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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골목길에서 속어로 깡패에게 돈을 빼앗기는 일을 뜻하는 ‘삥 뜯긴’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대한민국 평균 남성키에도 못 미치는 단신이라 만만한 먹잇감이었는데 지갑에 돈을 넣고 다닐 여유가 없었으므로 좋은 먹잇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내게 돈이 없음을 알고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아예 가방을 통째로 빼앗아 달아났는데 아마도 전리품을 확인한 뒤 신세한탄을 무척이나 했을 것이다. 그 가방 안에는 한국문학전집이 들어 있었다. 혹은 그들 중에 누군가는 이 전리품이 아쉬워 탐독하다가 지금쯤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폭력의 세기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개인과 집단 사이에 집단과 집단 사이에 끝없이 폭력이 발생한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폭력의 상대 개념은 비폭력이 아니라 권력이다. 그러므로 폭력을 사용하는 권력은 이미 권력이 아닌 것이 되며 그러한 권력은 권력으로 위장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흥미로운 현상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이 진정한 권력이 아닌 폭력 세력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흔히 자신들이 행사하는 폭력의 대상이 내부가 아닌 외부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도발(挑發)의 정의는 ‘남을 집적거려 일이 일어나게 함’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들은 국민을 남 취급하는 듯하다. 포사격으로 북측이 얼마나 불안과 공포를 느꼈는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국민이 불안과 공포를 느꼈던 건 명백한 사실이니 말이다.
포사격으로 한때 국민의 마음에 불안과 공포를 심어주는 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불안과 공포가 자리 잡았던 곳에 조소가 생겨나는 순간 그것은 붕괴하고 말 것이다. 한국문학전집을 강탈해 간 그들 중에 누군가는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즐거운 일이듯.
<2010.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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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