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제13회 전국민족문학인 강원대회 선언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 30주년, 통일 그 노둣돌이 되어 가자

독재와 고문으로 상징되는 군부독재의 사슬을 끊고 분단과 예속의 땅에 해방과 통일의 민족문학 깃발을 올린 지 어언 30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부터 시작된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은 오늘, 분단의 땅 강원도에서 열세 번째 전국민족문학인 강원대회를 갖고 아래와 같이 역사와 민족 앞에 엄숙히 선언한다.

우리는 오늘 만해(卍海) 선생의 민족정신이 살아 숨쉬는 여기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영남과 호남, 영서와 영동, 제주에서 서울에 이르는 모든 작가들이 '민족문학인'의 이름으로 모여,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성찰하는 진지한 작가적 담론을 나누었다. 하고 많은 토론의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름다운 산하에 북의 작가들이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1988년 남북작가대회를 정식 제의한 이후, '6 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작가대회' 개최를 합의하는 성과를 이루었지만, 끝내 실천에 이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이 일을 거울삼아 '문학이 정치까지도 견인해야 한다'는 평범한 실천진리를 다시 한 번 새기고자 하며, 남북작가대회는 물론 아시아와 세계의 진보적 민족문학 작가들의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민족문학작가운동'에 앞장설 것을 선언한다.

우리는 군부 독재의 종식 이후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 등을 경험하면서 '이 쯤 됐으니 민족문학은 좀 쉬어도 되지 않겠는가', '작가가 시대의 양심이던 시절은 이제 갔다'는 안일에 머물렀던 적 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과거 '참여'로 대변되던 '민족 민중문학'을 게을리 했던 적 있음을 아프게 고백한다. 그리하여 이전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들이 사지(死地)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음에도 이를 그저 보고만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참으로 부끄러웠다는 것을 고백한다. 만해 선사 앞에서 뼈저리게 반성한다. 노동자 민중은 아직도 이 시대의 약자이며, 진보적 글쓰기를 표방하고 있는 작가회의와 소속 작가들이 그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것은, 그들을 또 다른 사지로 밀어 넣는 행위라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리하여 수많은 선배 작가들이 독재의 고초를 견디며 목숨으로 지켜낸 민족 민중문학의 양심을 꿋꿋하게 지켜나갈 것을 오늘 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작가동지'들과 결의한다.

우리는 중동의 팍팍한 사막에서 평화를 갈망하며 스러져가고 있는 또 다른 효순이 미선이에게 엎드려 사죄한다. '아무리 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만 못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전쟁은, 침략 전쟁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으므로 미국의 패권주의가 전세계 민중의 심판을 받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그 주체여야 함을 선언한다. 우리는 또한 미국을 기치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단호히 거부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고유의 문화 정신은 가치로운 것이며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다른 나라의 비문화까지도 존중하는 나라라야 비로소 문화국가로 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재건을 가장한 전쟁 동참은 대한민국이 전범국 대열에 합류한 것과 다르지 않다. 즉각적인 철군을 촉구한다. '맞은 사람이 발 뻗고 잔다'는 평범한 가르침에 참여정부가 귀 기울이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완전한 사회개혁은 아직 요원한 바람일 뿐이다. 수구 보수 기득권 세력들의 준동에 비해 진보라 자칭하는 우리들이 개혁을 위해 내보인 사회 정치 문학적 몸짓은 기실 사회 의제화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반성 앞에 지난 가을 광화문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전국작가대회를 힘차게 진행한 바 있다. 이는 작가회의의 진정성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한 예에 불과하며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이제 우리는 국가보안법뿐만 아니라 4대 개혁과제의 올바른 입법을 위한 글쓰기에도 매진할 터이다.

역사와 민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된다는 것은 친일파나 매국노를 향해 준엄한 회초리를 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런 작가가 되고자 한다. 정치 사회 문학적으로 당당한 작가로 설 것을 선언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이 시대의 진정한 진보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엄숙히 선언하며, 여기 분단의 땅이자 휴전의 땅 강원도에서 다음과 같이 실천할 것을 산과 강, 칠천만 겨레 앞에 겸손히 선언한다.

-우리는 남북의 평화적 통일 그날까지 민족문학의 진정성을 견지하며 통일에 이바지하는 글쓰기는 물론 남북작가대회 성사를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처음 그 '자실정신' 계승과 노동자 민중의 삶의 해방을 위해 복무할 것이며 민족문학작가회의의 기풍을 바로 세워나가는 일에 앞장선다.
-우리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하며 한국군을 즉각 이라크에서 철군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우리가 시대의 양심'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며 사회민주화와 개혁을 위해 작가적 양심을 걸고 앞장설 것을 견결히 선언한다.

2004년 11월 13일
제13회 전국민족문학인 강원대회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