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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13회
누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가
고 영 직(문학평론가)
지금은 폐간되었지만, 사춘기 시절 '저절로' 손
이 가곤 했던 <선데이서울>을 통해 세상의 이면
에 대하여 꼭 나쁘달 수만은 없는 어떤 불온한
암시를 얻었던 기억이 새롭다. 잡지 중간에 낀
반라 차림의 여배우 브로마이드에서 무슨 암시
를 얻었다는 뜻은 아니다. 요즘 뜨는 표현으로
옮기자면 '엽기적인' 각종 사건과 스캔들을 심
층 르포 형식으로 쓴 작문성 기사에서 뭔가 '차
이'를 못견뎌 하는 우리 사회의 억압적 행태를
엿보았다면 지나칠까.
정확한 수치야 확인할 길이 없지만, 동성애자 관련 기사는 <선데이서울>의 단
골 메뉴였다. 그런데 최근 진보적 시사월간지를 표방하는 월간 『말』 11월호의
표지 인물로 선정된 김현구 (www.gooyahome.com)씨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이 땅에
서 동성애자로 살 수밖에 없는 자들'의 지독한 고독의 풍경이 한눈에 그려지는
것이었다. "비록 변태라는 식으로 우스꽝스럽게 그려졌지만, 종로 어디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지 정도는 건질 수 있었다.
" 나는 우리 사회 기준에서 볼 때 남성 이성애자라는 지배적 범주에 속한다.
그래서 적어도 나 자신의 성 정체성 또는 성적 지향성에 대해 '전혀'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동성애자에 비해 나와 같은 이성애자가 숫적으로 월등
히 많아 지배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아직 대통령이 사람을 만날 때 명함을 돌렸
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대통령도 명함이 있으며, 해외 원수들을 초청할 때
상징적으로 명함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다.) 또 해방 이후 옛 친일파
들이 자신이 부끄러운 친일파였노라고 '커밍아웃(comig out)'하는 경우를 한
번도 못 보았고, 무슨 대형 사건 사고가 터지고 난 후 해당 기업체의 사죄 광
고문에서 사주(社主) 이름은 '임직원 일동' 명의에 가려진 탓인지 거의 보지
못했다.
반면 사회적 약자인 동성애자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한바탕 '난리굿판'을 벌여야 한다. 유태인이, 식민지 조선인이, 장애인이, 아
줌마가, 빨갱이가, '공돌이 공순이'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10대 청소년들이
…… 그랬고, 지금도 모진 과정을 겪고 있다. 심지어 죽음으로 차별 금지를 주
장하는 경우도 많았다.
탤런트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은 작은 차이마저 참지 못
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낮은 목소리의 항변으로 볼 수
있다. 동성애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불온한 범죄라는
시각은 개인의 신념일지는 모르지만 또 하나의 편견에
불과하다. 옛말에도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
다. 서로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때 조화와 중용은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우리 마음에 도사린 호모포비아(=동성애 공포
증)는 끈질기다. 그 공포증이 결국 작은 차이에 대한
우월감으로 곧장 이어져, 우리 의식의 좌표를 개의 시
간에서 늑대의 시간으로 옮겨가도록 만든다. '지방 방
송'이 나오지 못하도록 짓누르는 것이 최고 윤리인 늑
대의 시간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 안에 표준어도 있고 사
투리도 함께 수록되어 있는 풍성한 '국어사전'을 갖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 많
아졌으면 한다. <2000년 12월> ●
(아트앤스터디 홈페이지에서 인용)
처음 올린 날: 2001년 12월 26일(수)
고영직(문학평론가) --------------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1968년 전북 군산에서 났으며, 동국대 국문과를 마쳤다.
1992년 계간 『한길문학』에 평론을 발표했다. 민예총에서 2년 남짓 간사일을
했으며, 잡지사와 신문사에서 '잠깐씩' 기자로 근무했다. 주요 평론으로는 「
김남주론」을 비롯해, 「추락하는 권위, 춤추는 문학상」과 「한국 문학과 베
트남 전쟁」 등의 평론이 있으며, 산문집『다시 희망을 묻는다』(안철흥 外 공
저, 1999)를 출간했다. 현재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사무
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 E-Mail :gocritic@artnstud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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