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동정 회원주소록 회원주소 변경 신청 회원작품 회원새책 문학 in 미디어 회원 게시판 사무처에 바란다

회원동정

회원주소록

회원주소 변경 신청

회원작품

회원새책

문학 in 미디어

회원 게시판

사무처에 바란다

회원작품

전체소설아동문학에세이북한문학은수저
이 글을 twitter로 보내기 이 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이 글을 Me2Day로 보내기 이 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이 글을 C공감으로 보내기 rss
조회 730
글자 크게 하기 글자 작게 하기 프린트
제목 [소설] 나는 걷는다
이름 유중원 이메일



나는 걷는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 중에서

 

 

 

 

나는 걷는다.

길을 걷는다.

사막을 걷는다.

내가 사랑하는 뜨거운 햇빛과 황금빛 모래가 지천으로 널려 있고, 그 찬란한 자유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사막들.

모든 사막은 기후 풍토, 바람과 모래 언덕의 형태, 모래와 자갈, 암석의 분포, 동식물의 종류, 풍경, 인간의 삶과의 관계 등에서 각기 나름대로 독특한 특징이 있었다. 그러나 사막은 제각각 다르면서도 신기하리만치 매번 똑같은 느낌을 준다.

내가 지금까지 적어도 한 번 이상 여행을 하였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사막은 다음과 같다.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는 전설의 대지인 중앙아시아의 타클라마칸 사막, 몽골의 고비 사막, 투르크메니스탄의 카라쿰 사막, 우즈베키스탄의 키질쿰 사막, 이란의 카비르 사막, 루트 사막, 인도의 타르 사막, 시리아 사막, 모세가 신을 찾아서 풀뿌리와 메뚜기로 연명하며 40년간이나 방랑하였던 시나이 반도, 위대한 공허의 땅인 아라비아 반도 남부의 룹알할리 사막, 네푸드 사막, 다흐나 사막, 보츠와나의 칼라할리 사막, 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 그리고 사하라 사막이 있다.

나는 사막의 찬란한 햇빛과 모래, 광활한 지평선에 중독되어 있다. 사막은 성지나 다름없었고, 나는 성지 순례자였다. 나에게는 늘 또 다른 사막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사막에 존재하지도 않는 신전을 찾아 나선 영원한 순례자였다. 내가 사막 순례를 시작한 것은 대략 15년 전부터였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순례는 계속될 터이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사막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이방인이었고 언제나 이방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사막의 본질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온갖 고생, 고생하면서 열대우림과 사막만을 찾아 혼자 여행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

고난과 극기의 여행.

나의 예민한 성장기에 바다에서 일어났던 그 비극적 사건 때문에, 잔인한 전쟁이 할퀴고 지나가면서 내 가족에게 남긴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의 후유증 때문에 생긴 원죄의식은 평생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그때 바다의 잔인무도한 힘과 그 악의를 알게 되었고 바다에 대해 억누를 수 없는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다. 죽음의 두려움보다도 더 나쁜 게 바다에 대한 끝없는 공포심이었다. 나는 원래 선장이 되어 이 세상 끝에 있는 바다까지 가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그 꿈을 잃어버렸다.

그랬으니 바다를 대신한 사막 여행은 내가 일시적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단순한 행위도 아니었고 인생의 영원한 구원을 찾으려는 행위도 아니었다. 나는 인간의 삶에는 목적도. 의미도.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도 없다고 회의적으로 생각했으니…… 인간을 포함해서 세상의 존재가 그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내가 구원을 갈망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 여행은 내가 자신의 내면 속 깊은 곳에 감추어진 자아를 찾으려는 사색적 탐구, 자기 자신으로부터 무한정 도망치려하는, 방황하는 영혼과 타협하도록 하는 설득, 일종의 치유, 정화, 사유, 정신적 치료 행위였을까.

아무도 모른다. 나 자신도 모른다.

그러므로, 불가에서 말하는 산 중의 산, 깨달음의 산, 원각산을, 오욕칠정을 끊고, 삶을 끊고, 화두의 바랑 하나만 짊어진 채 바로 그 원각산을 찾아가는 여행도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무어란 말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울었다. 무슨 벅찬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너무 힘들어서, 때로는 올바른 답을 찾지 못해서 울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은 형상화된 모든 것이 사라지고 회색 안개인 듯 한줄기 연기인 듯한 희미한 그 무엇이 채우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실체와 본질이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일까?

‘색 과 공 은 다른 것이 아니다.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 라고 했는데 내가 그걸 깨달을 수 있을까?

사막이 무어란 말인가. 언제 사막이 날 애타게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사막은 이제 너무 지겹지 않은가. 사막에서 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사막이 신이 아닐까. 그렇지만 신은 불가해야하고 역설과 모호함이 아니던가.

(그런데 신을 만나기를 바라는 이유는 고통 때문인가. 또는 보다 근원적으로 존재론적 차원의 이유가 있는 것인가. 하여간에 신을 만나면 무슨 말을? 우선 고통을 없애 달라고. 읍소할 것인가. 또는 내가 원하는 걸 달라고 부탁할 것인가. 용서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고맙다고.)

사막은 무서운 악마다. 악마는 나를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아무것도 살지 못할 것 같은 사막은 황량하면서 장엄하고 삭막하면서도 우아하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이고 무자비하다. 사막은 끊임없이 인간에게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바람이 수놓은 아름다운 모래결이 호수의 물결처럼 퍼져 있는 사막을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다.

끝없이 드넓고, 메마르고, 거칠면서도 부드럽고 관대한 대지. 꾸밈없는 단순함이 있는 곳. 그곳에는 문명의 때가 전혀 끼지 않은 순수한 야생이 있었고, 완벽한, 그래서 엄숙하기까지 한 생명 이전의 태고의 정적이 있다.

사막에는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만이 숨 쉬고 있다. 문명사회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대자연의 원초적인 힘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언제까지나 사막을 사랑할 것이다. 사막은 사소한 일에도 상처 받기 쉬운 나의 예민한 감정을 진정시켜 주었다. 사막의 군더더기 없는 고독이 나를 감싸 안아 주었다. 나는 사막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사막은 고요와 모래, 바람과 별들의 고향이다. 단순하고 정직하다. 그리고 절대적인 평화와 안정이 있다. 사막에는 바람의 흔적만이 모래 위에 남아있을 뿐이다. 사막에서는 시간도 흐름을 멈추는 것처럼 보인다. 사막의 바람은 침식과 풍화를 일으키지만 그 작용이 너무 느려서 사막의 본질은 수천 년 전과 지금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 사계절도 없으니 일 년 내내 풍경의 변화도 없다. 그래서 사막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일 뿐이다.

그런데 사막은 태양의 땅이다. 사막에서 부수적인 것들은 불타는 태양이 태워버리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본질, 진실만이 존재한다. 하얀 뼈만 남는다. 그래서 사막은 궁극적이고 절대적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사막의 매력에 완전히 매혹되어 있었다. 사막은 나의 영혼을 사로잡는 주술적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막은 인간들에게 결핍되어 있는 본질적인 그 무엇을 감추고 있었다. 그때 사막은 자신의 실체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내면으로 숨긴 채, 그곳으로 나를 끌어 당겨 감각적 마비 상태에 빠지게 한 것이다. 사막이 나에게 최면을 건 것이다. 사막은 일종의 최면을 걸어서 수천 년 동안 여행자들을 유혹하였다. 그리고 사막의 함정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나는 나의 또 다른 자아에게 속삭인다.

사막에 가서 진짜…… 사막을 느껴볼 거야. 사막은 신이니까. 아니면 신의 위대한 적수이니까. 사막은 일종의 신비, 비세속적인 신성함, 허무를 극복하는 성스러움, 공포스러운 힘, 악마적 괴물, 끝없는 혼돈, 미신이고 야만, 커다란 공백, 너무나 많은 의미를 갖고 있기에 그래서 결국 무의미하거나 허무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내가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은 사막의 황혼이 선사하는 그 감미로움이지. 그 황혼을 평생 잊을 수가 없으니까 또다시 찾아가는 거겠지.

(하지만, 사람들은 날 사막에 미친 사람이라고…… 괴짜처럼 취급하고…… 혀를 끌끌 차지. ‘왜 그렇게 사냐’는 말도 가끔 듣고, ‘언제 철들겠느냐’는 말도 들었지. 어떤 고약한 사람은 날 현실도피주의자 혹은 마조히스트로 취급하고 경멸하기까지 했지. 그러니 내 여행 계획을 경청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격려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마누라도 그렇고……. 그러나 나는 적극적으로 해명해야할 필요성을……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변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지. 사막에 신이 있다는 걸…… 그걸 찾아다닌다고…… 도저히 납득시킬 수가 없었으니까. 어차피 누구도 이해시킬 수 없었지. 나는 그 비양거림에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고 당연히 들어야할 수근거림이라고 여겼지. 그건 인간들의 흔해빠진 수다에 불과한 거야. 그들이 제대로 본 거겠지. 누가 이해해주겠어.)

그리고…… 피부에 닿는 태양의 열기를, 감긴 눈꺼풀을 덮치는 햇빛을 느끼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사막에서는 그런 거야. 나를 찾으려면…… 그 무엇을 찾으려면…… 그 무엇을 깨달으려면…… 사막을 건너야만 하지.

그러나…… 분명한 거야. 난 이아손처럼 황금양털을 찾아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처럼 성배를 찾아 사막으로 떠나는 게 아니지. 난 알마시 백작처럼 사막 탐험가도 아니지. 단지 자기 자신이라는 고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그냥 떠나는 거지. 사막에서 그 놈의 지긋지긋한 증세를 싹 날려 보내버리고, 자유를 찾는 거야. 그리하여, 마음껏, 제멋대로 상상하는 거야. 그러니까…… 결론이나 해결책 따위는 필요 없는 거지.

그렇지…… 그 빌어먹을 직사광선에 잠시 몸을 맡겨보는 거지. 그리고…… 그 심연 같은 사막의 침묵을 느껴보는 거야. 그 신성한 침묵은 수백만 개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사막의 음성이지. 그 거대한 침묵의 소리, 아득한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야만 되지. 그러면 나는 사막과 대화를…… 침묵의 대화를 하는 거겠지…….

그러나…… 까닥 잘못하면…… 열사병이나 일사병에 걸려 죽게 되겠지. 아니면, 뜨거운 태양이 칼날처럼 피부를 꿰뚫으면서 아예 숯덩이처럼 태워버릴지도 몰라. 그러고 나서…… 너무나 허약한 놈이라고…… 한껏 비웃겠지.

그럴 거야. 언젠가는 사막이 입을 벌리고 으르렁거리며 날 집어삼켜버릴 거야. 나의 사막여행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인생을 허비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냉철하게 선언을 할지도 모르지. 사형선고를 내리겠지. 그리고 스스로 집행을 하겠지. 나는 몽롱한 꿈속에서 그걸 어렴풋이 때로는 명료한 의식 속에서 명증하게 인지할 수 있었거든.

 

사실인즉, 태양이 빛나는 뜨거운 사막이야말로 인류 역사에 있어서 무궁무진한 종교적 영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보잘것없는 지식밖에 없는 자신이 주제넘게 끼어들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나는 사막 여행의 진지한 경험을 음미하고, 종교의 역사에 대한 분석적 통찰을 통하여 나름대로 그러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건축물처럼 잘 짜여진 이론 체계를 세울 자신은 없었으므로) 학문적인 관점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였다. 사막의 모래와 영적인 빛을 발하는 붉은 태양이, 그리고 그 두렵고 무거운 적막이 신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제멋대로 결론을 내려버린 것이다.

어쨌거나,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관념적이며 상투적인, 고매한 문화인류학자나 종교학자들이 나의 견해에 선뜻 동의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종교의 탄생에 관한 복잡하고 배배 꼬인 이론을 동원하여 경멸적인 어조로 나를 인정사정없이 깔아뭉갤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사막에 가보기는 한 걸까?

사막에서 압도적 존재인 강렬한 태양 아래서 목마름과 허기에 지쳐 옅은 황토색과 짙은 회갈색이 뒤섞여 비현실적인 색채를 띠는 몽환과 같은 모래 언덕을 몽유병자처럼 흐느적거리며 걸어본 일이 있었을까? 그래서 사막의 그 신비스런 장엄함과 침묵을 온몸으로 느껴본 일이 있었을까? 죽음과 같은 고독이 숨 쉬는 텅 빈 땅에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영성이 충만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사막에서 인위적이건 천연의 장애물이건 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한의 공간과 대면하는 가운데, 빛이 가장 눈부신 시간, 강렬한 햇빛 속에서 불현듯 출현한 불멸의 존재와 조우하게 되면 그 사람은 이미 신을 절대로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지금도 새로운 신을 만나기 위해 사막 속으로 찾아나서는 사람이 있다. 신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신을 찾는 법이니까, 그는 자신만의 신을 찾아서, 어떤 커다란 징조나 계시 같은 것을 찾아서 사막을 헤맨다. 그러나 그는 사막에서 신의 환영을 얼핏 보았고 신의 희미한 목소리를 들었지만 그것이 악마의 목소리였는지 아니면 신의 목소리였는지 헷갈려서 지쳐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신을 찾아다니는 대신 자신만의 신앙을 창조해서 그 종교의 유일한 하나님 겸 유일한 신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사막의 성소를 찾아 헤맨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나는 다시 생각한다.

사막은 신의 정원이지. 그들은 사막을 알라의 정원이라고 불렀던 거지. 알라신이 우리들 인간으로 하여금 이 삼라만상의 진정한 존재 가치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든 불필요한 것들은 없애버린 땅이라고 생각한 거지.

그 정원에 충만해 있는 모래와 (항상 스스로 증식하여 불꽃으로 타오르는) 햇빛이 무지한 인간들에게 신앙을 선물한 거야. 난폭하고 혼란한 시대에 인간들은 맹목적으로 믿고 의지할 신이 필요했거든. 사람들은 사막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사막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신과 대면할 수밖에 없어. 사막에는 불멸의 존재에 대한 명상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사막에서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신을 버릴 수 없지.

그러니까, 사막은 인류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고향이지. 거기에 인류의 뿌리와 생명의 원천이 자리 잡고 있어. 인간이 언제까지 번성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걸 알 수 있겠어! 다만…… 인류가 언젠가는 멸망할지 모르지만 -지금 보면 멸망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 그러나, 그 이후에도 사막은 여전히 아름답고 위대한 존재로 남을 것이야. 사막은 불멸의 존재이니까. 그리고 끝없이 순환과 반복이 일어나는 거지.

 

나는 길을 걸을 때면 자신과 대면하였다.

사막을 천천히 걸어가면 절망과 고독, 자괴감과 수치심 같은 것은 자연스럽게 치유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광대한 사막의 텅 빈 무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들었다. 위대한 사막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미물인지, 또한 한없이 어리석은지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인간이란 누구나 매우 천박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깨달으면 얼마나 창피하고 당혹스러웠겠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의식, 다시 말하면 비존재라는 의식에 사로잡힌 거지. 그래서, 사막은 실질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나를 초월하는 것으로 하나의 신비한 상징이 되고, 그러나 그 신비를 풀 길이 없으니 결국 허무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도 허무주의자는 삶과 죽음에 차가운 시선을 던지면서도 끊임없이 꿈을 꾸는데 사실은 그게 꿈이라기보다는 판타지인 거지. 그러니…… 그때는 난 그저 외로운 나그네일 뿐이라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해야만 하는 거지.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푸근해지는 거야.

그것뿐만이 아니야. 사막의 뜨거운 햇빛에 고질적인 증세들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거든. 그 증세는 참으로 끈질기지……. 운명처럼 끈질기지……. 그런데 태양이 그 칙칙하고 음울한 증세들을 말끔히 태워 버리는 거야. 남은 재는 모래 바람에 실어 지평선 너머로 날려 보내버리고…….

그러니까, 내 인생은 줄곧 의문형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사막에서 정신적 갈등과 방황에 대한 위로와 치유까지 추구한 것은 아니었지. 삶의 근원적 모순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었지. 인간의 행복도 아니었지. 모세처럼 사막에서 위대한 신을 만나려고 헤매는 것도 아니었지. 물론, 절대로 아니었지. 나는 신의 구원을 믿지 않으니까. 다만, 나를…… 자신의 근원을 찾아 끝없이 헤맨 거지. 그러기 위해서 끝없는 고통이 필요했지. 극심한 굶주림과 목마름 같은…… 그걸 참아내야 했거든.

사막을 걷는 일은 그 증세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마음의 백신이었다. 사막에서는 가슴과 머리가 옥죄어들기 시작하면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거나 호흡곤란을 느낄 필요가 없었고, 자제력을 잃고 미칠 것 같은 공포감이 들거나, 이유 없이 맥박이 빨라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할 경우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증상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물론 처음 며칠 동안은 간신히 몸을 가누고 걸으면서 길에 대한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처음 며칠 동안이 힘들었다. 신체의 기관들이 아직 적응이 덜 되었고, 단련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쯤이면 발은 퉁퉁 부었고, 등에는 통증이 왔다. 피부가 이곳저곳 벗겨지고 빨갛게 짓물러 있었다. 무릎과 발목, 어깨, 팔꿈치, 대퇴골 등 신체 모든 곳의 관절에 오는 극심한 근육통을 참아내야 하였다. 갑자기 위경련, 구토, 설사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다리는 천근만근 무겁고 배낭은 어깨를 무섭게 짓눌렀다. 몸은 하루 종일 걸으면서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고, 모든 희망, 욕망 같은 것들은 희미해져 버렸다.

그러면서 지독하게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왜 내가 이 지겨운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지 그럴듯한 이유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이 고통스러운 여행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그 무엇이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 모든 것이 점점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밤에 겨우 잠이 들면서 과연 내일 아침에 무사히 깨어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 절망의 순간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여행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자신을 위로하여야 한다. 그럴 때는 일부러 신나게 휘파람을 불어댔다. 나는 멋들어지게 휘파람을 불 줄 알았고, 만날 부르는 몇 곡의 십팔번이 있었다. 그러면 왠지 편안한 느낌이 들면서 숨쉬기가 안정되고, 심장도 더 이상 쿵쾅거리지 않았다. 걷지 않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그날 하루는 매우 유익하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정성껏 돌본 상처도 아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걷는 즐거움이란 게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런 고난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 후에는 몸이 걷기에 훨씬 단련되면서 정신적으로 아주 편안한 상태가 되고 한결 여유를 되찾게 되는 것이다. 몸이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다리뿐만 아니라 팔과 어깨, 온몸으로 걷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의식한다. 발밑의 땅의 따스함을 느낀다. 나는 땅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때는 길에 부드러운 카펫이 깔린 것 같다. 나는 길을 걷는데 대한 편집증적 증세가 다시 나타났고, 가뿐한 걸음걸이로 날듯이 걸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순례자들은 순례를 시작한 첫 날에 간소한 의례와 함께 맹세를 했다.

……너무 빠르게 너무 느리게 걷지 말 것이며, 언제나 길의 법칙과 요구를 존중하며 걸어가기를. 그대를 안내하는 이에게 복종하기를, 심지어 내가 살인이나 신성모독, 파렴치한 행동을 명령하는 경우에도. 그대는 안내자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맹세해야만 할 것이니라.

그런데 길의 법칙과 요구를 존중하라는 말은 백 번 맞는 말이지만 이 맹세에 명백히 빠진 부분이 있다. 신발은 발에 잘 맞는 오래된 것을 신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신발은 자신의 발에 맞게 주름 잡히고, 부드럽게 뒤틀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은 언제나 길이었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어져 있었다. 어쨌거나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때 길은, ‘길은 끝이 없는 거야. 당신의 의지가 명령하는 곳으로 가야만 되지.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누굴 찾아서, 무얼 찾아서 떠나는 것일까? 왜? 무엇 때문에 출발하였는가? 물을 필요가 없는 거지.

그 길이 당신에게 가야 할 길을 안내할 거야. 지평선을 향하여 계속 걸어야만 돼, 걷는 것은 즐거운 거야. 지금 북이 울리고 있어. 길을 노래하라, 태양을 칭송하라.’라고 속삭였다.

나는 적갈색 태양을 강렬히 의식하며 사막의 길과 공감하였고 자신에 대하여 강한 존재감을 느꼈다.

나는 게으름을 피우면서 몹시 느릿느릿 걸었기 때문에 사막의 모래 언덕을 돌아보고 감탄하는데 시간은 충분하였다. 사막의 모래 언덕은 조금도 물리지 않았다. 그럴 때면 진정으로 사막에 도달하였다는 기분, 내가 죽어 묻혀야 할 곳에 마침내 도착하였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지나간 자신의 삶을 깊이 반추하면서 사막을 음미하고 걸었다. 사막은 현실과 비현실의 완충지역을 이루고 있었고, 현재와 과거를 명백히 가르는 경계선 같은 것은 없었다. 사막은 그 과거라는 존재가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었다. 그때, 나는 언제나 낯설은 사막의 풍경을 감상하기 보다는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신의 심연을 묵상하는 내면 여행을 한 것이다.

어느 날 드디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때는 결국 도달하고 말았다는 안도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언제나 너무 지쳐서 탈진할 정도였고 그 순간 머릿속은 진공 상태에 빠져 들었다. 내가 도달한 그 어디에서도 나는 무언가 빠져있음을 느꼈다. 나는 부재와 상실감을 느낀다. 그러므로 곧 쓸쓸하고 섭섭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고, 처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만이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내가 사막이나 열대우림을 뒤로 하고 떠나올 때면, 벌써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모든 피로는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곧 그 힘들고 지긋지긋한 여행의 기억들은 자취를 감추고 아름답고 찬란한 추억들만이 고스란히 가슴 속에 남았다.

나는 오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짜증나는 복잡한 절차와 막대한 비용, 그 지독한 현지의 기후 풍토, 개밥보다 못한 원주민 음식, 허기와 탈진, 심한 배탈과 설사, 수면 부족, 크고 작은 상처, 저체온증,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고독, 완고한 관료주의, 달러를 밝히는 국경 관리, 카라슈니코프 자동소총을 들고 위협하는 반군, 고통스러울 만큼 길고 지루한 여정 등 그 모든 것을 언제든지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혼자서 외롭게 먼 길을 걷는 여행은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이 지껄이는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과 어울리고,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삶의 진실이 길 위에 있다. 인생은 그 자체가 머나먼 길이다.

나는 늘 열대우림의 환상적인 녹색의 지옥, 또는 가혹할 정도로 황량한 사막의 놀라운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나는 언제든지 그곳으로 또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때 태양은 이미 지평선에 걸려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닥쳤다. 힘겹게 길을 찾아 되돌아갔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맹렬한 모래 폭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바람은 처음에는 미풍처럼 잔잔하게 불기 시작하더니 갑작스럽게 거친 숨결을 내뱉으며 세차게 몰아붙였다. 마침내 거대한 파도 같은 모래 기둥을 일으키며 모래 폭풍으로 돌변한 것이다. 곧, 모래 먼지에 가려서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주위가 어두워졌고 길은 모래 먼지에 파묻혀 헝클어져 버렸다.

사막의 유목민들이 함신이라고 부르는 계절풍이 거대한 모래 먼지 덩어리를 낚아채 사막 이곳저곳으로 날려 보내서 마을과 길을 파묻어버리고 하늘을 창백하게 만든다. 바람은 아무런 사전 경고도 없이 갑자기 불어 닥친다. 변덕스런 함신은 이유도, 자비도 없이 사막을 강타한다. 그 냉혹한 바람은 사막 여기저기에 절망과 망상을 실어 보낸다.

사막에서 모래 폭풍에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어떤 무엇도 저항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사막의 모래 폭풍에 갇히게 되면 장소나 방향에 대한 모든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때 사람들은 길을 잃는다. 처음 이 무서운 사막의 광기에 사로잡히게 된 사람은 끝내 미쳐버릴 수 있다.

나는 함신의 위력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전에도 이곳저곳 사막을 여행하면서 그 지독한 모래 바람을 몇 번인가 경험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특히 심했고 그에 따라 불길한 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 바람이 날 죽일 작정이군.’

이제 사막의 길은 재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길은 바람에 휩쓸려 제멋대로 꼬여 있었다. 크고 작은 모래 언덕 사이에서 구불구불하게 휘어지기도 했고 넓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했으며, 잠시 자취 없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하였다.

끝없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래 언덕 사이를 이리 돌고 저리 돌면서, 이내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모래사막에서는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 것도 인간의 시야를 가로막지 않는다. 지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있는 모래사막은 거리 감각까지 마비시켜 버렸다. 사막에서는 자욱한 모래 먼지와 이글거리는 태양 때문에 원근감이 과장된다. 그것은 이 세상 끝까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과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렸고, 가는 모래가 땀과 뒤범벅이 되어 여기저기 긁어낼 수 있을 만큼 두텁게 들러붙었다. 눈언저리와 코, 입 속까지 모래 덩어리가 서걱거린다. 모래는 사막의 열기에 달궈져서 살갗을 태울 것처럼 뜨거웠다. 살갗이 몹시 따갑고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꾹꾹 쑤시기까지 한다. 눈이 따끔거린다.

지금 몇 시간째인지 제자리를 계속 맴돌고 있을 뿐이다. 사막에서는 침식과 퇴적 작용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사나운 모래 폭풍이 계속 키질을 하여 모래 먼지와 티끌을 끌어 모으고 분산시켜 수시로 지형을 바꾸어 놓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모래 언덕을 만들어 끝없이 펼쳐 놓고 있었다. 높고 웅장하면서 섬세하며, 무리지어 서있는 이 언덕들은 모래가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다시 계속 쌓이고 있었다.

그러나 사막의 바람은 건축가였다. 모래 언덕이 연출하는 곡선의 부드러움은 사막의 가혹한 대지와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사막에서 미친 듯이 맹렬하게 부는 바람은 관악기, 타악기, 현악기로 함께 연주하는 관현악단이었다. 바람은 관현악단처럼 화려하게, 격렬하게 사막을 연주하였다.

 

나는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하였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무한대로 뻗어있는 크고 작은 모래 언덕뿐이었다. 계절풍이 몰고 온 맹렬한 모래 폭풍이 미세한 모래 입자를 이곳저곳으로 날려 보내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길은 모래 언덕 사이로 숨었다가 다시 나타나곤 하였다. 결국 길은 산처럼 높다란 모래 언덕 속으로 기어 들어가더니 감쪽같이 사라져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웅장하고 위엄이 서려 있는 거대한 언덕이 밤의 유령처럼 버티고 서서 그들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영겁과 같은 기나긴 세월 동안 말없이 고독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래 언덕은 아름다웠다. 모래 언덕은 태양의 방향에 따라 하루 중에도 시시각각으로 그 색조가 화려하게 변모하였다. 특히 석양의 그림자를 등 뒤에 지고 반사광의 잔영에 황금빛으로 물든 그 가슴 저미는 풍경이 그대로 아름다웠다.

계절풍이 휩쓸고 지나간 그 자리에 세월의 앙금이 겹겹이 쌓여서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쓸쓸하고 아름다웠다.

도대체 사막의 황혼은 누구를 위해 그렇게도 아름다운 것인가.

섬세한 영혼을 가진 외로운 사막 여행자는 모래 언덕 주위를 억세게 휘감고 있는 아름다운 슬픔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막에서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모래 언덕도 끊임없이 생성, 성장, 이동, 소멸, 재생되고 있었다.

피라미드 형태의 봉우리와 칼로 벤듯한 날카로운 산등성이, 굽은 등줄기, 물결치는 사면들로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 모래 언덕은 황갈색과 옅은 분홍색을 띤, 우아하고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모래 알갱이들이 바람에 실려와 만들어진 것이다. 바람에 날려 온 모래는 점점 가파르게 쌓여서 임계치에 이르는 경사도에 도달하면 다시 미끄러져 내렸다.

그 모래 언덕은 바람결에 따라 스스로 다양한 형태와 빛깔을 띠고 황홀하게 변화하였고 완벽할 정도로 깨끗하였다. 바람이 잠시도 쉬지 않고 그 표면을 닦아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여체를 연상시킨다. 눈이 시릴 만큼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붉은 석양을 등지고 요염하게 누워있는 완벽한 몸매였다. 그 곡선이 너무 섬세하다. 그녀의 가는 허리와 팽팽한 엉덩이는 생생하고 풍만했다. 그래서 음란하고 관능적이었다.

그리고 모래 언덕은 끊임없이 신비한 노래를 불렀다.

노래하는 모래 언덕.

그러나 바람의 방향에 따라 사막의 풍경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어떤 모래 언덕은 불현듯 솟아올라서 길을 막았다. 태양열 화덕처럼 열기로 데워진 사막 한가운데서 갑자기 언덕이 신기루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이곳 사막에서는 신기루가 실제 상황이었다.

 

태양은 바로 머리 위에서 무섭게 이글거리고 더위는 끔찍했다. 지독하게 덥다. 공기는 허공에 정체되어 벌겋게 달궈진 채 불기둥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다.

물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목구멍이 바짝 말라 버려 목 속 전체가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따끔거린다. 물을 한 목음이라도 마실 수 있다면……. 물. 물. 물.

내가 사막을 여행하며 터득한 것인데, 타는 듯한 사막에서 탈수 증세를 방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한 한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 땀도 흘리지 않고, 고통도 덜 느끼게 된다. 그늘 밑에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인 것이다.

아직 먹을 게 약간 남아있긴 하였으나 음식을 먹으면 갈증은 더욱 심해지므로 아주 조금이라도 음식을 삼키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사막에서 길 잃은 사람들이 죽게 되는 것은 대부분 굶주림보다는 탈수증세 때문이다.

갈증이란 인간의 몸에 흐르는 피가 수분이 부족하면 뇌에서 보내는 신호에 불과하다. 사람의 신체는 수분이 부족해지면 수분을 혈관에서 끌어오게 되고, 탈수 때문에 신체가 충분한 영양소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신체의 기관은 점차적으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피는 극도로 탁해지면서 기능장애가 와서 애타게 신호를 보내게 된다.

갈증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경험 중에서는 최악의 종류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생물종 중에서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인간이란 동물도 갈증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몸은 열기를 쉽게 방출할 수는 있어도, 불행히도 수분을 몸속에 저장하는 방법까진 알지 못한다.

마지막 남은 물 한 방울은 성수와 같았고, 물은 흘러가는 시간이 되었으며 시간 속에서 생명이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길을 잃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한 가닥 희망도 없이 사막의 모래 언덕에 갇혀 고립된 채로 옴짝달싹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 구조될 가능성이 전현 없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엉클어져 버렸다. 이것이 현실인지,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환상인지, 환영인지 도대체 분간을 할 수 없다. 날마다 꿈꿨던 것, 추억과 기억, 향수, 상념, 생에 대한 애착도 느끼지 못하고 체념 상태에 빠져버렸다. 한없이 무기력한 상태에서 오직 잠을 자고 싶다. 갑자기 여기가 평화로운 안식처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혀는 설태가 끼어 하얗게 부풀어 있었고, 입술은 옅은 푸른빛으로 변하였다. 침은 마른지 오래되었고, 식도는 딱딱해지면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긁어대는 것처럼 따가웠다. 탈수 증세가 심각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탈수 증세는 먼저 극도의 피로와 식욕부진, 맥박수 증가, 과민반응 등으로 나타났고, 이 단계를 지나자 심한 어지럼증과 두통, 호흡 곤란, 분명치 않은 발음, 몽롱한 의식 같은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몸은 삐쩍 말라갔다.

혓바닥은 농포가 생기면서 퉁퉁 붓고, 입안은 헐어 감각을 잃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뭔가를 삼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눈이 빛으로 가득 차 부시게 되면 몇 시간 이내에 죽음이 들이 닥칠 것이다. 목마저 잠겨있어서 나는 말 한마디 내뱉기도 힘겨웠다.

나는 탈수로 인하여 죽는 것은 모진 고통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차라리 극도의 추위 속에서 저체온증으로 죽는 것이 훨씬 고통이 덜 할 것이다. 그때는 몸이 얼어붙으면서 신체의 감각이 무감각해져서 최소한 고통만큼은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때는 죽음이 편안한 휴식이 된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의식이 끝없이 밑바닥으로 하강하면서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무의식의 심연에서부터 슬픈 혹은 달콤 쌉싸름한 기억들이 뒤엉키면서 어떤 환상인지 환영인지 떠오른다.

회색 하늘과 회색 바다는 혼동되어 아득한 수평선에서 맞붙어 있다. 하늘을 분홍색으로 물들인 노을이 아름답다. 거칠게 넘실대던 파도는 정적 속에서 해변으로 밀려와 부드럽게 쓰다듬을 뿐이다. 바다는 마침내 침묵 속에 잠겼다. 내 시선은 또 다시 작은 목선을 찾아서 무인도 너머 아득한 수평선을 향했고 거기에 머물렀다. 파도가 밀려오며 부르짖는 고함 소리와 하늘을 가르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 바람에 실려 온 비명, 외침이 내 귀로 들어와 박혔다. 나는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그러나 울지 않으리라. 더 이상 울어서는 안 된다. 그 모든 감정, 상실감을 꿀꺽 삼켜버려야 한다. 발이 마침내 바다 속 모래밭에 닿았다. 발가락 사이로 모래들이 간지럽게 파고들면서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아늑하게 들린다. 그런데, 뭔가, 가냘프면서 부드러운 육중한 무엇이다. 바다의 괴물. 해초 이파리들이 물살이 일 때마다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내 몸을 껴안듯 감싸고 내 다리를 더듬으면서 성기를 어루만졌다. 가늘고 유연한 손희승, 아니면 심현숙 또는 또 다른 여자의 몸이 마치 어린 아이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그들은 아무리 봐도 서로 닮지 않았다. 그녀의 긴 두 팔이 나를 꼭 껴안고, 두 다리가 나의 다리에 가벼운 압박을 가하면서 얽혀 들었고, 가볍고 밋밋한 가슴이 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멜로디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내 귓전을 스쳤다. 그녀의 몸에서 고동치는 맥박이 느껴졌다. 그녀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겁고 검붉은 피가 내 몸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나는 또 다시 바다를 향해 쌍둥이 동생을 목이 메이도록 부르고 또 부른다. 그러나 동생의 이름이 역시 생각나지 않았다. 그가 죽은 후 그 신성한 이름은 도저히 소리 내어 부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이름은 언제든지 내 가슴 속에서만 메아리쳤다. 그의 해맑은 얼굴이 구름처럼 하늘에 매달려 아득하다. 그 순간 내 동생은 또 다른 동생인 이브라함의 갈색 얼굴이 되었다.

그는 마치 유령처럼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다. 눈을 감은 채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가끔 실룩거렸지만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무엇일까? 이브라함은 지금 죽어가고 있다. 나는 그를 구할 수가 없다. 두 동생들은 모두 내가 그렇게 죽게 만든 것이다. 누구를 탓하랴.

 

마지막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그 고통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럴 바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인간의 심장을 신에게 바쳐 인신공양을 하는 종족을 지금 이 순간 만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 지독한 고통이 빨리 끝날 것이니까.

죽음을 피할 길은 없다. 나는 내 삶의 천일야화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증인이지만. 그러나 내가 죽으면 죽음의 유일한 증인은 여기 남쪽 사막의 빛나는 태양과 모래일 뿐이다. 그들은 침묵을 지킬 것이다. 그러므로 침묵만이 증언할 것이다.

음산한 죽음의 그림자가 밤의 유령처럼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와 있다. 사막의 정적 속에서 그것은 엄숙하게 울려 퍼졌다. 내 명징한 의식은 마지막 순간이 닥쳐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나는 억울했고 분노했다. 그러나 고통은 사라졌다. 어둡고 흐린 막연한 욕망, 광적인 이상한 감정, 어떤 신성한 존재, 죽음의 공포, 잃어버린 추억도 사라졌다. 모든 것이 아득히 멀어 보였다.

나는 인간의 준엄한 삶이라는 사막을 평생 동안 걸었다. 이 순간 나는, 삶이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망각하는 여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록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588 소설   배반의 장미 유중원 2018.02.26. 689
587 소설   마늘밭의 비밀 유중원 2018.02.23. 800
586 소설   귀휴 歸休 유중원 2018.02.23. 794
585 소설   그녀 유중원 2018.02.23. 654
584 소설   밀항 유중원 2018.01.23. 685
583 에세이   진실과 왜곡 - 영화 1987 유중원 2018.01.17. 851
582   멸치를 털며 정완희 2018.01.11. 807
581 소설   성고문 고발장 유중원 2018.01.04. 838
580 소설   그 해 겨울 유중원 2017.12.29. 676
579 소설   광화문광장 [1] 유중원 2017.12.29. 786
578 소설   법정모욕 유중원 2017.12.26. 650
577 소설   1987년 7월 5일 유중원 2017.12.22. 602
576 에세이   (유중원) 작가의 말 유중원 2017.12.16. 642
575 소설   탄원서 유중원 2017.12.08. 669
574 소설   유혹 유중원 2017.12.02. 737
573 소설   찍새와 뽀찌 유중원 2017.12.02. 640
572 에세이   (유중원) 작가의 말 유중원 2017.08.18. 671
571 소설   가발 권하는 사회 유중원 2017.08.18. 654
570 소설   이별 유중원 2017.07.21. 698
569 소설   시인의 죽음 유중원 2017.07.04. 894
568 소설   결별의 기억 (마지막 수정?) 유중원 2017.07.04. 793
567 소설   달빛 죽이기 유중원 2017.07.04. 972
566 에세이   (변호사가) 웬 소설을……? 유중원 2017.05.30. 839
565 소설   자백 유중원 2017.05.09. 671
564 에세이   인간 해방(혹은 에덴동산의 탈출) 유중원 2017.04.18. 777



1 / 2 / 3 /4 / 5 / 6 / 7 / 8 / 9 / 10 / [다음 10개]

 

후원 우리은행 1005-802-113278 (사)한국작가회의

(03965)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_ 전화 02-313-1486~7 / 전송 02-2676-1488
이메일 hanjak1118@hanmail.net(사무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