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박상률
너는 갔다.
그래서 너의 목소리는 지금 여기에 없다.
그러나 너는 다시 여기에 있다. 우리의 기다림과 함께.
기다림은 모든 걸 같이 있게 한다.
기다림,
숱한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버리고 싶으면서도 놓아버리지 못하는 끈 같은 것.
아니, 밧줄 같은 것.
푸르스름한 달빛이 서늘하게 내리쬐고 있는 이곳에
너는 지금 누워 있다.
여기에 누워 무슨 꿈을 꿀 수 있을까?
아니, 꿈이 가능하기나 할까?
여기는······,
여기는 무덤. 무덤 속엔 빛이 없다.
어둠뿐이다.
그래서 답답하고 갑갑하다.
“아이고, 내 새끼야! 아이고, 내 새끼야! 니가 뭣 땜시 일로 들어가야 한단 말이냐, 퍼뜩 일어나거라, 어서. 집에 가야 쓸 것 아니냐.”
월산댁은 아들의 관을 끌어안고 뒹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거나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아짐씨, 인자 그만 고정하쇼. 마지막 가는 길, 조용하게 보내주는 게 좋다 안하요.”
옆에 서 있던 산역꾼 하나가, 누구에게나 그래왔던 것처럼, 틀에 박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월산댁은 발버둥을 멈추지 않았다.
“불쌍한 내 새끼, 이 에미는 으찌께 살라고 죽어부렀다냐. 영균아! 영균아!”
그러나 월산댁의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관은 곧 하관되었다. 산역꾼들은 능숙한 솜씨로 관 위에 흙을 뿌려, 달구질이고 뭐고 할 새도 없이, 봉분을 만들었다. 봉분이라 해봐야 대부분의 공원묘지가 그렇듯이 나지막하고 작았다. 봉분은 땅 속으로 들어간 관보다 겨우 조금 더 클까말까 했다.
산역꾼들은 서둘러 떼를 입히고 옆의 묘로 옮겨갔다. 그 사이 월산댁은 영균의 친구들에게 붙들린 채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산역꾼들은, 당신 아들만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잖소, 난리통에 웬 줄초상이 나가지고 우리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요, 하는 표정으로 손을 털고 연장을 챙긴 뒤 무덤덤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소쩍새 울음 소리가 공원묘지 골짜기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월산댁은 이제 거의 넋을 잃은 채 힘없이 중얼거리기만 했다.
“내 아까운 자식,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새끼. 으쩌자고 이 에미보다 먼저 가부렀다냐. 나를 죽이제, 차라리 이 늙은 에미를 죽이제. 저 아까운 내 새끼를 죽이다니. 영균아······, 영균아······.”
영균의 친구 하나가 월산댁을 등에 업자 다른 두 사람이 뒤에서 받쳤다. 그렇게 산을 내려오는 사이, 건너편의 산 그림자가 벌써 이쪽 산을 덮기 시작했다. 해가 제법 길어지긴 했지만 점심 때가 지나서야 매장 차례가 되어서 벌써 시간이 그렇게 가버린 것이다.
너무나 어이없는 죽음이었던지라 이거고 저거고 제대로 절차를 밟아서 장례를 치를 상황이 아니었다. 시청 직원인지 동사무소 직원인지 하는 사람이 집에 찾아와 난리통에 죽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장례 치르지 않으면 나중에 가족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해서 서두른 장례였다. 처음엔 너무나 기가 막혀 장례고 뭐고 치를 생각도 못한 채 모두 넋을 잃고 있었지만, 관청에서 하라는 대로 서둘러 장례를 치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례를 치렀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월산댁은 아들을 산에 묻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들이 쓰던 방으로 들어갔다.
너, 너는 그 방에 남아 있다. 너의 책상, 너의 책, 너의 옷, 너의 가방, 너의 사진, 그리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의 냄새, 너는 너의 흔적들로 인하여 아직 거기에 남아 있다.
너의 흔적들, 그것들은 너다. 너는 이제 그러한 흔적으로만 만날 수 있다. 사진틀 속에서 웃고 있는 너. 너는 아직도 웃고 있어야 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넌 여태껏 웃고 있다. 사진틀 속의 너도 너다.
너는 잘 웃었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는 물론, 기가 막혀도 웃고, 어색해도 웃고, 심지어는 꾸지람을 들어도 금세 씩 웃고 말았다. 중학교 때의 어느 체육 시간엔 벌을 받으면서도 웃는 바람에 체육 선생의 비위를 건들고 말았다. 그래서 한 시간 내내 운동장을 돌아야 하는 벌을 덤으로 받아야만 했다. 그래도 너는 웃었다. 수돗가에 가서 땀에 젖은 체육복 윗도리를 벗자 친구가 물을 끼얹어 주었다. 그러자 또 웃은 것이다.
“히히, 시원하다!”
그런 아이였다, 너는.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도 넌 당연히 웃고 찍었다. 사진은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넌 사진으로 너의 웃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 웃음은 너다. 너의 모습은 바로 너니까.
월산댁은 아들이 검은 교복을 입은 채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들어있는 조그마한 사진틀을 책상에서 내렸다. 사진틀을 쥔 월산댁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월산댁은 한 손으로 방바닥을 치며 울부짖었다.
“아이고, 내 새끼 영균아! 웃는 낯엔 침도 안 뱉는다는디, 너는 필시 웃고 있었을 것인디, 어떤 놈들이 웃고 있는 너를 죽이더냐 엉, 영균아! 영균아!”
월산댁은 사진틀을 아예 가슴에 품고 발버둥을 쳐댔다. 영균의 그 사진은 고등학교 때 소풍 가서 찍은 것이었다. 단추가 한 줄로 주르르 단정하게 붙은 검정교복을 입고, 모자는 뒤로 젖혀 쓴 채, 윗몸을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어린 티가 나는 얼굴이라 웃는 모습이 더욱 귀여워 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도 사진이야 찍었겠지만, 영균은 웬일인지 그 사진을 책상 위에 줄곧 얹어 놓았다. 아마도,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느꼈는지 모른다.
“불쌍한 내 새끼, 먹도 입도 잘 못 허고, 이리 뛰고 저리 뜀시로 그렇게 살아 볼라고 몸부림쳤는디. 야, 이 놈들아! 야, 이 놈들아! 내 새끼 살려 놔라. 내 새끼가 뭔 죄가 있어서 느그덜 맘대로 쥑였냐, 이 놈들아! 이 살인마들아!”
아무도 월산댁을 말리거나 달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훤한 대낮에 멀쩡한 자식을 잃어버린 그 어머니 심정을 누가 대신할 수 있으랴.
월산댁의 좁은 어깨가 계속 들썩거렸다.
“어머니, 어머니, 이제 그만하셔요. 어머니가 이런다고 죽은 형이 살아올 것도 아니잖아요.”
영균의 동생 영훈이 월산댁을 뒤에서 감싸 안으며 달랬다. 그러자 갑자기 월산댁이 더 큰 소리를 냈다.
“야, 이 놈아. 느그 성은 안 죽었어. 느그 성은 안 죽었단 말이다!”
“어머니······. 어머니······.”
영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의 지금 심정이 어느 정도일 거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금방까지 누가 내 아들을 죽였느냐고 하던 월산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들이 죽지 않았다고 소리 지른다. 월산댁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영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니 똑똑히 알아야 된다. 느그 성은 절대로 안 죽었다!”
“예, 알았어요. 어머니.”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영훈은 눈물을 훔쳤다. 형이 죽다니······. 아닌게아니라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사실 어머니 못지않게 자신도 마음 속으로 형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형을 산에다 묻고까지 왔지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저 꿈을 꾸고 있거나 도깨비에 홀려 잠깐 동안 일어난 일 같기만 했다.
“느그 성은 곧 돌아올 것이다. 그란께 방 어지르지 말고 깨끗이 치워 놓아라.”
월산댁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는 달리 착 가라앉아 있었다.
너는 그렇게 해서 죽지 않았다. 너의 어머니가 너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너의 육신이 무덤 속에서 다시 걸어 나올 리는 없다. 너는 네가 무덤으로 갈 때까지 살아온 발자취에만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너의 어머니는 너의 흔적을 너 대신 부둥켜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너의 흔적 속에 너는 계속 살아 있다.
월산댁은 며칠을 꼼짝 않고 드러누워 끙끙 앓았다. 그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그날로 영균의 무덤에 다녀왔다.
“느그 성이 잘 있는가 보고 왔다. 쪼깐 답답하다고 하더라.”
영훈은 어머니의 그 말에 그저 묵묵부답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는 까닭이 아니라, 말이 필요없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 날도 월산댁은 다시 외출할 준비를 했다.
“내가 시방 어디 좀 갔다 와야 쓰겄다.”
“또 형 만나고 오시게요?”
“아니, 느그 성이 다니던 철물점에 쪼깐 다녀 올란다.”
“거긴 왜요, 어머니?”
영훈은 어머니의 뜻밖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는 왜냐? 느그 성이 오늘은 글로 온다고 했은께 그라제.”
“형이 철물점으로 와요?”
영훈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얼른 어머니를 다독거려줬다.
“그러세요, 다녀오세요. 형이 그곳에 가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으로선 어머니가 하는 대로 지켜 봐 주는 게 어머니를 위하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월산댁은 힘없는 웃음을 한 번 지은 뒤 집을 나서 버스가 다니는 큰 길가로 곧장 나갔다.
버스 정류장에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버스 몇 대가 도착했지만 월산댁이 탈 버스는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린 중늙은이 하나가 손자인 듯한 어린애 하나와 다가와 뭐라고 길을 물었다. 그러나 월산댁은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그냥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중늙은이는 혼자 중얼거리며 길가 가게들의 간판을 쳐다보았다. 마침내 월산댁이 탈 버스가 왔다. 월산댁은 무릎에 손을 짚으며 힘겹게 버스에 올라탔다. 영균이 다니던 철물점은 그 버스의 종점 가까이에 있었다.
영균은 낮에는 그 철물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갔다. 야간대학을 다니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영균은 고등학교도 공업고등학교의 야간을 다녔다. 월산댁은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아비가 죽고 없는 자식들이지만 고등학교만큼은 제대로 낮에 보내야 할 것인데, 낮에는 일하고 밤에 학교 다녀야 하는 영균을 보면 항상 안쓰러움이 앞섰다.
영균은 고등학교 3 년 내내 우유 배달을 했다. 새벽에 자전거로 배달구역을 한 바퀴 돈 뒤 학교 가기 전까지 낮 시간엔 수금을 하거나 우유를 대 먹을 집을 하나라도 더 늘리기 위해서 이 집 저 집 대문을 두드리며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영균은 스스로의 학비를 버는 것은 물론 오히려 집안 살림에까지도 보탬을 줬다.
신문 배달이 우유 배달보다는 쉬웠지만 아무래도 보수는 우유 배달만 못했다. 그래서 영균은 무거운 우유 배달 자전거를 몰았던 것이다. 월산댁은 영균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영균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대학에 합격했다. 비록 야간대학이지만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월산댁은 가슴이 벅찼다.
“영균아, 장하다. 따순 밥 먹고 공부만 해도 가기 힘들다는 대학을 넌 야간 고등학교만 댕겨 갖고도 들어가다니, 니가 최고다 최고!”
“아이 참, 어머니도. 야간대학은 말이죠, 거의 떨어지는 사람 없이 미달이 되니까 맘만 먹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어요. 제가 언제 공부나 제대로 했나요?”
“아녀, 아녀, 그렇게 겸사할 필요 없어. 대학생은 아무나 되는 것이간디, 그나저나 입학금은 으지께 맨들어야쓰까?”
월산댁은 대학시험에 붙은 아들이 그저 신통했지만 이내 곧 입학금 걱정에 즐거움도 잠깐이었다.
“걱정마세요, 어머니. 우선 빌려서 내고 나면 이번에 옮겨가는 철물점 월급이 괜찮으니까 금세 갚을 수 있어요.”
영균은 제법 큰 철물점에 들어가기로 이미 결정이 되어 있었다. 그 철물점은 전기공사나 보일러 공사 같은 것을 하청 맡아서 하는, 이른바 설비업체였다. 우유 배달을 다니면서 철물점 주인을 알게 되어 학교 졸업하면 들어가기로 이미 얘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입학금이 어디 한두 푼이라야지······. 게다가 영훈이도 인자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월산댁은 여전히 걱정이 앞섰다. 이런 땐 남편이라도 죽지 않고 살아있었으면, 아니면 자신이라도 벌이가 괜찮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월산댁은 남편과 함께 손수레에 채소를 싣고 다니며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새벽시장에서 뗀 채소를 손수레에 싣고 길을 건너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자신은 허리를 많이 다쳐 석 달 동안을 꿈쩍도 하지 못한 채 병원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횡단보도도 신호등도 없는 곳이긴 했지만, 매일 건너던 곳이라 눈을 감고도 건널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법.
그런데 목격자도 없는데다 사고차량도 뺑소니를 쳐버린 뒤라 남편 보상비는 물론 자신의 치료비조차 한 푼 건지지 못했다. 오히려 치료를 하느라 그나마 있던 돈을 모두 까먹고 말았다. 월산댁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서 자식새끼들과 먹고 살려고 버둥대봤으나 다친 허리가 늘 도져 식당일이든 광주리 장사든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아들인 영균이 마음 쓰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슬거워서 영균이 덕에 세 식구가 굶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영훈은 학교를 낮에 다닐 수 있게까지 되었으니, 이게 모두가 영균이 몸부림치고 산 덕분이었다.
영훈 역시 학교가 끝나면 곧장 신문보급소로 달려가 석간신문을 돌림으로써 살림에 적지 않은 보탬을 주었다.
월산댁은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청년들만 올라타면 혹시나 해서 쳐다보았다.
너도 청년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건장한 청년이었다. 가벼운 감기 한 번 앓은 적 없고 어깨고 다리고 어디 한 군데 꽝꽝하지 않은 곳이 없는, 그야말로 한창 때의 청년이었다. 그런 청년인 네가 죽다니. 너는 아직 죽을 때가 안 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죽었다. 그렇다면 가벼운 감기 한 번 앓은 적이 없는 청년이 죽었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맞다. 문제가 있다. 너의 죽음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월산댁은 버스가 종점을 한 정류장 남겨 놓았을 때 내렸다. 새로 개발되는 아파트 지역의 입구였다. 그래서 아직 포장이 채 되지 않은 길이어서 버스가 달릴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렸다. 월산댁은 내린 자리에서 사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 전에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었는데 그새 건물들이 들어서고 가게마다 간판이 더덕더덕 붙어 있어서 방향 감각이 잘 잡히지 않았다.
“염병할 것. 뭣이 이렇게 복잡하게 바뀌어부렀다냐.”
월산댁은 선 자리에서 고개를 좌우로 돌려 한 번 쭉 훑듯이 돌아본 뒤 곧장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 입구와는 대각선 방향이 되는 쪽이었다. 이윽고 전봇대 두 개가 쌍으로 붙어 있는 골목 입구에서 멈춰 섰다.
“쌍 전봇대가 서 있는 데였는디······.”
월산댁은 철물점 간판을 찾느라고 두리번거렸다. 골목 안쪽 스무 걸음쯤 해서 철물들이 진열되어 있는 가게가 보였다. 간판은 붙어 있는지 어쩐지 옆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가게 자리치곤 조금 외진 곳이었다.
“쩌기 있구만!”
월산댁은 철물점 앞에 이르자마자 아들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철물점에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월산댁은 철물점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더 큰 소리로 아들을 불러댔다.
“영균아, 이 놈아! 에미가 왔다. 에미가 왔어!”
철물점 안에 있는 방의 미닫이문이 열리며 육덕이 좋은 젊은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세요?”
“나, 영균이 에미 되는 사람이오.”
“아, 그러세요.”
젊은 여자는 그때에야 비로소 문 밖으로 나왔다.
“영균이 총각은 지금 여기 없는데요.”
“영균이가 이리 온다고 나보고 가 있으라고 했소.”
“영균이 총각은 난리통 끝나고 나선 한 번도 출근을 안 했어요. 지금 우리 바깥양반이랑 다른 총각들은 모두 아파트 시설해주느라 눈코 뜰새없이 바쁜데 영균이 총각은 전화 한 통화도 없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총각네 집엔 전화도 없어서 우리도 연락해보지 못했어요.”
“우리 집엔 전화가 없지라우.”
“근데 영균이 총각은 지금 어디 있대요?”
“어디 있긴 어디 있겄소. 지금 저짝 북망산 뫼뚱에 누워 있제.”
“예? 어디, 어디라고요?”
철물점 여자의 눈이 쇠눈깔만해지면서 놀라 자빠지는 시늉을 했다.
“어디긴 어디라요. 공동묘지 한삐짝이제.”
철물점 여자는 아예 더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듯 했다. 월산댁의 말이 너무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그, 그랬었군요. 난리통에 그만······.”
월산댁은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다. 철물점 여자도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다.
그랬다.
너는 난리통에 변을 당했다. 난리통, 난리통이었다. 8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사는 거대한 도시가 열흘간이나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고, 전쟁도 아닌데 군인들이 사람을 총칼로 쏘고 쑤셨다면 분명 난리통은 난리통이었다.
너는 그 난리통과는 어쩌면 아무 관계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너는 그 난리통 속에 휩쓸려 들고 말았다.
철물점 주인 따라 새로 지은 아파트의 자질구레한 설비들을 하러 다니던 너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만 시내 지하도 공사장 주변에서 엎드려 죽은 채 발견되었다. 사람들이 곧 병원 뒷마당에 죽은 너를 옮겨 놓았다.
아무도 네가 무엇 때문에, 또 어떻게 죽었는지를 모른다. 어쩌면 죽은 너 자신도 무엇 때문에, 또 어떻게 죽었는지 모를 것이다. 너의 죽음은 그만큼 뜻밖이었다.
그 날 넌 아침에 출근한다며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나이가 되도록 넌 한 번도 외박을 한 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래서 그 날 밤 네 어머니는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의 어머니와 동생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난리통에 죽은 사람들이 누워 있는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며 시체 위에 덮여 있는 흰 광목천을 들쳐보았다.
그런데 설마 했던 네가 병원 마당 구석에 흰 천을 덮고 누워 있을 줄이야. 너의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퉁퉁 부어 있었고, 손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는 물론 신발도 다 벗겨져 버리고 없었다. 네가 입고 다닌 옷이 아니었다면 널 쉽게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넌 가슴과 배꼽 사이에 총을 맞았다. 온몸에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던 피, 그 피는 총알이 뚫고 지나간 자리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침이면 철물점으로 출근하고 저녁엔 학교로 등교하던 그런 너의 모습이 아니었다. 너는 차바퀴에 깔려 죽은 쥐나, 몽둥이에 맞아 죽은 똥개처럼 아주 형편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모습이 어찌 그렇게 처참하게 변할 수 있을까 싶도록 너는 갈기갈기 찢긴 짐승의 모습, 바로 그 꼴이었다.
물론 너뿐만이 아니었다, 짐승의 모습으로 죽은 사람은. 사냥의 대상을 전혀 가리지 않은 그 놈들은 그야말로 미친 광기의 축제를 벌였다. 그 미친 광기의 축제 때 너는 많은 사람과 함께 제물로 바쳐진 짐승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도 너는 사람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짐승과 다른 사람이기를. 죽는 그 순간까지도.
월산댁은 철물점을 나왔다. 철물점 여자의 말을 들어봐도 별 도움이 되는 것이 없어서였다. 철물점 여자는 도통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월산댁은 터벅터벅 발길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젊은 것이 시상 돌아가는 판 속을 하나도 모르는구만.”
철물점 여자는 영균이가 죽었느냐고만 되풀이해서 물었다.
“영균이가 죽었다고? 우리 아들은 절대로 죽지 않았어!”
월산댁은 아들이 죽지 않았다고 우겼으나, 아니, 에미가 철물점에 와 있으면 영균이가 이리로 온다고 했다고 몇 번이나 말했으나 철물점 여자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월산댁은 철물점이 있는 골목 입구의 쌍 전봇대 아래에 쭈그리고 앉았다.
“올 시간이 되었는디······.”
월산댁은 한참을 거기서 기다렸다. 그러나 영균은 오지 않았다.
“야가 어째서 이렇게 늦는댜. 분명히 철물점으로 들른다고 했는디·····.”
월산댁이 앉아있는 길 앞으로 조무래기 녀석 몇 명이 우르르 뛰어갔다.
“야! 같이 가.”
“빨리 따라오면 되잖아!”
조무래기들은 서로 뒤처지지 않으려고 할딱대며 뛰었다. 월산댁은 아이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이내 곧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시방 이러고 여기 있을 것이 아녀. 야가 뭔 일이 생긴 것이여. 그새 뭔 일이 생겨서 못 오고 있는 것일 거여.”
월산댁은 종점 쪽에서 나오는 버스를 향해 달려갔다. 월산댁은 다시 버스를 탔다.
“가만 있자, 영균이한테 무작정 갈 것이 아니라 집에 들러서 영균이 옷가지나 좀 가지고 가야 쓰겄다. 늘 입고 다니던 옷이 없어서 못 나왔는지도 모르자니여. 갸가 원래 옷타령 같은 건 눈꼽맨치도 안 하던 애였지만 말여.”
집으로 다시 돌아간 월산댁은 영균의 방으로 들어가서 영균이 즐겨 입던 옷을 찾기 시작했다.
너는 옷 같은 건 그냥 몸뚱이만 감싸고 다닐 정도만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땐 교복말고는 입을 만한 사복 한 벌이 없었다. 집에선 낡아빠진 트레이닝복 한 벌로 사철을 지냈고, 우유배달을 할 땐 교련복을 입고 다녔다. 자전거 안장에 바지 엉덩이가 닳고 닳아 안감을 대고 몇 번이나 누볐는지 모르지만, 달리 입을 만한 작업복도 없어서 너는 교련복 바지만 입고 다녔다.
그나마 대학을 들어가고 철물점에 취직을 하자 할 수 없이 사복을 사 입었다. 작업복은 철물점 주인이 입던 걸 얻어서 입었고. 아무튼 너 같은 사람만 있다면 옷장사는 아마 밥 먹고 살기가 힘들 것이다.
옷은 날개라고 흔히 말하지만 옷은 날개라기보다는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가짐이 어쩌면 옷으로 나타날 것이다. 너 역시 너의 옷을 통하여 너를 보여줬다. 아니, 너의 옷을 보면 너를 알 수 있었다.
월산댁은 영균이 입던 옷 한 벌을 보자기에 싸들고 다시 집을 나섰다. 그건 흔히 해작이라 부르는, 해군 작업복을 파아랗게 물들인 것이었다. 작업복이라서 무척 질겼고, 바느질도 단단히 되어있는데다 그리 비싸지 않아서 젊은이들은 그 옷을 무척 즐겨 입었다. 영균도 그 옷을 일상복으로 입었다. 학교에 갈 때는 물론 철물점에 왔다갔다 할 때도 입었다. 그런데 영균이 죽던 날은 공교롭게도 그 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영균은 여간해선 입던 옷이 떨어지기 전엔 다른 옷을 번갈아 입는 성질이 아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엔 몇 벌 되지 않는 옷 가운데에서 그나마 가장 최근에 산 새 옷을 입고 나갔다. 새 옷이라고 해봐야 도떼기 시장에서 좌판에 잔뜩 쌓아놓고 ‘떨이요! 떨이!’하면서 싸구려로 파는 옷이었다. 하지만 영균은 그런 옷도 자주 사 입을 형편이 못되었다.
월산댁은 영균이 입던 해군 작업복을 싼 옷보따리를 가슴에 품듯이 껴안고 걸었다. 이미 마음 속으론 갈 곳을 정하고 있었다. 아까 철물점에서 오래 머뭇거리지 않고 금방 나온 건 어미의 직감으로 영균이 그곳으로 올 것 같지가 않아서였다.
갈 곳은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공원묘지로 영균의 무덤이 있는 곳. 월산댁은 공원묘지행 버스를 탔다. 물론 그 버스는 엄격히 말해 공원묘지까지 가지 않는다. 하기 좋은 말로 공원묘지 입구까지 가는 버스다. 그런데 그 입구라는 정류장에서부터 묘지까지는 족히 십리가 넘어 월산댁처럼 몸이 성치 않은 아낙네의 걸음으로는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거리다.
그런데도 그 버스는 당당히 공원묘지행이라고 써 붙이고 다닌다. 버스회사 입장에서 보면 공원묘지 가장 가까이까지 가는 차이므로 그렇게 써 붙이고 다녀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버스가 공원묘지 입구에 닿자 월산댁은 차를 내린 뒤, 터벅터벅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간간이 자가용 승용차가 지나갔다. 그때마다 먼지가 부옇게 일었다. 월산댁은 행여라도 그 먼지가 영균의 옷보따리에 묻을까 봐 옷보따리를 더욱 꼭 껴안았다.
“젊은 것들이 염병하고 다니네, 몬지가 폴폴 나는구만. 장딴지에 핏기 돌 때 썽썽하게 걸어댕길 일이제 자가용은 무슨 자가용이다냐.”
월산댁은 자신도 모르게 이젠 ‘젊은 것’들이란 말이 입에 붙어버렸다. 철물점 ‘젊은 것’은 세상 돌아가는 꼴을 도통 모르고, 공원묘지 길을 자가용 타고 다니는 ‘젊은 것’들은 먼지나 날리면서 염병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한참을 걸어 나지막한 고개 하나를 넘자 공원묘지의 무덤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장례가 있는지 산 아래엔 장의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산 중턱쯤 해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 몇이 서성이고 있었고, 작업복을 입은 산역꾼들의 모습도 보였다. 월산댁은 무덤 일을 하는 산역꾼들을 보자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저것들은 맨날 쌩사람 묻는 걸 밥 먹듯이 하는 것들이여. 젊은 것들이 헐 짓이 없어서 해필 쌩사람 묻는 일을 한댜. 쌩사람 묻는 일을 해!”
월산댁은 괜히 또 ‘젊은 것’들을 들먹였다. 하지만 산역꾼들 가운데엔 젊은 사람보단 늙은 사람이 더 많았다. 젊은 사람이 뭐 할 일이 없어서 허구한 날 남의 송장이나 파묻는 일을 하겠는가? 그런 거야 어찌 되었든 월산댁의 생각으론 그 사람들은 무조건 ‘젊은 것’들이었고, 또 그 ‘젊은 것’들은 괜히 생사람을 묻는 일을 하는 이들이었다. 월산댁은 저 사람들이 없으면 무덤도 생기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월산댁은 마침내 장의차가 있는 곳을 지나 영균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장방형으로 다듬어진 무덤들이 줄지어 늘어놓은 성냥갑처럼 보였다. 볕도 잘 들 것 같지 않은 이 구석 골짝에까지 무덤을 만들어야 할 정도라면 난리통에 죽은 사람들말고도 이 도시에서 매일 죽는 사람이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무덤이 아예 계단처럼 층층으로 되어 있지 않는가.
하긴 뭐, 사람은 모두 죽기 위해 사는 것이니 느는 것은 무덤밖에 더 있겠는가.
영균의 무덤은 엊그제 다녀온 그대로 있었다. 봉분의 흙이 채 굳지 않아 부석부석했고, 떼도 듬성듬성 자리가 나 있었다. 마치 기계충 먹은 60 년대 아이들 머리통처럼. 단지 저번 날 월산댁이 엎드려 있던 자리만 조금 다져진 느낌이었다.
“영균이 이 놈아, 에미 왔다. 퍼뜩 일어나거라. 젊은 것이 뭐가 어쨌다고 벌써부터 자리 잡고 누워 있냐? 어서 일어나 이 놈아, 에미가 왔단 말이다.”
월산댁은 무덤 앞의 반반한 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영균아, 니 옷 가져왔다. 철물점에서 기다리다 생각해본께, 아무래도 니가 옷이 마땅찮아서 밖에 못 나오는 것 같아 니가 좋아하는 옷 가져왔다. 인자 이 옷 입고 마음대로 바깥 출입하거라.”
월산댁은 보따리를 풀어 영균의 옷을 꺼내 영균의 무덤 위에 펼쳤다. 무덤의 봉분이 워낙 조그마해서 마치 허수아비 옷 걸치듯, 아니면 빨래를 깔아서 넌 듯한 꼴이 되었다.
“아이고, 내 새끼. 이 옷 입으면 인물이 훤했제. 다른 아그들이 입으면 멀대 같어도 니가 입으면 듬직했제. 옷이 날개가 아니라 인물이 먼저제, 암은. 인물이 훤해불면 옷이야 걸레를 걸쳐도 쌔이제. 쌔이고 말고.”
월산댁은 보일 듯 말 듯한 엷은 미소를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흘려 보냈다.
너는 언제나 다정다감했다, 친구들에겐 물론 가족들에게도. 특히나 어머니 월산댁에겐 이 세상에 둘도 없이 정 많고 이해심 많은 아들이었다.
그래서 월산댁은 늘 너와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아버지가 살아있는 때도 그랬지만 넌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엔 더욱 더 어머니를 위했다. 어린 나이로 우유 배달을 하면서 학교 다니고 생활한다는 건 고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넌 한 번도 그러한 일로 투정을 부린 일이 없었다. 오히려 안쓰러워하는 어머니를 다독거리며 애써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너는 집안의 가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문제는 물론 동생 일 어머니 일까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처리했다. 물론 일을 처리할 때는 건성건성 하는 법 없이 동생이나 어머니가 만족해하고 오히려 미안해할 정도로 속뜻을 알아 처리해주었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뭐 엄청나게 큰일을 처리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지만, 너의 처지에선 제법 힘겨운 일도 많았다.
너는 생활이 어려운 탓에 어떤 일로 마음이 흔들릴 때면 더욱 빠르게 자전거 발판을 밟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픈 일이라도 있으면 우유 배달이 끝난 뒤에도 빈 자전거를 몰고 거리를 한바탕 씽씽 달리고 나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그러고 나면 역시 씩 웃는 것이었다.
“어유, 개운하다! 몸이 좀 풀리는구나!”
너는 그런 아이였다. 네가 고민하는 것을 보고 행여나 주위 사람들이 같이 걱정할까 봐 일부러라도 웃고 떨쳐버리기 위해 무진 애를 쓴 아이였다. 그래서 너의 어머니 월산댁은 너를 더욱 든든하게 여기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너와 의논하고 결국은 뭐든지 거의 너의 의견에 좇았다.
월산댁은 영훈이가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자 자신도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오늘은 영균이가 나올 수 있을까? 내가 시방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여. 틀림없이 나온다고 그랬는디. 학교에서 시험 보는 날인께 학교에 꼭 가야한다고 안 했남.’
월산댁은 아들을 만날 기대에 마음이 들떠 설거지도 대충대충하고 집을 나섰다.
‘젊은 놈이 뭔 염병한다고 땅 속에 드러누워서 나오지도 않고 맨날 이 에미만 바쁘게 하는지 모르겄네. 으쩌다 시방 내가 이러코롬 지를 만나러 다녀야 한단가. 집에서 옛날처럼 같이 살믄 오죽 좋아.’
영균의 학교는 시내 한복판을 지나가야 나온다. 남녀 중고등학교와 대학이 한 울타리에 다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역사도 제법 오래 된 사립대학이지만 그다지 명문으로 치는 학교는 아니다. 더구나 야간학부는 정원이 늘 차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월산댁은 어찌 되었든 영균이 대학을 다닌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시내에 볼 일이라도 있어 나갔을 때 영균의 학교 건물이 눈에 들어오기라도 할라치면 괜스레 가슴이 뛰고 어깨가 들썩거려졌다.
‘내 아들놈이 저 학교에 댕긴단 말여, 시방. 낮에 돈 벌어갖고 지 힘으로 다니고 있단 말여.’
월산댁은 아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꽉 차오르며 그저 뿌듯하기만 했다. 하지만 영균이 학교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입학식이라야 야간이다 보니까 주간 학생들 할 때 곁다리 붙어 하는 둥 마는 둥 하는데다 영균이 자신도 직장 때문에 입학식에 참석하지 못한 실정이었다. 그러니 월산댁이 언제 학교에 가 볼 일이 있었겠는가.
‘으찌께 하든지 졸업만 타거라. 학교야 졸업식 때 가 보면 될 것 아니냐.’
월산댁은 까만 두루마기 비슷한 옷을 입고 머리엔 사각모를 쓴 아들의 모습을 늘 그려보았다. 자신의 아들이 몇 년 후엔 당당히 그런 모습을 보여줄 걸 생각하면 괜히 우쭐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들 녀석이 요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산에 가서 누워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월산댁이 탄 차가 마침내 시내 한복판의 정류장에 섰다. 도청을 비롯해 은행과 신문사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이었다. 막 출근 시간이어서인지 넥타이 차림과 정장 치마 차림의 손님들이 줄지어 내렸다.
‘우리 영균이도 학교만 졸업나믄 저렇게 넥타이 매고 번듯한 직장에 댕길 수 있을 것이고만.’
도심을 지난 버스는 버스정류장을 너댓 군데 더 지났다. 그대마다 중고등학생 차림의 아이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영균이 다니는 대학교랑 같이 붙어 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인갑다. 저 애기들 내릴 때 같이 내리믄 되겄구만.’
마침내 버스가 영균의 학교 앞에 섰다. 제법 많은 학생들이 내렸다. 월산댁도 같이 따라 내렸다. 여기가 무슨 무슨 대학교 앞이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월산댁은 자연스레 학생들 틈에 끼어 교문을 지나갔다. 아무도 월산댁을 쳐다보지 않았다. 쳐다보았다 해도 아마 학교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아주머니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너는 공부엔 그다지 흥미가 많지 않았다. 단지 배울 수 있다면 한 자라도 더 배워야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더 적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대학에 입학을 하긴 했지만 자신의 성격이나 능력이 대학 공부에 썩 어울린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배워야 한다는 자세는 중요하게 생각했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빨리 변하기 때문에 배우지 않고선 세상살이에 적응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공부엔 그다지 흥미가 없으면서도 야간으로나마 대학을 다녔던 것이다.
너는 실용적인 지식을 배우기를 원했다. 쉽게 말해 밥벌이에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지식 말이다. 그건 아마 너의 환경 탓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월산댁은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어린 학생 하나를 잡고 야간대학, 아니 이부대학이 어디냐고 물었다.
“이부대학요? 이부대학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 산 아래 건물이 대학교예요. 그리 가보세요.”
그 학생이 가르쳐 준 곳은 대학 본부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넥타이 차림의 젊은이에게 이부대학 건물을 물었다. 그 젊은이는 월산댁을 한 번 훑어보더니 이부대학이 어디 있는지를 일러 주었다.
월산댁은 숨을 헐떡이며 단숨에 이부대학으로 달려갔다. 이부대학 건물 앞엔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하늘을 보고 팔을 벌린 채 서 있었다. 한참 물기 오른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번들거렸다. 월산댁이 건물 현관으로 들어서자 늙수그레한 수위가 다가왔다.
“아줌마, 어디 가세요?”
“나 말이요?”
월산댁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여기 아줌마말고 누가 있소?”
“나, 시방, 아들 만나러 왔소.”
“아들요? 지금 휴교중이어서 아무도 학교에 나오지 않는데 뭐하러 아들을 만나러 학교에 옵니까?”
맞는 말이었다. 난리통 끝나고도 대학은 아직 휴교령이 풀리지 않아서 대학교엔 직원들만 출근을 하고 있었다. 아까 본부에서 만난 넥타이 차림 젊은이도 아마 직원이었을 것이다.
“으찌 되았든 난 아들하고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은께, 이녁은 넘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이녁 일이나 보쇼.”
수위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기다려 보세요만 학생들은 요새 학교에 안 나와요.”
수위는 별 관심없다는 투로 비켜났다. 월산댁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았다. 아닌게아니라 학생들은 그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월산댁은 출입문이 보이는 쪽 창문의 난간에 걸터앉았다.
‘갸가 오늘 시험인께로 학교엔 오긴 온다고 했는디·····. 그란디 내가 너무 일찍 와버린 거 아녀?’
월산댁은 난간에서 일어나 수위한테로 갔다.
“아잡씨, 오늘 학생들 시험 보는 날 맞지라우?”
“허참, 그 아줌마도. 난리통이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수업도 못하고 있는데 시험은 무슨 시험을 본다고 그러시오. 학생들이 아직 학교에 못 나온다니까요!”
월산댁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난리통, 난리통이라는 그 말을 또 들은 것이다. 월산댁은 그 난리통이라는 말이 맘에 걸렸다. 철물점의 ‘젊은 것’도 난리통이라는 말을 썼다. 도대체 뭔 난리가 났단 말인가!
너는 그 난리통하곤 사실 아무 관련이 없어야 했다. 왜냐하면 넌 먹고살기만도 바빠 민주화 일정 촉구 집회에 나간 적도 없고 시국 토론회 같은 데에 기웃거린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리통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난리통은 아무에게나 차별없이, 또 예고없이 닥치는 것이기에 말 그대로 난리통 아닌가.
너는 그 난리통 때문에 죽었다. 보통 때 같으면 죽지 않아도 되었고, 죽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그 난리통 때문에 죽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난리통은 과연 무엇인가? 그 난리통은 ‘계엄포고령 제 10 호’로부터 시작되었다.
계엄포고령 제 10 호
1. 1979년 10월 27일에 선포한 비상계엄을 계엄법 규정에 의하여
1980년 5월 17일 24시를 기하여 그 시행지역을 대한민국 전 지역
으로 변경함에 따라 현재 발효중인 포고를 다음과 같이 변경한다.
2. 국가의 안전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 모든 정치 활동을 중지하며 정치목적의 옥내외 집회 및 시위를 일절 금한다. 정치 활동 목적이 아닌 옥내외 집회는 신고를 하여야 한다. 단, 관혼상 제와 의례적인 비정치적 순수 종교 행사의 경우는 예외로 하되 정치적 발 언은 일절 불허한다.
나.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은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한다.
다. 각 대학(전문대학 포함)은 당분간 휴교 조처한다.
라. 정당한 이유 없는 직장 이탈이나 태업 및 파업 행위를 일절 금한다.
마. 유언비어의 날조 및 유포를 금한다. 유언비어가 아닐지라도
1) 전·현직 국가원수를 모독 비방하는 행위
2) 북괴와 동일한 주장 및 용어를 사용, 선동하는 행위
3) 공공집회에서 목적 이외의 선동적 발언 및 질서를 문란 시키는 행위를일절 불허한다.
바. 국민의 일상생활과 정상적 경제활동의 자유는 보장한다.
사. 외국인의 출입국과 국내여행 등 활동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한다.
본 포고를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수색하며 엄중 처단한다.
1980. 5. 17
계엄사령관 육군 대장 이희성
계엄포고령 제 10 호는 이러저러한 것은 안 된다 해놓고 위반한 자는 엄중 처단한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었다. 그렇다면 너는 도대체 이 포고령의 어디에 해당되어 ‘엄중 처단’되었을까?
너는 그저 세상 물정 모르고 학교와 일터만 왔다갔다 하는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선배들로부터 특별히 어떤 ‘학습’을 받은 적도 없고 학교 안팎의 어떤 정치적인 모임은 고사하고 비정치적 모임에도 나간 적이 없는, 고단한 야간 대학생일 뿐이었다. 학교 가기 전에 낮 동안은 오로지 일터에서 열심히 일만 하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종업원이었을 뿐이다.
그런 네가 죽다니? 너는 무엇 때문에 죽어야 했을까? 네가 죽던 무렵, 80만 명이 사는 도시의 하늘에선 가을날에 낙엽 날리듯 협박 반 공갈 반인 종이 쪼가리가 펄펄 날리며 쏟아지고 있었다. 거긴 이렇게 씌어 있었다.
폭도들에게 알린다
폭도들은 즉시 자수하라
자수한 자는 생명을 보장한다
그리하여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모두가 폭도로 불리어야 했다. 물론 ‘선량한’ 시민에게 보내는 이런 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폭도들에 합류한 선량한 시민이나, 학생은 즉시 귀가하십시요
집결된 지역에 있는 선량한 시민 여러분은 위험합니다.
네가 폭도로 보였든 선량한 시민으로 보였든 네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넌 죽었다는 것이다. 그 난리통 속에서.
그 난리통은 열흘간 계속 되었고 마침내 피로써 끝을 맺었다.
폭도들은 투항하라
도청과 광주공원도 군이 장악했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총을 버리고 투항하면 생명은 보장한다
5월 27일 새벽 5시 23분, 도시는 군에게 완전히 점령되었다. 그래서 난리통은 끝났다. 그러나 진짜 난리통은 끝나지 않았다. 난리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야 할 너 같은 사람까지 난리통 때문에 죽고 말았으니 그 난리통이 쉽게 끝나겠는가?
월산댁은 순간적으로 오줌을 찔끔 지렸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난리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곧 좋게 생각했다.
‘영균이는 난리통을 피하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거여. 근디 난리통도 인자 끝났자니여? 그라믄 갸도 시방은 집으로 들어와도 괜찮을 것인디······.’
월산댁은 이부대학 앞의 계단을 내려와 운동장 쪽으로 바로 갔다. 운동장에도 학생들은 없었다.
“아따, 운동장 한 번 되게 널찍하네. 넓은 갯바닥 같구먼.”
혼자서 중얼거리며 월산댁은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저 운동장에 사람이 꽉 들어차 있다고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굉장할 것이다. 땅이 울렁거리지나 않을까? 난리통 땐 도청 앞에 사람이 엄청나게 모여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도청 광장은 내려앉지 않았다. 내려앉은 건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 영균이 서 있었다.
“영균아! 영균아!”
월산댁은 아들을 부르며 운동장 가운데로 막 뛰어갔다.
“탕! 탕! 탕!”
월산댁은 갑자기 총소리를 들었다. 황급히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총을 쏘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따콩! 따콩! 따콩!”
다시 총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멈추지 않고 운동장을 가로 질러 냅다 뛰었다. 그러나 곧 넘어지고 말았다. 아이 주먹만한 돌멩이에 발이 걸린 것이다. 월산댁은 넘어진 채 잠시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영균아! 영균아!”
“어머니! 어머니! 왜 여기 계세요?”
월산댁의 눈에 교문 쪽에서 달려오는 영균이 보였다. 그러나 곧 월산댁은 일어나 쭈그리고 앉았다. 더 이상 영균을 부르지도 않았다. 달려오던 영균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제법 달궈진 초여름 햇살만이 눈에 부셨다.
너는 어머니를 못 잊을 것이다. 너는 네가 나서 자라고 죽어간 이 도시를 못 잊을 것이다. 그러고 너는, 너는 너를 죽인 그 누군가를 결코, 결코 못 잊을 것이다.
너에게 어머니가 특별히 잘 해준 건 없다. 그러나 어머니는 너를 낳았다는 그것만으로도 너에겐 소중한 존재이다. 그래서 너는 절대로 어머니를 못 잊을 것이다.
또 너에게 이 도시가 베푼 건 없다. 그러나 너는 이 도시의 바람과 햇살과 냄새를 느끼며 자랐다는 그것만으로도 너에겐 이 도시가 소중한 존재이다. 그래서 너는 또 절대로 이 도시를 못 잊을 것이다.
너는 누구의 총을 맞았는지도 잘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 너를 죽인 건 누군가의 총구에서 나온 총알이었다. 어찌 그 총알의 주인을 잊을 수 있으랴. 그래서 너는 절대로 너를 죽인 누군가를 못 잊을 것이다. 알 수 없지만 존재하는 그 누군가를.
너는 소위 학생 지도부도 아니었고, 재야 민주인사도 아니었고, 정치가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불량배도 아니었고, 건달 놈팡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너는 너를 죽인, 알 수 없지만 존재하는 집단들이 폭도라고 부르는 부류에 속하는, 아니 속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너는 죽은 것이다. 폭도의 눈엔 폭도만이 보일 것이다. 알 수 없지만 존재하는 그 누군가들의 눈에는 시민들이, 학생들이 폭도로 보였던 것이다. 너는 말하자면,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폭도였던 것이다.
그들은 폭도들에게 자수를 권했다. 그러나 넌 폭도가 아니었기에 자수고 뭐고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넌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갔다. 아무도 네가 무슨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죽었는지를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건 네가 꼭 그 시간에 이 도시,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넌 죽어야만 했다.
때로 죽음은 아무 근거 없이 오기도 한다. 근거 없는 죽음, 그래서 너의 죽음은 더욱 쓸쓸하고 어이없다. 그러나 넌 네가 못 잊을 어머니와 이 도시의 그 누군가와 있어 죽지 않았다. 어머니는 널 잡아당길 것이고, 이 도시는 네가 죽었을 때도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품에 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 중 어느 한 사람쯤은 가끔씩 가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맥박소리 때문에 괴로워 할 것이다. 그 괴로움 속에서도 너는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넌 죽지 않았다. 너의 흔적으로 인하여가 아니라 너의 존재 그 자체가 너를 살아 있게 할 것이다.
월산댁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입이 바싹바싹 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꿀꺽꿀꺽 들이킨 뒤 머리를 수도꼭지 아래에 들이밀고 한참 동안 있었지만 증세들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염병헐 놈의 날씨가 사람 콱 잡겄네.”
한여름에 비하면 덥다고 할 수도 없는 초여름 날씨인데 괜스레 날씨 탓을 했다.
분명히 학교운동장에서 영균을 본 것 같았는데 그 녀석이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은 기어코 만나서 집으로 데리고 와야지. 허, 그 녀석도 참. 뭐 한다고 산에 드러누워서 잠을 자, 잠을 자긴. 이따가 해지믄 다시 가보믄 될 것이여. 갸는 학교를 밤에 다닌 사람 아닌가. 그란께 갸를 만날라믄 밤에 가야지. 아침에 뭐 하러 가. 내가 뭐에 씌었나? 아침부터 오도방정을 떨고 다니고 쯧쯧.”
스스로 생각해 봐도 혀를 찰 일이었다. 밤에 가면 될 것을 뭐 한다고 아침부터 가서 기다리다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월산댁은 영균의 방을 쓸고 닦았다. 오늘 저녁엔 영균이 집으로 들어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영균인 지저분한 걸 제일 싫어해. 그란께 갸가 오기 전에 방이나 깨끗이 치워놔야제. 갸는 옷 떨어진 건 입어도 앉은 자리 지저분한 것은 못 참는 성미였어.”
월산댁은 닦을 먼지도 별로 없는 책상이며 방바닥을 두 번씩 세 번씩 거듭 쓸고 닦았다.
그때였다. 전에도 집에 들른 적이 있는 시청 직원인가 동사무소 직원인가 하는 사람이 찾아 왔다. 월산댁은 그가 한 번 들렀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뉘시요?”
“예, 저번에 왔던 사람인데요······.”
그 공무원이 머뭇머뭇하자 월산댁이 다시 말했다.
“전에 왔다고라? 난 댁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는디······.”
“아, 저번에 영균이 학생 장례 때문에······.”
그때 월산댁이 고함을 질렀다.
“아니, 우리 자식 얘긴 뭣 땜시 들먹이는 것이여? 엉? 장례? 갸가 그럼 죽기라도 했단 말이여? 뭔 뚱딴지 같은 소리여? 오뉴월에 쇠불알 얼었단 소린 들어본 일이 없은께 그런 쓰잘데없는 소리는 허들 말어!”
공무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자신이 요구한 대로 영균의 장례까지 치른 걸로 알고 있는데, 월산댁의 태도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그, 그것이 아니고 앞으로 무슨 일이 나더라도······.”
“이 양반이 듣자듣자 헌께 벨시런 소릴 다 하고 자빠졌네. 무신 일이 나긴 무신 일이 난다고 귀신이 씨나락 까먹다가 어금니 빠질 소릴 하고 있단가!”
공무원은 더 이상 할 말을 잊었다. 아무래도 월산댁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사실 자신이 오늘 영균의 집을 찾은 것은 ‘난리통’에 식구를 잃은 유가족들의 동태 파악 내지는 업무 차원에서의 감시를 위해서였다. 앞으로 유가족들의 반발이 어떻게 이어질지 몰라 정부에선 수시로 일선 공무원과 경찰을 통해 유가족들에 대한 회유와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월산댁은 그러고저러고 할 수도 없이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제 정신이 아닌 듯했다. 공무원은 월산댁과 더 이상 실랑이를 해봐야 득 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냥 돌아갔다. 돌아가는 공무원의 등에 대고 월산댁은 기어코 한 소리를 더 퍼부었다.
“허우대는 멀쩡하게 생긴 인간이 뭔 지랄한다고 헛소리를 하고 돌아다닌댜. 헐 일 없으면 지 여편네 발고랑에 묻은 땟물이나 빨아주고 자빠져 잠이나 잘 일이제. 넘의 집에 와서 육갑을 떨고 있네. 에잇, 퉤.”
월산댁은 침까지 마당에 내뱉었다. 공무원은 더 이상 대거리를 하지 않고, 아니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냅다 대문을 빠져나갔다. 월산댁은 공무원이 뭐가 빠져라 하고 놀라 빠져나간 대문간을 오래도록 멍하니 쳐다보았다.
대문 아래에 우편물이 떨어져 있었다. 월산댁은 편지봉투를 집어들었다. 군대에 가 있는 영균의 친구 민후가 보낸 것이었다. 월산댁은 갑자기 편지를 뜯어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아들이 자신에겐 속 얘기를 안 해도 친한 친구에겐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민후하고 영균은 국민학교때부터 쭉 친구였다. 민후가 나이는 한 살 많지만 학교를 늦게 다녀서 친구가 되었다. 민후는 고등학교를 나오자마자 바로 군대에 하사관으로 자원 입대했다.직장도 마뜩찮았고 대학에 가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서였다.
월산댁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봉투 귀퉁이를 살살 뜯었다. 아직까지 월산댁은 아들에게 온 편지나 일기장 같은 것을 마음대로 본 일이 없었다. 그래야 할 아무런 까닭이 없었으니까. 영균은 누가 뭐래도 자기 일 자기가 알아서 척척 해내는 믿음직한 아이였지 않는가?
굵은 검은선이 가로로 죽죽 그어진 편지지에는 민후의 큼직큼직한 글씨가 한 줄씩 띄어서 적혀 있었다. 월산댁은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영균에게
어느덧 신록의 계절 유월이 찾아왔구나. 네 편지 받고도 그동안 훈련을 받느라 곧바로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이제야 펜을 들었다. 이제 1 주일만 더 지나면 난 어엿한 하사 계급장을 달고 자대 배치를 받게 된단다. 병영에서 하루하루 땀에 젖어 살다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어. 그런데 어제 정훈교육 시간을 통하여 우리 고향 도시에 엄청난 난리가 일어난 걸 알았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대한민국 군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해가 안 간다. 국민의 자식인 군인들을 향해서 어떻게 돌을 던지고 총을 쏘고 그럴 수 있었을까? 정훈교관님의 얘기론 깡패들과 불순분자들이 선동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 영균이 네 주위엔 그런 놈들이 없겠지만 혹시라도 그런 폭도들이 아직도 주위에 남아 있다면 얼른 신고를 해라. 그 놈들은 대한민국 육군이 얼마나 센지를 모르는가 보더라.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런 폭도들을 재빨리 소탕했다는 거였어. 군인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만 해도 아찔해.
이 편지 받고 답장은 하지 마렴. 왜냐하면 자대 배치를 받아 가면 주소가 바뀌거든. 그때 가서 내가 다시 편지할게.
그럼 너는 사회에서 나는 군대에서, 있는 곳은 달라도 우리 모두 열심히 살자.
1980. 6. 6. 현충일 날에
민후가
월산댁은 편지를 다 읽고나자 다시 접어서 봉투에 넣고 밥풀을 이겨 붙였다.
“민후가 제법 어른 같은 소릴 다 써 놨네. 세상 걱정도 할 줄 알고. 이 녀석들이 그래도 그동안 서로 연락을 함시로 살았구나. 암은 그래야제. 이 세상에 친구만큼 소중한 것은 없으니께. 부모형제 다음으론 친구제. 민후가 걱정한 것처럼 영균이 주변에 폭도라고 하는 건달들은 설마 없겄제. 아냐,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야. 이 녀석이 벌써 여러 날 집에도 오지 않고 산에서 지내는 걸 보믄 그런 놈들 꾐에 빠졌는지도 몰라.”
생각이 그쪽으로 미치자 월산댁은 갑자기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목덜미가 근질근질 했고, 오줌이 찔끔거렸으며, 손이 덜덜 떨렸다.
“그란디, 깡패들이라고? 불순분자들이라고? 민후가 알고 하는 소리다냐, 모르고 하는 소리다냐? 가만, 가만, 근디 시방 이것이 뭔 소리다냐? 혹시 영균이를 시방 그런 놈들하고 똑같이 보는 것 아녀? 그래서 친구 단속할라고 편지 보낸 거 아녀? 아니제, 아니제. 우리 아들은 그런 놈들하고 어울려 댕길 사람이 아니제. 민후 지가 친한 친군께 가장 잘 알 것 아녀?”
월산댁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편지를 반으로 접어 저고리 아래 주머니에 조심스레 찔러 넣었다. 그때 엿장수 가위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엿장수는 아니었다.
“고물 삽니다! 고오물 사요!”
고물 장수가 쩔렁거리는 가위 소리였다. ‘난리통’이 끝난 뒤에 부쩍 늘어난 게 있다면 고물장수일 것이다. 부서지고 깨지고 찌그러진 것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부서지고 깨지고 찌그러진 것이 어찌 물건뿐이겠는가?
월산댁은 안방 문을 부리나케 열어젖히고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고물장수의 가위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외침 소리도 차츰 작아졌다.
“고-오-무-울-사-압-니-다-아--”
잠시 후 월산댁의 흐느낌 소리가 새나왔다.
민후의 편지는 산 자에게서 죽은 자에게로 왔다. 아니 산 자로부터 산 자에게로 왔다. 왜냐하면 편지를 쓴 이는 편지를 받을 이가 죽어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 않고 산 자에게 보낸 것이므로. 그래서 죽은 자는 산 자의 몫이다. 산 자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면 죽은 자도 산 자이고, 산자가 죽어 있다고 생각하면 죽은 자는 정말로 죽어 있는 것이다.
너는 분명 민후에게 있어선 산 자다. 그뿐인가? 너의 어머니에게도 넌 산 자다. 그런데 넌 지금 어디 있는가? 소쩍새가 배고파 구슬피 우는 공원묘지 한 귀퉁이, 그곳에 지금 너는 누워 있다.
왜?
넌, 죽었으므로.
그러나 너의 어머니 월산댁은 너의 죽음을 알지 못한다. 아니, 너의 죽음을 알았다. 죽음을 인정했기에 울면서 몸부림치면서 너의 장례도 치렀다. 그러나 그러고 나선 너의 어머니는 네가 죽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너의 죽음을.
그래서 다시, 아니 여전히 너의 어머니에게 넌 살아 있는 사람이다. 어쨌든 넌 너의 어머니 가슴 속에 살아 있다.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 속에 묻는다고 했다. 허나 넌 어머니 가슴 속에 묻혀 있는 게 아니라, 어머니 가슴 속에 살아 있다.
너의 어머니는 고물장수의 가위 소리만 들어도 몸부림을 친다. 왜냐하면 부서지고 깨지고 찌그러진 것이 물건만이 아니어서. 어찌 보면 너의 어머니의 모든 것은 부서지고 깨지고 찌그러져 있다. 그러나 고물처럼 취급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슴 속에 살아있는 자식이 고물로 취급되기를 거부하므로.
너는, 시방 무슨 생각을 하느냐? 너의 어머니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너는?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왔다.
절에서 나는 종소린가?
교회 종소린가?
학교 종소린가?
월산댁은 종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어느새 이불에 엎드려서 흐느끼다 잠이 들었나 보다.
시간이 얼마나?
월산댁은 무심결에 시간을 떠올렸다. 영균을 만나러 갈 시간이 다 되지 않았나 싶어서였다. 희미하던 종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그것은 저녁밥 짓기 전에 서둘러 돌아다니는 두부장수의 딸랑이 소리였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다.
월산댁은 흐트러진 머리를 바로 잡고 옷매무새를 고쳤다. 이러고 늑장을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녁에 아들을 만나려면 아들이 먹을 저녁밥도 준비해야 한다.
김밥을 쌀까?
영균은 김밥을 무척 좋아했다.
아냐, 따뜻한 밥에 나물 반찬을 해가지고 가는 게 더 낫지 않겄어?
그러나 월산댁은 이내 곧 김밥을 싸기로 마음먹었다. 영균이 오늘은 시험을 보는 날이라고 했다. 그러니 시험시간에 쫓기다 보면 차분히 밥 먹을 시간도 나지 않을 성싶어서였다.
바쁠 때 먹긴 김밥이 낫겄제.
월산댁은 부엌으로 나갔다. 한 시간쯤 지나 월산댁은 김밥이 든 보자기를 들고 집을 나섰다. 병에 물을 따로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월산댁이 영균의 학교에 다시 도착했을 땐 아침나절과는 달리 운동장에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수업을 마친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면서 놀고 있었다.
월산댁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이부대학으로 올라갔다. 아침엔 길을 잘 몰라 운동장을 가로지르지 않고 대학본부 건물을 거쳐 빙 돌아서 갔으나, 나올 땐 운동장 쪽으로 바로 나와 보았기 때문에 길을 익혀 놓았던 것이다.
아침에 만났던 수위가 수위실에서 돋보기를 코 끝에 걸친 채 신문을 보고 있다가 월산댁을 보자 밖으로 나왔다.
“아니, 아줌마 여길 뭐하러 또 왔소?‘
“아들 만나러 왔단께요.”
“누구를 만나든 그건 상관없지만 지금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져서 아무도 학교에 오지 않는다니까요.”
“아잡씨는 자꼬 휴교, 휴교 해쌓는디 그라든말든 우리 아들은 시험보러 학교에 오기로 했단 말이요.”
수위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월산댁이 아무래도 이상해 보였다.
“난리통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기말고사 볼 때도 되었지요. 유월 중순 들면 벌써 시험이 시작되어서 유월 말이 되기 전에 방학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올해는 시험은커녕 수업도 하지 못하니까 벌써 방학해버린 거나 다름없어요.”
수위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문 뒤 월산댁을 보고 다시 말했다.
“그런데 아들은 무슨 일로 여기서 만나자고 했소?”
“넘의 일에 뭔 관심이 그렇게 많다요? 다 만날 만한 일이 있은께 만나기로 했제.”
“아들이 분명히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학교가 휴교인 줄을 잘 알 것 아니겠소. 그러니 시골서 어머니가 오신다 했으면 터미널 같은 데로 마중을 나갔을 것 아니오?”
수위는 월산댁을 시골에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올라온 촌아낙네 쯤으로 본 것 같았다.
“아따, 아잡씨 그런 소리 마쇼. 우리 아들은 분명히 이 학교 학생이다요. 고등학교에서도 전기과 댕겼는디, 대학교서도 전기과 댕기고 있소. 그라고 뭐 내가 시골서 올라온 줄 아시오? 난 아들하고 같이 살고 있소.”
“그러면 뭐하러 같이 사는 아들을 학교까지 와서 만나느냔 말이오?”
수위는 갈수록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월산댁이 시무룩해졌다.
“아들이 요새 집을 들어오지 않은께 이라고 안 댕기요?”
수위가 놀란 말투로 물었다.
“아들이, 집을, 안 들어와요? 언제부터요?”
“아, 그 놈의 난리통인가 뭔가 하는 때부터지라”
수위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했으나, 입을 다무는 표정이 역력했다. 월산댁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제법 주위가 어둑어둑해져갔다.
너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나타날 수가 없는 것이다. 너는 다시는 어머니를, 친구를, 파아란 하늘을, 이 도시의 거리를 만날 수 없다. 너는 너의 키만한 길이, 너의 몸통만한 너비의 널판으로 만들어진 집 속에, 아니, 그보다 조금 길고 약간 더 넓은 집 속에 갇혀 있다. 그래서 너는 다시 나타날 수가 없다.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의 나이로 어머니를, 친구를, 파아란 하늘을, 이 도시의 거리를 버리고 말았다. 아니, 그러한 것 모두로부터 튕겨져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나이만큼의 크기와 부피로 그러한 모든 것 속에 남아 있다. 누가 너를 버릴 수 있겠는가?
월산댁은 결심했다. 아예 영균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래서 이부대학 건물을 뒤로 하고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어둑어둑한 밤하늘에서 이제 막 별이 하나 둘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월산댁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서야 공원묘지 입구에 내렸다. 저녁 시간이라서 그런지 공원묘지 입구에 내리는 사람은 월산댁말곤 없었다.
월산댁은 자신을 내려놓자마자 꽁무니를 빼듯 달려가는 버스를 바라보다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엔 아까보다 더욱 많은 별들이 박혀 있었다.
“뭔 염병한다고 하늘엔 저렇게 별이 많다냐, 퉤!”
월산댁은 공원 묘지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가는 길에 혹시 영균이랑 만나질라나.”
그러나 영균은커녕 아무런 사람도 만나지지 않았다. 월산댁은 불편한 몸이지만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걷기만 했다.
가벼운 바람이 스칠 때마다 풀 냄새가 콧속에 배어들어왔다.
“이 놈이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에미가 지를 만날라고 학교에 갔다가 허탕치고 일로 오고 있는 걸 알고나 있을까? 내 참, 끼니나 제대로 잇고 있는지 모르겄네······.”
월산댁은 김밥 싼 보자기를 든 손을 바꾸면서 아들의 끼니 걱정을 했다. 동시에 저고리 아래 주머니에 들어있는 민후의 편지도 만지작거려봤다.
어슴프레한 어둠 속에선 풀잎들이 서로 몸을 부비는 소리말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월산댁은 자신의 발소리에 숨을 맞추며 걸었다.
“왜 이케 심이 드까. 이 녀석이 마중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디, 영영 안 나오고 마네. 야가 뭣땜시 이케 독해져 부렀을까. 에미하고 약속해놓고도 안 나와불더니, 에미가 오는지 가는지 내다보지도 않는구만.”
월산댁은 혼자서 구시렁댔지만 아들이 야속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발소리에 헐떡거리며 숨을 맞추다 보니, 광대 사설 늘어놓듯 뭐라고 말이라도 한 마디 해야할 것 같아서 괜히 해본 소리였다.
마침내 묘지로 올라가는 산 밑 길까지 왔다. 월산댁은 곧 아들을 만나리라는 기대에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월산댁은 이리저리 묘지들 사이를 지나 영균의 묘를 찾았다. 영균의 묘엔 자신이 갖다 둔 해군 작업복이 얹힌 채 그대로 있었다.
“어? 영균이가 그동안 꼼짝도 안 했는갑네. 입으라고 갖다 준 옷이 고대로 있어부네.”
월산댁은 영균의 옷을 거둬서 조그맣게 개어 묘지 옆으로 내려놓았다.
“아가, 배고프쟈? 에미가 너 좋아하는 김밥 싸왔다. 어서 나와서 쪼깐 먹어봐라.”
월산댁은 보자기를 끌러서 김밥을 꺼냈다. 김밥은 잘게 썰어지지 않고 줄김밥 그대로 길쭉했다. 원래 영균은 김밥을 잘게 썰지 않고 김 한 장을 만 그대로 손에 쥐고 먹기를 즐겼다. 김밥 속은 여느 김밥처럼 단무지나 시금치 같은 것을 넣는 것보다 김치를 넣고 만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길게 만든 김밥을 보통 한 자리에서 넉 줄을 먹었다.
월산댁은 김밥을 무덤 앞에 내려 놓았다. 물도 한 잔 따라서 같이 놓았다. 그러나 그렇게 먹을 것을 준비해놓고 한참 동안을 기다려도 영균은 나오지 않았다.
“야가 이 안에서 뭐 한다냐? 퍼뜩 일어나서 요기나 하고 누워 있제.”
월산댁은 이런 산중의 땅 속에 숨어 있는 아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야가 변하기는 단단히 변해부렀어. 에미를 그만 놀려도 될 것인디, 뭔 일로 꼼짝도 안 허까?”
월산댁은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이 비록 ‘난리통’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서 조심하긴 조심해야겠지만 에미가 와도 안 나오는 걸 보면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혹시 낮에 온 그 괭이 같은 공무원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것 아녀?’
월산댁은 육이오 때 친정 아버지와 오빠들이 산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있다가도 밤을 도와 식구들이 몰래주먹밥을 가지고 가면 슬며시 뗏장을 거두고 나오던 일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남정네들은 동네 앞산 잔솔밭 우거진 골에 그렇게 서너 달씩 숨어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낮과 밤이 바뀔 때마다 경찰과 인민군이 번갈아가며 드나드는 통에 자칫 어느 총구멍에 송장으로 나자빠질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난리통은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조용해졌다 싶어도 산을 내려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너 달씩 그렇게 숨어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번 난리통이야 열흘로 끝났고 군인들도 이젠 총질을 하지 않으니 나와도 되지 않겠는가? 아니 낮에 나오지는 못한다 해도 에미가 먹을 것을 갖고 왔을 때라도 나와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영균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낮에 집에 와서 쓰잘데없는 흰소리를 지껄이고 간 그 공무원 놈이 어떤 수작을 벌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월산댁은 자꾸만 그렇게 불안하고 방정맞은 쪽으로 생각이 갔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지우려고 애써 노력했다. 월산댁은 저고리 주머니에서 민후가 보낸 편지를 꺼냈다.
“영균아, 군인 간 민후가 편지를 했더라. 어서 나와서 편지도 읽어보고 해라. 근디 쪼깐 어두울란가······.”
하늘을 쳐다봤더니 별말고도 손바닥만한 달이 떠 있었다. 반달이었다. 월산댁은 민후의 편지를 영균의 옷 위에 얹어 놓았다.
“민후한테 답장 할 때 너는 아무 일 없은께 걱정 말라고 해라. 갸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께 빨리 답장해라. 아녀, 내 정신 좀 봐라. 민후가 어디로 간께 나중에 지가 다시 편지한다고 하더라. 할 수 없제, 그때 답장해라. 내가 쪼깐 궁금해서 민후 편지 오자마자 읽어 봤다. 에미가 여태껏 니 편지 뜯어 보고 그런 적 없는 거 알제? 갸가 혹시 니 소식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그냥 뜯어 본 것인께 이해하그라.”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났다. 월산댁은 영균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은 뒤로 가슴에 불이 날 때면 담배를 한두 대씩 피워 가슴에 난 불을 끄곤 했다. 그러다가 이태 전부턴 괜찮아져서 전혀 피우지 않던 담배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났다. 한 모금 빨고 싶었다. 그러나 참을 수밖에. 담배를 안 챙겨 가지고 다니기 시작한 때가 벌써 언제인가······.
그때 별똥별 하나가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공무원의 얼굴이 또 떠올랐다. 그 얼굴이 떠오르자 월산댁은 더 조바심이 났다. 영균이 나오지를 않으니 아무래도 직접 흙구덩이를 파헤쳐 봐야 될 것 같았다.
“암만 생각해도 야가 뭔 일이 있는 것이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구만.”
월산댁은 다짜고짜 두 손을 뻗어 무덤의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아직 무덤 흙이 다져지지 않아 흙이 부슬부슬해서 잠깐 파헤쳤는데도 봉분 모양이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파다말고 월산댁은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서늘한 밤기운이 묻어 있는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갔다. 월산댁은 이마의 땀을 한 번 훔친 뒤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내 새끼가 이 구덩 안에서 뭔 일을 당했는지 모르는디, 내가 시방 이라고 쉬어가면서 여유 부릴 때가 아녀.”
워낙 그악스럽게 덤벼들어 파내기도 했지만 애시당초 급히 허술하게 만든 무덤이어서 봉분은 금세 사라졌다. 월산댁은 간간이 무덤 안쪽에 엎드려 귀를 대고 무슨 소리가 나는지 살폈다. 그런 뒤 곧바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영균아! 영균아! 안에서 뭐하냐. 이 놈아, 에미가 왔는디 내다보지도 않냐? 난리도 인자 끝나서 아무 일도 없은께 어서 나온나.”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월산댁은 옴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아들이 궁금해서 열 손가락을 더욱 단단히 세워 흙을 더 악착같이 긁어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손끝에 널빤지 같은 것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것이 중간 문인 모양인디······. 이 문만 열면 나올란가?”
널빤지가 조금씩 보이자 월산댁은 흙을 두 손에 담듯이 하여 조심조심 떠냈다. 제법 길이가 길고 너비가 넓은 널빤지가 드러났다. 월산댁은 널빤지를 들어내려고 해봤다. 그러나 널빤지에 못질이 되어 있는지 들어지지 않았다.
“문짝에다 아예 못을 쳐서 못 드나들게 해 논 것이여 뭐여?”
월산댁은 한 발짝 물러나서 주위를 돌아봤다. 너댓 걸음 떨어진 곳에 아이들 머리통만한 돌덩이가 보였다. 달빛이 희미해서 주위 분간이 쉽지 않았다. 자신이 파내어 쌓아놓은 흙더미에 미끄러져 가면서 월산댁은 그 돌을 집어 왔다.
“이걸로 시방 문짝을 아주 부숴부러야겄구만.”
월산댁은 널빤지를 향해 돌덩이를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밤의 정적을 깨는 둔탁한 소리가 앞산 뒷골로 몇 번씩 왔다갔다 하며 울려 퍼졌다. 월산댁은 몇 번 더 돌덩이로 널빤지를 내리쳤다. 마침내 널빤지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월산댁은 갈라진 널빤지 한쪽을 잡아당겼다. 바로 널빤지 한쪽이 떨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월산댁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아이고메! 이것이 시방 뭔 일이단가!”
송장 썩는 냄새가 확 풍겨왔다. 무덤 안으로 하늘의 별이 다 쏟아지는 듯했다. 월산댁은 눈앞이 핑 도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무덤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여물다 만 반달이 새벽이 되도록 하늘에 겨우 매달려 있었다.
너는 거기 있었다.
너의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의 젊음이 거기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너는 이미 네가 아니었다.
기다림은 부질없었다.
그렇다면 너는 어디로 갔는가?
박상률1990년 한길문학을 통하여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진도아리랑>, <배고픈 웃음>, <하늘산 땅골 이야기> 등이, 소설로 <봄바람>, <나는 아름답다>, <밥이 끓는 시간> 등이, 희곡집으로 <풍경소리>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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