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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읽기/김별아] 목표는 '생존'이다
이름 관리자



얼마 전, 죽을 뻔했다. 말 그대로 유명을 달리해 황천으로 갈 뻔했다. 이러구러 지극히 평범한 오후였다. 동네에 볼일이 있어 실내복에 점퍼만 달랑 걸친 채로 털레털레 집을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막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머리 위에서 무언가 서늘한 기운이 빠르게 내리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아차,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 외마디 비명과 함께 어느새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옷깃을 스쳐 발밑에 뒹굴고 있었다. 쪼개진 나머지 반 토막은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의 보닛을 움푹 찌그러뜨렸고, 주위에서 “누구야? 사람이 죽을 뻔했잖아!” 하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베란다에서 얼음덩이를 던진 누군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왜, 어쩌다가 살상의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그것을 던졌는지 물어볼 길도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면 화보다 웃음이 난다. 단 몇 초의 조화, 단 몇 센티의 간극으로 죽을 뻔했다 살아난 나는 주위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으면서도 자꾸만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졸지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빠져나오니 세 가지 생각이 났다. 첫 번째는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며 식전 꼭두부터 걸어온 어머니의 전화. 불길한 전조는 과학적인 근거 너머에 있다. 남대문이 불타기 이전부터도 나는 슬슬 신비주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두 번째는 며칠 전 장편소설을 초고나마 탈고하길 다행이라는 생각. 그런데 아직까지 공중에서 날아온 얼음 조각에 맞아 죽은 작가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여기서 죽었다면 사람들은 소설보다 내 머리를 맞힌 얼음덩이를 더 오래 기억할 테다. 그리고 시적시적 발걸음을 옮기며 마지막 세 번째, 난데없이 던져진 방향 없는 분노를 생각했다. 성질은 좀 나빠도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은 하지 않고 살았다고 자부했건만, 익명의 증오 앞에서는 익명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철없는 아이의 장난이었을까, 애꿎은 두꺼비에게 돌을 던지는 화풀이였을까, 유행어처럼 여기저기 갖다 붙여대는 ‘사이코패스’의 짓이었을까.

기실 내가 이번 정권의 통치기간에 가장 걱정하는 것은 경제 불황도 역사 왜곡도 남북관계 파탄도 아니다. 임진왜란도 겪었고 식민지 시대도 견뎠는데 무엇이라고 못 버티겠느냐는 배짱과 함께, 아무리 농간을 부려도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낙관이 있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있고, 그 끝이 보이는 것들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길을 가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얼음덩이처럼, 출구를 잃은 사람들의 마음은 무섭다. 소통과 저항의 통로를 동시에 잃은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이 연쇄살인범 검거 뉴스로 덮여 버리는 상황을 개탄하지만, 두 살인극은 ‘나비효과’처럼 서로 교묘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망루로 올라간 약자들의 날갯짓이 공권력에 처참히 꺾일 때, 인간의 가치를 애완용 시베리안 허스키의 그것만큼도 여기지 않는 분노와 증오와 환멸의 허리케인은 언제든 사회 곳곳에서 휘불 수밖에 없으리니.

집에 돌아와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아직 놓을 수 없는 손들에게. 한동안 나는 누군가를 지독하게 미워했다. 탐욕과 무지로 부도덕한 사회를 선택한 그들을 냉소했다. 죽어 보라지, 다 자업자득이야. 하지만 내 마음의 날선 화살이 결국 내 심장을 쏜다. 혼자 살아갈 방도는 없다. 어떻게든 주위의 빈손들을 그러쥐고 살아내야 한다. 당분간 내 목표는 ‘생존’이다.


<2009. 2. 10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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