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잠들지 않는 시인들의 나라
중학교 검정 교과서에 실린 도종환 시인의 작품 삭제를 권고했던 수정·보완 권고서의 철회를 결정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기민한 대처를 환영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한 시인의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게 되어 안도한다. 시인을 추방하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이번 사태를 통해 잘 알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양심 있는 이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이번 사태를 초래한 당국의 반성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전례 없이 재빠르게 권고서를 철회하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일이 앞으로도 재현되지 않으리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산하 기구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듯한 교육과학기술부의 행태는 패륜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언제까지 부모의 허물을 자식의 탓이라며 발뺌할 것인가. 수많은 이들의 항의가 암시적으로 혹은 명백하게 자신을 향했음을 진정으로 몰랐단 말인가.
권고서의 철회만으로 사태를 무마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면 착각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우리의 저항은 시인을 옭아맬 수 있다는 어리석은 신념을 지닌 자들을 향한다. 문학과 예술을 손아귀에 쥐고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낡은 신념을 지닌 자들을 향한다. 모두가 잠들었을 때 시인마저 잠들면 세계는 무너진다. 다행히도 시인들은 잠들지 않았다. 아니 잠들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후 당국의 행보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2012년 7월 11일
한국작가회의
성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