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고은 시인 "평화는 평화를 위한 맨몸의 싸움"
[속보, 연예/문화] 2003년 03월 25일 (화) 21:33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 처리를 놓고 국회가 진통을 겪던 25일 오후 5시경. 서울 종묘공원에선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염무웅) 주최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문학계 203인 행진>이라는 제목의 반전집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일방적인 학살'로 규정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한국군 파병결정을 '국민을 학살전쟁의 공범자로 만드는 행위'로 명명한 작가 150여명이 모여 한 목소리로 '전쟁반대'와 '파병반대'를 외쳤다.

고은, 남정현, 민영, 구중서, 황석영, 이시영, 김정환, 김영현, 윤정모, 이경자 등 박정희 유신과 군사독재에 저항해 온 50대 이상의 작가는 물론, 전성태, 김연수, 신용목, 김신우, 이명랑, 김은경 등 20~30대 작가도 대거 참여한 이날 집회에서 이들은 하나의 마음으로 손을 뻗어 '반전'과 '평화실현'의 구호를 외쳤다.

고은 시인은 "지금 지구는 오만한 침략전쟁으로 불모의 행성이 되고 있다"며 미국정부를 강한 어조로 비난했고, 소설가 황석영은 "다른 나라 전쟁의 군인을 보내면서, 어떻게 우리의 평화만을 구걸할 수 있느냐"며 한국정부의 파병결정을 질타했다.

민영, 김정환 시인 등도 반전평화시 낭송을 통해 "지금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전쟁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며,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그 범죄행위에 동조하는 또 하나의 범죄"라고 일갈했다.

<양철북>의 작가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귄터 그라스(독일)와 베트남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반레도 작가회의로 평화메시지를 보내왔다. 소설가 김남일은 두 작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했다. "잘못된 길에 들어선 조지 부시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건 전쟁을 반대하는 인간들의 위대한 행동뿐입니다."

최근 건강이 악화돼 거동이 불편함에도 작가들과 자리를 함께 한 <전환시대의 논리>의 저자 리영희(74) 전 한양대 교수는 "지금 우리의 목소리는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전쟁을 반대하는 수십 억 인류의 목소리가 합쳐진다면, 반드시 이 미친 전쟁을 멈출 수 있을 것"이란 말을 떨리는 목소리로 전해 참석한 문인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종묘에서의 집회를 마친 작가들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인 뒤 오후 6시30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사장 김윤수)이 주최하는 <전쟁반대와 평화실현을 위한 민족문화예술인 결의대회>에 합류, 화가, 공연예술가들과 함께 다시 한번 '반전'과 '평화'를 합창했다.

집회가 한창이던 7시경. 작가회의 모순영 사무차장의 손에는 고은 시인의 다음과 같은 반전메시지가 적힌 엽서가 들려있었다.

"평화는 평화를 위한 맨몸의 싸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