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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한 배려
이규원
방안을 가로지르다 나와 딱 마주친
거대한 바퀴벌레
촉수를 까딱이더니 침대 밑으로 줄행랑친다
꽁무니를 향해 실내화를 벗어 던졌다
한방 맞은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다
약삭빠른 놈
매트리스를 밀어내고 구석구석 뒤져도 없다
기다리는 일이라면 나도 신물이 나지만
오냐 어디 한번 해 보자
네놈의 습성이 아무리 얍삽하다 해도
뇌 용량을 따져 봐라
넌 게임이 안 된다, 그보다
스스로 나올 때까지 아량을 베풀고 싶어졌다
한 목숨을 거두는 일에 그 정도 예의는 기본이다
아직 기척이 없는걸 보니 제법 센 놈이다
내가 너무 봐 준 건가
그 정도 클 때까지 살아있다면
뭐라도 터득했을 터
침대 밑으로 에프킬라를 뿌린다
어쩌면 이 순간이 너에겐 축복일지 모른다
정리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은 보통 행운이 아니다
드디어 나온다 다리를 절뚝이며
날개가 풀어헤쳐진 채 짝다리 짚고 서서 두리번거린다
그렇지 날밤을 까서라도 널 찾아낼 작정이었으므로
이미 네겐 어떤 선택조차 의미가 없었다
자 죽기 전 짜릿한 순간을 맛보게 해 줄 참이니
잔말 말고 눈이나 감아라
이규원
부산 출생. 2005년 시평으로 등단. 727g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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