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윤재철씨 네번째 시집 '세상에 새로 나온 꽃'
‘오월시’ 동인이었으며 1980년대 중반 <민중교육>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바 있는
시인 윤재철(51)씨가 나직하고 견고한 내적 성찰의 목소리를 담은 네번째 시집
<세상에 새로 나온 꽃>(창비)을 상재했다. 9년 만에 내놓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돌아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문명의 내면을 진단하면서, 생명의 근원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이 점차 혼미해지면서/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거기서 아버지는 몸부림치며/ 집으로 가자고 소리쳤다/
링거 주삿바늘이 뽑히고/ 오줌주머니가 떨어졌다/ 남자 보조원이 아버지의 사지를/
침대 네 귀퉁이에 묶어버렸다// 나중에는 의식이 없어/ 아무 말도 못하면서/
짐승처럼 몸부림만 쳤다/ 팔목이며 발목이 벗겨지도록/ 집으로 가자고/ 고향이
아니었다/ 집이나마나 창신동 골목길 셋방이었다”(<아버지>)
뇌졸중으로 중환자실 침대에 묶인 화자의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집’으로 가자고
한다. 문명(병원)에서의 죽음을 거부하는 노인이 갈구하는 ‘집’은 고향도 아니고
창신동 골목길 셋방일 뿐이다. 화자가 덧붙인 설명은 외려 노인의 ‘집’이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곳은 전제적인 문명의 질주를
벗어나 정신이 참 자유를 얻는 곳, 본래 생명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우리가 다시 가야 할 집은 거기 인디오의/ 잘디잘은 것이 형형색색
제각각인/ 씨감자 속에”(<인디오의 감자>) 있다고 말한다.
임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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