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 문학제 개최 논란 유감
1996년 1회 개최를 시작으로 19회째를 맞는 ‘홍명희 문학제’가 올해는 파주에서 개최된다. ‘파주 북소리 축제’ 행사의 일부로 홍명희 문학제가 기획된 것이다. ‘홍명희 문학제’가 파주에서 열린 것은 여러 모로 의미가 깊다. 올해 4회를 맞는 ‘파주 북소리 축제’는 한국의 대표적 인문학축제로 자리잡고 있으며 세계의 인문학, 문학, 출판계와의 교류를 통해 한국 문화유산의 가치를 세계로 알리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맡고 있다. 한국 문학전통에 기반하면서도 서구문화의 영향에 폐쇄적이지 않았던 홍명희의 <임꺽정>이야말로 한국문화의 세계적 가치를 알리는 데 가장 적절한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파주 개최는 걸맞는 조합이다. 아울러 지역기반의 문학제가 작가 출신 지역에 한정되어 있기 쉬운 상황에서 출신 지역을 넘어 국민 전체와 그 가치를 향유하는 모범사례로도 기억될 만한 사건이라 여긴다.
그런데 이번 파주 개최 과정에 여러 곡절이 스며 있었다고 들린다. ‘홍명희 문학제’ 주관단체 중 하나인 충북 괴산시 보훈단체에서 홍명희의 과거 전력을 들어 문학제 개최를 문제 삼았다는 것이 그 하나다. ‘홍명희 문학제, 괴산에서 퇴출’ 운운하는 자극적 언론보도가 파주지역 보훈단체를 자극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원래 계획되었던 장소에서 자리를 옮겨 행사를 진행할 것을 파주시에서 종용했고, 그래서 행사개최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주최측에서는 파주 개최는 이전부터 계획되었으며 보훈단체의 반대에 밀려 개최장소를 변경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홍명희의 문학을 이념분쟁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는 그야말로 당연한 주문이다.
홍명희가 월북작가이고 북에서 고위직을 맡은 전력이 있다는 홍명희를 이념적으로 호도하거나 전범이라고까지 몰아붙이려는 것은 명백히 오해와 무지의 결과이다. 홍명희는 식민지 시기 민족독립을 위한 좌우연합단체 신간회의 대표였고 해방 이후에도 민족분단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인물이다. 한국전쟁을 끝까지 반대했다는 역사적 기록도 있다. 무엇보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방대한 어휘와 민중적 인물상 창출을 통해 민족문학의 전통을 이은 위대한 작품이다. 한국 근대문학의 대표 작가 여럿이 한국문학의 대표작품으로 <임꺽정>을 첫손에 꼽았다. 한국문학의 개성과 전통을 세계에 내세울 작품으로서 <임꺽정>의 문학적 가치는 크다. 이런 작가와 작품을 기리는 데 때 아닌 이념분쟁이 개입되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고,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통일 한국의 새 시대를 위해서도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주최측과 파주시와의 갈등이다. 민간단체와 지자체가 갈등과 의견 차이를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파주시는 세계적 문화행사의 주관도시 아닌가. 그러한 파주시가 이념적 편견에 근거하여 문학제의 취지를 훼손하려 했다면 이는 다른 문제이다. 문학의 가치를 평가하고 그 의미를 향유하는 자리를 편협한 이념으로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주시의 행보에 중앙정부의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만약 사실이 그러하다면 이는 정부가 민족문화의 기반을 훼손하고 경직된 이념의 잣대로 문학의 가치를 축소시킨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중앙정부든 자치정부든 행정의 역할은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위해 최대한의 기반을 제공하는 데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주최 측에서는 보훈단체 측과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대화를 통해 이를 극복해 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분단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사회가 입장의 충돌과 분쟁을 겪는 것은 불가피하겠지만, 이 또한 통일 시대를 향한 지혜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부디 홍명희 문학을 매개로 이념에 경색되지 않고 통합과 평화를 생각하는 문학정신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임꺽정>이 오늘에 전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2014년 10월 11일
한국작가회의
성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