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시인의 프랑스문학 비평서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문학과지성사, 2004년 9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지드의 <좁은 문>은 사랑이라는 환상의 발생과 진행, 쇠퇴와 소멸에 관한 총체적인 보고라 할 만하다. 또한 사랑이라는 환상이 인간이 갖는 모든 환상들의 중핵이라면, 이 작품들은 인간이라는 환상 혹은 세계라는 환상의 허망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는 전통적 진리와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이 작품들의 탁월성은 인간과 세계라는 환상에 즉(卽)해서, 그 진리까지도 환상의 연장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진리의 환상과 환상의 진리, 달리 말해 인식의 허망함과 허망함의 인식이 다른 몸이 아님을 증언하는 데 있다. 상극하는 것들의 화해 혹은 상생하는 것들의 불화로 이루어진 그 몸의 자리를 밝히고, 스스로 그 몸으로 남는 것이 좋은 문학의 본성이라면 이 두 작품 속에서 분석되는 사랑은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탐색하는 문학의 탁월한 길라잡이로 남을 것이다. 굳이 갈라서 이야기하자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사랑이라는 환상이 배태되는 과정과 그 요인들을 문제 삼는다면, <좁은 문>은 사랑이라는 환상이 유지되는 방식과 양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고 할 수 있다. 각 작품에 대한 세 편의 글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사랑이라는 환상의 배태 과정과 유지 방식이라는 하나의 시나리오로도 읽혀질 수 있을 것이며, 또 그러하기를 바라는 것이 저자의 숨길 수 없는 심정이다. - 이성복
이성복 195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와 같은 대학 대학원 불문과를 졸업했다. 1977년「문학과지성」에 시 '정든 유곽에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남해 금산>, <그 여름의 끝>,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정든 유곽에서>, <꽃핀 나무들의 괴로움>, <사랑으로 가는 먼 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