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란과 시인
김광선
세월의 뒷편 낡은 자리에 뿌리를 붙였다
철따라 갖은 향
바람만이 넘는 절벽마루 그 발치
파도는 굼실거리고, 치근 허옇게 드러낸 밤들은
거품으로 부서지는 시간의 속살
그 맥을 짚어 희끄무레 새벽의 잔등을
흔들어 깨웠다, 가시덤불도
더는 넝쿨을 짓지 못하는 애달픈 자리
푸른 귀 벼린 낫처럼 세우고 가슴은 온통
먼 생애에서 밀려오는 물굽이에 철철 풀었다
너무 작아서 꺾이지 않고
너무 커서 흔들리지 않는, 첩첩 외진 길
천수답 한 뼘도 달가운
써레질은 시린 뼈끝이냐, 배배 뒤틀리며
쓴물 넘어오는 목젖에서 삭힌 달게 한 모금
한 바위 끌어안고 사는 생은
이승의 막다른 골목인양 바람의 가장자리
절박해서 서툰 꽃을 피워내고
사방 시오리 멀리 더 멀리 살내음인양
독보다 진하게 향을 지른다.
김광선 전남 고흥 출생. 2003 창비 신인상 수상. 젊은시 동인. 본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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