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학살전쟁 '참혹' 기록해야"
25일 황석영 조정래 등 203인 '반전시위'
[인터뷰] 민족문학작가회의 염무웅 신임 이사장
 
홍성식 기자
 
"이번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불법무도"


 
▲ 작가회의 신임 이사장 염무웅씨.
 
ⓒ2003 홍성식
지난 22일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긴급이사회의 결정으로 신임 이사장에 오른 문학평론가 염무웅(62·영남대 교수)씨의 취임 일성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반대'와 '한국군 파병반대'였다.

염 이사장은 24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quot;이번 전쟁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불법무도&quot;라며, &quot;지난 세기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략 양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이라크 침공을 좌시하지 않을 것&quot;이라고 미국에 경고했다.

그가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도 국회에 파병동의안 거부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24일 염무웅 이사장이 국회에 보낸 편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quot;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 학살이다. 문학은 이 학살전쟁을 21세기 인류의 명예를 모욕하는 가장 더럽고, 야비한 전쟁으로 기록할 것이다. 국회는 우리 국민을 학살전쟁의 공범으로 만들지 말라.&quot;

염 이사장은 '미국의 대 이라크 침략전쟁'과 '노무현 대통령의 한국군 파병결정'을 규탄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문학계 203인 행진>의 개최계획도 함께 알렸다.

소설가 황석영과 조정래, 시인 고은과 이시영, 평론가 백낙청 등이 참석할 예정인 이번 시위는 25일 오후 5시 종묘공원에서 열릴 예정. 이 집회를 개최하는 염 이사장의 감회는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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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결코 성역과 금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염무웅 이사장이 국회에 보낸 '긴급호소문'
 &quot;국민을 전쟁의 공범자로 만들지 말라&quot;
 
우리 작가들은 국회에 상정된 파병동의안이 국방위원회를 통과하여 본회의에 상정된 데 대하여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능가하는 그 어떤 국익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아랍인들이 인류사에 쌓아놓은 위대한 문화를 파괴하고 이라크의 아이들을 죽일 권리를 부여받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라고 역사는 기록할 것입니다. 문학은 이 학살전쟁을 21세기 인류의 명예를 모욕하는 가장 더럽고 야비한 전쟁으로의 인류의 양심 위에 새길 것입니다. 이 전쟁에 군대를 파견하는 행위는 우리 국민 모두를 전쟁의 공범자로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 작가들은 부디 우리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여러분이 우리 국민을 전쟁의 공범자로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약 국회가 파병동의안을 통과시킨다면 모국어를 책임지고 있는 우리 작가들은 국민의 영혼을 대표하여 영원히 그 행위을 잊지 않게 기록하고 증언할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과 존엄을 다루는 문학과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다루는 정치가 이 엄중한 현실 앞에서 지나치게 견해를 달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이름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도록 의원 여러분께서 깊이 숙고하시어 현명하게 결단해주기를 다시 한 번 간곡히 호소합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염무웅
 
 
 

박정희 유신독재의 극악무도한 전횡이 국민을 공포와 한숨으로 몰아넣던 1974년 11월. 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반유신 민주화투쟁'의 기치를 내걸고 광화문 거리에서 기습성명서를 발표한다. 성명 참여자들을 줄줄이 공안당국에 끌려가게 했던 '문학인 101인 선언'.

염무웅 이사장은 바로 '문학인 101인 선언'의 성명서 문안을 작성하고, 선언을 주도했던 문인 중 한 명이다.

80년대 서울대 백낙청(65) 교수와 함께 '민족문학론'의 이론적 단초를 만들어냈고, <한국문학의 반성> <민중시대의 문학> 등의 저서를 통해 '문인(지식인)의 사회참여'와 '진보적 문학관의 정립'을 모색해온 염무웅 이사장을 24일 오전 마포구 아현동 작가회의 사무국에서 만났다.

개혁 거부하는 수구세력에는 함께 저항할 것

-어려운 시기에 이사장을 맡았다. 소감은?
&quot;작가회의는 불의에 대한 투쟁과 사회진보를 견인해온 전통을 가진 문인단체다. 그 전통을 이어갈 역할을 맡게된 건 영광이다. 하지만,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부담감도 없지 않다.&quot;

-향후 작가회의가 지향할 방향은?
&quot;유신통치의 70년대부터 저항적 전통을 이어왔다. 그것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 90년대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타락한 자본주의적 삶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 때문에 문학의 긴장도 많이 이완됐다. 그것들을 추슬러 '건강한 비판의 목소리'라는 문학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나갈 것이다.&quot;

-미국이 결국 이라크를 침공했다.
&quot;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미국의 불법무도다. 18~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침략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며, 이번 전쟁은 그 결정판이다. 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30년 전 미국의 베트남 침공을 반대했었다.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렀는데 미국의 일방주의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비록 껍데기뿐이었지만 평화적 세계기구인 UN의 존립이유조차 뒤흔들고 있으니...&quot;

 
 
▲ &quot;이라크 침공은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다&quot;
 
ⓒ2003 홍성식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개혁에 대한 견해는?
&quot;기본방향은 지지한다. 부분적으로 보완하고, 수정해야할 개혁안도 있지만 원칙이 변해서는 안될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개혁에 저항하는 수구세력의 목소리에는 진보적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저항해야한다. 하지만, 이번 이라크 파병결정 등에는 단호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할 것이다. 연대와 비판의 병행이 중요하다고 본다.&quot;

-작가회의의 관변단체화와 권력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quot;늘상 경계해야할 부분이다. 단체는 물론 개인에게도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자기개혁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 역시 반추와 반성에 게으르지 않을 것이다. '올곧은 정신으로 현실을 투시해야한다'는 작가회의의 시대적 소명을 잊지 않겠다.&quot;

-젊은 작가들의 사소설화와 몰역사성을 걱정하는 독자들이 많다.
&quot;문학은 근본적으로 개인이 하는 것이다. 은밀한 자기만의 감성을 가지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현실적 관심도 버려서는 안 된다. 문학에 있어서 예술성과 운동성은 어느 한쪽에만 무게를 둘 수 없는 두 가지 중심축이며, 진정한 예술적 성취를 위해서도 현실에 대한 관심(운동성)은 필수가 아니겠는가.&quot;

후배들이 이라크에 사과하는 일없어야...

-젊은 작가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낼 방안은?
&quot;작가회의의 기구와 조직 속에 젊은 작가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도록 정관개정도 검토할 것이다. 이외에도 노년·장년·청년작가 모두가 참여하는 토론회의 정기적 개최와 수련회 등을 통한 만남의 확대를 고민하고 있다.&quot;

-이사장직을 맡은 후 첫 일이 집회개최가 됐는데.
&quot;안타까운 일이다. 30년 전 베트남 참전의 잘못된 결정을 젊은 작가들이 대신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었다. 이번 집회는 앞으로 30년 후 후배들이 우리를 대신해 이라크에게 사과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2번씩이나 잘못된 길을 들어설 수는 없는 일 아닌가.&quot;

-젊은 독자들에게 한마디.
&quot;인터넷과 영상의 시대다. 하지만, 그것들이 만능은 아니다. 문자(문학) 속엔 속전속결과 감각, 휘발성으로 대표되는 인터넷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정신적 유산이 숨겨져 있다. 이것들도 눈 여겨 봐야할 것이다.&quot;

민예총도 전쟁반대에 한 목소리

한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사장 김윤수·이하 민예총)도 25일 오전 10시 국회 앞 '문화예술인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전쟁반대와 평화실현을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방침이다.

이날 저녁 6시30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민예총 주최로 열릴 <전쟁반대와 평화실현을 위한 민족문화예술인 결의대회>에는 김윤수, 김용태, 김정헌(미술계), 오용록, 김창남(음악계), 박인배, 김남수(공연예술계) 등이 참석할 예정이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문학계 203인 행진>을 마친 문인들도 대거 자리를 함께 한다.

 
 &quot;미국의 다음 사냥거리는 북한이다&quot;
 -작가 203인 반전과 파병반대 기치 걸고 종묘로
 

 
▲ 25일 종묘집회에 참석의사를 전해온 소설가 황석영(좌)과 조정래.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작가회의가 25일 오후 5시 종묘공원에서 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문학계 203인 행진>은 1974년 11월 광화문에서 열린 '문학인 101인 선언'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하는 집회다.

염무웅 이사장은 작가들에게 보내는 긴급메시지를 통해 '아랍의 문화적 유산을 파괴하고, 이라크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전쟁이 아닌 학살'이라고 규정하며, 문학적 경향과 미학적 기준의 차이를 떠나 비열하고 야만적인 학살전쟁을 중지시키기 위한 행동의 대열에 함께 해주기를 당부했다.

집회 당일 발표될 작가회의의 성명서에는 '후세인 제거의 논리는 그대로 김정일 제거의 논리이며, 미국의 다음 사냥거리는 우리들의 또 다른 조국 북한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 '노무현 정부의 공병대 파견을 반대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반대하는 활동은 인류의 양심과 영혼을 지켜온 문화예술인의 당연한 도리'라는 간곡한 호소가 담겨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문학계 203인 행진>에는 고은, 신경림, 백낙청, 황석영, 조정래, 김주영, 송기원, 황광수, 황현산, 김영현, 김사인 등 50~60대 작가들은 물론, 이재무, 정도상, 안도현, 방현석, 공선옥, 한창훈, 방민호, 박형준, 전성태, 송경아, 김별아, 김종광, 김지우, 윤성희, 김윤영 등의 젊은 작가들도 대거 자리를 함께 해 '이라크 침공반대'와 '한국군 파병반대'를 한 목소리로 외치게 된다.

이날 참석하는 모든 작가들은 종묘집회 후 광화문 미 대사관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 홍성식 기자
 

2003/03/24 오후 5:45
ⓒ 2003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