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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을 읽으면 눈을 감아도 그 글이 떠오른다. 문학도 일종의 각인이다. 읽는 이의 심장에 한 번 새겨지면 쉬 지워지지 않는다. 생을 두고 우리 안에 거주한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제 아무리 커다란 바위에 더없이 깊숙하게 문장을 새긴다 해도 세월이 흐르면 마모되어 종내는 무엇을 새겼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세월 앞에서는 이처럼 모든 게 속절없다. 하지만 또한 이것을 영원토록 새기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건 바로 끝없이 다른 이의 심장으로 옮겨 적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글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세대를 이어 인류가 절멸하는 순간까지 저마다의 심장에서 심장으로 옮아갈 것이므로.
불멸하는 문장들은 저마다의 곡절이 있다. 그것이 인간 본성을 일깨우기에 혹은 세계와 우주의 비밀을 담았기에 혹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들을 질문하기에. 백운거사 이규보 선생이 어느 지인에게 준 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대 다음날 벼슬하여/ 간할 자리에 서거든/ 잊지 말게 내 시 속에/ 산에 들에 차나무 모조리 불태워/ 남방의 백성들 차를 따서/ 어깨로 져 날라 세금을 바치는/ 이런 제도는 없애도록 하게.” 이런 게 진정한 청탁이다. 또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정의 법령이 내려왔는데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봉행할 수 없다면 병을 핑계 삼아서라도 벼슬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형벌은 백성을 바로잡는 일 가운데 가장 저급한 수단이다. 목민관이 스스로를 단속하고 법을 엄정하게 받들면 백성이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형벌을 쓰지 않더라도 좋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런 문장들에 주석을 붙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새삼 뜻을 헤아리지 않아도 우리 모두 잘 알지 않던가.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사실을.
<200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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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