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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 소총수들
이름 유중원 이메일



소총수들

 

 

 

보병 사병들의 눈을 보아라.
그들이 얼마나 많은 전투를 겪고 왔는지 알 수 있다.
B. 몰딘

 

 

1970년대 육군의 의무 복무 기간은 36개월이었다. 우리는 귀국하면 남은 복무 기간을 채우기 위해 전방 부대나 예비사단에 재배치 되었다. 그런 후 제대하면 나의 경우 뒤늦게 겨우 대학에 들어갔지만 다른 사람들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직장을 잡고 자리가 잡히면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어느 날 갑자기 간헐적으로 불쑥불쑥 악몽이 되살아났다. 월남에서 살아서 무사히 귀국하였다는 안도감이 사라졌다. 그 대신 전쟁에 대한 기억들이, 악몽들이 무섭도록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이건 나만의 기억이 아니다. 그 전쟁에 참전했던 우리들 참전 군인 모두의 집단기억이기도 하다. 집단기억에도 오류가 많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말이다.

그 옛날 백마부대라는 별칭이 붙은 9보병사단의 독수리부대 30연대의 1대대는 중대본부와 3개의 보병 소총 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3중대 3소대 1분대 소속이었다. 그 비극적 밤에 달랏시 랑비앙산 매복 작전에 출동했었다.

지금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우리는 이제 50대 중후반이니까 중년을 지나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분대 유탄수였던 김창수 상병은 지금은 안산에서 화공 약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의 경비원으로 있고, 소총수였던 박충근 상병은 대림동에서 조그마한 중국집을 하고 있고, 역시 소총수였던 음장선 상병은 홍대 앞에서 한동안 문신사를 하였다. 부분대장이었던 송창영 병장은 워낙 술을 좋아했고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셨는데 간암 말기로 중앙보훈병원에 입원했다가 작년에 죽었다. 분대장이었던 김진흥 하사는 우리 중에서 최연장자였다. 그 당시 장기 복무 하사였고 나중에 상사까지 올라갔다. 제대하고 나서 충주에서 개인택시를 하고 있다.

그리고 염주선 일병은 딱 한 번 얼굴을 비췄지만 그 후 완전히 연락이 두절되었다. 아마 꼭꼭 숨어버렸는지 아니면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친했던 김창수가 언젠가 고향인 태안 안면도까지 찾아갔지만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고향 사람들은 그가 제대한 후 한동안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가 제대하자 시체를 너무 많이 봐서 틀림없이 못된 귀신에 씌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망자들의 원혼을 풀어주기 위해 한바탕 씻김굿을 하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때부터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 만나기를 극도로 꺼려했다. 몇 달 동안이나 몸을 씻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아서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맨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어느 날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는 전투가 벌어지면 끝날 때까지 배가 아프다면서 아예 호 속에 양쪽 귀를 뭉친 솜으로 틀어막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위장병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위생병한테서 받아온 약을 늘 복용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중퇴했는데 난독증 때문에 한글조차 거의 읽지 못했다.

우리는 지금 매월 쥐꼬리만 한 참전 수당을 받고 있고 보훈병원에 가면 반값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게 혜택의 전부다.

군대에서는 한가하기만 하면 어디에서건 끼리끼리 모여 노가리를 푸는 것이 가장 큰 낙이었다. 국방부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니까 앞뒤가 꽉 막혀 막막한 현실을 잠시 잊고 도피하기 위해서였다. 거기다 술을 마시게 되면 술잔이 왕복하면서 잡다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니까 금상첨화였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그때처럼 지치지 않고 재탕 삼탕 노가리를 풀었다. 군대 생활 3년 하고 나면 그 후 30년 동안 군대 얘기를 반복한다는 말이 있듯이. 하지만 술을 진탕 마시면서 끝내 아련한 추억인 것처럼 아직도 잊지 못하는 옛날 일을 상기했다.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 만나지만. 그리고 이야기하면서 허탈하게 웃거나 그날 밤을 기억하며 가끔 눈물을 훔쳤다.

우리들은 부질없이 원망 아닌 원망을 하기도 했다.

군대에는 엄연히 장교와 사병이라는 두 계급이 있다. 장교는 명령을 내리고 사병은 거기에 복종해야 한다. 철저한 상명하복 구조이다. 소대장은 직업군인이었고 장교였다. 그 작전에서 성공했더라면 큰 전공을 세웠으니까 무공훈장을 타게 되고 진급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장교는 진급에 목을 매고 있으니까.

 

그래도 살아서 무사히 돌아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강원도 전방에서 썩은 군발이들보단 출세한 거야. 어떻든 처음 외국 구경한 거니까. 지금이야 그렇지만 그 옛날은 외국이란 달나라처럼 까마득하게 먼 곳이었지. 거기다 양담배 피우고 미제 캔맥주 마시고 달러로 월급을 받았으니까. 우리가 화랑담배를 피운 건 수송선에서 마지막이었지. 난 월급을 받은 대로 전부 고국으로 송금해서 우리 집 빚을 대충 해결한 거야.”

지금 같으면 못 먹을 텐데…… 고국에서 보낸 캔 김치 말이야. 시큼시큼했으니까. 그래도 전투 식량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는데 진짜 김치맛을 보니까 모두들 환장했지.”

월남도 별수 없었어. 군화건 군복이건 사이즈가 잘 맞는 게 없었어. 그런 거야. 군대는 사이즈가 두 개밖에 없지. 하나는 너무 작고 다른 하나는 너무 큰 거야. 우리 몸으로 거기다 맞추는 거지.”

나는 중대장 당번병이 제일 부럽더라고. 작업도 하지 않고…… 중대장 옷이나 빨고 다림질하고 구두 닦는 게 임무니까. 거저 먹기지. 정찰 수색 임무에 나가는 일도 없고 진지 작업에 동원되지도 않는단 말이야.”

무슨 소리야. 그건 사내자식들이 할 일이 아니야. 당번병은 꼭 내시 같은 놈들이야.”

그 당번병 말이야…… 여자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게 혹시 중대장의 애인 아니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 좁은 바닥에서 진즉 소문이 났을 거야. 그건 잘못 짚은 거야.”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누가 월남 갔다 왔다고 하면 대뜸 얼마나 벌었느냐고 묻거든. 세상 인심 더럽더라고.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냐고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거야.”

분대장이 그렇게 다들 콘돔 챙기라고 강조했지만 우린 그걸 무시했어. 그러다가 된통 당한 애가 있었지. 요도가 따끔거리고 누런 액체가 사타구니에 엉겨있었다니까. 그걸 치료하느라고 고생깨나 했지.”

분대장이 호박씨 까는 거야. 자기는 낙타 눈깔을 두 개씩이나 지갑에 넣고 다녔거든. 아주 신주단지처럼 모셨어.”

그래도 수진 여자들이 최고였어. 나트랑이나 판랑 쪽은 아니었어. 내가 알기로는 우리 분대는 호모가 없었어. 다른 분대의 경우에는 그걸로 소문난 애들이 있었지.”

우리가 분대장은 잘 만난 거야. 분대는 분대장이 병력을 장악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분대장 자리가 만만치 않지. 분대장이 꼴통이면 분대원들이 보통 괴로운 게 아니거든.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괴롭히니까.

그런데 우리 분대장은 사람이 좋았어. 가급적 우리를 편하게 해주려고 신경을 많이 써주었거든. 그러면서도 앞장을 서는 거야. 뒤에서 꾸물거리는 법이 없었어. 지금 충주에서 개인택시 하면서 잘살고 있지. 자식들도 다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에 자리를 잡았지. 복 받은 거라니까.”

“4분대장은 우리 분대장과는 하사관 학교 동기생이었어. 그리고 함께 월남에 온 거야. 둘이 엄청 친하게 지냈는데 그날 밤 죽은 거지. 분대장이 그의 시체를 안고 엄청 눈물을 흘리더라고.”

음장선이는 그때부터 그림 솜씨가 있었어. 맨날 종이에다가 그렸으니까. 네가 분대장 팔목에다가 그려준 용 문신은 아주 그럴듯했거든. 그런데 분대장은 귀국하고 나서 그 문신을 지워버렸더라고.”

박충근이 말했다.

유 상병이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었을 때 우리는 이미 죽은 줄로만 알았지. 중대 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돈 거야. 멀쩡했던 사람이 완전히 돌아버렸다고 했으니까 우린 모두 깜짝 놀랐지. 아무리 전쟁터라고 하지만 갑자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어.

정신병으로 단단히 미쳤는데 치료약이 없어서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거지. 그건 연대 의무병이 퍼뜨린 말이었을 거야.

그래서 퇴원하여 귀대했을 때는 깜짝 놀랐다니까. 그런데 얼마 안 있다가 대대본부로 전출됐고 바로 병장으로 진급했어. 그리고 연장 근무까지 하고. 갑자기 무슨 빽이 생긴 거지? 군대는 빽이야. 빽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 안 그래?”

내가 말했다.

거의 죽을 뻔했었지만 그렇다고 미친 것은 아니었어. 정말 미쳤다면 그렇게 빨리 퇴원해서 귀대까지 할 수 있었겠어.

나도 말단 소총수였는데 빽은 무슨…… 빽이 있었다면 당초에 말단 소대까지 내려갔겠어.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그렇게 알라고.

그때 우리가 위험한 전투에 투입되면서 수색 정찰을 하려고 장거리 행군을 하게 되면 그때마다 죽음의 계곡에 간다고 했지 않았어. 행정병이 되니까 죽음의 계곡에 갈 일이 없으니까 정말 좋았지.

군대에서는 특과병과 소총병 간에 너무 차이가 나는 거야. 특과병은 너무 편하고 보병은 너무 고되면서 전투에 나가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완전 좆뱅이야. 내가 행정반에 가니까 알겠더라고.

군대는 보직이라니까. 그리고 대대본부에 가니까 50불만 주면 인사계 선임하사가 그냥 1년 연장해 주는 거야. 다 그렇게 했어.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오죽했으면 미군들은 보병을 땅개라고 했을까.”

박승춘 일병은 경북 상주 출신인데 말이지 월남에 와서 첫 번째 전투에서 재수 없이 당한 거야. 돌이켜보면 우리 분대를 대표해서 혼자 죽은 셈이지. 그날 밤 제일 재수가 없었던 분대는 4분대였어. 다섯 명인가 여섯 명이 죽었으니까 그러면 반이 죽은 거라고.”

“4분대 추 병장 말이야. 그때 내게 말했었거든. 한두 달만 무사히 버티면 귀국한다는 거지. 귀국선을 타고 한국에 돌아가는 날 부산항에 식구들이 전부 나올 거라고 했어. 그는 김해 출신이었거든. 그런데 그날 밤 죽고 말았지. 시체를 보니까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얌전하게 죽었더라고.”

그때 박 일병에게 물을 주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지. ‘물 좀 줘, 목이 말라, 한 모금만 주라구.’ 간신히 말했는데 내가 수통을 꺼내자 모두 말렸어. 위생병이 나를 쏘아보면서 그건 안돼! 부상병에게 물은 위험하단 말이야! 정신 차려!’라고 외쳤거든. 어차피 죽는데 물 한 모금 마시면…… 어쩐다구.”

내가 말했다.

그거 기억나지. 우리 소대는 내무반이 두 개로 나눠있었어. 1분대와 3분대가 한 내무반을 썼고 2분대와 4분대가 바로 옆 다른 내무반을 썼지. 죽은 박 일병은 내 옆 매트리스였어. 밤에 잘 때는 약간 가볍게 코를 좀 골았지. 걔가 죽었을 때 정말 많이 울었지.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는 거야. 인생이란 게 정말 허망했지.

걔가 하모니카를 참 기가 막히게 잘 불었어. 내무반 벙커에서 심심하면 시도 때도 없이 그걸 불게 한 거야. 우리가 몇 번이고 박수를 치면 그제서야 마지못해 일어난 거처럼 일어났어.

반드시 일어나서 서서 불었거든. 그래야만 뱃속에서부터 힘이 솟아오른다는 거야. 연거푸 두 곡 세 곡 불러제꼈어. 18번이 베사메무쵸였고 뽕짝이나 팝송을 자기 나름 편곡해서 변주도 하고 자유자재로 즉흥연주도 했었지.

월남에 올 때 그 트레몰로 하모니카를 따블백 속에 넣어가지고 온 거야. 박 일병 설명에 의하면 그게 연주음이 크고 풍성하다고 하더라고. 그날 매복 작전을 나갔을 때도 분명히 배낭 속에 그 하모니카가 들어있었어.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보물이니까.”

우리는 연대작전에는 동원된 일이 없었어. 그렇지 않은가? 대규모 작전에 출동해서 베트콩들과 전투할 때는 베트콩들이 옛날 6·25 전쟁 때 인민군들처럼 신들려서 덩실덩실 춤추며 징과 꽹과리를 울리면서 공격해 온다는 거야. 그러면 소름이 끼친다는 거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생각해보라고. 6·25 때와 월남전은 15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전투 상황이 전혀 다르니까. 월남전은 완전히 게릴라전이었어.”

우리가 늪지대를 지날 때 말이야 정말 겁이 나더라고. 나는 뱀이 물속에서 기어 나와 내 목을 칭칭 감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눈앞이 캄캄하더라고.”

그날 밤 나는 영락없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 새끼들이 감쪽같이 나타났으니까. 내가 어떻게 부상도 입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지.”

음장선이 말했다.

그날 밤 나는 총상을 입었어. 오른쪽 허벅지에 맞은 거야. 처음에는 피가 흐르고 심한 통증이 오니까 충격과 당혹감 때문에 죽는 줄 알고 까무러치기 직전이었지. 위생병이 지혈 압박붕대로 감아주고 나서 102병원으로 후송되었어.

나는 큰 수술을 받아야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총알이 박히지도 않고 뚫고 지나가면서 심한 상처가 난 거였어. 그러니까 한 보름쯤 지나자 군의관이 회진을 돌면서 일주일만 지나면 퇴원해야 된다고 하더라고.

병원은 천국이었는데, 식사 잘 나오지, 낮에는 진지 작업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지, 밤마다 보초 안 서고 잠 잘 자지, 거기다 천사처럼 아름다운 간호 장교들이 엉덩이에 주사를 놔 주거든. 어떻게 해서든지 병원에 오래 눌러앉을 방법을 궁리했지만 그게 그렇더라고. 병원에는 전쟁 신경증에 걸린 나이롱 환자들도 있었단 말이야.

그날 밤 다른 분대에서는 중상자도 많이 나왔어. 102병원에서 한쪽 팔이 어깨에서부터 완전히 나간 사람, 다리가 무릎까지 잘린 사람을 만났거든. 차마 쳐다볼 수가 없어서 외면하고 모른 척했어. 눈물이 쏟아져 내리더라고. 걔들은 치료가 끝나고 무슨 훈장을 받고 나서 조기 귀국했어.”

완전히 병신이 되었는데 그까짓 훈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행군할 때 배낭이 얼마나 무겁던지. 소대장 몰래 배낭의 짐을 줄이려고 버릴 것은 버려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버릴 게 없었지.”

개새끼들이 얼마나 빠르게 기습을 했던지 수류탄 던질 시간도 없었다니까. 수류탄을 들었는데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지는 거야.

그때 안전핀을 뺐으면 멀리 던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폭발했을 거야.”

그거 있지 왜? 그 통에도 빌어먹을 방귀가 나오는 거야.”

우리 소대는 정말이지 운이 없었어. 왜 하필 우리 소대가 뽑힌 거야.”

그건 소대장이 자원했을 수도 있었어. 원래 매복 작전은 소대가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했거든. 귀국을 앞두고 있으면서 목에 걸 번듯한 훈장이 없어서 초조해했으니까.”

그 소대장 육사 출신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했지. 중위 진급을 앞두고 있었는데 장교로서 별다른 흠은 없는 사람이었어. 너무 고지식했을 뿐이야.”

그때 진지 위치가 영 아니었어. 너무 아래쪽이었다니까. 몸을 숨기기가 적당치 않았지. 그때 더 넓게 분산 배치해야 되는데 밀집 대형이었으니까 피해가 크게 발생한 거야. 그런데다 매복지가 그놈들에게 노출되어 버린 거지.”

그놈들은 내내 우리가 이동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기습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그러니까 안개가 짙게 낀 밤중이거나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어슴푸레한 새벽 중에서 새벽을 선택한 거지. 그랬을 거야.”

? 소대장한테 말하지 않았었지? 그걸 지적했어야지.”

소대장 성질을 몰라서 그래. 틀림없이 불같이 화를 냈을 거라고. 맨날 하는 소리가 명령 불복종 아니었어.”

소대장은 나이가 나보다 어렸어.”

나는 그때 월남 고참병이었어. 전투 경험이 많았다니까.”

장교는 두 가지 타입이 있어. 가급적 소대원들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 있는데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잘해줄 수 없지. 소대장은 중대장의 참모에 불과하니까 행정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는 거야.

두 번째 타입은 처음부터 군기 잡으려고 마구 덤비는 경우이지. 속내를 들여다보면 소대원들 개개인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소대를 일사불란하게 지휘 통솔하는 데만 신경을 쓰는 거지. 그러면 소대원과 소대장은 물과 기름처럼 되고 말아.”

우리 중대장은 중대원들 이름과 계급을 모두 외워서 이름표를 보지 않고서도 중대원을 이름으로 불렀지. 부를 때는 이름 뒤에 꼬박꼬박 계급을 붙였어.”

장교들은 모두 특과병이야. 수송선에서도 걔들은 갑판 위 창문이 있는 특실에서 잠을 잤고 우리는 배 밑창 화물칸을 개조한 밀실 같은 방에서 쥐새끼들처럼 오글거리며 잤으니까.

그러니까 장교는 싫은 거야.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인격을 무시하고 얼마나 거들먹거리는지. 졸병들을 깔고 뭉갠다니까.”

나는 지금 많이 좋아졌지만 귀국하고 나서 오랫동안 전쟁의 후유증 때문에 죽을 고생을 했지. 너희들은 괜찮았어?”

먹고 살기 바쁠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때 일이 엊그제 일처럼 생각나는 거 있지. 항상 마음이 편치 못하고…… 뒤늦게 우울증에 걸려 있지.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어.”

송창영 형이 말했다.

그날 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긴 한 거야? 진짜 꿈같은 일이 아니었을까? 과연 실제로 벌어진 일인지 확신이 서지를 않다니까. 우리가 그날 밤 상황에 맞춰서 이리저리 말하다 보니까 상상을 하거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니까.”

소대장은 그때 갈가리 찢겨서 죽었어. 지금 국립묘지에 누워있겠지. 그러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고. 불쌍하지, .”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누구도 예상을 못 했으니까, 그저 늘 있는 매복 작전으로 생각했으니까, 그 엄청난 사건이 끝나고 난 다음 한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런 일이 어떻게 우리에게 일어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내내 숨어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우리가 새벽녘이 되어 방심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우리는 순식간에 대혼란에 빠졌고 지리멸렬했다. 그들은 재빠르게 치고 빠졌으니까 돌격과 백병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칠흑 같은 밤. 청음초에서 보초 근무. 마름모꼴 남십자성. 모기떼와 거머리들, 군복 속을 스멀스멀 기어 다니며 지랄같이 엉겨 붙는 불개미들이 득실거리는 늪지. 전갈은 소리없이 정글화에 숨어들어 생명을 위협했다. 갈대밭. 가시덤불. 강의 지류. 메콩강. 비 오듯 쏟아지는 땀. 사타구니의 습진. 상처투성이. 연대 의무대에서 5불을 주고 받은 포경수술. 베트콩. 월맹 정규군. 그들의 출현을 기다리는 고통스럽고 지루한 매복의 시간. 참을 수 없는 갈증. 불안. 공포. 팬텀기 편대. 105밀리 곡사포의 포탄. 조명탄. 시누크 헬기의 굉음. 드륵드륵 연속 발사되는 M16 소총. AK-47 소총. LMG의 속사음. 클레이 모어, 부비트랩이 터지며 나는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 로켓포 소리. 수류탄 터지는 소리. 화염병사기의 무차별 난사.

 

부산! 부산! 여기는 대구!

작전 종료! 철수하라. 반복한다.

수고했다. 중대 진지로 철수한다.

엎드려라! 움직이지 마라!

엄호 사격!

수류탄이다!

시체라도 찾아야 한다.

소대장님! 미안합니다.

한 달밖에 안 남았심더.

살아서 귀국해야지.

진짜로 고맙심더.

우리 자주 편지 쓰자.

 

호찌민 루트. 혼바산과 죽음의 계곡.

화약 냄새. 시체 타는 냄새. 화장터. 야전병원. 연기. 공동묘지. 실루엣. 피 묻은 파편. 피로와 배고픔. 수면 부족. 두려움. 죄책감과 공포. 혐오감. 증오. 눈물. 고함. 욕설. 비명. 신음. 절규. 아우성. 광기. 잔혹한 학살. . 시체. 죽음의 냄새. 허무. 망상. 환영. 고통을 잊기 위한 또는 황홀경을 위한 마리화나. 혼동. 역겨움. 파괴. 완전한 무의미. 수진 마을. 꽁까이. 성병 (곤지름, 임질, 매독). 갈등. 자살. 범죄적 불법행위. 귀국, 귀국 박스.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늘 안개가 자욱했던 안케 언덕과 안케패스 전투.

잘 싸운 전우들은 모두 전사하고 말이 없다. 구경꾼들이 오히려 수많은 이론과 원칙을 내세워 비판하고 작전을 폄하하고 있다.

숲과 평야에 가랑비처럼 뿌려지던 에이전트 오렌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인 심장을 향해 느리게 날아오는 총알과 같은 고엽제 후유증.

빈딘 성의 민간인 대학살과 빈호하 마을의 학살.

이곳에서 1966126일 남조선 군인들이 무고한 민간인 131명을 학살하였다.

 

밀라이 대학살.

 

그때 이후, 모호한 시간에

죽음의 고통은 되돌아온다.

그리고 나의 섬뜩한 이야기가 말해질 때까지

내 가슴은 불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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