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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小事
차승호
십오 퍼센트 추곡수매 수분 함량 맞추려고 타작한 다음날부터 세류리 늙은이들 너나없이 중방리 가는 길 길게 볏가마니 풀어헤쳐 선탠작업을 하는 것인데
촌구석 무인경비시스템이 있나 있더라도 인심 사납지 않아 수분 날아간 가마니 하루하루 방수포 덮어놓고 돌멩이 지질러 놓는 것이 단속의 전부인 것인데
단속하나마나 이때까지 별 탈 없어서 안심하고 한해 농사 마무리에 안도하고 그동안 뭣 빠지게 논두렁 엎드렸던 마음 곤곤하게 풀어져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꿀처럼 다디단 것인데
쉬엄쉬엄 햇살 보드라운 논두렁 찾아 꾸벅꾸벅 경계 좋은 삼수갑산 합덕읍내 길다방 정 마담이랑 스쿠터 타고 거닐기 일쑤, 평소대로 그랬던 것인데
잠결에 보기는 봤지, 1톤인가 1.5톤 트럭 받쳐놓고 태연하게, 천연덕스럽게 작업복 차림의 젊은것들 내일이면 창고 들어갈 볏가마니 척척 실어 올리기에 아무개네 아들들인가 아들 친구들인가 내려와 일 거드는가 싶어 잘한다, 잘한다 부러웠던 것인데
어어, 어럽쇼 인사도 없이 부리나케, 부랴부랴, 허둥지둥 가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스럽고 요상스러웠지만 쯧, 요즘 젊은것들이란…… 그때까지 그냥 그런가보다 한 것인데
도무지 꿈인지 생시인지 정 마담 부드러운 손목 생각에 골똘했던 이 영감 두꺼비마냥 눈만 끔벅끔벅 떴다 감았다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상황을 몰라 상황파악이 안 되는 것이다
니기미, 그러니께 그늠덜이 그늠덜이 아니라 그늠덜이란 말여?
□ 차승호
1963년 충남 당진 생.
2003년 시집 『즐거운 사진사』로 작품 활동 시작.
2004년 『문학마당』 신인상.
시집 『들판과 마주서다』, 『소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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