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전형적인 시골 부자지간이다. 소 닭 보듯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따금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 시간이 영 불편하다는 게 탈이긴 하지만. 언젠가 한번은 새만금에 갔다. 조개를 캐러 갔는데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지 아버지는 새만금 방조제 홍보관에 들렀다 가자며 앞장을 섰다. 주역이었는지 조역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따라지에 불과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대한민국 근대화의 역군답게 아버지는 장엄한 방조제에 감탄을 연발했다. 표지판을 보니 새만금 간척사업을 주관한 곳은 농업기반공사였다. 당신은 그걸 보고도 몰랐다. 농업기반공사(지금은 한국농어촌공사로 이름을 바꿨다)가 어떤 곳인지를. 나는 간척사업 시행주체가 바로 예전의 농지개량조합이니 농어촌기반공사니 하는 곳들의 후신이라는 걸 당신에게 일러주었다. 낮과 밤이 바뀌듯 아버지의 안색이 변했다. 농민에게 그 이름들은 낯설지 않다. 아니 꿈에서도 잊을 수 없고 어쩌면 죽는 날까지도 잊지 못하리라. 농민 가운데 그 이름을 이를 갈면서 내뱉지 않은 이가 없었으며 종주먹 한번 날려보지 않은 이가 없었다. 왜 물값을 내야 하는지, 왜 강제로 농지정리를 당해야 하는지 당신들은 몰랐다. 강도를 당한 기분이었지만 관(官)이 비호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저항도 했지만 그들의 저항이 새만금 간척사업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비로소 아버지는 새만금이 어떤 곳인지를 깨달은 듯했다. 우리는 석양을 등진 채 그곳을 쓸쓸히 돌아섰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만 같다. 누군가 내게 4대강 운하사업 준공식을 기념하는 표지석을 가리키며 저 자가 바로 그 유명한 사람이냐고, 개발이데올로기로 무장했던 바로 그 사람이냐고, 대체 댁은 그 시절에 무얼 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았노라고,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았을 뿐이었노라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2009. 11. 10 손홍규 소설가>
|
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