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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나물
이은송
풍에 좋다는 초록나물이 있다고 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초록은 어느새 내 귓전을 오르내리면서 들고나는 것인데, 초록나물은 바람을 다 거둔 탓에 풍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풍이라는 말은 바람이라는 말과 내가 좋아하는 초록이란 말의 합궁인데 바람을 꽉 채우고 초록이 된 나물의 히스토리가 궁금해졌다 기실 나는 지금 초록이라는 말과 바람을 모아 내 몸에 꽉 채우고 어우르고 있는 중이다 나물의 욕조가 초록으로까지 발화되었을 태초의 초록을 상상하다가 초록에 입을 대듯 바람에 입을 대고 떠나간 너의 냄새를 맡아보는 것이다 가끔 하나의 말에도 위로를 받는 법, 초록나물이라는 말을 하루 내내 마음에 삼키며 한생을 보내듯이 하루를 보냈다
매듭 프리즘
이은송
단단한 계단이 발자국들을 받치고 있는 줄 알았지 벽이 붉은 담쟁이 넝쿨을 잡고 놓지 않는 줄 알았지 오래된 산이 육백 년 된 은행나무 뿌리를 키우고 있는 줄 알았지
푸른 이끼가 암컷의 나무 덩치를 칭칭 감고 있었지 몇 마리의 개미가 두근거리며 부풀어진 나무의 유두를 문지르고 있었지
온몸이 캄캄해지는 수컷 같은 이끼가 허리에 앉은 바람을 끌어 모으며 제 몸 속 어디쯤에 가두어 몇 번인가 부풀렸다 가라앉히기를 몇 해째,
오랫동안 발효된 나는 아무도 모르게 너의 음표들을 모아 음영을 만들었지 네가 모를 때 눈을 감고 도레미파솔라시도 음표를 혀 안으로 굴리며 눈을 감았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미묘하게 너를 아편처럼 먹었지
산의 오르막이 슬그머니 등허리를 내밀고는 멀리서 걸어오는 나뭇잎과의 간격을 모르는 척할 때, 네가 내 곁으로 가까워질수록 두근두근 거리기를 몇 번
첫눈이 오고 녹고 애인의 등허리에 쌓이는 무늬들
우리는 어긋나면서 어긋남이 서로의 어깨에 닿을 듯 말듯
오, 이 모두는 배고픈 것들로부터의 시작이라는 것이지 꽃들이 열리고 그곳에 아기를 슬어놓고 바람이 떠나갈 때
침대 모서리에 남겨진 나는 당신의 등줄기에 구부러진 몇 개의 마른 늑골을 따라갔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닳은 입술로 시든 몇 개의 사과 씨를 뱉어냈지 당신이 무릎을 잠깐 구부렸다 펴며 나를 살짝 돌아보는 것도 모른 채
□ 약력: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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