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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나 강사네
김춘복
살 맞은 뱀처럼 한동안 온몸을 뒤틀던 여자는 마침내 비명을 싸지르면서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는 잽싸게 몸을 솟구쳐 그녀를 덮쳐버렸다.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한 움큼이 넘는 나의 남근을 집어넣자마자, 그녀는 댓바람부터 목젖을 환히 까발린 채 감창소리를 싸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람!
막 고삐를 죄어 쥐고 박차를 가하려는 바로 그 순간에 그만 잠을 깨고 말았다.
얼른 눈을 도로 감고 꿈의 잔영을 복원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끝내 허사였다. 아주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그게 누구였는지 도무지 묘연할 뿐이었다. 나는 아랫도리가 몹시 거북살스러워 사각팬티 속으로 한 손을 찔러 넣었다. 개구리를 놓쳐 버린 독사처럼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녀석은, 오냐 너 잘 만났다며, 맞창을 내고 말듯이 맹렬한 기세로 손바닥을 공격해 왔다.
아니, 여기가 어디지?
무심결에 눈을 뜬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낯선 장롱이며 창문을 가린 커튼, 그 아래에 놓인 문갑이며 TV 등속이 미명 속에 어리번쩍 제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네 집일까? 어쩌다가 이 방에서 잤지?
옆자리를 번갈아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다른 사람과 같이 잔 흔적은 없었다.
“한별아, 밥 먹어라.”
벽 저쪽 공간에서 울려오는 유난히 나긋나긋하면서도 가녀린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면서 간밤에 막차를 타고 상경한 사실을 상기했다.
집수리만 한 줄 알았지 가재도구까지 깡그리 새것으로 교체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일이 없었으므로, 몇 시간 전에 이 방에 들어왔을 때에도 나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반사적으로 장롱 구석 쪽으로 눈길을 주던 나는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락방 입구인 빈지문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이다. 흉물스럽다고, 다락방의 용도 그 자체를 아예 폐기해버리고 도배를 해버린 모양이었다. 꽤 서운했지만, 당장 필요한 것도, 내 소유물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닌 바에야 괜히 잔소리를 했다가 퉁을 맞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버지 올라오셨나?”
거실 북쪽에 붙은 작은방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어,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듯한 한별이의 잠긴 음성이 들릴락 말락 나직이 울려 왔다.
잠시 식기가 떨거덕거리는 소리만 들렸을 뿐 아내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십중팔구 ‘응.’, 아니면 ‘그래.’ 하는 따위의 극히 짧은 외마디로 대꾸했을 터였다.
여자 셋만 모이면 접시에 구멍을 뚫는다지만, 아내는 여성 특유의 애교라든가 수다 따위와는 애당초 거리가 먼 여자였다.
오늘 새벽녘에 현관 안으로 들어섰을 때만 해도, 벨소리를 듣고부터 미친 듯이 짖어대던 두 마리의 강아지만이 용케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며 반색했을 뿐, 2개월 만의 상봉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잠에 취한 눈을 씀뻑이면서 ‘어서 오이소.’ 딱 이 한 마디를 볼통스럽게 내뱉자마자 거실 바닥에 쓰러지기가 바빴다. 여차했다간 불청객에게 잠자리를 빼앗길세라, 강아지들마저 날렵한 동작으로 안주인의 양 옆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버리자, 온 집 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의 평온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졸지에 가택침입자 꼴이 되어 한동안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당장 시골로 되돌아가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다스리며 큰방 문을 있는 힘을 다해 쾅 닫아 버렸다.
나는 불현듯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참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가장 역겨워하는 것이 담배냄새, 술 냄새이기 때문이었다. 결혼 초기에는 말할 나위도 없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단칸살이를 하던 시절에도 담배연기 문제로 말질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던 아내였다. 아니, 열불 나게 섹스를 하고 나서 다디달게 끽연을 할라치면, 나도 한 모금 줘 보이소, 하고 종종 손을 내밀기까지 했던 아내였다. 그러던 아내가 담배연기를 갖고 까탈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다 큰 아이들까지 합세했던 걸 감안하면 한 10여 년 전이었던 것 같다.
‘아이고, 이놈으 담배냄새’, ‘또, 또! 제발 그놈으 담배 좀 대강 태우소.’에서부터 비롯된 지청구가 급기야는 ‘당신도 다른 집 남자들처럼 바깥에 나가서 좀 태우소.’로 발전되기에 이르렀던 것인데, ‘이건 엄연히 내 집이야. 내 집에서 내 입으로 내 담배 태우는데 왜 말이 많노? 정 뭣하면 담배 태울 동안에 밖에 나가 있으면 될 거 아이가?’ 하고 초기에는 나도 농담반 진담반으로 되받아치며 배짱을 부리기도 했었지만, 어느 날 느닷없이 ‘이 집에는 어디 아버지 혼자만 사십니꺼? 아버지는 좋아도 우리는 싫단 말임더.’, ‘직접흡연보다 간접흡연이 인체에 몇 배나 더 해롭다 카는 기사를 아버지는 읽어 보지도 못 했습니꺼?’, ‘밖에 나가면 챙피해 죽겠어, 다들 내보고 담배 피우느냐고 묻는다니깐……. 장롱 속에 걸어 둔 옷가지에까지 담배냄새가 쫙 배어 있는 통에 내가 미친다니깐, 내가 미쳐!’……… 이렇듯 온 가족이 벌떼처럼 덤비는 데에는 두 손을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다 외출하고 없는 틈을 타서, 설마 어떠려니 하고 딱 한 대만 피워도, 아내는 귀신같이 알아내고는 창문이란 창문을 모조리 열어젖히면서 까탈을 부렸다. 특히 겨울철 한밤중에 내복바람으로 마당에 나가 와들와들 떨면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서두르노라면, 이건 담뱃맛이 아니라 소태맛이었다. 그때마다 이놈의 담배, 당장 끊어 버려야지, 당장 끊어 버려야지 하는 마음이 울컥울컥 솟구쳤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골집이 좋은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런 구속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망구望九의 어머니야말로 나보다 더한 골초이니까 말이다.
나는 발치에 아무렇게나 벗어 두었던 검정색 바지를 꿰어 입고서 모시남방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담뱃갑과 라이터를 챙겨들고 방을 나섰다. 이미 십 리 밖으로 도망친 잠이 다시 찾아올 리도 만무하거니와 괜히 뭉그적거리고 있다가, 제 딴엔 밤잠 설친 아비를 생각해 주느라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장 출근해버리는 날이면, 아들 녀석의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하고 내려가야 할 판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오셨습니꺼?”
식사 중이던 한별이 나를 보더니만 상체를 들어 올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두 달 전에 비해 군살이 빠진 데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이 꽤나 강단져 보였다
“오냐, 잘 있었나?”
곧 이어 ‘어떻노, 만족하나?’, ‘견딜 만하나?’ 하는 따위의 말로 위무해 주고 싶었던 것은, 제아무리 직장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시기라지만, 학사 출신에다 토익 점수가 900점대나 되는 녀석이 말단 경찰관으로 들어가 쓰다 달단 말 한마디 없이 일 년 가까이 버텨 나오는 게 대견할 뿐만 아니라, 과연 앞으로도 노박히고 견뎌낼지가 노심초사 애가 씌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입 밖으로 내보내려던 이 말을 목구멍 안으로 삼킨 채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움푹 꺼졌던 재래식 부엌바닥을 거실바닥 높이로 돋우느라 다락방을 통째로 철거해 버렸던 것이다.
월전에 큰딸 꽃샘이 집수리를 한다고 전화로 통보했을 때에도, 그리고 공사 진척이 궁금하여 수시로 이것저것 캐물어 봤을 때에도 다락방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명색이 가장인 주제에 집수리를 한다는데, 관가官家 돝 배 앓기로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수시로 올라올 의향을 비칠라치면, 그때마다 ‘아버지가 오셔 봤자, 실제로 아무 도움 될 일이 없다 안 캅니꺼.’, ‘괜히 차비만 축낼 뿐임더. 진짜로 오실 필요 없심더.’, ‘정 뭣하면, 요담에 올라오시는 기회에, 대문간에 달 문패나 한 개 만들어 오시이소.’ 하는 따위의 말로 한사코 만류했던 진짜 속내는 이렇듯 따로 숨겨 두고 있었구나 싶어, 나는 갑자기 온몸에 진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다락방이야말로 내게는 건물 전체와도 맞바꿀 수 없는 실로 소중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70년대 중반, 서울에 올라온 지 이태 만에, 비록 달동네의 외딴집이긴 하지만, 요행히 은행대부금과 전세보증금을 안고 이 집을 삼으로써, 우리 가족들은 그 지긋지긋하던 셋방살이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세입자를 내보내지 못한 관계로 이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아내와 아이들은 여전히 한방에서 복작거려야 했으며, 나 역시 지금은 아들이 사용하고 있는, 두 사람이 마주 앉기에도 거북한 콧구멍만 한 방에 기거해야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집에서 산다는 일념으로 마냥 행복하기만 했었다. 저 멀리 북한산을 배경으로 남산과 시가지의 중심부가 한눈에 펼쳐지는 가운데, 다리를 뻗치면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 속으로 두 발이 담길 것만 같은 그 방에서 나는 두 번째 장편소설《황소와 M1과 까마귀》를 집필했었다.
그러다가 해가 갈수록 아이들의 덩치가 커가는 데다 중학교에 들어간 꽃샘이의 독방타령 등살에 못 이겨 그 방을 양보하고 다락방으로 거처를 옮겼던 것인데, 천장과 바람벽에다 스티로폼과 합판을 붙이고 도배를 했더니만, 오히려 몇 배나 더 아늑하고 넓은 공간이 탄생했던 것이다. 특히 엎드린 자세라야 글을 쓸 수 있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집 안에 있는 동안 거의 모든 시간을 그 다락방에서 보냈다. 아내와 세 자녀가 거처하는 큰방이란, 내게는 한낱 다락에 오르기 위한 통로에 불과했다. 나는 세 번째 장편소설《희화戱畵》와 교육문제연작중편집《분필과 연필》 ‘1’·‘2’·‘3’·‘4’를 그 다락방에서 썼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은 우리 부부가 사랑을 나누는 밀실이기도 했던 것이니, 아이들이 깊이 잠든 시간에, 나는 글을 쓰다 말고, 책을 읽다 말고, 은밀히 아내를 불러 올렸으며, 때로는 아내 쪽에서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잠입해 올라와 내 겨드랑이 밑을 파고들기도 했던 것이다.
“다락을 없앤 건 좋은데, 왜 사전에 나하고는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았노?”
나는 이왕지사 엎질러진 물을 갖고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가장으로서의 손상당한 권위를 최소한으로나마 복원하고 싶은 심정에서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점잖게 한마디 했더니만, 왕대접에 담긴 미역국을 뜨다 말고 한별이 기다렸다는 듯이 되받았다
“하이고, 아버지한테 알렸으면 허락하셨겠습니꺼? 다락을 없애고 부엌을 이래 돋와 놓으니까 얼마나 멋집니꺼? 아버지가 계셨으면 절대로 이래 못했죠. 아마 매일 큰누나하고 싸우는 통에 일꾼들이 일도 제대로 못했을 기이구먼.”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내가 시비를 걸 것에 대비해서 미리 대사를 준비해 놓지 않고서야, 숨도 한 번 안 쉬고 이렇듯 속사포로 맞받아칠 수 없었을 터였다.
나는 한숨을 길게 들이켰다가 ‘휴유우’ 하고 내뿜으면서 아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아내는 시종 싱크대에 붙어 서서 창밖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이따금 한 번씩 커핏잔을 기울이는 것 이외에는 전혀 미동을 하지 않았다.
“같은 말이라도 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냐.”
나는 아들의 맞은편에 비워져 있는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며 말했다.
옆자리의 의자들을 각각 한 개씩 차지하고 앉아 목이 빠져라 한별이의 입만 쳐다보고 있던 강아지들이 날렵하게 내 쪽을 향해 돌아앉았다. 한 놈은 요크스테리아 종으로 두 귀가 쫑긋한 데다 회색과 다갈색이 섞인 유난히 긴 털이 특징이었는데 털에 가려 두 눈이 보이지 않았으며, 또 한 놈은 마르티즈 종으로 솜처럼 하얀 털에 동그란 두 눈이 몹시도 영악해 보였다. 꽃샘이 백화점에서 꽤 거액을 들여 구입했다는 수컷인 요크스테리아는 ‘멍멍이’로, 작은딸이 동료 교사한테서 얻어 왔다는 암컷인 마르티즈는 ‘똘똘이’로 명명해 놓고 있었다. 나는 두 달 전에 올라와 이 녀석들을 처음으로 대했을 때, 환갑 진갑을 다 넘기고도 친손자 외손자 하나 못 보고 있는 아내에게나 삼십대 후반, 중반, 초반에 들어서서도 여전히 결혼과는 담을 쌓고 나이만 더해 가는 아들딸들에게나 ‘꼭 필요한 동물’이라는 정도를 넘어서 ‘없어서는 안 될 식구’라는 생각을 했었다. 대저 풍수지리학에서는 한 건물 안에 주거하는 가족의 평균 연령을 중시하는 바, 개도 엄연히 생명체일진대 월등히 높은 우리 가족의 평균 연령을 이 두 녀석들이 적정선으로 하향조정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강아지들의 집요한 구걸에도 한별이는 끝내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모르쇠로만 일관했다. 애완용 개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절대로 사료 이외의 음식물을 먹이지 말라는 게 단골 수의사의 당부였다는 것이다. 끼니때마다 옆자리에 붙어 앉아 군침을 삼키며 애걸하는 것이 하도 애처로워서, 설마 어떠려니 싶어 몇 차례 고기 따위를 먹였다가 그때마다 구토를 하면서 온 몸뚱이가 바윗돌처럼 굳어 버리는 통에 혼쭐이 났다는 것이다.
내가 밥을 먹지 않자, 강아지들은 다시 한별이 쪽을 향해 잽싸게 돌아앉았다.
“출근하는 널 잡고 긴말 하지 않겠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나를 따돌리고 너거끼리 짜고 처리한 기이 섭섭하다, 이 말이다.”
그러자 한별이는 참으로 딱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하이고, 아버지도 참, 섭섭할 게 독하게도 없는갑심더. 인제 보이 한 2년 촌에 가 사시더니만 완전히 촌 영감쟁이 다 돼뿌렀네요.”
하고는, 제 어미 쪽을 바라보며 밥알을 튀기며 웃어댔다.
“야, 섭섭하다는 말하고 촌 영감쟁이하고 무슨 상관이 있노?”
“결과적으로 아버지도 마음에 드시면 된 거지, 사전에 알리고 안 알리고가 뭐 그리 중요합니꺼? 집수리하느라고 수고했다는 위로의 말씀은 한마디도 안 하시고……. 진짜 이번에 큰누나 욕 봤심더. 하루에도 몇 번씩 시내에까지 나가서 자재 사다 날랐죠, 돈도 지가 다 댔죠, 마침 그때 직장에서 짤려 나와 갖고 집에서 놀고 있었기에 엄두를 냈지, 안 그랬으면 지금도 연탄부엌 그대로였을 깁니더. 이따 큰누나 오거든 아예 다락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도 마시이소. 그런데 진짜 아버지는 와 그래 째째하십니꺼?”
“너거 아버지 째쨰한 줄 인자 알았나?”
여전히 창밖에다 시선을 꽂은 채, 아내가 적시타를 날려 보냈다. 이미 이전에도 이골이 나도록 들어온 말이라, 나는 불쾌한 감정에 앞서 오히려 아내가 나를 걸어 입을 열었다는 사실에 귀가 번쩍 틔었다.
“여보, 꽃샘이는 엊저녁에 안 들왔나?”
“…… .”
혹시나 하고 나 역시 적시타를 날려 보았으나 아내는 전혀 무반응이었다. 이미 새벽녘에 첫발을 들여놓던 순간부터 이번 걸음 역시 화해가 불가능할 것임을 예감하긴 했지만, 막상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슬그머니 오기가 뻗쳐올랐다.
“여보, 꽃샘이는 엊저녁에 안 들왔나?”
“…… .”
역시 꿀 먹은 벙어리였다. 한별이는 어느새 수저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끝내 헛침만 삼킨 강아지들이 혹시나 하고 또다시 나를 향해 잽싸게 돌아앉았다.
“집안에 말하다가 죽은 조상이 있나, 죽은 입도 무당 빌어 말하는데 멀쩡하게 살아 있는 입이 와 말을 안 하노? 간밤에 꽃샘이 들왔나 안 들왔나?”
“아, 그렇게 답답하거든 직접 한 번 들바다보소 와. 들바다보머 알 거 아이가?”
아내는 커핏잔을 개수대 안에다 팽개쳐 넣음과 동시에 홱 돌아서더니만, 찬바람을 일으키면서 쌩하니 나가버렸다.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린 강아지들이 쪼르르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큰방으로 들어가서 나하고 얘기 좀 하자.”
이윽고 거실로 나가, 텔레비전 앞에 모로 드러누워 아침드라마를 보고 있는 아내를 향해 말을 던졌지만, 여전히 쇠귀에 경 읽기였다. 하기야 내가 집요하게 요구하는 대답이 결코 꽃샘이의 행방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을 열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인들 모를 리가 없었다. 기적적으로 꽃샘이 한 달 만에 복직한 그 광고업체라는 데가 워낙 시도 때도 없이 철야작업을 할 때가 많았으므로, 그리고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 중인 작은딸 봄비 또한 뒤늦게 도예에 미쳐 대학원에 들어가더니 실습실에서 꼬박 밤을 새우고 곧장 출근할 때가 많았으므로, 사실 우리 내외는 과년한 두 딸의 잦은 외박에도 남들처럼 그렇게 신경을 써 본 적이 없던 터였다.
나는 그녀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앵돌아졌는지 이번 걸음에는 꼭 캐내고야 말겠다고 작심했다. 강다짐하거나 티적거리거나 훌닦아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나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어깨 위로 손을 가져갔다. 순간, 아내의 앞뒤에 누워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던 강아지들이 동시에 상체를 솟구치면서 자지러지게 짖어대는 바람에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튕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도저히 이대로는 물러설 수가 없어 큰방 문 앞에 서서 한 번 더 다그쳐 보았다.
“여보, 나하고 얘기 좀 하자니까.”
“…… .”
마침 출근 채비를 하고 나오던 한별이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햐튼, 아버지하고 엄마는 서로 만나면 안 된다니깐……. 제발 좀 사이좋게 한번지내보시이소. 자식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습니꺼?”
“한별이 니도 봤제? 이래 가지고서야 우째 사이좋게 지내겠노 말이다.”
“아버지도 큰소리치실 거 하나도 없심더. 제가 볼 때엔 두 분이 다 똑같심더.”
녀석은 경찰관의 입장에서 쌍방과실로 판정하듯 툭 한마디 내뱉고는 인사말도 없이 발자국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대문간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들 녀석에게 정곡을 찔린 나는 한동안 텔레비전 화면만을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화면이 눈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햐튼, 아버지하고 엄마는 서로 만나면 안 된다니깐…….’
그랬다. 당초부터 우리 내외는 궁합이 맞질 않았다. 생년월일을 오행에 맞추어 보는 그런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성격이며 가치관이며 지적 수준 같은 것이 너무나 판이했다는 말이다.
우리는 동갑내기로 스물여섯 살 되던 해에 중매결혼을 했다. 갓 제대하여 인근 사립중학교 재단으로부터 사령장을 받아 놓고, 부임일자를 한 달 남짓 남겨두고 있었던 구정 초에 닷새 사이로 두 사람의 중신아비가 우리 집엘 찾아 왔던 것인데, 참으로 희한한 일은, 그들 두 사람은 피차 전연 모르는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일인을 두고 내게 중신을 섰던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로부터 ‘니는 시물여섯 살에 장개간단다. 신통도 하제, 열이머 열, 시물이머 시물, 물어 보는 점쟁이들마다 우째 그렇굼 다 똑같은 점괘가 나오노 말이다.’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면서 자란 터라, 과연 스물여섯 살 되는 정초에, 그것도 두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등장한 이 규수야말로 하늘이 점지해 주는 천생연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에멜무지로 마산으로 내려가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맞선이란 것을 보았다. 살팍한 생김새에다 산드러진 몸가짐하며 어련무던한 성품에 끌려, 열 집 사위 안 되어 본 총각 없다는 속담이 무색하게, 선 본 지 꼭 일 주일 만에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
전쟁터에 나갈 때에는 한 번 기도하고, 바다에 나갈 때에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을 할 때에는 세 번 기도하라는 러시아의 격언을 내가 좀더 일찍 알았던들 우리들의 불행은 잉태되지 않았으리라. 5년이 지나도록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을 정도로 우리들의 신혼생활은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다. 중신아비를 원망하고 저주하기는 피차일반이었다. 호봉이란 말은 아예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채, 다음달로 넘겨 두세 번 나누어 후불로 받아내는 면세점 선인 최저봉급에다, 초급대학 출신의 대책 없는 나의 앞날은 그녀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했으며, 혀에 굳은살이 박였는지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종일토록 입 한 번 벙긋하지 않는 성미에다, 마산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명문여고를 나왔다면서도 대화나 토론이 불가능한 그녀의 지적 수준은 나를 낙망시키고도 남았던 것이다. 나의 고질적인 여성편력은 결혼 초기부터 예비되어 있었던 것으로, 고백하거니와 낙향하기 이전까지 나는 줄곧 아내 이외의 다른 대상을 은밀히 탐닉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대개는 2, 3개월이면 또 다른 대상으로 교체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 어떠한 대상도 강지처와 이혼하고 그녀를 안방에 들어앉혔으면 하는 따위의 아쉬움 같은 건 꿈에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때로는 아내가 꼬투리를 잡아 시비를 걸기도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임기응변으로 위난을 면피하면서 육탄공세로 즉각 보상해 주곤 했다. 사안이 좀 심각한 경우에는 열흘이건 스무 날이건 제풀에 화가 풀릴 때까지 아내는 냉전을 계속했던 것인데, 그럴 때에는 본의 아니게 나도 맞대응을 하면서 인내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결혼 이후 40여 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이혼 문턱에까지 갔을 정도로 우리 부부는 금슬이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저라나 내가 낙향함으로써 모든 게 일단락되었던 것이 아닌가.
문제는, 낙향 후 2년 동안 대여섯 차례에 걸쳐 상경할 때마다 나를 대하는 아내의 태도가 눈에 띄게 냉담해져 가더니만, 지지난 번부터는 냉전체제에 돌입한 채 결사적으로 잠자리를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밀양에서의 내 생활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으니, 풍문으로라도 무슨 흉측한 소문을 들었을 리가 만무하고 보면,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한다는 사실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제아무리 남편이 밉다손 치더라도, 몇 달 만에 한 번 올라와 통사정을 함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동침을 거부한다는 것은, 뒤늦게 어떤 놈을 알게 되어 ‘일편단심 민들레’가 되기로 작심하지 않은 이상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하릴없이 마당으로 나가 한동안 참았던 담배를 피워 물다가 너무나 달라져 버린 건물의 외양에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군데군데 균열이 나 있던 적벽돌벽을 전면 보수했을 뿐만 아니라. 누수로 인하여 얼룩이 심했던 슬래브 지붕의 추녀도 백색으로 산뜻하게 도색했으며, 노후하여 여닫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던 목조 창문틀을 모조리 군청색 알루미늄새시로 깔끔하게 교체해 놓은 것이다. 새집이 되었다는 기쁨에 앞서서 나는 별안간 무엇인가에 의해 ‘나’라는 존재가 건물 밖으로 추방된 느낌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애써 가꾸었던 오죽, 동백나무, 배나무, 앵두나무, 수수꽃다리, 목련 등은 흔적조차 없어지고, 이름도 알 수 없는 기화요초들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는 정원을 바라보면서, 지리산 갈가마귀가 물어 던진 게발처럼 나는 이미 이 집의 가족이 아니라는 이질감과 소외감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몇 푼 되진 않지만 저축통장이며 인감도장까지 깡그리 아내에게 인계해 버리고, 다달이 큰딸이 부쳐 보내는 용돈에 목줄을 매고 있는 나 자신이 그때처럼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2년 전, 가족을 놔둔 채 단신으로 낙향한 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서울에 남아 있어야 할 명분이 없었다. 기린도 늙으면 노마만 못하다고, 60줄에 들어서면 왕년에 제아무리 날고뛰던 강사라도 한더위에 털감투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 학원가의 생리였다. 사립학교의 비민주적인 작태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22년 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청산하고 단과명문입시학원 강사로 출발한 나의 학원편력은 참으로 기구했다. 종합입시학원이며 스파르타식 기숙학원이며 군소 입시학원이며 보습학원에 이르기까지 거의 안 거쳐 본 데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1주일에 두 번 나가고 월 일백만 원 이상을 받는 소위 불법 고액과외까지 하느라 아예 일요일도 없었다. 당초에 단과입시학원을 택했던 것은, 보다 자유스런 분위기 속에서 창작활동을 왕성하게 해보자는 의도에서였지만, 그것이야말로 큰 오산이었다. 학원은 교육현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영리 현장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직했던 보습학원에서는 50명으로 출발한 원생을 1년 만에 500명으로 불려 준 공로로 부원장이란 직위에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반면에 나는 그동안 글 한 줄 읽지도 쓰지도 못한 채, 한낱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갔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놈의 아이엠에프가 터져 원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조짐을 보이자, 원장이란 작자는 나이를 트집 잡아 0순위로 퇴출시켜 버렸던 것인데, 35년 간 교육자로서의 한 생애의 끄트머리에 그런 치욕적이고도 황당한 종말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쥐꼬리 같으면야 송곳집으로나 쓰일 수도 있겠지만, 보습학원에서마저 물먹고 쫓겨난 퇴물강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이것이 내가 낙향한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졸지에 실직을 당하여 자루 빠진 도끼 꼴이 되어 허구한 날 집 안에 갇혀 구박대기 신세가 되느니, 노후에 대비하여 이미 10여 년 전에 선산 일대를 개간하여 사과밭을 조성한 데 이어, 마침 재작년에는 정부지원금까지 보태어 3대째 살아온 낡은 한옥을 헐어내고 아담한 2층 양옥까지 지어 놓았으니, 위기를 호기로 삼아, 이 기회에 노모님 혼자서 살고 있는 고향으로 내려가 사과농사를 지으면서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재개해 보자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였다.
“하이고, 어림도 없는 소리 입 밖에 꺼내지도 말아요. 당신, 1년에 사과나무에 농약을 몇 번이나 치는지 알기나 해요? 자그마치 열일곱 번이랍니더, 열일곱 번! 그것도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내요. 줄을 붙잡아 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기라요. 그렇다고 팔십 노인이 거들어 줄 수가 있나, 내가 번번이 내려갈 수가 있나……. 늠으 손 빌리갖고 농사짓는 거는 밥 팔아갖고 똥 사묵는 짓인 기이, 인건비 빼고 뭐 빼고 나머 하나도 남는 기이 없는 기라요. 농사도 지어 본 사람이나 짓지 아무나 짓는 줄 아는가배. 경운기가 있나, 트럭이 있나, 무슨 수로 그 꼭대기꺼정 퇴비를 운반할 기이며, 또 사과를 딴 뒤에는 무슨 수로 실어 내린단 말인교? 마, 막설하고 당신 소원이던 글이나 쓰소…….’
그날따라 유난히 푸짐하게 늘어놓는 아내의 변설에 콧방귀를 뀌며, 나는 사과재배에 관한 서적까지 잔뜩 구입하여 낙향했던 것인데, 그녀의 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중했다. 몇몇 친지들을 찾아가 자문을 구해 봐도 한결같이 만류하는 것이었다.
결국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야야. 범도 안 보고 똥부터 싼다 카더이, 우째 일 년 농사도 안 지어 보고 나자빠지뿌리노?”
그러나 어머니만은 그게 아니었다.
“한 3년은 고생이 되겠지만 그 고비만 넝구면 되는 기이라. 초년고생은 은을 주고도 못 산다는 말도 있다. 농사도 안 질 밲이야 뭐하로 니리왔노?…… 소설? 하이고 마, 말아라. 밥벌이도 안 되는 그거 써가주고 뭐할 것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안팎곱사등이 되어버린 꼴이었다. 참으로 참담한 기분이었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부동산업을 하는, 삼문동에 사는 둘째매제 내외가 왔었다.
“화앗다, 형님 좋은 데 취직하셨네요！”
매제의 우스갯소리에 한바탕 웃음판이 터진 뒤끝에 어머니가 입부조를 바라듯 말꼬를 텄다.
“아이고, 저 나이에 얼매든지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긴데 사과밭을 모지리 늠 다 줘뿌리고 소설만 쓴다 카나 뭐라 카노.”
그러자 고맙게도 매제가 발 빠르게 내 입장을 대변해 주었다.
“빙모님, 그건 빙모님께서 모르고 하시는 말씀임더. 큰처남이 앞으로 얼마나 큰일을 해내는지 한번 두고 보이소. 여태까지는 식솔들을 먹여살리기 바빠 갖고 제대로 힘을 못 썼지마는 인자부터는 크게 달라질 겁니더. 설령 큰처남이 사과농사를 짓겠다고 우겨도 빙모님 입장에서는, 농사를 아무나 짓는 줄 아나, 괜히 두 마리 토끼 잡을라 카지 말고, 그동안에 제대로 못 쓴 글이나 원껏 한번 써보라고 말씀하셔야 안 되겠습니꺼? 그리고 베스트셀러 한 편만 쓰면예, 베스트셀러라 카는 거는 엄청시리 많이 팔리는 책을 말하는데, 그거 한 편만 썼다 카면 그까짓 사과농사 10년이 아이라, 20년 지은 거보다 더 많은 돈이 굴러들어 옵니더.”
둘째매제의 말에 크게 용기를 얻은 나는 다음날부터 사과창고로 지었던20평짜리 1층 공간을 서재로 바꾸기 시작했다. 바닥에다 장판을 깐 데 이어 서가를 구입하여 두 벽을 온통 책으로 채우던 날, 뜻밖에도 둘째매제가 카펫이랑 응접세트랑 침대를 들여 넣어 줌으로써 그동안 쥐새끼들의 소굴이던 창고가 창졸지간에 원룸형서재로 환골탈태했다.
“하이고, 씨부랄거, 수풀은 우거졌구마는 토찌비도깨비가 나와야 말이지.”
공사 마감일에야 들어와서 한 바퀴 휘둘러보던 어머니가 은연중에 던진 이 한마디를 지금껏 가슴 깊이 새겨두고 있거니와, 나는 그 다음날부터 당장 도깨비들을 찾아 나섰다. 내일동을 위시하여 삼문동·부북면·상남면은 물론, 부산이며 서울로 뛰어다니면서, 열불 나게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번 서울걸음도 그 일환이었다.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 장군을 위시한 수많은 향토 출신의 독립투사들이 전개했던 독립운동사와 동척東拓으로 대표되는 일제의 질곡과 수탈에 항거했던 우리 고장의 농민운동사를 한데 엮어 대하소설로 형상화하려는, 실로 20여 년 전부터 구상해 온 원대한 꿈을 드디어 실현해 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감정을 최대한으로 자제하고 한 번 더 시도해 볼까 하다가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손수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왔는지 강아지들이 걸상 위에 냉큼 올라앉아 입맛을 다시며 마구 낑낑거렸다. 전례에 비추어 혹시나 마지못해 밥상을 차려 주기를 속으로 은근히 바라면서 우정 식기와 수저를 거칠게 다루어 보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나는 미역국에다 밥을 말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는 애바르게 주방을 빠져나와 잽싸게 문짝을 닫아버렸다.
졸지에 주방 안에 갇혀 버린 강아지들이 문짝을 할퀴며 바동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아내의 등 뒤에 붙어 앉아,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운을 띄워 보았다.
“여보오.”
“…….”
“여보오오.”
“…….”
이제 봤더니 아내는 일일연속극을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 그새 잠이 들었을 리는 만무했다. 필시 나름대로 속을 끓이고 있는 중일 터였다.
“당신이 뭣 땜에 화가 나 있는지 모르지만, 내 오늘 당신한테 무조건 사과할게. 지나간 모든 것에 대해서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이렇게 빌게.”
나는 작전을 바꾸었다. 무엇 때문에 틀어졌는지, 꼭 본인의 입을 통해서 그 해답이 나오도록 강요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내 쪽에서 그것을 알아내어 무조건 사과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책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진정 속죄하는 마음으로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올라와서 꼭 열흘 머물 동안, 당신이 내게 한 말은, ‘어서 오이소.’, ‘밥 잡소.’, ‘잘 가이소.’, 딱 요 세 마디뿐이었던 거는 당신도 기억하고 있제? 그리고 한 번도 큰방에는 오지 않았고……. 설마 마지막 날 밤에는 와 주겠지 하고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당신은 끝내 오질 않았어. 그렇다고 그전처럼 당신을 강제로 데려갈 수가 없었던 기이, 그 전번에 왔을 때 당신이 내보고 뭐라 캤노? ‘씨발놈아. 니 눈까리에는 내가 ×으로밖에 안 보이나?’, 휴우우……, 그때 그 말을 듣는 순간, 참말로 억장이 무너졌지만……, 밀양에 내려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이꺼내, 당신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근본적인 책임이 전적으로 내한테 있더라 이 말이다…….
당신 말마따나 한평생 내 본위로만 살아 왔다는 걸 솔직히 시인할게. 근 40년을 살 섞고 살면서도 단 한 번이라도 결혼기념일을 챙긴 적이 있나, 생일선물을 사다 준 적이 있나, 외식을 한 번 제대로 시켜 준 적이 있나,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면서 외박은 또 좀 많이 했나. 남자가 간단하게 수술해 버리면 될 걸 겁이 나서 못해갖고, 일곱 번이나 소파수술을 하게 만들고, 그 일곱 번이란 횟수도 내가 챙겨 아는 거라면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지, 그것도 언젠가 당신이 울면서 말해서 알게 된 거고……. 말하자면 당신 말대로 나는 한평생 당신을 성적 도구로밖에 취급하지 않았던 거라. 게다가 마흔 밑자리 깐 자식들 끈 붙일 걱정은 눈곱만큼도 안하고 내 실속만 달랑 챙겨갖고 천 리 밖으로 핑 달아나버렸으니, 당신이 화를 안 낸다면 오히려 그기이 비정상이지.”
여기까지 쏟아 놓고서 일단 아내의 반응을 살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듣기 싫지 않다는 뜻일 터였다.
“그런데 이거 한 가지만은 내 입장을 분명히 밝히겠는데, 애들 혼사 문제에 대해선 당신도 이젠 더 이상 신경을 쓰지 말란 말이다. 누누이 해온 말이지만, 결혼은 선택이지 필수가 아이란 말이다. 품안에 자식이라고, 일단 다 키운 이상은 각자가 제 인생을 살아가는 기이라. 요즘 독신주의자들이 얼마나 많노. 옛날에 내가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해 갖고 ‘결혼이란 무덤’이라 캤다가 당신을 크게 화나게 한 적이 있지만, 어떻더노? 지내고 보이꺼내 실제로 안 그렇더나? 그리고 밀양으로 내려가길 백번 잘한 기이, 서울에서는 폐기처분되다시피 했던 내 존재가 그래도 고향에 내려가이꺼내 여기저기에서 필요로 하는 데가 의외로 많더란 말이다. 향토를 위해 봉사하면서 여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기이 얼마나 좋은 일고? 그리고 무엇보다 대하소설을 착수했다 안 카나.”
나는 신파연극 배우라도 된 기분으로 한달음에 여기까지 읊고 나서 잠시 뜸을 들였다. 다행히 세 아이가 저마다 먹고 살 길은 구했으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밀양으로 내려가 함께 살도록 하자는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죽었으면 죽었지 시골에 내려가서는 살지 않겠다는 게 아내의 지론이었으므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낑낑거리던 강아지들이 제풀에 지쳐버렸는지 잠잠했다.
“…… .”
아내가 홱 일어나서 자리를 피해버리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했다. 그전 같았으면 십상팔구 이쯤해서, ‘흥, 알기는 알구마는！’, ‘환갑 진갑 다 지내고 가리늦가라사 철들었구마는！’ 하는 따위의 말로 빈정거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하기야 남편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데야 제아무리 얼음장 같은 아내일지라도 어찌할 수 없지 않겠는가.
“더 긴말 할 필요 없이 한평생 당신을 홀대한 데 대해서 내 오늘 무조건 사과할게. 그러니 제발 날 좀 따뜻하게 대해 도고, 응? 앞으로도 살아갈 날이 구만린데 피차 아옹다옹할 기이 아이라, 한별이 말마따나 인제부터라도 사이좋게 한번 지내보더라고, 응?
난 한때 이렇게도 생각해 봤지. 아, 이 여편네가 정을 뗄라고 일부러 그라는갑다, 하기야 언제 나한테 정 같은 걸 느끼고 살았을까마는 그래도 한 이불 속에서 살을 섞은 정분만은 잊지 못할 테니, 그 정을 뗄라고 고의적으로 악처 노릇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 .”
나는 아내의 어깨 위에 한 손을 가볍게 얹었다.
“여보오, 부부 간에는 낮에 싸우고 밤에 푼다는 말도 안 있나. 부부싸움하면서 한 말을 꽁하게 새겨듣는 연놈하고는 살지도 말라 캤다. 전에 당신이 한 말 내 다 잊어뿠다. 당신도 내가 전에 했던 거는 다 잊아뿌라, 응? 두고 보머 알 거 아이가, 앞으로 내 잘할게.”
이쯤하고 말았더라면 딱 좋았을 것을, 아내의 다소곳함에 고무되어
“여보오, 부부는 살아서는 한 몸이 되고 죽어서는 한 구덩이에 묻힌다 캤다.”
하고 엉너릿손을 치면서 가슴께로 손을 가져간 것이 화근이었다.
“이 손 치우소!”
또다시 강아지들이 낑낑거리면서 마구 문짝을 할퀴기 시작했다.
“여보오, 부부는 돌아누우면 남이란 말이다. 이번에 올라오면서 문패에도 당신 이름하고 내 이름하고 나란히 써 왔다 아이가. 여보옹.”
“참말로 안 치울 것가, 이놈우 손목쟁이!”
“여보옹, 일 년도 더 넘었어.‘
“씨발, 내 입에서 또 험한 소리가 나와야 알겠나?”
이전 같았으면, 이쯤해서 ‘알았어요, 알았어, 다락에 먼저 가 있으소.’, 했을 아내가 별안간 고래고함을 싸지르면서 발딱 일어나는 것이었다. 문짝을 할퀴며 강아지들이 숨넘어가는 소리로 짖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별 수 없이 큰방으로 들어와 이부자리 위에 큰대자로 벌렁 드러눕고 말았다.
“내가 어데 이팔청춘가? 당신은 인삼 녹용을 많이 처묵어갖고 힘이 펄펄 남아도는가 모리지마는, 나는 전신에 골병이 다 들었단 말이다.”
하고 아내는 외딴집이라고 마음껏 악담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하머 한 시간 두 시간을 시달쿠는 ×대가리를 무슨 수로 견디란 말고? 당신은 좋지만 나는 따갑고 쓰라려서 죽을 지경이란 말이다. 나는 인자 여자가 아이니꺼내, 정 그렇거든 젊은 년을 하나 구하라 안 카더나. 젊을 때는 구하라 안 캐도 잘도 구하더이만 인자는 와 구하라 캐도 못 구하노?”
주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어 한동안 강아지들의 쪼작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와싹와싹 사료를 바수어 먹는 소리가 요란했다.
계집은 젊어서는 여우가 되고 늙어서는 호랑이가 된다는 속담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담배 심부름을 시키면 두말 않고 가게에까지 뛰어갔다 오고, 바로 코앞에 있는 재떨이 심부름을 시켜도 군소리 하나 없이 대령하곤 했던 아내가 갑자기 호랑이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담배연기를 갖고 까탈을 부리던 바로 그 시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당신은 발이 없나 와 못 가노? 밤낮 방구석에만 들어박혀 있지 말고 바람도 쐴 겸 슬슬 좀 갔다 오소와.” “나 참 기가 막혀. 아, 당신 손이 더 가깝소, 내 손이 더 가깝소? 제발 그 학교에서 학생들 부려묵던 그 버릇 좀 고치소. 당신 몸만 소중한 줄 알았지, 다른 사람 몸은 흑사리 쭉정이로 보이나?”
아내뿐만 아니라 아이들마저 한통속으로 이런 투로 면박을 주기가 일쑤여서 그 무렵부터 나는 개밥에 도토리처럼 가족들로부터 따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밥그릇 국그릇이 한별이의 그것과 뒤바뀐 것도 그 무렵이었다. 온 식구들이 제삿밥을 비벼먹던 어느 날, 하나밖에 없는 내 전용의 왕대접이 한별이의 차지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적의와도 흡사한 질투심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동안 남편에게 바쳤던 아내의 사랑과 정성이 고스란히 아들에게로 전이되는 구체적인 장면을 나는 그때 내 눈으로 목격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 무렵부터 아내는 말씨까지 백팔십도로 달라져 버렸다. ‘한별아, 나와서 밥 먹어라.’, 아들에겐 그렇게도 나긋나긋하고 상냥하고 부드럽기 짝이 없는 말씨가, ‘밥 잡소.’, 내게는 언제나 퉁명하고 몰풍스럽기만 했다.
아내가 큰방 문을 열고 들어와 장롱 속에 들어 있는 옷가지들을 챙겨 나가는 동안, 나는 짐짓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따라 들어와 내 이마와 손등을 핥아대던 강아지들이 쫄쫄쫄쫄 따라 나가고 난 뒤에 나는 혼곤한 상태에서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아버지십니꺼?”
꽃샘이의 목소리였다.
“오냐.”
“엊저녁에 호텔작업 한다고 집에 못 드갔심더.”
“알았다, 오늘은 일찍 들오나?”
“이따 봐야 압니더. 아버지예, 집수리한 거 어떻습니꺼?”
“조옿다. 수고 많이 했다. 다락을 없애고 부엌바닥을 돋와 놓으이꺼내 훨씬 좋은데? 도대체 누구 아이디어고?”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나서 반응을 기다렸다.
“하이고 참 내, 괜히 미안해갖고 카는 말 아입니꺼?”
“아이다. 진짜다. 꼭 아파트에 들어온 기분이다.”
“아버지 언제 내려가실 겁니꺼?.”
“오늘 오후에 서울대 도서관에 가서 복사 좀 하고 낼 아침에 바로 내려갈 기이다.”
“와 그래 급하게 내려가십니꺼?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보고 며칠 쉬었다 가시지…….”
“친구들 만나봤자 술밖에 더 묵겠나. 빨리 내려가서 할일을 해야지.”
“아버지예,”
하고 꽃샘이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제 내가 어떤 족집게 점쟁이한테 점을 봤는데예, 그 사람이 아버지보고 뭐라 캤는지 압니꺼?”
“야아가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를 하나, 갑자기 웬 점은?“
“아버지예, 좌우지간에 내 말을 한번 들어나 보이소. 과연 족집게는 족집게데예. 아버지 생년월일만 넣었는데, 대뜸 첫마디에 한다는 말이, 엄마하고 같이 안 살고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제, 카는 기라예. 과연 족깁게지예?”
“…….”
“아버지예, 내 말 듣고 있습니꺼?”
“그래, 자알 듣고 있다. 그라고 또?”
“그라고 또 한다는 말이예, 아버지하고 엄마는 육십 살에서 칠십 살까지는 피차 떨어져 살아라 카는 팔자랍니더. 안 그라면 둘 중에 어느 한 사람이 그 안에 먼저 죽는답니더.”
“과연 족집게네. 너거 엄마하고 한 집에 더 오래 살다가는 내가 지레 죽을 기이다, 내가 지레 죽어. 뭣 땜에 삐낐는지 모르지만 와 사람을 보고 도통 말을 안 하노 말이다.”
“하이고 참, 아버지도……, 아버지가 그전부터 엄마한테 잘해 줬으면 엄마가 그랄 텍이 있는가예. 그런데 그기이 문제가 아이라, 오히려 그기이 잘된 기라 카이. 그 점쟁이가예, 아버지가 시골에 내려간 거는 강에서 살던 고기가 바다로 나가서 사는 거하고 같다 캅디더. 그라고 엄마가 일부러라도 정을 띠야지, 안 그라면 아버지를 도로 강으로 불러들인답니더. 하하하하하…….”
꽃샘이는 한동안 저 혼자 방정맞게 웃어대더니,
“아버지예, 얼마나 웃깁니꺼? 엄마 성격하고 딱 안 들어맞습니꺼? 다른 여자들 같으면 그래 할라 캐도 그래 하겠습니꺼? 그라고 아버지예, 그 족집게가 얼마나 용한가 하면예, 아버지가 글을 쓴다는 것도 딱 알아맞친다?”
“뭐라 카더노?”
“시골에 내리가서 한 2, 3년 준비기간을 거치면 육십다섯 살에 이름을 크게 한 번 날릴 거라 캅디더.”
누가 전화를 거는지 수화기 안에서 뿌우, 뿌우, 하고 통화대기신호음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예, 참 문패 만들어 왔습니꺼?”
“그래, ‘안주자’ 이름하고 내 이름하고 나란히 써 왔다.”
“하하하하하……. 엄마가 보고 뭐라 캅디꺼? 전화 왔는갑다. 저녁에 보입시더.”
야, 그렇게 용한 점쟁이가 니하고 봄비보고는 뭐라 카더노, 한별이는? 하고 물으려는데 꽃샘이는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렸다.
송수화기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었다.
“여보세요? 흑석동임다.”
“…….”
“……저어 거기 안주자 여사님 댁이시죠?”
젊은 남자의 굵직한 음성이었다.
“예, 그렇소만 대관절 거기는 어디죠?”
“여기 수영장인데요, 아, 녜, 마침 오셨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나는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한동안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전화를 받는 사이에 어느새 올라왔는지 똘똘이란 녀석이 무릎 위에 천연덕스럽게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수영장이라,…… 수영장? 한때 에어로빅에 열중했던 적은 있었지만, 수영장엘 다닌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연령에 비해 에어로빅이 너무 과격하다고 판단한 나머지 수영으로 바꾸었나 보다고 짐작되긴 했으나, 어쩐지 젊은 남자의 전화질이 꺼림칙했다. 수강생이 미처 정시에 당도하지 않을 경우, 학원에서 집으로 전화를 거는 것이 상례이긴 하지만, 방금 그 젊은이의 물기 묻은 목소리는 그 이상의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전연 물에 뜨지 못하는 수영복 차림의 아내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슴통이며 배며 허벅지를 연하의 싱싱한 남성에게 내맡기고 희희낙락하는 장면이 떠오르자, 나는 살의에 가까운 질투를 느끼면서 전신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흥, 그러면 그렇지. 필시 곡절이 있었던 게지. 아냐, 아내만은 결코 그럴 위인이 아니지 않은가. 아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어떤 놈에게 푹 빠지지 않고서야 어찌 나를 이렇게까지 홀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 흥, 일편단심의 상대가 이젠 바뀌었다 이거지……?
한창 속에서 방망이질이 일어나고 있는데, 또 전화벨소리가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
나는 송수화기를 든 채, 짐짓 말을 아끼고 기다려 보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저쪽에서 이번에는 가성에 가까운 아주 세련된 노신사의 성음이 귓바퀴를 간질였다.
“……(흥, 이제 보니 한 놈만도 아니잖아！)”
“여보세요, 거기 안주자 여사 댁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실례지만 어디라고 그럴까요?”
“나, 안 여사 옛 애인 되는 사람인데요.”
순간, 정신병자가 아닌가도 싶었으나, 이름까지 대는 데는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얼른 송수화기를 바꿔 잡으면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 그래요? 이, 이거 반갑습니다. 전 바로 안 여사의 친동생 되는 사람인데요, 그렇잖아도 누님께서 좀 전에 미장원엘 가시면서 전화 오거든 꼭 메모를 좀 받아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여보시요, 당신은 소설가라서 역시 거짓말에 능하십니다그려. 당신이 아무리 거짓말을 해봤자, 안 여사 동생이 아니라, 남편 박형준 씨라는 걸 난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야, 이 새끼, 너 누구야?”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어허, 방금 말했잖습니까, 안 여사의 옛 애인이라고…….”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런데 도대체 용건이 뭐야? 오거든 내 그대로 전해 줄 테니까 어서 용건을 말해 보란 말야.”
“다름이 아니고, 옛날에는 한 빠×리에 오백 원으로 통했는데 요새는…… .”
“야, 이 새끼, 너 송병태지?”
그제야 나는 아차 싶었다. 그러자 송병태도 ‘핫핫핫핫핫……’ 하고 애써 참았던 폭소를 통쾌하게 터뜨리는 것이었는데, 나는 감쪽같이 속은 분노감에 앞서 우선 안도부터 하면서
“넌 임마, 환갑 진갑을 다 넘겨도 역시 ‘병태’보다는 ‘변태’가 어울리는 놈이구먼. 사람을 속일 게 따로 있지.”
송병태는 중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재학 당시나 졸업 이후로도 가장 흉허물 없이 지내 온 친구였다. 너무 친하다 보니 피차 상대의 마누라보고 못하는 소리가 없었다.
서른대여섯 살 때였던가, 공교롭게도 그와 나는 부산 동대신동에서 한 이웃에 산 적이 있었는데, 시내에서 한잔 걸치고 들어오다가 우리 집에 가서 한잔 더 하자며 끌어들였더니, 초면인 아내더러 대뜸 한다는 소리가, ‘오백 원 줄게, 빠×리 한번 하자.’ 였다. 하기야 나도 며칠 뒤에 토씨 하나 안 틀리게 해서 그대로 갚아 주기는 했지만…….
그로부터 몇 달 후, 서울로 직장을 옮기고도 우리는 일 년에 서너 차례씩은 꼭꼭 만났다. 그 서너 차례 중에서 두 차례는 서울과 부산을 번갈아 오가며 열렸던 동기생들의 경부친선테니스대회를 통해서였다. 관중들이 없는 경기가 어디 있는가. 나같이 라켓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친구들이 오히려 선수들보다 더 많이 몰려나와 바락바락 술을 퍼마시며 고래고래 소리를 처질러대는 것으로 한몫을 했던 것인데, 뒤풀이가 끝나면 그는 으레 별도로 몇몇 친구들을 끌고 다니면서 이차 삼차를 사곤 했다. 그럴 때의 그의 이름은 ‘병태’가 아니라 ‘변태’로 바뀌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한번은 부산 보수동에 있는 ‘깜짝집’이란 데로 끌려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의 일이 떠오르면 20년이 더 지난 요즈음도 나는 혼자서 키들거리곤 한다. 친구들 다섯 놈이 우중충한 적산가옥 이층으로 안내되어 올라가자, 이내 다섯 명의 미희들이 뒤따라 올라왔다. 미인박명이란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나같이 개밭무처럼 쭉쭉 빠진 팔등신들인 데다 얼굴들 또한 탤런트가 따로 없었다. 양주와 안주가 들어와 막 술상을 싸고 빙 둘러앉는 순간이었다. 상호 그대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깜짝 놀란 정도가 아니라 기절초풍을 했다고 해야 옳았다. 도대체 언제 옷들을 벗었는지 다섯 명의 미희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입구 쪽에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하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뒤이어 마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나체 심사 코너가 신설된 듯한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미희들이 차례차례로 애교 띤 간드러진 목소리로 미스 아무개예요, 반갑습니다, 사랑해 주세요, 어쩌고저쩌고 하며 자기소개를 하고 나자, 병태가 벌떡 일어서더니만 아가씨들의 각양각색으로 생긴 옥문을 순서대로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큰소리로 읊어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거는 강원도 산비탈 삐딱×지！…… 요거는 충청도 한약방 천장×지！…… 이거는 서울 하이타이 거품×지！…… 요거는 경상도 보리타작 회까닥×지！…… 이거는 부산 자갈치시장 칼치×지！”
한마디 한마디에 배를 잡고 웃어대다가 품평이 죄다 끝나자, 어떤 녀석은 눈물을 찔끔거리는가 하면, 어떤 녀석은 방귀를 푸륵푸륵 뀌어 가며 방바닥에 데굴데굴 나뒹굴었다.
이렇듯 그는 타고난 재담으로 항상 친구들을 즐겁게 했다. 그러고 보니 만난 지가 꽤 오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작년 연말에 동기회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지를 접하고도, 아직 축하전화 한 통화 못해 준 터였으므로, 나는 녀석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반가웠다.
“아쭈 그래도 제법이던데? 처음부터 성깔 안 내고 능청시리 척 둘러대는 걸 보머…….”
“야, 임마, 여러 말 할 것 없이 지금 어데 있노? 부산이가, 서울이가?”
“요즘엔 나도 서울물 좀 묵고 산다. 네놈만 두 집 살림 하라 카는 법이 있나, 나도 늘그막에 서울 바닥에 작은마누라 하나 구해 놨다 말이다.”
“야, 병신 육갑 그만 떨고, 지금 있는 데나 빨리 대 봐라, 내 0.5초 안으로 뛰어갈게.”
“아따, 성급하기는……. 이따 오후 5시 정각에 노량진역 입구에서 만나자. 그때꺼정 나는 불알에 요롱소리가 나도록 뛰어댕기야 할 판이다.”
“아, 참, 축하한다. 동기회 회장 됐다면서?”
“야, 야, 말도 마라. 마흔에 능참봉을 하이 한 달에 거동이 스물아홉 번이라 카더이마는, 내 돈 써 가면서 이기이 무신 짓고? 젠장맞을 거, 이것도 감투라고 팔자에 없는 걸 하나 얻어 썼더이마는 대가리가 쪼개질라 칸다.”
“지랄하고 자빠지는 소리 하고 있네. 아무튼 만나서 얘기하도록 하자. 노량진역, 5시라캤제?”
“와? 그때꺼정 기다릴라 카이 이 형님이 보고 싶어 환장하겠나. 정 그렇거든 지금 당장 이리 나와갖고 이 형님캉 같이 뛰어댕기든강?”
“아냐, 아냐. 아까 내가 0.5초 안으로 뛰어가겠다 칸 거는 앞뒤 재보지도 않고 해 본 소리고, 실은 나도 오늘 낮에 꼭 봐야 될 볼일이 좀 있다.”
“야, 야, 니늠이 볼 볼일이라 카머 낮거리하는 거 한 가지빽이 더 있나? 몇 달 동안 굶어 있다가 만났다고 주자 씨가 막 퍼 주는가배, 그 이름도 ‘주자’ 아이가?”
“야,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모르는 이 돌대가리 변태 새끼야, 너거 형수 이름이 ‘주자’ 씨라 카는 거만 알았지, ‘안주자’ 씨라 카는 거는 잊아뿠나? 어느 년이 줘야 먹지. 안 준다, 안 줘. ‘주자’가 아이라 ‘안주자’라 말이다.”
“으하하하하……, 조지나 강산이나 불러라, 이 새끼야.”
“이 새끼가 갑자기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 조지나 강산이라니?”
그러자 기상천외로 수화기를 통해 노랫소리가 흘러 나왔다.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오지나 가앙사네 조지나 강사네에…….”
해방 직후 초등학교 시절에 즐겨 불렀던 ‘삼천리강산에 새봄이 왔구나.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라는 동요를 개사한 것이었다. 곡명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이 노래는 당시 나의 유일한 애창곡이었다. 나는 워낙 음치여서 노래를 부르면 노상 급우들의 웃음거리가 되곤 했던 것인데, 이상하게도 이 노래만은 음정과 박자가 안 틀리게 완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음악시간이나 오락시간 같은 때에 지명을 받을라치면 나는 고정 레퍼토리로 이 노래만 불렀었다.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오지나 가앙사네 조지나 강사네에…….”
그는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 되풀이했으며, 나 또한 솔깃하게 듣고 있었다. 실로 이상한 것은, 녀석의 노래를 경청하는 동안, 내 마음이 말할 수 없이 편안한 경지로 빨려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내 마음을 환히 꿰뚫고서 거기에 맞춰 처방하는 정신과 의사 앞에 앉아 있는 기분과도 흡사했다.
“…… .”
“야, 형준아, 니 이 노래 들어보이 어떻노?”
“어이, 병태야.”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내 입에서도 ‘변태’ 대신 그의 본명이 튀어나왔다.
“그거 참말로 희한하네. 분명히 무슨 주문도 아닌데 숨통이 확 뚫리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드네……?”,
“햐아, 역시 형준이는 형준이구나. 바로 그기이다. 진짜로 이 노래를 백 분만 계속해서 한분 불러 바라. 일만 근심이 싸악 다 걷힌다 말이다. 야, 임마, 빠×리 생각날 때마다 괜히 안 줄라 카는 할마이 괴롭히지 말고, ‘조지나 강산’이나 처부리면서 손빨래하는 기이 그 중 상수다. 너거 마누라뿐만 아이라, 여자들은 육십 살만 넘어뿌머 모지리 안주자가 돼뿌리는 걸 우짤 것고? 그래도 우리 세대는 복 받은 줄이나 알아라. 우리 바로 앞 세대만 해도 40대만 되머 사랑방 거처를 했다 아이가?”
나는 약속시간과 장소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서둘러 통화를 끝내었다. 대문간에다 문패를 달고 집을 나서면서, 꽃샘이의 전화 때문인지 병태의 전화 때문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아무튼 나는 말할 수 없이 홀가분한 기분이 되었다.
서울대로 가서 중앙도서관과 규장각을 몇 차례 번갈아 드나들면서 당장 필요한 자료들을 복사하고 나니 오후 3시경이었다. 병태와의 약속시간은 아직 두 시간이나 더 남아 있었다. 숨이 콱콱 막히는 불볕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내 곳곳에 내걸리고 나붙여진 현수막이며 대자보들을 하나하나 훑어 나가면서, 나는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했던 저 7, 8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감개가 무량했다. 철야농성을 하는 동안, 가두시위를 하는 동안, 언제나 나를 위축시켰던 것은 가솔들이었다. 내가 교도소에 들어가면 저것들은 무얼 먹고 살아갈 것인가, 무슨 수로 학교엘 다닐 것인가? 나란히 누워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처자식들을 바라보노라면 으레 이런 연민들이 옴나위없이 나를 주눅 들게 만들곤 했다.
나는 열사들의 기념비가 나타날 때마다 경건한 자세로 묵념을 올렸다.
무릇 한 민족이 시련에 부닥치면,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저항은 하되 소극적인 부류가 있고, 처음에는 저항을 하다 종당에는 적의 주구로 훼절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적에 빌붙어 부귀영달을 누리는 부류가 있고, 처음에는 적의 앞잡이로 발호하다가 속량하여 투사가 되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애당초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휩쓸리며 사는 부류가 있을진대, 과연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하는 것인가?
열사비 앞에 설 때마다 나는 말할 수 없이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러웠으며, 그럴수록 대하소설을 하루빨리 완성해야 한다는 그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 용솟음치곤 했다.
버스를 이용해서 노량진역에 당도하고 보니, 약속시간이 아직 15분가량이나 남아 있었다. 구내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나는 다음날 아침에 내려갈 무궁화호 열차표를 예매한 다음, 입구로 나가 기다릴까 하다가, 전철을 타고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양쪽을 동시에 살필 수 있는 중간지점에 멀찍이 떨어져 서 있기로 했다.
이윽고 쏟아져 나오는 한 무리의 인파 속에서 코발트색 정장에다 하얀 캡을 눌러쓴 병태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복장도 복장이지만 그는 주위 사람들에 비해 귓바퀴 위만큼이나 키가 더 크기 때문이었다.
“여름철이라 회를 먹을 순 없고, 니늠이 좋아하는 고기나 굽어 묵자. 이 바닥은 왕년에 니늠 아지트 아이가. 어데 근사한 집으로 한분 안내해 바라.”
우리는 수산시장 쪽에서 풍겨오는 고약한 비린내를 피하느라 잰걸음으로 육교를 건너 대형 매장이며 단란주점, 소주방, 호프집, 오락장, 노래방, 당구장 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먹자골목 안으로 접어들었다.
노변 풍경이 옛날과는 판이했다. 하기야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 않는가. 마침 저녁 시간이라 골목 양쪽으로 즐비한 포장마차마다 남녀 수강생들로 시끌벅적 붐비는가 하면, 온갖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면서 한껏 식욕을 돋우었다.
“허허, 이늠아들 이거, 술 마시는 재미로 학원 댕기는 텍가, 도대체 저래 처마시고도 공부가 되기는 되나?”
“야, 입조심해라, 괜히 또 망신당하지 말고……. 요즘 애들 어떤지 알제?”
“흥, 범 무서워 산에 못 가겠다. 내가 어데 틀린 소리 했나?”
마침내 나는 10여 년 전에 동료 강사들과 어울려 자주 들락거렸던 ‘쌍과부집’ 간판을 찾아내고는
“야, 아직도 저 자리에 그대로 있네. 문자 그대로 쌍과부가 장사하는 집인데, 두 여자가 아주 걸물들이다. 참, 오늘 니하고 한판 붙어 봐라, 누구 주딩이가 더 센지…….”
“야, 야, 우에 주딩이가 세머 머할 것고, 밑에 주딩이가 세어야지. 과연 쓸 만한 년이 있는지 좌우지간에 한분 가보더라고.”
앞장서서 출입문을 드르륵 열어젖히자, 시원한 냉기가 확 끼쳐 나왔다. 다행히도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김 여사, 최 여사 안녕하세요?”
“아이고, 이게 누구세요!”
“어머머, 세상에！ 박 선생님 아니세요!”
방바닥 저 안쪽에서 화투를 치고 있던,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두 여자가 화들짝 놀라면서 동시에 외쳤다.
“박 선생님, 요즘은 어느 학원에 나가세요? 아니, 어쩌면 그렇게두 매정하실 수가 있어요 그래?”
에어컨이 있는 안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자, 김 여사가 방석을 깔아 주며 내 옆자리에 붙어 앉았다. 동글반반한 생김새는 그대로이건만, 십 년 세월이 핥고 지나간 자국은 속일 수가 없었다.
“그동안달나라에 좀 갔다 왔지.”
나는 김 여사의 희멀건 허벅지를 훔쳐보면서 능청을 떨었다.
“너무하셨다. 거기까지 가서 그냥 오셨어요 그래? 선물도 하나 사 오시잖구?”
“선물이 무슨 필요 있어, 당신을 거기로 모시고 가려고 이렇게 왔음 됐지……?”
그러자 주방으로 들어가 냉수와 물수건을 갖고 나온, 자그마한 얼굴이 댕돌같이 생긴 최 여사가 병태 옆에 붙어 앉으면서
“진짜로 너무하셨어. 그럼 전 어떡해요?”
했다.
“눈치가 그렇게도 없어 갖고 어떻게 장사를 하나? 옆에 앉아 있는 그 양반을 내가 보디가드로 데리고 온 줄 아나?”
그러자 최 여사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최’라고 불러 주세용. 절 꼭 달나라로 데리고 가 주세용.”
하고 코맹맹이 소리로 애교를 떨자, 김 여사가 툽상스레 톡 쏘았다.
“엠병헐, 낙화하니 오던 나비도 되돌아가는 판국에 청승 떨구 자빠졌네.”
“어허, 언니두 그 무슨 망발이요? 꽃 본 나비가 담 안 넘겠수?”
“꽃도 꽃 나름이지 낙화란 말야, 낙화. 이것아！”
병태는 모자와 웃옷을 벗어 버리고는 과감하게 최 여사의 어깨를 감싸고 안으면서.
“어허, 새벽달 볼라고 으스름달 안 쳐다보겠네. 새도 다급하머 사람 품안으로 날아들고, 호랑이도 시장하면 가재를 잡아먹는단 말도 못 들었소?”
“이 양반은 송병태라는 분이신데,”
하고 나는 뒤늦게 두 여인에게 병태를 소개시켰다. 중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나와 가장 절친한 사이이며,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부산에 있는 모 신발회사 중역이라는 말에 이어, ‘홀아비’라는 상투적인 거짓말까지 덤으로 얹었다. 병태는 엄청 기분 좋은 표정으로 최 여사의 어깨를 감싸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면서
“어째 오늘 술맛 한번 째지겠는데? 주모, 이 가게에서 젤 좋은 안주하고 술하고 왕창 한번 내놔 보더라고.”
“그래 보더라고. 앗다, 오늘 우리 동생 댕기풀이 한번 걸쭉하게 생겼네, 잉.”
하고 김 여사가 엉덩잇바람을 일으키며 주방으로 향하자, 나도 신바람을 내어
“야, 두 선남선녀가 궁합이 맞나 안 맞나 한번 알아 봐야 할 거 아이가?”
했더니, 병태는
“야, 야, 냉수 마시고 이빨 부러지는 소리 하고 있네. 과부 홀애비 만나는 데 예절 찾고 사주 볼 거 뭐 있노?”
“아녜요, 송 선생님, 저기 우리 김 언니가 사주관상을 기막히게 잘 보걸랑요. 실례지만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사주관상 좋아하시네. 방구들 꺼질까봐 × 못한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사주관상 겁이 나서 × 못한다는 소리는 듣다가도 첨이네.”
“송 선생님.”
하고 주방에서 김 여사가 얼굴을 내밀고 거들었다.
“길가에 돌이 많아도 인연이 있어야 찬다잖아요. 하다못해 띠사주라도 한번 보셔야죠. 무슨 띠예요?”
“내 대가리에 털 나고 띠사주라 카는 말도 오늘 이 집구석에 와서 처음 들어 보겠네. 공×하고 비녀 빼 가는 늠을 밨나, 와 자꾸 절차를 복잡하기 맹글라 카노? 주고 싶으머 팍 주고 주기 싫으머 말 일이지.”
이렇게 시작된 입씨름은 술자리가 벌어진 뒤에도 계속 이어졌던 것인데, 결국 두 여인은 앞발 뒷발 다 들어버리고 병태의 독무대가 되고 말았다.
“어이, 제수 씨.”
술이 몇 순배 오고간 뒤에 병태는 내 옆에 앉아 있는 김 여사에게 술잔을 건네면서
“오늘 우리 동생 근육 좀 풀어 주라. 근 일 년 동안 굶어 갖고 가시나 치마만 바도 벌떡벌떡 일라서는 통에 영 미치겠단다.”
“아니, 사모님은 뒀다 어디에 쓰시구요?”
“아나 콩콩, 줘야 묵제, 아무리 통사정을 해도 안 벌리주는데 우짤 것고?”
“보나마나 박 선생님께서 젊었을 떄 사모님 속을 어지간히 썩인 모양이죠?”
“그래요, 여자는 젊었을 때 당한 분풀이를 늙어서 하는 거라구요.”
두 여인은 아내 편을 들어 쌍나발을 불어댔다.
“박 선생님, 한번 생각해 보세요. 쇠말뚝 같을 땐 엉뚱한 데 다 빼줘버리고 솜방망이만두 못한 걸루다 귀찮게 구는데 좋아할 아내가 어딨겠어요?”
“아냐, 이것아. 박 선생님 연세에 솜방망이라니? 실례지만 사모님 연세가 몇이세요?”
“예순셋.”
“아이고, 그럼 더 얘기할 것두 없어요. 원래, 여자는…….”
“‘원래’는 양산군 장안면에 있는 기이 ‘월내’고, 어이 형준아.”
하고 병태는 갑자기 생각난 듯이 화제를 돌렸다.
“‘월래’라 카이 생각난다. 코보 그놈아 고향이 월내 아이가. 니, 코보 이바구 한번 들어 볼래?”
‘코보’란, 고3때 우리와 한반이었던 심기보의 별명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이듬해까지 거기서 자란 탓으로 중1 때까지만 해도 우리말 발음이 서툴러 “쪽발이”라고 놀림을 당하기도 했으며, 유달리 큰 코에 비해서 숫기라곤 어림 반 푼어치도 없어 고1때 붙은 ‘코보’라는 별명을 아직도 못 떼고 있는 녀석이었다. 평생 고정적인 일자리 한 번 가져 보지 못하고 전전하다가 최근에야 어느 친척이 경영하는 슈퍼마켓에서 배달원으로 일한다더니, 그마저 고령으로 밀려나왔다는 소문을 들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참, 요즘 코보 그 새끼 뭐 하노?”
“밤낮 마누라한테 구박받아 가며 빈둥빈둥 지내는 기이 하도 보기에 딱해 갖고, 거마비조로 한 달에 얼마씩 주기로 하고, 내가 회장이 되자마자 총무 자리에 앉혔다 아이가.”
“니, 진짜 그거 참 잘했다. 그래서?”
“지기미, 동기회 사무실 지키는 그거 만고에 할일이 뭐 있노? 한 달에 한 건 있을까 말까 하는 경조사, 비상연락망 통해갖고 전화 몇 통화만 해 줘뿌머 끝나고, 하루에 우짜다가 한두 차례 걸려오는 전화 받고, 청소하는 거밖에 더 있나?”
“그런데?”
“그런데, 그 새끼는 그기이 아이더라 이 말이다. 그 전 총무들은 친구들이 자주 찾아와갖고 점심내기 바둑도 두고 저녁내기 화투도 치고 해서 한 세월 잘 보냈지마는, 이늠우 아이메푼지 유메푼지 터져갖고 요즘은 하루종일 눈까리 빠지게 기다리 밨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찾아 오는 기이라. 딴 늠 겉으머사 책이나 읽고 기보나 연구하면서 소일하겠지마는, 니기미 씨발, 그 새끼가 원래 또 책이나 바둑 하고는 사돈에 팔촌 아이가? 니 한번 상상을 해 바라. 감옥살이가 따로 없을 거 아잉가배? 하다못해 독바둑이라도 두고 싶지만, 호랑말코겉이 지나 내나 호구도 모리는 늠이 바둑알을 잡아 밨자, 봉사 하늘 쳐다보기지, 이렇다 보이 이 새끼가 영 미치겠던지, 한 달 전부터 내한테 뻔질나게 전화질을 해대는 기라.”
“뭐라고?”
“그야 뻔할뻔자 아이가. 어이 회장, 제발 좀 놀러 온나 카는 말밖에 지가 할 말이 뭐 있겠노?”
“그럼 회장님께서 자주 놀러 가주시지 그랬어요?”
상추보쌈을 싸고 있던 최 여사가 듣다못해 한마디 참견하자, 병태는
“서방님 말씀 도중에 어데 헌 이불에 × 튀어나오드키 톡 튀어나오노. 자네는 술이나 열심히 처마시면서 고기나 잘 굽게.”
짐짓 퉁바리를 놓고는 술잔에 담긴 술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최 여사가 ‘카아’ 하는 그의 입에다 앙증스럽게 싼 보쌈을 쏙 넣어 주자, 병태는 씹는 둥 마는 둥 몇 번 우물거리다 꿀꺽 삼키고는 다시 계속했다.
“씨부랄 거, 어데꺼정 이바구 했노?”
“돼지고기 처묵고 까마구 소리 하고 있네. 코보가 놀러 오라고 자꾸…….”
“아, 맞다, 맞다……. 그래 할 수 있나……. 나도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 싶어서 하루는 척 안 찾아 갔나. 그랬더이 홧다, 날 보더이마는 죽은 저거 할애비가 살아오는 거카머도 더 반기는 거 있제? 당장에 데리고 나가서 술을 한잔 받아 줬더이, 대뜸 한다는 소리가 총무고 나발이고 다 싫다 캄시로, 사내새끼가 초장부터 더럭더럭 우는 바람에 사람 환장하겠데. 하기야 씨부랄거, 집 안에서는 처자식들한테 구박 받제, 그렇다고 밖에 나와 밨자 어느 늠 하나 알아주기나 하나, 지 심정은 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그래서?”
“그래서 이 본관사또가, 야 이 코보야, 마누라한테나 친구들한테나 어떤 늠한테도 기 안 죽고 살 수 있는 비결을 한 가지 아르켜 주까 캤더이마는, 아 이 새끼가 대반에 구미가 팍 땡기던 모양이라. 그래 내가, 니, 초등학교 때 불렀던 ‘삼천리강산에 새봄이 왔구나’ 카는 노래 기억하제? 그 곡조에다가 가사만 바꿔 부르머 된다 캤더이, 이 쪼다가 자기는 일본에서 늦가 나온 통에 도통 모린다는 거라. 할 수 없이 본관사또께서 또 음악선생 노릇을 좀 했다 아이가.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오지나 가앙사네 조지나 강사네…….’ 그런데 그 새끼가 음치라 카는 거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지마는, 음치, 음치, 그런 음치는 내 귀꾸마리 생기고는 첨이다. 와았다, 한 마디 한 마디씩 끊어 가미 갤카 줘도 도대체 음정하고 박자가 영 엉망인 기라. 여러 수십 번을 연습한 끝에 어느 정도 흉내를 내길래, 인자 혼자서 한 번 불러 바라 캤더이마는, 지기미, 거기에 아리랑 곡조가 와 튀어 나오노 말이다.”
나는 뱃살이 당겨 웃지도 못할 형편이었으며, 두 여인도 데굴데굴 굴렀다. 다른 사람이야 웃건 울건 상관없이 그는 청산유수로 엮어 나갔다.
“좌우지간에 그날 그 노래를 배야 주는 데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한 시간 이상 걸맀다 카머 이바구 다 안 했나. 그런데 그 쪼다가 이 노래를 배우더이마는 그렇게 좋아하는 거 있제. 과연 니 말대로 이 노래를 계속 부르다 보니꺼내 자기도 모리게 간뗑이가 커진 거 겉다 캄시로, 뭐라 캤는지 아나? 앞으로 기 죽을 일이 있기나 화가 나기나 하머 꼭 이 노래를 부르겠다는 거라. 그런데 이 새끼가 얼매나 웃기는고 하니, 어이 코보, 자. 인자 노래는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 캤더이, 지는 하도 음치라서 계속해서 안 부리머 잊아뿐다 캄시로 술을 한 잔 마시고 나면 ‘조지나 가앙사네에’ 또 한 잔 마시고 나면 ‘조지나 가앙사네에’ 이거는 안주가 필요없는 기이라. ‘조지나 강산’이 바로 안주라.”
이야기가 다 끝난 줄 알고 다들 마음껏 홍소를 터뜨리는데 병태는 손사래를 치면서 진짜는 아직 남아 있다는 시늉을 했다.
“며칠 뒤에 또 동기회 사무실에 갔더이마는 코보 그 새끼가 내보고 뭐라 캤는지 아나? 그날 헤어져 갖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혹시나감시나 잊아뿌릴까 싶어서 길을 걸어가면서도 ‘조지나 강사네’, 전철을 타고 가면서도 ‘조지나 강사네’, 전철에서 내리 갖고 저거 집 대문간에 갈 때꺼정도 계속 ‘조지나 강산’을 처불러댔다는 거라. 그랬더이마는 전에 없던 용기가 팍 생기 갖고 구둣발로 대문을 탕탕 차면서, 그늠우 ‘조지나 강산’을 더 크게 처불렀다 카네. 그런데 저거 마누라가 나와 갖고 대문을 따 주면서, 당신 방금 무슨 노래 불렀소? 카는 순간에 그만 지도 모리게 ‘삼천리 강산에 새봄이 왔구나……’ 카고 불렀다는 거라. 그랬더이마는, 보소, 그 가사가 아이던데요? 카고 저거 마누라가 재차 삼차 따지고 드는데, 그때마다 이 새끼는 계속 ‘삼천리강산’을 불러댔다는 기라. 하도 마누라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길래, 여보, 당신이 암만 캐도 그 맛을 본 지가 하도 오래 되어 논께 ‘삼천리강산’이 ‘조지나 강산’으로 들맀던 모양인데,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우째 오늘밤을 그냥 넘구겠노, 그자? 캄시로 지 방으로 탁 차고 드갔다 안 카나. 씨발거, 그랬더이마는 그 다음날 아침에 대반에 반찬이 싹 달라지더란다.”
나는 뱃가죽이 당겨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서 억지로 웃음을 참다 보니 눈알이 튀어 나올 지경이었으며, 두 여인은 웃다 못해 주방으로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이윽고 손님들이 밀어닥쳤으므로, 아쉽게도 병태의 원맨쇼는 더 이상 이어질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주를 네 병이나 깠다. 그가 이차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나는 내일 아침 일찌감치 밀양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극구 사양했다.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오지나 가앙사네 조지나 강사네에…….”
마을버스 종점에서 내려 오솔길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이 노래가 튀어 나왔다. 집이 가까워 올수록 나는 차츰차츰 볼륨을 더 키웠다. 한쪽 손에 들린 복사물 봉투를 두 번 세 번 확인할 정도로 정신이 맨송맨송하면서도 도시 발자국이 제자리에 놓이지를 않았다. 세 발자국을 전진해 놓고는 두 발자국을 후퇴할 정도로 비틀거리느라 1분이면 충분한 거리가 5분도 더 걸리는 성싶었다. 얼굴이며 목덜미며 등허리 할 것 없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나는 마치 둥실둥실 공중을 유영하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오지나 가앙사네 조지나 강사네에…….”
마침내 대문 앞에 당도한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힘차게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문패에 씐 ‘박형준 안주자’라는 한글 예서체가 외등 불빛을 받아 유난히 돋보였다.
“누구세요?”
아내의 목소리에 이어 강아지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지나 가앙사네에…….”
강아지들을 야단치는 앙칼진 쇳소리가 들린 데 이어,
“누구세요?”
하고 아내가 다시 물었다.
“조지나 강산이다！”
“녜에?”
“조지나 강산이라 말이다！”
‘똑！’하고 경쾌한 금속성이 울리면서 자동개폐기의 잠금쇠가 풀렸다. 코보가 연출했던 드라마의 반전이 우리 집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현관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거실 안으로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에 무산되고 말았으니, 아내는 언제 인터폰을 받았느냐는 듯, 텔레비전 앞에 등을 돌리고 자는 듯이 누워 있었던 것이다. 강아지들마저 귀찮다는 듯 아내의 앞뒤에 발랑 드러누워 버리고는 더 이상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소리가 안 나게 조심조심 아이들의 방문을 차례로 열어 보았다. 한별이는 삼각팬티 바람으로 세상모르고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고 있었으며, 꽃샘이와 봄비도 오늘은 어째 일찍들 들어왔는지 각각 제 방 침대 위에서 한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너무 더워 우선 샤워부터 했다. 그리고 팬티바람으로 마당으로 나가 담배를 태우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천하없어도 이번에는 이대로 그냥 내려갈 수 없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화해를 해야만 한다, 이전 같으면 제 아무리 완강히 버티다가도 귀를 잡아당기는 최후의 수단 앞에는 코 꿰인 송아지처럼 꼼짝없이 끌려오게 마련이었지만, 이제는 망할 놈의 강아지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큰방으로 들어가 작전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래, 꼭 섹스를 하자는 게 아니다, 소위 스킨십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아내의 사정이 정 그렇다면 나도 얼마든지 욕정을 자제한 채, 다만 애무하면서 나란히 누워 자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만족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엄청난 단절감을 메울 길이 없었다. 그걸 메우지 않고 내려간다면아무 일도 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아침에 그만큼 설득했으니 어쩌면 아내도 지금쯤 내 손길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래, 왕년의 그 최후의 수단을 진짜 최후로 한 번 써보는 거다, 만약에 아내가 꽥 하고 고함을 처지른다면, 잽싸게 큰방으로 뛰어 들어와 버리면 될 것 아닌가.
나는 소리를 죽여 방문을 열고 나가 아내에게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막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는 순간, 강아지들이 동시에 발딱 일어나 온 집 안을 발칵 뒤집어 놓을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큰방으로 뛰어든다는 게 엉겁결에 주방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짐짓 여유 있는 동작으로 스위치를 올렸다. 아이들이 놀라 뛰쳐나온다 해도 눈치 채지 않게 냉장고에서 물병을 끄집어내어 들고 식탁에 걸터앉았다. 다행히 어느 방문도 열리지 않았다. 아내는 여전히 발싸심도 하지 않은 채 누워 있었으며, 강아지들만이 내가 뭘 먹나 하고 목을 잔뜩 뽑은 채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오전처럼 저 놈의 개새끼들을 주방에다 가두어 버리고 재도전을 시도해 볼까 하다가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방문만 열리지 않았을 뿐이지, 다 큰 놈들이라, 나름대로 통박을 굴리며 바깥 동정을 환히 꿰뚫고 있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아내가 고함을 싸지르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는가.
나는 갑자기 목이 컬컬해 오며 술을 더 마시고 싶었다. 억병으로 취하지 않고서는 도시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구석구석을 뒤져 봤더니 이게 웬 횡재인가. 찬장 맨 구석자리에 시바스리갈 한 병이 꼭꼭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얼음통이며 멸치볶음 안주랑 술잔을 챙기는 사이에 어느새 왔는지 강아지들이 의자 위에 냉큼 올라앉아 입술을 핥아대고 있었다.
나는 기발한 착상이 떠올랐다.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한 손에는 안주와 술잔이며 얼음통을 한데 몰아넣은 비닐봉지를 들고, 주방 뒷문을 따고 나가 잽싸게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강아지들이 낑낑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밟았다.
사방이 탁 트인 옥상 위에 올라서자, 여기야말로 이 건물 가운데에서 유일한 나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오색영롱한 조명을 받아 아름다운 자태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남산타워를 중심으로 아찔하도록 현란하게 펼쳐진 서울 시가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가 하면, 집 뒤로는 야트막하게 솟은 달마산의 정상이 손을 뻗치면 닿을 듯한데, 봉우리 바로 위에는 만월에 가까운 둥근 달이 달무리를 띠고 있었다. 나는 달빛을 깔고 앉아 자작하기 시작했다.
한 잔씩 한 잔씩 홀짝홀짝 마시노라니 만감이 교차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2녀 1남의 아버지로서 내가 받을 수 있는 점수는 과연 몇 점이나 될까, 그리고 한 어머니의 장남으로서 받을 수 있는 점수는……? 점쟁이 말마따나 예순다섯 살쯤에 과연 크게 한 번 빛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자료는 어느 정도 확보했지만 그걸 읽고 소화하는 데만도 족히 1년은 걸릴 터이니, 탈고하기까지는 또 몇 년이나 걸릴 것이며, 완성한다 해도 꼭 성공작이 된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채 완성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말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나는 갑자기 콧날이 시큰해 오면서 눈시울이 뜨거웠다. 무심코 노래가 흘러나왔다.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오지나 가앙사네 조지나 강사네에…….”
나는 점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노랫소리는 고성능 스피커를 통한 것처럼 숲속을 쩌렁쩌렁 울렸다.
저만치 떨어진 마을에서 뭇 개들이 떼거리로 짖어대기 시작했다.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오지나 가앙사네 조지나 강사네에…….”
문득 내 앞으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언제 올라왔는지 바로 등 뒤에 아내가 달빛을 등지고 서 있었다. 나는 코보처럼 ‘삼천리강산’을 불러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부르던 노래를 계속했다.
“……조지나…… 가앙사네에…… 조, 조오……조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별안간 콧물과 눈물이 쏟아지면서 노래가 제대로 나오지를 않았다.
“조오지나……으흐흑……가앙사네……조……조오, 조지나 가, 가앙……으흐흐흑흑……으흐흐흐흑…….”
“갑시더. 큰방에 자로 갑시더.”
아내가 손바닥으로 내 입을 틀어막은 채 애원조로 내 팔을 잡아끌었다.
“조오지, 흑흑, 조오지, 조오지……흑흑, 조오……조오……흑흑, 으흐흐흐흑…….”
아내의 손바닥에 막혀 나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한사코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내의 손바닥에다 나는 콧물, 눈물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 김춘복 : 1938년 경남 밀양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76년 <창작과비평>에 장편소설 『쌈짓골』을 발표함으로써 데뷔. 저서로 장편소설 『쌈짓골』, 『계절풍』, 『꽃바람 꽃샘바람』, 중단편집 『벽』 등. 현재 낙향하여 대하소설을 준비하고 있음. (사)한국작가회의·경남작가회의·밀양문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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