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루 밤의 달 (외 1편) 이상인
달에 눈물 자국이 선명하다 때론 달도 뒤돌아서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가 있는 거다 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내소사 꽃살문 이번 겨울 한철에는 내소사 꽃살문에서 나고 싶다 솟을모란꽃살문 띠살문에 끼어들어 대웅보전 문틈에 꼼지락거리는 맑고 가벼워진 햇살이나 세어보며 몇 편의 눈보라를 이끌고 멀대같이 서 있는 전나무 길로 들어서겠지 아차, 길 잘못 든 나그네처럼 기웃거리며 절 앞마당 가로질러 작은 손 말아 쥔 당단풍나무를 건드려보다가 뒷산 봉우리로 가뭇없이 사라지겠지 꿈속 같은 세상살이야 이제 웬만큼 비벼대며 살아봤으니 더 뭘 바랄 게 있겠나 앞으로 남은 세월의 푸른 살결도 흐르는 구름처럼 저절로 아름다워지느니 어제 절 마당을 쓸다간 바람처럼 그동안 스쳐 지나간 모든 인연 하나둘 따듯한 입김을 불어넣듯 불러들여 빗국화꽃살문이나 빗모란연꽃살문 솟을금강저꽃살문에 서로 깍지 끼어보며 사방연속무늬를 짜보고 싶다 해와 달을 바라보며 서로를 꼭 껴안다 보면 어느새 한 천 년쯤 훌쩍 흘러 우리 늘 여닫는 환幻의 꽃살문에도 저처럼 은은한 미소가 배어나지 않겠는가 ⸺시집 『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2019년 8월) ------------ 이상인 / 1961년 전남 담양 출생. 1992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 시집 『해변주점』 『연둣빛 치어들』 『UFO 소나무』 『툭, 건드려주었다』 『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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