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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가 십수년이건만 나는 홍대 기찻길이라는 곳을 몇 해 전에야 처음 가보았다. 기찻길을 옆에 끼고 술 한잔 들이켤 수 있는 공간이 도시 한복판에 있다는 건 사뭇 놀랍고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가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다리는데 연결차량 없이 덜렁 기관차만 나붓나붓 달려와 폭소를 터뜨렸던 기억도 난다. 객차나 화물차를 달지 않은 채 홀로 가는 기관차는 어른에게 야단맞아 풀이 죽은 말썽꾸러기를 연상시켰다. 그런 낭만도 이제는 사라졌다. 철로는 거둬들였고 그 아래로 새로운 도시철도가 지나가며 지상은 공원으로 바뀐다고들 한다. 아마 그곳은 서울의 새로운 명물 거리가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나들이를 하기 위해 찾게 될 것이며 새로운 추억들이 그 공원거리에 흩뿌려질 것이다. 그런데 이미 우리에게는 그런 공간들이 너무 많다. 이를테면 청계천 같은 곳 말이다. 나는 그곳을 쉽게 찾지 못한다. 청계천 공사를 시작할 때 그곳에서 공구 노점상을 하던 한 사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이는 되풀이되는 단속을 견디다 못해 관할구청을 찾아가 자신의 몸에 기름을 끼얹어 불을 붙였다. 나는 청계천 맑은 물에 서린 그이의 영혼을 본다. 강탈당하고 짓밟힌 목숨들을 본다. 그리하여 어쩌면 나는 훗날 새롭게 탈바꿈한 공원거리를 걸으면서도 소설가 유채림의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 ‘두리반’을 뼈아프게 추억할지도 모른다. 동교동 세거리 한 귀퉁이에 그런 식당이 있었지. 깡패나 다름없는 용역들이 행패를 부렸지. 몇 푼의 이사비용만 쥐어주고 우리가 쫓아낸 사람들이 있었지. 그런 일들이 과연 있었던 걸까 의문이 들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기억할 만한 사건들이란 늘 그처럼 우리 곁에 머물다 사라져버리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서울은 잔인한 도시다. 누군가는 그가 섬기는 신에게 봉헌도 할 만큼 자랑스럽고도 아름다운.
<2010. 0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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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