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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6회
황당하고 끔찍한 꿈 한 토막
김수열(회원, 시인)
근본이 섬놈이니 근간에 섬에서 들려오는 해괴망측한 이야기 한 꼭지 해 보겠
다.
민주당이라고 하는 당이 있는가본데 그 당에서 힘 깨나 쓰고 똥 깨나 뀌는 놈
들이 모여 이른바 '제주국제자유도시 정책기획단'이라는 걸 만들어 어떻게 하면
헐벗고 굶주린 섬것들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 줄 것인가를 고민고민한 끝
에 모아진 의견이, '제주를 국제적으로 프리하게 놔두자, 그리고 그렇기 위해서
는 코쟁이 말을 제2공용어로 삼아 섬백성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로 쓰게 만들
자, 그 길만이 섬백성으로서 대망의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이
다'라는 결론을 얻어내고는 이를 추진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는 것이 바로
그 해괴망측한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네들의 논리를 좀더 들여다보면, 제주에 외국의 자본과 투자를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되며, 이는 이미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는 오래 전부터 이루어진 바, 영어 공용어가 자국의 언어 말살이나 정체성의 혼
란에 아무런 영향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먼저 하나하나 되짚어 보자. 제주도민들이 외국의 자본과 투자 유치를 그렇게
열망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들여온 외국자본에 의한 '외국화'만으로도 진절머리
가 난다. 그렇게 외국 자본을 신주단지 모시듯 모셔온 결과, 과연 섬사람들에게
돌아온 건 무엇인가? 수려한 자연 환경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여지없이 파괴
되었으며 섬놈들은 상대적 빈곤 내지는 허탈감에 망연자실하고 있는 상황인데
무엇이 부족해서 또 외국 자본 타령인가? 한 마디로 뭐 대주고 뺨 맞은 꼴이다.
이젠 한 발 더 나아가 영어 공용이라니? 아니, 섬사람들이 영어를 못 써서 세계
화가 안되고 있다니, 그야말로 포복절도할 노릇이다.
남의 나라 사정을 볼 것 같으면 세계적인 관광국인 프랑스는 영어 공용화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영어를 쓰지 말자는 법을 만들었고, 독일도 모국어보호법을
제정하기 위한 노력을 국가 차원에서 기울이고 있으며, 스위스에서는 초등학교
에서 영어를 배제하자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영어를 공용으로 한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네들이 영어 공용을 하고 있으니 제주도 해야된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역사
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싱가포르와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였거나 조차지였지
않은가? 싱가포르는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설립한 이래 다양한 민족이 들어와
이미 영어가 보편화 된 곳이고, 홍콩은 사실상 영국이었기 때문에 영어가 국어
였음을 왜 모르는가? 세계 유일의 단일 민족 국가가 그 언어를 접어 두고 외국
어를 공용하자는 구상이 어디 제 정신에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인가? 그리고 영어
의 공용이 국어의 말살이나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논리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논리가 아닌가? 일제가 우리말을 금지하고 일본말을 쓰라고 강요했을 때와
왜 이다지도 똑 같은가?
일찍이 단재 선생은 '失我化彼'를 말하면서 손님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면 문
을 열기 전에 그 손님의 손에 꽃이 들려있는지, 칼이 들려 있는지를 살피라 하
셨다.
공용어 구상을 내놓는 자들 앞에 언어는 그 민족의 얼이요 넋이다 라는 말을 들
먹이기조차 싫다.
만에 하나, 저들의 구상대로 제주가 영어 공용권이 되면 도로와 간판은 물론,
대부분의 공문서도 영어로 쓰여질 것이며 점차적으로 일상생활로 파급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니 제주를 찾고자 하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이여, 섬에 오려거든 먼저 영어
를 배우라. 간판도 영어로 될 것이고 관광안내원도 영어로 지껄일 것이며 지나
가는 어린아이들에게 길을 물어도 아이들은 영어로 대답할 것이니 제주에 오려
거든 유창한 영어가 되기 전까지는 가급적 삼가시라. 와서 개망신 당하지 않으
려거든.
어디 그뿐인가. 제주에 와서 문예회관에서 공연물을 보든 굿판을 가든 영어로
공연을 하고 영어로 굿을 칠 지도 모르니 영어를 하지 못하면 딴따라도 될 수
없거니와 구경꾼도 될 수 없으니 제주에 오려거든 영어에 목숨을 걸라. 어깨를
움추리면서 양손을 적당한 높이로 올려 '으흠, 아하, 오 예'하는 추임새도 부지
런히 연습하시라. 그렇지 않으면 이 무시무시한 국제도시에서 마냥 쪽 팔릴 수
있으니까.
나는 요즘 황당무계한 꿈을 꾼다.
아침 일찍 밭일 나가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길에서 만나, '어디 감수
과? 조반은 자십디가? 일 모챠지걸랑집이 들립서. 지실 파놓은 거 이시매 가
는 길에 가져강 손지덜 줍서.' 하는 구수한 우리말 대신 '헬로, 하우 아 유? 댓
츠 파인. 탱큐'하고 어눌하게 말하는 그런 꿈. 물질 가는 길에 만난 아주머니들
이 '게난 바당에 감수과? 고치 그릅써. 게나저나 순댁이 어멍 또시 똘 났젠 허
멍 양? 건 뭔 말이우꽈? 게난 똘만 너이? 에고 시상에' 하는 구수하고 정감 넘
치는 우리말 대신 '하우 두 유 두? 아임 그래드 투 미트 유' 어쩌고 하는 섬찍
한 꿈 .
처음 올린 날: 2001년 8월 14일(화)
김수열(시인) --------------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지회 회원/ 1982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어디에
선들 어떠랴』,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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