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태생적으로 늘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그 불가능을 꿈꾸는 불을 사랑한 ‘불나방’ 같은 존재다. 그의 생애 끝까지 너무 이상적이어서 도저히 실현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숨이 다 소진되는 순간까지 사유하고 꿈꾼다. 그것을 노래한다. 그것이 바로 이 지구별에서 시인이 존재하는 이유다. 꿈꾸지 않는 삶에는 사유가 존재할 공간도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기대도 없다. 오로지 무가치한 공허만 있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순정한 ‘첫사랑’, 오로지 미적 혹은 온전한 문학성을 다 갖춘 시작품, 티 없이 순결한 삶, 영원히 오염을 모를 이상적인 세계, 도덕적 순결주의의 실천, 완전한 자유, 완벽한 공동체적 삶 등은 불가능하지만 꿈을 꾸어야 최대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각곡유목(刻鵠類鶩), 백조를 꿈꾸며 노력하다보면 최소한 그 언저리라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시인 정소슬의 ‘시’를 통한 꿈꾸기는 언제나 가치 있는 삶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