담은 내용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이게 이른바 행운의 메일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었고, 이걸 4일 안에 스무 명에게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걸 보냈다가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내지 않았다가 직장을 잃은 사람이 있다고 친절하게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그냥 웃어버렸다가 아들이 아프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이 속담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 두 가지를 대비하며 귀에 쏙들어오는 삶의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집과 책은 돈으로 살 수는 있어도 가정과 지식은 살 수 없고, 의사와 피는 살 수 있어도 건강과 생명은 살 수 없습니다.
진리입니다. 돈으로 직위와 섹스를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존경과 사랑은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좋은 말을 남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뒤에 있는 행운의 편지형식을 띄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에게 전해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새기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이런 말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걸 전해주면 행운이 오고 전해주지 않으면 불행하게 된다는 것은 부차적인 일입니다.
룻소는 "그대가 아무리 그대의 금고를 열어 놓는다 하더라도 만약에 그대가 그와 동시에 마음을 열어 놓지 않는다면 상대방의 마음은 여전히 그대에게 닫힌 채로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아니 똑같이 돈으로 무엇을 해 주더라도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이복희 시인은 '온라인'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오늘 너에게 사랑을 무통장으로 입금시켰다 / 온라인으로 전산처리 되는 나의 사랑은 / 몇 자리의 숫자로 너의 통장에 찍힐 것이다 / (……) / 통장에 사랑이 무수히 송금 되면 / 너는 전국 어디서나 필요한 만큼 인출하여 유용할 수 있고 / 너의 비밀구좌에 다만 사랑을 적립하고픈 / 이 세상 어디에서도 우리 / 채권자와 채무자와의 관계로서는 사랑하지 말자 / 오늘도 나는 은행으로 들어간다 / 무통장 입금증에 네 영혼의 계좌 번호를 적어 놓고 / 내가 가진 얼마간의 사랑을 송금시킨다"
설령 가까운 사람에게 돈을 송금했다 해도 이것은 사랑을 보낸 것이라고 믿는 마음. 시인은 그런 마음을 갖고 싶어 합니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가 아닌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 입금증에 적은 것은 네 영혼의 계좌번호라고 믿고 싶은 마음. 아니 그렇게 환치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면 돈도 사랑으로 바뀌는 날이 올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는 정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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