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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은 ‘삽질’을 이렇게 정의한다. 삽으로 땅을 파거나 흙을 떠내는 일. 이런 정의에 만족하실 분은 없을 게다. 국어비속어사전(김동언 편저)을 보면 ‘삽질하다’라는 낱말이 등재되었는데 뜻풀이는 이렇다. 엉뚱한 일을 하다. 사전의 뜻풀이를 보면서 한편으로 쓸쓸한 심사를 억누를 수 없다. 내게 삽이란 낱말은 무한증식하는 메타포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어린 시절 고향집 헛간은 농기구의 전시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호미, 괭이, 쇠스랑, 삼발이, 갈퀴, 톱, 낫은 물론이고 곡괭이, 도리깨, 삼태기, 망태기, 가래, 넉가래, 쟁기…. 그리고 삽이 있었다. 삽은 다용도였다. 땅을 파거나 흙을 뜨는 데 쓰는 연장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했다. 삽으로 김장독을 묻을 구덩이나 호박 심을 구덩이를 파기도 했지만 때로는 사람 묻을 자리를 파기도 했다. 그러니까 ‘삽’은 마치 ‘삶’이란 낱말과 친족관계인 것만 같았다.
자전거 옆구리에 삽 한 자루 끼워 농로를 달리는 농민을 본 적이 있다면 아실 게다. 석양을 등지며 소를 모는 목동처럼 오랜 세월 농촌의 익숙한 풍경을 구성했던 그 장면을 떠올린다면 삽이 숟가락처럼 흔하고도 친숙한 도구라는 걸 인정할 수 있을 게다. 장마가 지거나 태풍이 오면 사람들은 삽 한 자루 들고 자신의 논밭으로 나갔다. 깊은 밤중이거나 어둑한 새벽이거나 상관없이 삽 한 자루면 마음이 든든했다. 물꼬를 트고 도랑을 내고 잡초를 갈아엎으며 그렇게 자신의 논밭을 지켰다.
그런 까닭에 삽은 내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신산하고 고달픈 삶의 은유이기도 했고 생명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했으며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물이기도 했다. 그런 삽이 이제 본디 의미는 퇴색한 채 비속어로만 쓰인다. 훗날 사람들은 우리를 두고 말하게 될 것이다. 삽질들은 잘 하셨다고. 삶을 잃으면 언어도 잃는다.
<2009.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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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