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슬픔이 더 깊어지는 이유
304명의 목숨을 차가운 바다에 수장한 것으로 지극의 슬픔을 맛보았다고 생각했다. 그 죽음들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의 탓임을 아는 것만으로 치솟는 분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에게 슬퍼하고 분노해야 할 일들이 아직도 더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이후로도 오랫동안 우리는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은 책임지겠다고 물러난 국무총리를 다시 불러들였다. 눈물 흘리며 책임을 통감한다던 대통령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세월호 특별법과 함께 진실도 표류했다. 그 사이 세월호 유가족들은 보상이나 바라는 사람들로, 민생을 불안케 하는 걸림돌로, 불순 정치 세력의 조종을 받는 이들로 폄훼당하고 조롱당했다. 가족을 잃은 억울한 슬픔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다짐으로 겨우 견뎠던 사람들이다. 나의 슬픔이 모두의 슬픔으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고, 목이 쉬도록 외치고, 그래도 손잡아 주어 고맙다고 울먹였던 선량한 사람들이다.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노숙을 하고 단식을 해도 눈도 깜짝하지 않았던 대통령이다. 그러던 대통령이 침묵 끝에 내놓은 말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헌법의 근간을 해치는 기소권과 수사권은 절대 불가’라고 한다. 새삼스럽지 않다. 국민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은 언제나 이래왔다. 때를 기다려 겁박하고 꾸짖고 그래도 안 되면 잠시 달래는 척하면 그만이다. 이런 대통령 아래서 이런 국민 취급을 받는 것이 참으로 슬프다.
술자리에서 시민들과 폭행시비가 붙은 사건에 책임을 지고 유가족 대책위원회가 집단 사퇴했다. 정확한 경위야 좀 더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어떤 이유로도 시민을 상대로 폭행한 일은 옳지 않다. 언론보도대로 ‘국회의원에게 무례하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그러나 언론은 왜 더 말하지 않는가. 다섯 달을 거리에서 견디며 진실을 알고자 했던 이들을 대통령이 무참하게 짓밟았음을. 그래서 아무도 달래주지 않는 분노가 막다른 골목에서 폭발했음을. 그렇게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그들의 외로움과 초조함을. 이런 식으로 진실을 외면하고 고통에 눈감으며 죽은 척 살라는 건가.
사퇴가 책임의 끝은 아니다. 그래서 새로운 대책위원회의 싸움은 더 고독할 것이다. 그 싸움에 손잡아 주는 것 잊지 말아야 한다. 가장 아픈 사람들을 가장 먼저 돌보는 일, 그것이 사람 사는 마을에서 지켜야 하는 도리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또 있다. 304명의 생때같은 목숨이 허망하게 사라졌는데 아직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런데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이라는 말을 모른다. 인간이라는 말도 생명이라는 말도 모른다. 그러니 진실이란 말의 뜻을 알 리가 없다. 사람 사는 곳에서 마땅히 통해야 할 상식도 예의도 없는 나라에서, 허울뿐인 삼권분립을 앞세우는 정부가 기막히다. 우리는 매일매일 더 슬픈 나라에서 살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이 같은 참담한 시간들을 견뎌야 한단 말인가.
2014년 9월 23일
한국작가회의
성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