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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한문학] 한웅빈/ 딸의 고민(3)
이름 김재용



5

 

영순의 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그는 다시는 기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한 아버지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로 하여 생겨난 뒷소리들에 마음을 썼을 뿐 그 말 자체에는 별로 주의를 돌리지 않았었다. 우선은 아버지가 순간적인 감정으로 한 말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다음은 기자가 아버지를 찾는 일이 또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자란 평범한 사람이 만나기에는 희귀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렇게 기자가 또 찾아왔고 아버지는 기자를 만나는 것을 단호히 거절했다. 아버지의 감정은 결코 순간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왜 기자를 싫어할까.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자랑으로 될 수 없는 전투담을 썼기 때문일까…….

영순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 전투담 때문에 기분이 나빠할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이 훈장과 메달은 내가 받기는 했으나 나의 것이 아니다. 전우들이 받아야 할 것을 내가 받았을 뿐이다” 하는 아버지의 말을 영순은 한두 번만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기자에 대하여 왜 노했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에 아버지가 기자를 만나지 않는다면 또 이런 저런 말이 생겨날 것이다…….

영순은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이르렀다.

철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는 공구주머니를 어깨에 걸치고 나오는 아버지와 마주쳤다.

“아버지!”

안천복의 얼굴에는 예의 그 느슨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떻게 여기로 오냐?”

“아버진 지금 어데로 가요?”

“응, 직장장실로 간다.”

“거긴 왜요?”

“뭐 기자라는 사람이 와서 만나자고 한다는구나.”

“예?”

영순은 너무도 놀라와서 아버지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정말 기자 선생한테로 가요?”

“그렇다는데두.”

영순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다음은 의문이 짙게 서려왔다. 데리러 온 돌격대장한테는 절대로 안 간다고 하여 잔뜩 화까지 나게 만들어놓고 어떻게 고쳐 생각하였기에 이렇게 기자를 만나겠다고 나섰을까…….

어떻든 기분이 좀 풀렸다. 그는 아버지의 팔을 잡고 걸으며 물었다.

“전 또 아버지가 가시지 않을 줄로 알았댔어요.”

“나도 그렇게 작정했댔다.”

“그런데요?”

“데리러 온 대장이라는 사람을 보내놓고 가만 생각해 보니 안 되겠더구나. 내가 안 가면 다른 사람들이 숱한 말들을 해댈 게 아니냐? 기자라는 사람은 귀가 항아리만해서 들을 게구, 허, 그랬다간 일이 더 커지지, 암만 해두 내가 가서 사실대로 말해 주는 게 낫겠더구나.”

“예?”

영순은 아버지의 팔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왜 찾아가 만나기로 결심했는지를 알게 된 그는 아연해졌다.

“아버진 기자 선생한테 무슨 말을 하시려고 그래요?”

“무슨 말이랄 게 있냐? 사실대로 말하려는 거지. 그건 무슨 떠들 만큼 잘한 일이 아니라 사고였다고…….”

“아버지!”

영순은 다시 아버지의 팔소매를 잡았다.

“제발 그렇게는 말씀하지 마세요. 그런 말씀을 하시려면 차라리 만나지 마세요.”

“그건 왜?”

“공장에선 그 일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데 아버지가 사고라고 하면 공장 간부들의 입장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기분 나빠지겠어요?”

“기분 나빠진다? 그 참 이상한 생각이구나.”

“아버지!”

영순은 아버지의 팔을 안타깝게 흔들었다.

“제발 그만두세요. 예? 사람들의 기대에 맞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말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뭐, 뭐라구?”

안천복은 적이 놀란 듯 그를 보았다.

“바라는 대로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구?”

“예.”

영순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는 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건 아버지 혼자의 일이 아니에요. 공장 전체의 명예와 관련되는 일이에요.”

“공장의 명예라…… 그럼 나라의 일은 어떻게 되지?”

“나라 일이요?”

영순은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 자그마한 일이 나라 일이라는 어마어마한 큰 일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그래, 나라 일이다.”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공구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오금을 꺾고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것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어지간히 길어지리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 영순은 아버지가 이렇게 앉으면 무척 기뻐하곤 했다. 재미있는 옛말을 듣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깡충깡충 뛰며 그 주위를 돌아서 아버지의 바로 턱밑에 쪼그리고 앉곤 했었다. 시름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올 것은 신비스런 동화나 아름다운 꿈을 불러오는 옛말이 아니라 오늘에 대한 ‘괴벽한’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순은 아버지의 이야기에 자기가 한마디 항변도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생각해 봐라. 설비관리를 잘할수록 고장은 없어야 한다. 고장이나 돌발적인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수리공이 해야 할 일이지. 고장이 생긴 다음에 막은 게 자랑할 일로 된다면 고장이 클수록 자랑도 커진다는 것과 같지 않으냐? 이런 사고를 막은 것을 위훈이라고 하기 시작하면 진짜 위훈이 빛을 잃는다. 고장이나 돌발적인 일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태에서 자랑거리가 생겨나야 그게 나라에 보탬을 주는 위훈이 아니겠냐?

“그건 저―.”

어버지는 말을 막지 말라는 듯 손을 쳐들었다.

“나에게는 한 친구가 있다. 전쟁 때는 나의 분대장이었고 제대해서는 광산에서 수리공으로 일했다. 지금도 일하고 있구……. 이젠 거의 40년이 되어오는구나. 그런데 그 사람에겐 훈장 메달이라는 게 모두 해야 공로메달 네 개가 있을 뿐이다. 그는 아직 물배관이나 공기배관이 터져 그것을 막느라고 소리내며 뛰어다닌 적도 없었고 소문날 만한 일을 한 것도 없었다. 표창하려고 해도 눈에 띄게 한 일이 없었지. 미리미리 잘 관리하고 보수하니 고장이란 있을 수 없을 게 아니냐.

영순아, 난 그런 사람이 진짜 수리공이라고 생각한다. 일이 생기면 물론 몸으로만이 아니라 목숨이라도 막아야지. 그건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은 더 훌륭한 것이다. 어떤 일이 생겨 희생적으로 막았다면 그 수리공에게는 영광일지 몰라도 나라에는 어떻든 손해가 아니겠냐? 수리공의 노력은 자기 이름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실적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영순아 난 그렇게 일하고 싶구나. 그렇게 일하려고 애썼지. 그런데 그렇게 안 되는구나. 내일에는 그렇게 하겠다 그렇게 하겠다 하는 사이에 이렇게 늙었구나.”

“아버지!”

영순은 자기가 애초에 말하기 시작했던 이유조차 잊고 아버지의 생각 깊은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영순아, 아버지도 이젠 늙었지?”

구부정한 등, 모자 밑으로 보이는 흰 머리칼, 굵고 가는 주름살이 그물처럼 엉킨 얼굴, 영순은 두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아니에요, 아버진 늙으시지 않았어요. 안 늙으셨어요.”

“안 늙었다? 네가 이렇게 어른이 되었는데두? 젊은 아버지에겐 어린 딸이 있단다.”

“전 아직 어린애에요.”

“허허허.”

영순은 석양이 비끼는 공장 구내를 눈물 고인 눈으로 둘러보았다. 얼마나 웅장하고 거창한가, 영순은 이 순간 아버지도 자기도 이 웅장함과 거창함을 이루는 불가분리의 한 부분임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직장사무실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잔등도 석양에 물들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별로 더 늙어 보이며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무실 문이 열리자 문가에서 돌아보는 돌격대장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놀랜 듯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곧 문이 닫혔다. 석양은 이제는 출입문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동무도 이제 우리 아버지를 이해하게 될 거에요.”

하고 영순은 혼자서 속삭였다. 그리고 그렇게 믿었다. 그는 돌격대장이 왜 아버지에게 화를 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데리러 갔을 때 기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한 때문으로만 생각했을 뿐, 더 심각한 이야기가 있었으리라고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내일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예견조차 할 수 없었다.

 

 

6

 

회관 안에서는 떠들썩한 박수소리와 환영곡이 울려나오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불빛도 소란스럽게 느껴졌다.

그것은 회관 밖의 정적과 대조적인 것이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듯했다. 회관 밖은 불빛도 어두웠다. 회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은 몇 걸음을 벗어나지 못했고 회관 둘레에 서 있는 나무들 속의 정원등도 자기 주변을 호젓하게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하여 나무들 밑에 놓인 긴의자들은 늦은 저녁에 황혼 같은 어스름에 싸여 있었고 나뭇가지들 사이로 흘러들어온 불빛조각들이 의자 위에 기묘한 반점들을 그리고 있었다.

영순은 어느 한 긴의자에 앉아 무릎을 감싼 치마 위에 떨어지는 빛의 반점들을 멍― 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모지기도 하고 둥글기도 한 반점들, 그 반점들은 때때로 치마 위에서 이리저리로 움직인다. 바람이 불어 나무가 움직이는 것이지, 영순의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이 현실 같지 않았다. 아, 차라리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었다. 방금 전 아버지가 하던 말이 귓전에 다시 생생하게 살아왔다…….

“……옛날부터 진짜 일꾼은 밭머리 김맨 것을 보고 안다고 했수다. 무슨 일이든 일거두매를 잘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 우리 돌격대가 일한 현장에 가보면 전쟁마당 같습니다. 쭈그러진 철판, 토막 난 산형강들, 깨지거나 귀떨어진 내화벽돌들, 반 토막짜리 용접봉들……. 일이 끝난 일터가 아니라 시작한 일터 같습니다. 이 사람들이 자재를 얼마나 썼는지 압니까? 101.3프로입니다. 그 널린 것만 잘 거두어들였어도 0.3프로라는 꼬리는 없어졌을 거외다. 그러나 0.3프로란 아무 것도 아니지요. 1.3프로를 뭉텅 잘라버리고 100프로인 듯이 한마디 언급도 안하는데 0.3프로가 무엇이겠소? 일을 좀 많이 하면 그쯤한 건 다 묻혀버립니다. 공장이 커지더니 우리 사람들이 통도 굉장히 커졌지요. 이모저모루 말입니다.

금방 직맹위원장 동무는 돌격대가 160프로를 했다고 했는데 사실은 159.3프로입니다. 사사오입을 해서 160프로로 불어났지요. 자재소비는 101.3프로인데 역시 사사오입을 해서 100프로로 줄어들었수다. 이것 참 이상한 사사오입법이 아닙니까? 누구에게 필요한 계산법인지…… 그래서 내 어제 돌격대장 동무더러 ‘사사오입 대장’이라고 했더니 불같이 성을 내던데…….”

장내에서 터져오르던 폭소……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돌격대장이 분노하여 천장에 부딪칠 듯 맹렬한 기세로 뛰어 일어났다.

“모욕하지 마십시오! 우린 정확히 159.3프로라고 보고했습니다. 자재소비도 101.3프로라는 걸 숨기지 않았습니다!”

지배인이 주석단에서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중단시켰다.

“대장 동무, 문제는 숨기지 않은 데 있는 게 아니라 자재가 초과되었다는 데 있지 않소?”

“그건 옳습니다. 그렇지만 ‘사사오입 대장’이라는 건 뭡니까? 너무합니다!”

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그러쥐었다.

억센 손아귀는 머리를 금세 부스러뜨릴 듯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지배인은 다시 말했다.

“나는 안천복 동무가 옳게 말했다고 보오. 일을 많이 한 건 사실이요. 그건 칭찬을 받아야지. 평가도 받고……. 그러나 낭비된 1.3프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돌이켜보아야 하오. 그렇지 않소. 대장 동무? 실적이 높다고 하여 그 숫자로 헛되이 없어진 나라재산을 덮어버릴 수는 없단 말이요.”

장내는 조용해졌다. 맨 앞줄에 앉은 돌격대원들의 무릎에 놓여 있던 꽃다발들도 그 싱싱하던 색깔과 향기를 잃은 듯이 보였다. 한동안 흐른 침묵이 영순에게는 돌격대원들에 대한 동정처럼 느껴졌다.

영순은 일어나 빠져나오고 말았다. 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하여 그는 이렇게 회관 밖에 앉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도 그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었다. 반대로 행복과 희망에 넘쳐 있었다…….

아침에 아버지는 출근길에서 불쑥 말했었다.

“저기 앞에 너의 대장이 가는구나!”

“예?”

강물처럼 흘러가는 사람들 속에서 아버지가 가리키는 돌격대장의 모습을 발견한 영순은 당황했다.

“아버진 정말! 저 동무가 왜 저의 대장이에요?”

아버지는 벙긋이 웃었다.

“그래. 그래, 돌격대장이지, 늙으니 말에서 실수가 많아지는구나.”

걸음이 빠른 돌격대장은 잠깐 사이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버지는 또 늙었다는 말씀이에요?”

영순은 안도의 숨을 쉬며 말했다.

“늙었다는 게 싫냐?”

“싫어요.”

“나도 싫다. 그러나 어쩌겠냐? 늙은 게 사실인데…….”

이야기는 다시는 돌격대장에게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리고 돌격대장에 대한 아버지의 감정이 좋다는 것 역시 분명했다. 하기는 영순의 어린 시절부터 일 잘하는 사람이 제일 훌륭한 사람이라고 가르쳐온 아버지였다. 이제는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이 생각을 더욱 굳게 해준 것은 저녁에 회관으로 올 때 만난 대장과의 이야기였다.

“난 어제 놀랐댔소. 그 안천복 아바이한테……. 글쎄 그 아바이가 기자한테 진짜 수리공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는데 정말 콧등이 찡―해지더란 말이요. 난 그 아바일 괴짜라고만 생각했댔는데 얼마나 생각이 깊겠소?”

“…….”

“동무도 앞으로 그 아바이를 존경하게 될 거요.”

“전 벌써 오래 전부터 존경해 왔는데요?”

“나보다 낫구만. 그래서 내 영순 동무를 제일이라는 게 아니요?”

“놀리지 마세요.”

“참, 오늘 저녁 아버지도 회관에 오겠구만?”

“벌써 갔을 거예요.”

“그렇소? 오늘은 좀 알려주지 않겠소?”

영순은 몇 걸음 옮기다가 멈춰섰다.

“만나보겠어요?”

“정말이요?”

하고 부르짖는 대장의 얼굴은 흥분과 기쁨으로 빛났다.

“예!”

하고 대답하는 영순의 가슴 역시 흥분과 기쁨으로 높이 뛰었었다…….

그런데 한 시간도 못 되어 일은 이렇게 되어버렸다…….

느릿느릿한 발소리가 가까워왔다. 영순은 얼굴을 더 깊이 수그렸다.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발자국의 주인은 영순의 앞에 와서 멎어섰다.

물씬하고 풍겨오는 담배 냄새, 희미하게 풍기는 기름 냄새, 아 아버지구나…….

“왜 여기 나와 있냐? 구경하질 않구…….”

음성은 퍽 갈려 있었다. 아버지도 생각이 무척 많으실 것이다. 사람들의 기쁨을 흐리게 해놓았으니…….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버지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저 말없이 아버지와 나란히 집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침묵은 사람을 위로해 주는 힘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조심스레 아버지를 쳐다본 영순은 어리둥절해졌다. 아버지의 얼굴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하고 혼연스레 보이기까지 했다. 눈에는 미소가 어린 듯했다.

영순의 가슴에서는 다시금 반발심이 머리를 쳐들었다.

“아버지!”

“오냐―”

늘 불만과 반발을 소심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던 그 따뜻한 대답이 이제는 별로 작용을 못했다.

“아버진 왜 그러세요? 제가 얼마나 말했어요? 몇 번이나 안타깝게 말했어요?…… 오늘밤도…… 너무하잖아요? 모두 기뻐하는 마당에서…….”

아버지는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나는 오늘밤 기분 좋으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기분 좋을 때보다 기분 나쁠 때에 더 많은 것을 생각하는 법이다.”

“아버지, 아버지가 조용히 있으면 누구나 아버지를 존경할 거예요. 오늘 저녁과 같은 일 때문에 아버진 사람들의 존경을 잃고 있어요.”

“…….”

“대장 동문 아버지를 괴짜고 괴벽하대요. 존경하고 싶다가도 그런 일이 있을 대면 딱 싫어지고 질색이래요. 왜 사람들이 싫다는 일을 자꾸 하세요?”

아버지는 시선을 먼곳에 둔 채 입을 열었다.

“그래 그 사람이 내가 네 아버지라는 걸 아느냐?”

“몰라요. 알면 그런 말을 했겠어요?”

“아버지란 말을 못했단 말이지?”

영순은 더 깊이 떨어지는 머리를 어쩔 수 없었다.

“말하지 못했어요.”

“음―.”

다음은 조용했다. 침묵은 너무도 오랫동안 계속 되는 듯했다. 회관 안에서 울려나오는 악기소리는 아득히 먼곳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영순은 아버지가 하도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어서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회관 마당 너머 불빛이 치솟고 있는 공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외등불빛이 한옆으로 비치고 있어 그 얼굴은 무척 쓸쓸해 보였다. 문득 영순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깨달았고 그 말이 아버지의 가슴을 더없이 아프게 했으리라는 생각에 소스라쳤다. 어떻게 그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

“…….”

“아버지!”

아버지는 천천히 얼굴을 돌렸다. 눈에는 여전히 미소가 어린 듯 했으나 여느 때의 미소와는 달랐다. 영순의 얼굴이 아니라 마음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생각 깊은 눈길이었고 그 미소는 영순에게가 아니라 자신에게 보내는 미소인 듯했다.

그것은 엄숙한 표정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지는 미소였다.

“영순아.”

드디어 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너는 이 아버지가 언제부터 이 공장에서 일해 왔는지를 알지?”

“예.”

“54년부터였다. 제대되어 낡은 군복도 못 벗고 일을 시작했다. 제대배낭을 걸어둘 집도 없어서 무너지다 남은 벽체에 걸어놓았지…….”

아득한 먼 옛날, 영순이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흘러가 버린 아버지의 청춘시절, ‘터전을 다진다, 힘차게 다져라, 원수들이 불사른 내 고향 폐허에……’ 노래는 회관 안에서 울리고 있는지 아니면 영순의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없었다. 벽돌조차 성한 것이라군……. 공장이 아니라 야장간이었다. 벽돌 한 장, 철근 한 대가 얼마나 귀했겠냐? 그때 공장마을 아이들은 공부가 끝나면 폐허 속에서 성한 벽돌과 철근을 파냈다. 깨어진 것도 쓸 수 있는 것은 다 썼지, 처음으로 지은 것이 피대선반 한 대가 있는 야장간이었고 세 칸짜리 벽돌집이었다. 지금은 그 집을 찾을 수도 없다. 헐어버린 지 오래니까.”

커다란 도시 같은 공장의 야경이 안겨온다. 산등성이 같은 직장 지붕들 사이로 새어나와 밤하늘을 때리는 전기로의 섬광, 구재기관차가 째는 듯한 기적소리를 울리며 연통으로 불꽃 섞인 연기를 쏟아올리며 달려간다. 쿵쿵 하는 둔중한 대형 함마소리, 시뻘겋게 단 아름드리 쇠기둥을 두드리고 있었으리라. 그 속에서 지금은 형체도 찾아볼 수 없는 작은 벽돌집……. 그 집에서 이 공장이 태어났고 자라난 것이다. 구 척 장신의 사나이 옆에 서 있는 체소하고 허리 굽은 어머니와도 같았을 작은 벽돌집…….

“그렇게 일을 시작했다. 공장의 첫 발자국이었지.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그 속에서 나는 입당했다. 전후복구건설시기가 지난 천리마대고조시기에 말이다…….

너도 어릴 때 기억이 날 게다. 아버지를 욕했다고 분해서 울며 나쁜 사람이라고 하던 그 아저씨가…… 그분이 바로 나의 입당보증인이었다. 전쟁 때는 나의 소대장이었구. 나를 몸으로 덮어 살게 하고 그때의 상처로 제대된 사람이었다. 그는 노동 불가능이란 진단을 받았으나 공장을 하루도 쉰 적이 없었다.

네가 울었던 그날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노했던지를 오늘은 내 이야기해 주마. 그때 우리는 두번째 가공직장을 일으켜 세웠는데 그때 나는 천정트라스 용접을 했다. 처음으로 짓는 현대적인 큰 직장이니 얼마나 떠들썩했겠냐? 공장이 굉장히 커진 것 같았다. 용접봉도 그때 처음으로 차판으로 실어왔었다. 처음으로 그렇게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용접봉을 보았구 모자랄까 봐 걱정을 않구 마음놓고 써보았다.

그날은 아무리 일해도 힘든 줄을 몰랐다. 그날 나는 250프로를 했다. ……그런데 일이 끝난 작업장을 돌아보던 반장이 내가 일하던 곳에서 버려두고 내려온 용접봉 몇 대를 찾아내고는 작업총화 때 나를 호되게 비판했다. 그는 들고 온 용접봉만이 아니라 용접봉 꽁다리가 길다는 것까지 들어서 나를 때렸다. 화가 나더구나. 일을 많이 한 건 알은 척 않구 흠집만 들추어내니……. 일은 내가 제일 많이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반장에게 맞섰댔지. 그것 때문에 나의 소대장은 노했던 게다. 그때 그는 전쟁 때의 상처가 도져 병원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는 당장 일어나 나왔었다. 그날 내가 들은 말을 너는 기억 못할 게다. 알아듣지 못했을 테니까. 그때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복이, 내 이제 일하면 얼마를 더 일하겠나? 지금도 병원에선 바깥출입도 하지 말라는 거야. 내가 물러나면 네 차례가 아니냐? 전쟁 때 고지에서도 그렇게 했지. 나는 그때 내 몸으로 덮어 안천복이를 살린 게 아니야. 내가 쓰러지면 나 대신 고지를 지킬 한 전투원을 살렸던 게다. 이제 내가 병원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좀더 오래 살 수도 있겠지. 그런데 네가 그런 본때로 일하는데 내가 어떻게 이 일터를 떠난단 말이냐? 이놈아. 이 용접봉 하나하나에도 전쟁 때 흘린 전우들의 피가,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가버린 그들의 피가 스며 있어! 우리가 쓰는 것 어느 하나라도 하늘에서 떨어진 게 있니? 누가 공짜로 준 것이 있니? 모두 우리가 피땀을 흘려 만든 것이구 허리띠를 졸라매고 얻어낸 것이야, 아이들에게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이구 입힐 것도 제대로 못 입히면서! 그렇게 마련한 나라 재산이 너의 이름이나 내는 밑천인 줄 아느냐? 제 이름을 내려구 나라 재산 아까운 줄 모르구! 이름만 내면 나라 재산은 없어져도 좋다는 거냐? 이 용접봉 한 대에도, 꽁다리 하나에도 숱한 어머니들의 고통이, 아버지의 슬픔이, 아이들의 배고픔이, 전우들의 피가 스며 있단 말이다. 그런데 네가…… 네가 그렇게 일해? 이 땅이 어떤 땅이구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얻어진 것인지 알고 있는 네가…… 아, 분하구나.’ 그 말들이 나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머리 속에 용접불로 새겨놓은 것 같구나……. 그 사람은 그 다음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일터를 떠나지 않았다. 채 짓지 못한 휴게실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나에게 용서한다는 말을 종시 하지 않은 채 떠나갔다…….”

수염 많은 아저씨, 수척한 얼굴로 하여 수염이 많아 보이던 사람,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아버지도 세상에 없을 것이며 영순이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진실 이상의 진실이었다. 영웅들, 역사책이나 소설책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거인들이었다. 그 거인들의 손으로 오늘의 공장이 일떠선 것이었다…….

“아버지, 그분이 지금까지 살아 계셨더라면 아버지를 용서하셨을 거예요, 꼭 그랬을 거예요.”

“그랬을지도 모르지……. 아니, 용서하지 않았을 게다. 죽은 사람에게는 용서를 받을 수 없다. 영원한 의무가 있을 뿐이지.”

“…….”

수염 많은 아저씨, 푹 꺼진 두 볼을 푸들푸들 떨던 얼굴, 그 아저씨는 그날 어린 영순에게 사과를 쥐여주었었다. 허나 영순은 그것을 먹지 않았고 내버렸었다. 아, 만일 용서를 빌 수 있다면! 죽은 사람들은 정녕 산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일까. 작은 장난감 하나가 깨어져도 쏟아져 나오던 눈물을 왜 그 아저씨의 영전에는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못했던가…….

나무 우듬지에서 우는 밤새 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생각해 봐라.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지만 높은 숫자에 정신이 팔려 그 숫자 밑에 깔려 사라지는 피땀의 열매는 제대로 보지 못하는구나. 160프로라는 숫자 때문에 1.3프로를 무시하는 것처럼 자랑하고 싶어서지. 그러나 우리는 자랑을 위해서 살며 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자랑에 취해 영영 없어져 버리는 것은 못 본 척하고 있지, ‘남자답다’느니 ‘대범하고 통이 크다’느니 하면서! 그 하나하나가 때로는 우리의 편안을, 기쁨을, 그보다 더한 것까지 내주면서 얻은 것들인데!

김장철에 배추 무우에서 감모량을 계산하듯이 응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여기에 무서운 것이 있다. 추궁하기도 어렵고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여기에, 이것이 점점 자라면…… 지난 세대가 흘린 피와 땀이 모두 헛된 것으로 되어버릴 수 있다. 너도 이젠 어린애가 아니다. 그래, 너는 어른이다. 내가 이제 얼마를 더 일하겠느냐? 이제는 너희들의 차례다.”

“아버지.”

미소를 지은 듯도 하고 생각에 잠긴 듯도 한 얼굴, 주름진 눈가에 어려 있는 서글퍼 보이기도 하는 미소, 사람들은 애틋한 것과 헤어질 때 그런 미소로 바래운다. 아버지의 미소, 그것은 작별의 미소였다.

늙은 아버지는 딸의 어린 시절과 영원히 작별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제는 다만 추억으로, 그리우면서도 헤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었다.

그렇다. 어버지는 처음으로 어른과 말하듯이 딸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순간 영순은 자기가 잘했다거나 잘못했다거나 하는 것을 생각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순간 그가 아버지로부터 아버지 세대의 위훈을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영순의 고민보다는 비할 바 없이 크고 깊은 고민이 담겨진 시대의 위훈을 듣고 있었다.

그것을 받아들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한 세대의 첫 걸음은 지난 세대의 위훈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되고 그것은 또한 다음 세대에 물려줄 위훈을 준비하는 첫 걸음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저 전기로의 불빛이 치솟는 공장, 수백 수천 가지 기계소리가 한데 어울려 회관에서 울리는 음악과 구분할 수 없는 교향악을 이루는 공장, 혹시는 앞으로 저 불빛도, 기계소음도 사라지고 구내 기관차의 예리한 고동도 없는 공장으로 될지도 모른다. 인적이란 없이 기계 예리한 고동도 없는 공장으로 될지도 모른다. 인적이란 없이 기계들이 저 혼자 조용히 일하는 공장으로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에도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위훈은 변함 없을 것이다…….

“너는 내가 기자에 대해 왜 성을 냈는지 다는 모를 게다. 그것은 기자가 전쟁 때의 이야기를 섰기 때문이 아니다. 그거야 고마운 일이지……. 내가 속보에 나는 것을 싫어한 건 겸손해서도 평가를 남에게 사양해서도 아니다. 다만 내가 잘했다고 속보에 날 때면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자는 나를 겸손한 사람으로, 평가를 남에게 양보하는 그런 사람으로 써놓았다. 그 사람이 내가 왜 전쟁 때의 이야기까지 했는지를 이해 못했을까? 아니, 기자라는 사람이 그걸 몰랐을 수는 없지. 아마 그렇게 쓰는 게 그 사람한테는 재미있었겠지. 제멋대로 만들어놓았단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성났던 거다. 나는 공장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에 대해서 썼거든! 이 안천복이가 무엇이냐? 중요한 건 공장이구 나라가 아니겠냐? 일이 중요한 거지!

그런데 그 사람은 노래만 불렀어, 이 안천복이에 대한 노래를!……”

아버지는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었다. 고백하고 있었다. 딸의 앞에서, 가장 이해력 있고 가장 현명하고 가장 높은 지혜를 가진 존재 앞에서 하듯이 말하고 있었다. 영순은 언제부터 자기가 울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 눈물은 깊은 감동의 눈물이기도 했고 슬픔의 눈물이기도 했다.

아버지에 대한 감동의 눈물, 아버지의 목에 매달려 어리광을 부리며 틀린 것도 맞는다고 떼질을 하던 그 시절은 영원한 과거로 되어버렸다는 데서 오는 슬픔의 눈물이었다…….

“저기…… 누가 나오는구나.”

하는 아버지의 말에 영순은 회관 쪽을 보았다.

돌격대장이 머리를 무겁게 떨구고 나오고 있었다.

영순은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으나 도로 앉고 말았다.

“왜 그러느냐? 가보거라.”

“예?”

아버지의 눈길은 영순을 떠밀고 있었다. 영순은 자신 없이 일어섰다. 그러나 선뜻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가보거라. 어서!”

영순은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아버지의 눈에서 영순은 자기가 딸로서만이 아니라 하나의 여성으로 비껴 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눈길은 말하고 있었다.

(가거라, 너는 내 딸이다. 동시에 하나의 여성이다. 이제부터는 너의 생활의 길을, 너의 세대의 길을 걸어가거라. 같이 갈 사람은 기다리고 있다!)

영순은 입 속으로 말했다.

“아버지 고마워요.”

대장은 영순이 앞에 왔을 때에야 머리를 들었다.

두 눈은 밤처럼 캄캄했다.

“동무도 들었소?”

영순은 조용히 대답했다.

“들었어요.”

“이런 망신이 어데 있소? 내일이면 온 공장마을이 알게 될 거요. ‘사사오입 대장’이라구, 아이들까지 놀려댈 거란 말이요!”

“…….”

영순은 그의 상처가 무척 아프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위로해 줄 말은 없었다. 위로하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그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이런 상처는 오래도록 남아 있어야 한다. 그 상처는 현실의 상처와 함께 아물어야 하는 것이다.

대장은 주먹으로 계단의 난간을 내리쳤다.

“난 이젠 대장을 못하겠다고 하겠소!”

“…….”

“동문 왜 아무 말도 없소?”

“…….”

문득 대장의 눈에 두려움이 비꼈다.

“오늘 여기 동무 아버지도 왔다고 했지?”

“예.”

그는 계단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래서 동문 밖에 나와 있었구만, 하필 이런 꼴을 보이다니? 협잡꾼 같은 꼴을!”

“…….”

“아버님은 뭐라고 했소?”

“…….”

대장은 벌떡 일어섰다.

“동무까지 날 이렇게 괴롭히겠소?”

“괴로운 건 동무만이 아니에요.”

“나도 아오, 동무도 괴로울 걸!”

“아니예요.”

영순은 머리를 흔들었다.

“저의 괴로움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겨우 체면이나 생각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동무의 괴로움도 역시…… 모욕감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분은, 저의 아버지는…….”

“아버지?!”

대장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어데 계시오?”

두리번거리는 그를 쳐다보던 영순은 조용히 말했다.

“만나보겠어요?”

“지금? 아니, 지금은 안 돼, 지금은!”

그는 맹렬히 머리를 흔들었으나 잠시 후에는 어둠속을 노려보며 두서 없이 중얼거렸다.

“하기야 마찬가지지. 온 공장이 다 들었으니……. 며칠 후에라고 잊혀질 것도 아니구. 마찬가지야, 마찬가지.”

그는 머리를 들고 영순을 두렵게 쳐다보았다.

“동무네 아버지가 나를 만나줄까?”

영순은 한숨처럼 조용히 말했다.

“절 동무한테 가보라구 한 건…… 아버지예요.”

“?!”

대장은 큰 걸음을 내짚었다.

“가기오!”

영순은 앞에서 걸었다. 따라오는 대장의 발소리가 점점 소심해지며 들린다. 이제 아버지를 알게 된다면…….

허나 두렵지 않았다. 물론 대장은 놀랄 것이며 원망과 불만 그 무엇이든 다 가질 수 있다. 허나 동정만은 없을 것이다. 측은한 눈길만은 못 보낼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는 존경하게 될 것이다. 영순은 불현듯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자신을 느꼈다.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그는 나쁜 사람일 것이다!……

영순은 나무 그늘 밑 의자 앞에서 멎었다. 아버지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인사하세요, 저의 아버지예요.”

“?!”

대장은 돌처럼 굳어져서 걸상에 앉은 사람을 보고 있었다. 경악한 눈과 입, 얼굴, 그 눈길에는 무수한 감정이 엉켜 있었다. 다만 존경만은 없었다.

영순은 고요히 서 있었다. 그는 대장의 눈에 존경이 비낄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경악과 불만, 원망이 존경으로 되기까지에는 얼마나 먼 거리가 있는지, 그로 인한 자기의 고민이 얼마나 클 것인지를 영순은 알고 있었다.

고민이란 괴로운 것이다. 허나 이런 고민으로 인한 괴로움에는 신성하고 위대한 것이 있다. 그 고민에는 시대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나가려는 몸부림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에서는 전기로의 눈부신 화광이 하늘 끝까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별들은 화광이 비칠 때면 빛을 잃고 금세 꺼져버릴 듯 희미해지곤 했다. 그러나 화광이 사라지면 더 또렷하게 빛을 뿌리며 나타난다. 줄기찬 전기로 화광에 희미해졌다가는 다시 반짝이는 별들…… 이렇게 수십, 수백, 수천 번 거듭되노라면 그 별들도 전기로의 화광과 같은 눈부신 빛을 뿜게 될 것만 같았다…….

 

[실천문학](2001년 여름호)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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