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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나이에 꾸는 개꿈
김태수
고향 성주(星州), 가야산 골에다 밭뙈기 하나 샀다
백 걸음 남짓이면 길이 끝나는 그 곳
죽어도 그딴 곳 가서 살지 않겠다는 아내를
겨우 달래어 밭뙈기 하나 샀다
어쩌면 내 인생까지 묻어버릴 밭뙈기 덮으며
분명 저녁은 오리나무 숲에서 올 것이다
어둠 따라 중음신(中陰身) 서넛
함께 와 친구하자 손 내밀 것이다 허허 그 참
새벽이면 너구리, 오소리, 늙은 산고양이들도 내려 와
무딘 발톱으로 현관문 득득 긁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향 밭뙈기는 원래 계획이 아니다
금세 올 것 같은 통일의 날
내 외할아버지 무덤이 있을 자강도 희천시
일정(日政) 때 열여덟 나이 총각 선생님이셨던
아버지 첫 발령지 심양공립보통학교
교장으로 갈 참이었다 단 한 해면 어떠랴 외가 쪽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씨름도 하고 제기도 차고
퇴직 후엔 청천강 합수머리 비탈 언덕배기
탄광촌 까만 사택 하나 빌려, 적유령 북서풍
두루마기 자락 비집고 들 때쯤
푸르디푸르게 흐르는 저기 저 청천강 내려다보며
진짜 글 한 편 쓸 셈이었다 그러다가
건져 올린 벌겋게 약 오른 피라미 찌개 펄펄 끓으면
갓 사귄 북쪽 늙은이 여럿과
강계산 산머루 술, 오미자 술, 들쭉 술 따르면서
그렇게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향 가야산 골에다 밭뙈기 하나 샀다
아내여 그 밭뙈기다 집 지으면
‘자강도 희천시 심양인민학교 교장 근무를 명함’
큰 종이에다 보란 듯이 사령장 하나 써 붙일 것이다
남은 밭뙈기엔 수 천 번도 더한 개꿈들
두고 보라 예순 살 사내의 꿈을 개꿈으로 만든 너희들 몇
함께 묻어 꼭꼭 밟아버릴 것이다.
* 적유령산맥(狄踰嶺山脈) : 희천시의 북쪽에 있으며, 낭림산맥의 소백산에서 갈리어져 강남산맥과 같이 서남서 방향으로 달리는 산맥이다. 고도는 800~1,500ｍ, 길이는 250㎞
김태수
경북 성주 출생. 시집 『북소리』로 데뷔. 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 『황토마당의 집외 다수. sorikk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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