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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 바다
이름 유중원 이메일



바다

 

 

얼마나 깊은 해한이기게,

너 얼마나 그 큰 괴롬이기에,

아니 듯 겨우 물거품 지우는다?

찬 바윗돌에 가슴을 비비는다?

바다야 너 바다야.

─ 김달진  

 

 

 

고향 마을은 벌교읍에서 여자만 바다 쪽으로 20리쯤 내려가 천마산 아래 바다가 초승달처럼 휘어져 육지와 맞닿은 만에 자리 잡은 작은 어촌이었다. 그 산이 넌지시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고, 마을은 바다를 향하여 가슴을 열고 있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긴 해안이 바다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마을의 50여 호 남짓한 가구들은 모두 바다에 삶을 의지하고 살았다.

봄이면 마을은 모든 게 아름다웠다. 온 세상이 눈부시게 푸르렀다. 봄이 오면 동네 어귀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아카시아 꽃이 피고, 집집마다 얕은 담벼락에는 철 이른 붉은 줄장미가 아름답게 피었다. 붉은 꽃잎은 골목길에 붉은 피를 쏟아 붓는다. 꽃잎은 매일 아침마다 농염하게 자신을 화장하였다. 꽃잎의 육감적인 냄새가 사람의 숨을 막히게 하였다. 이따금씩 짙은 향기를 내뿜는 하얀 꽃들을 피운 아카시아의 나뭇가지에 앉은 제비들이 사이좋게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그 꽃향기를, 그 꽃이 피는 봄날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때 허름한 초가집은 얼마나 아늑하고 평온했던가! 그리고 마당가 늙은 감나무의 잔가지에 모여 앉아 심하게 말다툼을 하는 참새들이 날카롭게 짹짹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가! 촉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여기저기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나불거리지 않았던가! 소금 맛이 나는 서늘한 봄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로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지 않았던가!

그때 경전선 완행열차는 바다에 대한 향수를 안고 검은 석탄 연기를 내뿜으며 길게 기적 소릴 울리고 산기슭을 돌아 남쪽으로 달려갔다. 형용할 수 없는 긴 여운을 끌면서…… (30년이 넘은 낡은 증기 기관차의 숨 쉬는 소리. 아! 지금은 잊혀버린 그 목가적인 소리.) 칙칙폭폭…… 칙칙폭폭…….

밤새 별똥별이 솔숲으로 떨어지고, 은고리 같은 새벽달이 서쪽으로 지고, 그리고 동이 틀 무렵이면, 동네는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암탉이 가슴을 펴고 날개를 퍼덕이고 수탁은 홰를 치며 연호하듯 울기 시작했다. 누가, 닭에게 밤과 낮을 구분할 수 있는 머리를 주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때쯤이면 참새들도 이른 새벽 벌써 나뭇가지에서 지저귀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이 부스스 일어나 하품을 하고, 기침을 하고, 졸음에 겨워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켰다.

새신랑은 새삼스레 색시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무명 이불을 걷어 젖힌다. 여자가 못이기는 척하며 자신의 속 고쟁이를 발목까지 밀어 내리고 다리를 벌리자 남자는 여자의 몸 위로 올라갔다. 남자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 그의 입에서, 여자의 입에서도 억누를 수 없는 가벼운 신음 소리가 새 나왔다.

새벽이 밝았다. 새날이 돌아왔다. 창백한 밤은 물러갔다. 마을에는 온통 상쾌하고 활기찬 기운이 감돌았다.

바다 쪽에서부터 하늘이 환하게 홍조를 띠었다. 찝찔한 바다의 소금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와서 마을을 뒤덮는다. 그제서야 헛간에 매어둔 얼룩백이 황소는 길게 하품을 하다말고 게으른 울음을 울고, 마을의 잡종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한다. 개들은 만날 때마다 서로 으르렁대다가도 이때만큼은 연호하며 한동안 쉬지 않고 짖어댔다. 이윽고 개들은 차츰 조용해졌으며 울부짖던 소리가 어느새 끊겼다. 그것들이 골목길을 누비며 배회한다. 똥개들은 골목에서 담벼락에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눈다.

그러므로 참새와 제비의 아름다운 재잘거림, 아카시아의 짙은 향기,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경전선 기차, 고향 마을과 바다, 어머니와 아버지, 남동생은 그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떼어 놓을 수 없을 만큼 한 덩어리가 되어 있어서 기억 속에서 언제나 함께 뛰쳐나왔다.

언제나 밤안개가 짙은 곳이다. 아침이면 해안가를 뒤덮고 있던 옅어진 안개가 여전히 뭉그적거리다 햇빛에 쫓겨 사라졌다. 이따금 바다 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고 파도는 으르렁거리며 밀려와 해변의 모래톱에서 부서지며 사라졌다.

그곳에서는 밤이면 바다의 유령들이 머리를 산발하고 아우성을 치면서 별안간 창문을 뚫고 모습을 나타냈다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곤 하였다. 먼 바다에서부터 달려온 사나운 파도가 무섭게 으르렁거렸다. 땅과 하늘이 함께 소리를 질렀다. 그럴 때면 마을이 시커먼 바다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았다.

긴 곡선을 그리며 바다로 빠져 나가는 포구의 S자형 수로 주변에는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키 큰 갈대밭을 따라 뻘밭과 폐염전이 바다까지 아득히 펼쳐져 있었다. 도무지 끝 간 데 없는 갯벌은 거친 숨결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검은 색의 경이로움이 포구를 단단히 움켜잡고 있었다. 바닷바람은 갯벌 냄새를 이리저리 퍼 날랐다. 그럴 때면 갈대숲은 자신의 가슴 속에 안고 있던 낡은 악기의 소리를 냈다.

그 폭이 좁은 작은 강은 평소에는 거의 말라 있었다. 늦여름 쯤 큰비가 내렸을 경우에만 큰 물소리는 아니었지만 강물은 모래가 뒤덮고 있거나 푸른빛의 무성한 갈대들이 우거진 강기슭을 핥으면서 소리를 내고 흘렀다. 그때는 넘실거리는 흙탕물이 세차게 철썩이면서 둑 위 갈대들의 억센 밑동에까지 튀어 올랐다. 강이 범람하면서 운반해온 비옥한 퇴적물이 바다로 쏟아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때만큼은 강가에서 사납게 소용돌이치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겨울이 되면 그림자는 길어지고 해는 짧아진다. 그때 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시베리아에서부터 힘겹게 날아온 흑두루미의 날갯짓이 요란하였다. 그것들은 마치 한 무더기의 검은 화살처럼 하늘을 가르면서 날아왔다. 철새들은 필사적인 날갯짓으로 남쪽으로 내려와 일부는 ‘벗 따라 강남 간다.’고 을숙도의 갈대밭이나 주남저수지의 얕은 물가로 가서 내려앉았고 나머지는 순천만으로 유유히 날아들었다.

그러나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철새들에게는 남쪽 겨울의 추위쯤은 여름철의 고향처럼 포근하게 느껴질 터이다.

겨울 철새들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헤아리기조차 힘든 저기 북쪽의 붉은 월귤나무 열매가 가득한 툰드라 지대의 광활한 초원을 출발하여 그들의 지난 기억을 본능적 감각으로 되살려 겨울 하늘을 가로질러서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것들은 미래를 위한 푸른 꿈을 가슴에 안고 그 길고 가혹한 여정을 매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남쪽 바다는 생명의 몸짓으로 꿈틀거렸다. 저 멀리 검은 뻘밭이 끝나는 해안선에서부터 다시 바다가 열리고, 수평선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경계가 희미해지는 아득한 곳까지 물러 앉아있다. 그때 쯤이면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한결 누그러졌다. 철새들은 벌써 귀향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생을 갯벌에 기대어 살아온 갯사람들은 자신들의 삶 전부를 빠짐없이 깊은 뻘 속에 켜켜이 쌓아놓았다. 검은 뻘밭에서 여자들은 계절의 변화와 생태적 시간인 물때에 맞춰 바지락 모시조개 참꼬막 큰구술우렁이 낙지 칠게 농게 짱둥어 갯지렁이 왕좁쌀무늬고동 등을 잡았고, 남자들은 파도가 끊임없이 검은 갯벌을 핥고 물러나면서 잿빛으로 변한 바다에 나가 조류가 센 사리에는 그물을 놓아, 바닷물이 가장 적게 들고 나는 조금에는 낚시를 이용하여 낙지 문어 장어 숭어 민어 전어 망둥어 서대 등 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갯벌은 만조가 되어 파도가 밀려들면 바다가 되고, 간조 때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된다. 그러므로 갯벌은 수천만 년 동안 침식과 퇴적을 반복하였다. 갯벌은 육지이기도 하고 바다이기도 하였다. 그곳에서는 바다 생물과 철새, 인간들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바다는 그의 넓은 품속에 마을사람들의 모든 희망과 미래를 송두리째 품고 있었다. 그 바다에서는 풍부한 영양염이 해조류, 식물 플랑크톤의 성장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였고, 이 식물들이 천해 淺海의 해저에 독특한 서식지를 마련하여 풍부하고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갯사람들은 바다와 더불어 살면서도 사막의 밤처럼 깊고 깊은 밤인 바다 앞에서 두려워한다. 영원한 파괴자 같은 바다의 정령이 행사하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그것의 불가항력적인 힘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끔찍한 바닷바람과 파도의 억세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안도하면서 한편 두려워한다.

바다는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금빛으로 반짝였지. 갈매기들은 파도를 스칠 듯 낮게 맴돌며 꽥꽥 소리 지르고 야단이었어.

어부들이 던져주는 잘게 썬 고기조각을 먼저 낚아채기 위하여 자기들끼리 경쟁한 거야.”

부두의 방파제 주위를 원을 그리듯 평화롭게 선회하던 갈매기들은 먹이를 앞에 두고는 서로 날카롭게 짖어대며 싸웠고,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경쟁적으로 날개를 뒤로 한껏 젖히고 비스듬하게 수면 쪽으로 급강하해 내려왔다. 그 새들의 검은 색 부리와 심술궂은 빨간 눈빛이 보였다. 그들이 날개를 사납게 퍼덕거리며 내지르는 소리는 거의 위협적이었다. 그들이 토해내는 시끄러운 악다구니는 모래톱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를 집어 삼켰다. 그것들은 먹이 앞에서 쓸데없이 과도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마을에는 항상 어촌 특유의 악취 같은 바다 냄새와 도수 높은 알코올 기운이 풍겼지. 술 취한 어부들은 사소한 일로 자주 티격태격 싸웠던 것 같아. 모두 한결 같이 가난하였지만 말이지……

모두가 가난했으니까 우리 집이 특별히 가난하다고 느낄 필요는 없었지. 마을은 어떻든 고요하고 평화로웠어. 너무 무기력 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우리 가족은 그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참으로 행복했었지.”

투박한 뱃사람들의 역겨운 땀 냄새. 입 냄새. 억센 여자들의 까무라칠듯한 웃음소리. 그들은 무지하고 노골적이다. 본능적이고 저질스럽다. 그러나 건강하고 순박하다.

햇볕이 뜨거워졌고 하늘과 바다는 눈부셨다. 이제 한낮이 되면서 햇빛은 수직으로 쏟아져 내린다. 햇빛은 반사되지 않았고 그의 발치에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았다.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은 모래밭은 밝은 회색 아니면 노란 색이었고 아무런 발자국, 바다갈매기의 발자국까지도 찍히지 않은 채 반들반들하였다. 난바다에서부터 불어오는 숨결처럼 가벼운 하늘빛 미풍이 간지럽다.

갈매기 한 마리가 외롭게 바다 위로 하나의 곡선을 그리다 유유히 해변의 소나무 숲 속으로 잠시 사라졌다. 파도는 물마루를 훤히 드러낸 채로 모래톱에 밀려와 곧장 부서지면서 하얀 포말로 사라졌고, 어떤 간절한 웅얼거림을 여음으로 남겼다.

하늘과 바다는 푸른빛이었고 수평선이 견고한 선처럼 두 영역을 가르고 있다. 사방이 고요했다. 햇빛이 여전히 바다 위로 세차게 쏟아져 내린다. 잿빛 바람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관목들의 나뭇가지에서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가 났다. 온통 바다, 태양, 바람, 모래뿐이다. 바다와 소나무 숲 사이 밋밋하게 경사진 작은 언덕의 오솔길 주위에는 무성한 잡초와 가시덤불, 칡넝쿨이 땅을 뒤덮듯이 감싸고 있다.

“그 시절, 어린 친구들은 바닷가 모래밭에서 배고픈 것도 잊은 채 하루 종일 뒹굴면서 정말 신나게 놀았어. 모래밭이 태양 아래 알몸으로 누워 있었거든.

구릿빛 몸통 여기저기에 가는 모래가 들러붙어서 몹시 따가웠지만 상관없었어. 계절에 관계없이 항상 바닷가에서 놀았어. 그리고 여름이면 바다 속에서 살았어.

난 그때 수영을 참 잘했지. 날렵한 물개처럼 우아하게 말이야. 수영의 온갖 요령을 터득했고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았어.

바다는 사람을 유혹하는 숙명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엇과 같았지. 바다는 언제나 노래를, 부르지.

내가 그때 천천히 팔을 저어서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해초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내 다리를 더듬고 팔을 쓰다듬어 주거든.

그리고 덮쳐오는 파도를 뚫고 바다 밑까지 내려가지. 바다 속은 사람의 마음처럼 어두운 숲이지만. 그러나 고요한 바다는 언제나 부드럽고 따뜻하게 나를 포옹해주었어.

난 그때 벌써 어서 빨리 어른이 되거든, 이 세상 끝까지 돛단배를 타고 항해하는 꿈을 꾸었지. 선장이 되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지. 선장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먼 바다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가보기로 했어.

광풍이 몰아치고 집채만 한 파도가 넘실대는 베링 해협, 남극의 차가운 파도가 거칠게 부서지는 마젤란 해협,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희망봉, 그린란드, 발트 해, 카리브 해, 홍해, 지중해, 흑해, 페르시아만,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까지 말이지. 평생 동안 지구를, 오대양을 수십 번씩이나 돌고 도는 거지.

아름다운 바다와 무섭고 거친 바다를 만나보고……. 나는 태풍도, 허리케인도, 사이클론도, 돌풍도 겁내지 않기로 결심했지.

큰 항구에도 들어가 보고, 작은 항구에도 가보고……. 수많은 흑인도, 백인도, 황색인종도, 거인도 소인도 다 만나보는 거지…….”

나는 그때 고향의 바닷가에서 그 화려한 꿈들이 뭉게구름과 함께 푸른 하늘을 미끄러지고 있는 것을 올려다보았다. 마침내 그 꿈은 한 마리 완전한 새가 되어 끝없이 비상했다. 날씨는 그날도 여전히 온화했고 하늘은 가벼운 하얀 천에 싸여 있었다. 바람은 미풍으로 불기 시작했고 파도는 해안가 큰 바위에 부딪치며 무지갯빛 물보라를 사방에 흩뿌렸다. 하얀 뭉게구름은 어느새 엷은 새털구름이 되어 미풍에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푸른 해안선이 먼 바다를 배경으로 더욱 선명한 날이었다.

“난, 성년이 된 후 그 시절의 바다가 가끔 생각났지. 왜, 그토록 우수에 잠긴 바다의 노래가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는지?

왜, 그 노래가 수수께끼 같은 힘으로 내 영혼에 파고들어 고통스럽게 어루만지며 내 심장 주위를 휘감고 돌았는지?

그러나, 가족 모두 갑자기 고향을 떠나온 이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그게 말이야, 그렇게 쉽진 않았어.”

오래 전에 고향을 떠난 자가 어쩌다 고향에 들리면 고향 앞에 막막한 심정이 되고, 고향 역시 낯선 이방인 앞에서 더욱 막막해지는 법이다. 그땐 고향은 무인도와 같다.

“정말이지, 남쪽 바다가 너무 그리웠어. 하지만 무엇인지,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지…….

그러다가 고향은 점점 꿈결처럼 뿌옇게 흐려지고, 이제는 사라져 버리고, 아스라한 기억만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

그런 거야. 정말 그런 거야. 너와 나, 우린, 고향을 잃어버렸고, 마음의 정처도 잃어버린 거야……. 아마 우리가 고향을 버린 거겠지. 아니면 떠나온 거야. 그리고 오랫동안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는 거야.”

 

사막에 밤이 오면 기온이 뚝뚝 떨어지면서 한낮의 뜨거운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온몸이 으슬으슬할 만큼 추위가 찾아온다. 그 추위와 함께 막무가내로 죽음의 공포, 슬픔, 절망감, 당혹스러움 같은 것들이 밀려 왔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자신이 가엾기도 하여, 아이처럼 소리 내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밤은 어쩔 도리가 없다. 밤에 일어난 일들은 낮이 돌아오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밤이면 새벽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창백한 미명과 함께 깨어나는 사막의 새벽은 무기력 하였다.

이런 때는, 오래된 유년시절까지 소급하여 과거의 갖가지 광경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그 기억들이 제멋대로 이리저리 나뒹굴었으므로 순서대로 정리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오래된 사진첩에 끼어있는 퇴색한 흑백 사진 같은 과거의 기억들, 추억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때로는 후회스럽기도 하여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것이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절망의 순간에는 행복했건, 불행했건 간에 잠재의식 속에 잠겨있던 옛 것들이 일종의 생존본능처럼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여간에 추억이 떠오르는 순간에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내 마음속에 각인된 어릴 적 인상은 모두가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겼던지……) 지금도 그 시절을 너무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어서, 몸에 난 깊은 칼자국 같은 유년시절의 가슴 아픈 기억들은 나를 어쩔 수 없이 어릴 적 남쪽 바다로 데려다 주었다.

잠을 자려고 애쓸수록 더욱 잠을 이룰 수 없다. 맑고 암청색 밤이 흘러가고 있다. 밤이 깊어서 하늘에 별빛마저 띄엄띄엄 남아 있다. 사그라져가는 모닥불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브라함은 장작 한 개비를 불 속으로 던져 넣었다. 불길이 다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른다. 어스름한 불빛 속에서 이브라함의 몸은 많이 야위었고 목과 뺨의 주름살이 더욱 깊어져 보였다. 우리들은 다시 아랍 커피를 끓여 마셨다. 그 독약같이 검고 쓰디쓴 커피는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몸도 덥혀지고 머리도 맑아지는 것 같다. 그건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났을 때 마시는 것이다.

밤이 이슥하여 푸른 불꽃을 날름거리며 타닥타닥 탔던 몇 조각 장작은 잉걸불이 되었다가 재만 남았다.

내 어린 시절은 고향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가슴 아픈 기억으로 뒤엉켜 있었다. 내 잠재의식 속에 붙잡혀 있는 지난 시절의 환영 같은 기억들을 쫓아버리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쳤던가. 그걸 밑바닥을 모르는 깊은 심연 속에 꼭꼭 파묻어 버리려 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코 잊혀질 수가 없었다. 그 환영은 언제든지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튀어 나왔다.

내 기억 속에는 남쪽 바다에 대한 기나긴 증오의 역사와 그 사건의 비극적 종말이 빨간 넝쿨장미꽃 향기와 아카시아 나뭇가지에 모여 앉은 제비들의 다정한 지저귐과 한데 뒤섞여 있다.

여기는 사하라 사막의 남쪽이다.

우리는, 작은 트럭을 타고 사막의 남쪽을 여행하던 중 며칠째 모래언덕 사이 계곡에 속수무책으로 꼼짝없이 갇혀 오도 가도 못하면서 밤이면 찬란한 별빛 속에서 끊임없이 과거를 되돌아본다.

나는 지금까지 그 깊은 상처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지나온 이야기를 먼저 했고 이번에는 내 차례였던 것이다. 나는 알제리의 도시 타만라세트에서 만난 투아레그족 여행 가이드 겸 고장 난 차의 운전자인 이브라함에게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부인 아버지는 늘 해가 기울어진 뒤 바다가 신비한 황혼 빛으로 빛나는 석양 무렵이면 거나하게 술에 취하여, 불콰해진 얼굴로 낡은 고기잡이배들이 정박해 있는 방파제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석양이 완전히 물러나고 별들이 하나 둘 하늘에 돋아나기 시작하면서 저녁의 푸른빛이 비린내가 가득한 해안을 뒤덮었다. 바람이 거세어질 때마다 별빛이 깜박거렸다. 바닷가의 저녁은 서늘하고 감미로웠다. 뒷산에서 밤 올빼미의 부드럽고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간결하고 애간장을 녹이는 단음절의 소리가 끊어질듯 이어진다. 그러나 밤이 깊어가면서 마을 뒷산의 검은색 윤곽이 또렷하였고, 난파선처럼 허물어져 녹슨 철근들이 비죽비죽 삐져나온 방파제의 끝 쪽에서 웅크린 채 바다에 잠겨 있는 장구 섬의 검은 실루엣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부두는 깊은 어둠 속에서 버림받은 듯이 홀로 남겨져 있었다. 바닷가에는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엔 잔잔했던 바다가 거칠게 출렁이며 파도가 방파제를 거세게 때렸으므로 방파제와는 계류용 밧줄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던 낡은 목선들이 격렬하게 서로 부딪치며 몸부림을 쳤다. 바닷가는 아름답고 쓸쓸하였다.

아버지는 아무 술이나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삼촌들의 전사 통지를 받은 후부터였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머리가 깨질듯한 심한 두통을 앓았고 왼쪽 귀의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 후에는 오른쪽 귀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었을 당시에도 또다시 정신없이 술에 취하여 동생과 함께 바다로 나갔던 것이다.

내가 읍내 중학교 3학년이었던 해의 늦가을 오후 어둠이 깔릴 무렵,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돌풍이 몰아치던 (이따금 까마득하게 하늘빛으로 물들고 밤의 어둠이나 아침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슬픈 전설의 섬인) 장구섬 쪽 바다에서 거센 파도에 휩쓸렸고, 무동력선인 낡은 어선만 남겨둔 채 실종하였다.

여자만은 동쪽의 여수 반도와 서쪽의 고흥 반도 사이에서 육지 깊숙이 들어앉은 내만형 갯벌이어서 그곳 바다는 평소에는 수심이 낮고 호수처럼 잔잔하였다.

여자만은 석양의 노을이 아름다웠다. 그것은 서쪽 반도 위로 태양이 설핏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늘과 갯벌을 온통 붉은색 고운 빛깔로 물들인다. 해가 더욱 기울어 가면서 빛의 각도에 따라 갯벌과 그 위 하늘에 시시각각 형형색색의 황금색 기운이 넘쳐났다.

그런데 그날 갑자기 변덕스럽고 이상한 바람이 바다에서 불기 시작하였다. 거대한 잿빛 장막이 해안선과 수평선을 뒤덮었다.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바다는 안개 같은 물보라를 하늘 높이 뿜어 올리며 먹이를 삼키려는 성난 들짐승처럼 날뛰었다. 바다의 악령이 광기 속에서 날뛰고 있었다. 육지 쪽에서부터 돌풍이 휘몰아치더니 칼날처럼 일어선 거센 파도가 무서운 기세로 배를 덮쳤다. 그 살벌한 바람은 기이하고 환상적인 울부짖음으로 변하여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그 작은 목선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뒤집어진 채로 혼자서 흔들거리고 있었지만 아무 흔적도 없었다.

파도는 여전히 포효하며 해안가 조약돌에 하얗게 부딪치고, 신음을 토하며 다시 물러나고, 저 멀리 큰 바다에서는 울부짖고 있었다. 바다는 다시 잠잠하였지만 여전히 흉측스러운 괴물이었다. 하지만 이제 바다는 그 괴력의 힘을 상실하였다. 바다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바람마저 훨씬 약하게, 부드럽게 불고 있었다. 모든 게 조용했다. 바다는 다시 평화로워 보인다. 모든 분노 역시 바다 밑바닥으로 침전되었다.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면서 수많은 소리를 웅얼거린다.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해안에 부딪쳐 흰 포말이 되어 스려졌다. 거친 바다를 아주 멀리서부터 달려와서 말이다. 그것은 해안에 부딪칠 때 무언가를 고고하게 부르짖고 외쳐댔지만 그 소리 역시 곧 스러졌다. 다시 일종의 침묵과 평화가 찾아왔다. 늦가을의 밝은 오렌지빛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면서 거울처럼 반짝이는 수면에 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날 아버지가 바다에서 통발그물을 거두는 것을 돕기 위하여 따라 나섰던 쌍둥이 동생도 함께 사라졌다.

“그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잠시 기절하여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어. 너무 큰 충격을 받은 거야…….

난, 한동안 죽은 동생이 너무 불쌍해서 학교에도 가지 않고 밥도 굶은 채 울면서 지냈지. 눈물이 너무 쏟아져 세상이 온통 흐릿해 보였어. 말을 심하게 더듬기도 했어…….

매일 밤이면 악몽을 꾸면서 야뇨증까지 생겼어. 그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지…….”

막 예민한 사춘기에 접어들어 심한 성장통을 앓고 있던 나에게, 죄책감, 공포증, 심한 불안감, 헤어 나올 수 없는 비참함 등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 사건이 발생한 이후의 일이다. 나는 그때 가슴이 몹시 두근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이를 견뎌내기 위하여 손톱에 피가 비치도록 질근질근 깨물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꾸벅꾸벅 졸면서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였고, 설핏 잠이 들면 악몽을 꾸었다. 악몽에서 깨어나면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꿈속에서, 그 구름은 검붉은 색이었고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비바람이 불고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파도가 넘실거렸다. 그 순간 술에 취한 채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뱃전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아버지, 바닷물을 온통 뒤집어 쓴 채 절망적으로 허둥대는 동생의 모습, 그 고독하고 버림받은 그들의 환영이 나타났다.

그때, 동생이 울부짖었다.

“형, 빨리 와, 우릴 살려줘.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어. 배가 흔들려. 아버진, 너무 취해서 꼼짝 할 수가 없어. 주위에 아무도 없단 말이야. 지금 파도가 덮치고 있어.”

그러나 그 외침소리는 물거품이 되어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그때 동생은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 애절하게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부르고 또 불렀다. 그 목소리는 더욱 깊고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바다의 소리였다. 그것은 불멸의 소리였다. 동생은 필사적인 몸부림을 멈췄다. 그리고 바다 밑으로,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회색 하늘과 회색 바다는 혼동되어 아득한 지평선에서 맞붙어 있었다. 거칠게 넘실대던 파도는 정적 속에서 해변으로 밀려와 부드럽게 쓰다듬을 뿐이다. 바다는 마침내 침묵 속에 잠겼다.

그 무렵, 캄캄한 밤이면 바다는 시꺼멓게 멍들어 하늘과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고, 그럴 때쯤 악령이 찾아와 축축한 손길을 뻗어서 내 심장을 인정사정없이 짓눌렀다. 밤은 어느새 소리 없이 찾아온다. 밤이 온통 세상을 뒤덮었다. 어둠 속에서 낯선 파도가 매섭게 거품을 일으켰다. 밤이 되면 방에 불을 밤새도록 켜두어야 했다. 밝은 불빛이 없으면 불안 증세는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가끔 깊은 밤중에 그 비명 소리를 듣고 소스라치며 잠에서 깨어나곤 하였다.

그 사건은 나로 하여금 동생에 대한 뿌리 깊은 부채 의식에 더하여 죄의식까지 느끼게 하였다. 그러니 이 비극적인 사건의 여파는 나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일종의 강박증과도 같은 원죄 의식이 평생 동안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때 벌써 나는 자신의 인생에서 일종의 삶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정신적 경계선을 설정하고 오직 그 한계 내에서 살아야 할 것이라고 예감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너무나 외롭고 지쳤으므로 자신을 위로해줄 친구가 절실히 필요하였다. 그러나 딱 한 명이면 충분했다. 나는 자신의 분신을 평생의 친구로 삼아 그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성인이 되기도 전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인간의 삶에는 기쁨보다는 어둡고 비극적인 측면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뚜렷하게 각인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동생을 삼켜버린 바다를 무척이나 원망하였지. 정말이지, 바다를 두려워하였어. 그래서인지, 무작정 고향을 등지기로 결심한 거야. 결국은 바다를 떠난 거였어.

우리 가족은…… 어머니와 나 둘뿐이었지만…… 큰 외삼촌이 택시기사를 하면서 근근이 살고 있던 부산이라는 항구도시로 서둘러 이사를 가게 되었지.

거기는 굉장히 큰 도시이지. 파리보다 크고 마르세유보다 네 배쯤 더 클 거야. 그 도시에 별 다른 미련은 없어. 고등학교 3학년을 다니면서 고작 3년간만 살았거든.”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15여 년 동안 살아온 고향을 처음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까지 단 하룻밤도 마을을 떠나서 지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날, 짙게 끼었던 해무가 걷히면서 간신히 날이 밝았다. 밤의 실루엣들이 안개와 함께 흩어졌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이 낮게 드리운 비구름이 하늘을 빈틈없이 덮고 있는 바다 쪽에서 미적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해는 봄이 아주 일찍 찾아왔다.

해안선을 따라 낮은 언덕들과 들판을 가로질러 단선 철도가 남쪽으로 뻗어 있다 .그러나 여름철이면 철길에 무성하였던 질긴 잡초들은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땅 속에서 이미 기지개를 켜고 있는지 모른다.

2월 초순경이어서 대합실에는 아직 톱밥 난로가 지펴있다. 누군가 한 줌의 톱밥을 희미한 불빛 속에 던져 넣는다. 몇 개의 봇짐을 싸안은 채 단속적으로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 시골 아주머니, 꾀죄죄한 중절모를 깊이 눌러 쓴 할아버지, 긴장한 얼굴로 새침하게 앉아 있는 단발머리 소녀, 기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몇몇 하역 인부들.

간절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간이역 역사 안에 스멀거린다.

아침 일찍 대합실에서 마을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깊은 상처를 안고 고향을 떠나는 어머니도 마을 사람들도 안타까운 마음에 모두 할 말을 잊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낡은 역사의 높은 창 너머로 먼 산을 바라보며 애써 이를 외면하였다.

첫 기차가 도착하려면 아직도 30분여가 남아 있다. 간이역의 벽에 걸린 둥근 시계의 바늘이 출발 시간을 향하여 재깍재깍 움직여갔다. 기차는 예정시간보다 뒤늦게 도착해서 귀향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잠깐 동안 내려주고, 다시 객지로 떠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태웠다. 기차는 짧게 정차한 후 덜커덩거리며 곧바로 남쪽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나는 객차의 통로에서 밖을 내다보며 한 동안 서있었다.

마을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잔잔한 잿빛 바다, 난바다에서 가끔 불어오는 날 선 바람, 검은 갯벌, 포구를 굽이쳐 흐르는 작은 강, 갈대숲, 첫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찾아오는 겨울 철새 등이 어우러져 언제나 아름다웠다. 너무나 내 가슴 속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 평생 동안 영원히 잊지 못할 풍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눈에 익은 풍경들이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윤곽이 부드럽게 흐려지며 형체가 해체된다.

낡은 객차 안은 거의 비어 있다. 객차 안은 기관차의 석탄 연기 냄새와 시큼털털한 하수도 냄새가 뒤섞인 채 찝질하고 달착지근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의 눈빛은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나는 찌든 때가 덕지덕지 끼어있는 어머니의 손가락 마디와 손목을 보았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출발이었다. 왼쪽으로 읍내의 퇴락한 낮은 집들이, 오른쪽으로 바다와 뻘밭이 멀어져 갔다. 쉰 목소리로 짧게 기적을 울리면서 벌교역을 떠났던 완행열차는 한참을 달려 빗속에서 적막에 쌓인 고향 마을을 지나쳤다. 이제 기차는 연착된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 무서운 기세로 달린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낮은 집들이 뒤로 물러났다.

나는 기차가 긴 터널로 들어갈 때까지 오랫동안 차창에 코가 찌부러질 만큼 얼굴을 바짝 붙이고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꽉 막혀 있었지만 바다는 잠잠하였다. 회색빛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수평선 너머로 작은 증기선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면서 지나치는 기찻길 옆 모든 풍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참으려고 해도 도저히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목구멍에서 타는 목마름을 느꼈다.

나는 안개 같은 봄비가 내리던 이른 봄날 고향을 떠났다. 안개비는 땅위에 일직선으로 떨어지지 않고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때, 유연한 파도가 가볍게 춤추고 있던 남쪽 바다는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나에게 아쉬운 이별을 고하였다.

그해 봄에, 나의 유년시절도 끝이 났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 낯선 곳에 대한 공포가 나를 갑작스럽게 어른이 되게 하였다.

 

이 단편소설은 장편소설 「사하라」에서 그 부분을 발췌하여 엮은 것이다. 이런 식의 소설 쓰기가 가능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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