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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문다. 저무는 것들은 쓸쓸하다.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도 비슷한 심정이 된다. 한 문장을 끝내면서 마침표를 찍으면 그 문장은 되돌릴 수가 없다. 그러나 마침표가 찍힌 문장은 글쓴이의 손을 떠나 홀로 존재한다. 그 순간 문장은 살아있는 그 무엇이다. 세월도 그러할까. 우리가 지나온 이 세월도 우리와는 무관하게 저 홀로 존재하게 될까. 울었거나 웃었거나 슬펐거나 기뻤거나 상관없이 세월도 홀로 감정을 지닌 그 무엇으로 남는다면 올해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까. 지난해는 쥐의 해였다. 올해는 소의 해였고 내년은 호랑이의 해다. 그런데 내게는 마치 지난해뿐만 아니라 올해도 쥐의 해였고 내년 역시 쥐의 해일 것처럼 여겨진다. 쥐, 쥐, 쥐. 쥐떼들이 그치지 않고 몰려온다. 어쩌면 내후년도 쥐의 해일 것이다. 그 다음해도. 그리고 우리는 해마다 마침표를 찍으면서 우리가 견뎌온 세월이 왜 온통 쥐 발자국으로 어지럽혀졌는지를 숙고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쓰레기처럼 길바닥에 나뒹굴고 민주주의는 실종된 지 오래다. 희망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는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아는 어떤 이들은 연말 모임에서 예년과 달리 조촐하게 회식을 치르고 그렇게 아낀 돈을 용산참사 유가족을 위한 성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눈앞으로 지나가는 쥐떼들을 무기력한 시선으로 지켜본 채 한 해를 보냈을 뿐이라며 자책해야 했다. 그이들의 행위를 자기위안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실 분들도 있을 게다. 그러나 커다란 위안도 작은 위안에서 시작된다. 마침표는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다음 문장이 존재함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희망은 본질적으로 연약하다. 그러기에 희망은 다음 희망을 필요로 한다. 저 희망들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이 문장이 나의 올해의 마지막 문장이다.
<2009.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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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