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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한문학] 한웅빈/ 딸의 고민(1)
이름 김재용



북한문학을 읽자 제2회

딸의 고민

 

한웅빈(북한 작가)11
1

이 이야기는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7차 전원회의가 있기 몇 달 전 어느 공장에서 있은 이야기이다.


1

지난밤 현장에서는 대단히 큰 사고가 날 뻔했었다.

높은 수압의 물배관이 터지기 시작했는데 그때 마침 안천복이라는 수리공이 몸으로 막으며 수리해 놓음으로써 사고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배관이 완전히 터졌더라면 많은 작업들이 중단되었을 것이었고 방수작업을 채 못한 지하 배전실이 침수되어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을 것이었다. 그리고 또 이런저런 크고 작은 피해들도 상상할 수 있었다.

(있을 뻔했던 위험의 규모를 상상해 보는 것은 흥이 나는 일이기도 하다. 실제적인 손실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안천복이라는 수리공으로 하여 있을 뻔한 일로 끝났다. 하여 있을 뻔했던 사고 대신 하나의 위훈이 태어났다.

그 위훈은 공장 구내를 주름잡으며 새로운 기적과 혁신으로 장식될 노동일의 시작을 알리는 방송차의 아침방송에 의해 모두에게 알려졌다. 그 소식을 알게 된 사람마다 있을 뻔했던 위험을 상상해 보면서 안천복의 위훈에 대해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공장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그날 아침 공장 구내길로는 몇 달 후면 공장에 진출할 고등중학교 졸업반 학생들의 대열이 활기와 호기심에 넘쳐 걷고 있었다. 그들은 몇 달 후면 자기들의 기적과 위훈으로 찬란히 장식될 (의심할 바 없었다!) 공장을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그들에게는 안천복이라는 수리공의 희생적인 소행이 자기들의 내일에 대한 이야기처럼 안겨왔다. 그들은 일제히 말했다.

“영웅이야!”

대열 옆에서 걷던 교원은 수첩에 ‘안천복’이라는 이름을 적어넣었다. 학생들을 그와 만나게 한다면 많은 유익한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교원의 생각을 알아차린 대열을 인솔하는 학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천복이 있는 곳을 미리 알아두려는 생각에서였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주위에는 노동자들이 거의 없었다. 먼발치에서 까만 치마에 흰 적삼을 입은 처녀가 종종걸음으로 오고 있고 그들의 옆으로 한 늙은 노동자가 지친 듯한 걸음으로 발을 질질 끌며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늙음이란 존경보다는 동정을 받기 쉽다. 늙음이 존경을 받으려면 여러 가지를 구비해야 하는데 그들의 옆을 지나가는 것은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보통 늙은 노동자에 지나지 않았다. 침울한 얼굴은 화가 난 듯 찌푸려져 있었다.

학생은 그를 측은한 눈으로 보며 다가갔다.

“저― 말씀 좀 물읍시다. 안천복이라는 수리공 동지를 만나려면 어느 직장으로 가야 합니까?”

늙은 노동자는 걸음을 멈추었다.

“누구?”

“방금 방송차에서 소개한 수리공 안천복 동지 말입니다.”

늙은 노동자는 학생의 손이 가리키는 방송차 쪽을 화가 난 눈으로 흘깃 보았다. 눈길은 학생들의 대열을 스쳐 자기 앞의 학생에게로 돌아왔다.

“그 사람은 왜 만나려고 하나?”

학생은 기분이 나빠졌다. 젊음은 침울함이나 어두움에는 거의 본능적인 반감을 느낀다. 교원이 그를 대신하여 대답을 주었다.

“우리 학생들이 공장의 혁신자들과 무척 만나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혁신자? 안천복이가?”

하고 되뇌이던 늙은 노동자는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며 벌컥 화를 냈다.

“그 안천복인 혁신자가 아니라 비판을 받아야 할 작자요! 떠들기들은 음―!”

하고 그는 아연실색한 학생들의 앞에서 돌아서서 발을 질질 끌며 가버렸다.

한순간이 지나서야 학생들 속에서는 소란한 웅성거림이 터져나왔다.

“이건 참을 수 없어! 혁신자에 대한 중상이야, 비방이구!”

“뭐? 떠든다구?”

대열 인솔자는 정의의 깃발을 높이 들기로 단호히 결심한 듯했다. 그는 늙은 노동자와 엇갈려 걸어오는 노동자에게 지체없이 마주가 다짜고짜로 물었다.

“저 아바이가 누굽니까?”

이제 대답만 나오면 규탄이 시작될 판이었다.

“누구 말이요?”

노동자는 학생이 가리키는 늙은 노동자의 뒷모습을 보고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저 안천복 아바이 말이요? 왜 그러오?”

“예―?!”


학생들은 물론 교원까지 완전히 경악 속에 몰아넣은 안천복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고 있었다.

그는 몇 걸음 만에 중얼거렸다.

“떠드는 데는 선수들이라니까!”

그때 뒤에는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까만 치마에 흰 적삼을 입은 처녀였다. 안천복의 얼굴에는 돌아보기에 앞서 미소부터 떠올랐다.

“지금 출근하냐?”

“예, 밤새 힘드셨지요? 몸은 일없어요?”

“일없지 않으면?”

“물배관을 고칠 때 다치지 않았어요? 수압이 몹시 높았겠는데…….”

“높기야 무슨, 그저 물배관이지.”

“아버지.”

“왜?”

“이자 학생들에게 무슨 그런 말을 해요?”

“들었냐?”

“들었어요.”

딸의 얼굴에는 안타까운 빛이 짙게 나타났다.

“아버진 왜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 그렇게 말해요? 그러니 좋은 일을 하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잖아요?”

안천복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난 생각한 대로 말했다.”

“누가 그걸 모르나요?”

“생각해 보렴. 얘야, 배관이 이상이 생기지 않게 미리부터 잘 보수했어야 수리공이 잘한 거지, 터진 다음에 막은 게 무슨 잘한 일이냐? 일을 미리 못했다구 비판을 받아야지! 옳은 말루 하면야 터진 배관을 소문내며 막을 게 아니라 아무 탈없는 배관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야 일 잘하는 수리공이지!”

“아버지!”

딸은 잠시 동안 입술을 깨물었으나 곧 말을 이었다.

“그 말도 옳긴 하지만 터진 걸 더 터지기 전에 막은 건 사실이 아니나요? 막지 못한 것보단 비할 수 없이 훌륭하잖아요?”

“그래, 죽는 것보단 까무라치는 게 낫겠지.”

“아― 정말! 아버지, 너무 자꾸 그러지 마세요. 사람들이 뭐라는지 알아요? 아버질 이상한 사람이래요.”

“나를 이상하다구? 그 참 이상한 사람들이로구나.”

딸은 그만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나 곧 자신을 책망하는 듯한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일을 하구도 평가를 받지 않으려 하니까 그렇지요. 그건 평가를 받는 다른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지난밤의 일만 해두…….”

“지난밤의 일은 잘된 일이 아니다. 사고다.”

“사고를 막았는데 왜 사고에요? 아버지 말처럼 하면 위훈이란 건 있을 수 없겠구만요?”

“위훈?”

안천복은 입술을 뿌주름히 내밀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들을 때의 습관인 것 같았다.

“위훈! 위훈!”

그는 화가 난 듯 곱씹었다.

“잘못될 뻔한 걸 막은 게 무슨 위훈이냐? 그렇게 생각하면 위훈이란 건 사고와 비슷한 게 아니냐?”

“예?! 아버진 정말 한심해요!”

“한심하다? 허허허.”

호탕하게 웃던 안천복은 옆의 갈림길에 들어섰다.

“난 여기로 가겠다.”

“왜 거기로 가요?”

“당 위원회에 좀 가련다.”

“예?”

딸은 한달음에 달려가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그만두세요, 아버지. 오늘은 제발 그만두세요. 예?”

“허―? 당원이 당 위원회로 가는데 넌 왜 이렇게 울상이 되어서 야단이냐?”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할지 알기 때문에 그래요. 사고와 같은 것이니 방송이나 속보를 취소해 달라구 하려는 거지요? 그만두세요. 아버지, 자꾸 그러면 간부 동지들도 좋아하지 않아요.”

“너는 당원들이 간부들을 기분 좋게 해주려고 당 위원회를 찾아가는 줄 아느냐?”

“그건 그렇지만. 아버지, 이번만은…….”

안천복은 잠시 딸에게 팔을 잡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더니 한숨을 쉬었다.

“하긴 갈 필요가 없기도 하지. 벌써 다 떠들어놓았으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지. ……됐다. 가봐라. 늦겠다. 난 작업반으로 가겠다.”

안천복은 작업반 쪽의 길로 돌아섰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딸은 가늘게 한숨을 내쉬고 자기 길로 돌아섰다.

뒤에서 ‘영순 동무!’ 하고 부르는 소리가 울렸으나 그는 발치를 내려다보며 걷기만 했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다른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2


영순이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무척 존경했다. 그 시절에는 집에서 제일 ‘높은’ 아버지라는 것으로 하여, 가슴을 장식하고 있는 훈장과 메달의 눈부신 광채로 하여 존경했다. 마을의 조무래기들은 이렇게 말했다.

“영순이네 아버진 훈장 메달이 가득해. 세상에서 제일 많을 거야!”

그러면 영순은 자랑스레 말하곤 했다.

“미국놈들과 싸울 때 받은 거야.”

“야, 그럼 영웅이구나!”

영순이도 아버지를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영순은 아버지가 어마어마하게 큰 공장을 고장 없이 돌아가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으로 하여 존경했다.

공장에서 고장이 생기면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아버지를 찾아오곤 했다. 어린 영순은 아버지가 아니면 누구도 고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없었고 못하는 일이 없었다. 영순이 풀지 못해 울상이 되었던 산수문제도 아버지에게 가면 척척 풀렸고 학교의 철봉대와 그네들도 아버지가 만들었다. 마을에서는 전기가 고장나도, 누구네 집 수도가 고장나도 아버지를 찾았다. 그러면 아버지는 기다리고 있었던 듯 공구주머니를 들고 나섰고 고장나기 전보다 더 멋있게 고쳐놓곤 했다. 그때마다 영순은 아버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영순은 항상 존경받는 아버지만을 보아왔다. 때문에 세상 사람이 모두 아버지를 존경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믿었다. 아버지는 가장 훌륭한 사람이니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나쁜 사람일 것이었다.

언젠가 한번 영순은 아버지네 직장에서 조직한 야유회에 아버지를 따라간 적이 있었다. 야유회에서는 별의별 놀이를 다 했고 별의별 음식이 다 있었다. 아버지는 딸의 앞에 그가 좋아하는 과실이며 맛있는 것들을 놓아주었다. 그러나 영순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한 보물찾기 놀이에도 끼어들지 않았다. 아버지 옆의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불만에 가득 찬 눈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응시하기만 했다. 그가 왜 그러는지는 누구도 몰랐다. 아버지도 어리둥절해서 근심스레 딸의 이마를 짚어보기까지 했다.

온 하루를 쫄쫄 굶은 채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와 단둘이 되자 영순은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너 왜 그러니?”

영순은 울면서 말했다.

“그 사람이 왜 아버지를 막 욕해요?”

아버지는 더욱 놀랐다.

“누가 욕했단 말이냐?”

“그 수염 가득한 사람, 그 사람이 아버지를 막 욕했어.”

“수염 가득한 사람? 오―”

그제야 알아들은 듯 아버지는 딸의 조그마한 얼굴에 구슬처럼 줄지어 굴러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주며 껄껄 웃었다.

“그래서 뚱―해 있었구나, 응?”

“그 사람이 아버질 막 욕했어. 아버진 왜 가만있었나? 분하지두 않나?”

어린 영순의 머리 속에는 ‘수염가득한 사람’이 아버지에게 하던 말이 가득 차 있었다.

“안 동문 무슨 일하는 본새가 그런가? 응? 내가 믿었던 안천복이하군 달라. 내가 잘못 본 것 같단 말이야. 그러고도 반장한테 대들어? 뭘 잘했다구? 일만 좀 많이 하면 그만인 줄 알아? 응? 나라 재산이 제 이름을 내는 밑천인 줄 아는가? 내 어젯밤에만 만났어두 귀쌈을 갈겼을 거다, 덜돼 먹었어, 응? 덜돼 먹었단 말이야!”

그 외에도 많은 말을 했으나 어린 영순의 머리 속에 남은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았다. 명백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를 몰아대고 욕하는 말이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영순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은 아버지에게 하는 욕질이었다.

아버지가 더 높은 목소리로 그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들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처음부터 마감까지 수굿하고 듣고만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서도 아버지는 분해서 우는 영순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좋은, 이 세상에서 제일 좋고 고마운 아저씨다.”

“그런데 왜 아버지를 욕하나?”

“그거야 아버지가 잘못했으니 욕한 거지.”

영순은 깜짝 놀라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도 잘못하는 거 있나?”

“그럼 있지!”

“정말?”

“정말이다.”

“…….”

영순은 아버지도 잘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위압되어 타박타박 걷기만 했다.

그러나 몇 발짝 만에는 보이지 않는 무엇에 항거하듯이 소리쳤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어떻게 아버지가 잘못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 아버지는 잘못할 수 없다. 모르는 것 없고, 못하는 일이 없고, 그렇게 훈장 메달이 많은 아버지는 결코 잘못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나쁜짓은 그 ‘수염 가득한 아저씨’이다!

“영순아, 그 아저씨는 좋은 아저씨다. 아버지에게는 제일 고마운 사람이다. 알았느냐?”

하고 말하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엄한 표정이 어려 있었다. 갑자기 짓는 엄한 표정에 영순은 머리를 까딱거렸다.

“알았어요.”

그러나 영순은 결코 아버지의 말에 동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식의 생각을 만들어냈다.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에게는 누가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누구에 대해 물어도 좋은 점만 말해 준다. 마치 나쁜 사람이란 하나도 없는 듯이 말해 준다. 아버지가 ‘수염 가득한 아저씨’를 ‘좋은 사람’이라고 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영순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태어나서부터 간직해 온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에 ‘모욕’을 가한 그 아저씨를 주저없이 ‘나쁜 사람’으로 결정해 버렸다. 때문에 다음해 그 수염 가득한 아저씨가 세상을 떠났다고 슬픔에 잠겨 아버지가 말했을 때도 영순은 조금도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그렇듯 아버지에 대한 영순의 존경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자라서 철이 들면서도 존경은 덜어지거나 손상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생각했던 것처럼 영웅도, 비상한 사람도 아니며 공장에 수두룩한 보통 수리공의 한사람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나 아버지가 가장 훌륭한 사람 중의 한사람이라는 데서는 자그마한 의혹도 없었다. 이것은 영순의 긍지였고 자랑이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하면서부터 영순의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대한 이런저런 말을 거의 매일같이 들어야 했는데 그 속에는 비난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괴벽한 영감’, ‘까다로운 영감’이라고까지 했다. 부모들이 늙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더 슬픈 것은 부모들의 늙음이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 영감 나이 들수록 점점 더 괴벽해져…….”

“늙으면 그렇게 되는 모양이지.”

“그 영감 인제는 좀 그만 조용히 있으면 좋겠는데.”

처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영순은 거의 공포에 질렸었다. 이제까지 믿어왔던 것, 신성한 것으로 간직해 왔던 존경이 일순간에 밑뿌리째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 그것은 흔들렸고 무너져갔다. 무너진 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허전한 공백이었다.

다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영순은 혼자서 실컷 울었다. 평생 공장을 위해 일해 온 아버지의 말년이 그렇게 장식되는 것이 슬펐다. 그리고 분했다.

차라리 다른 공장에서 일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운명은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에서 딸도 일하게 만들어놓았다.

영순은 아버지와 심중하게 말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은 저녁 식사가 끝난 후의 조용한 어느 날 저녁에 실행되었다.

그날 저녁 영순은 긴장하여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했다. 아버지에게 그렇듯 심중한 말을 해보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아버지, 지금은 그전하구 달라요. 공장만 해도 얼마나 커졌어요? 또 사람들도 달라지구. 지금은 누구나 다 일을 더 많이 하려고 하고 있어요.”

“일을 적게 하려고 하면 그거야 반동이지.”

“그런데 아버진 왜 늘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결함을 말씀하세요? 아버진 공장에서도 칭찬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비난하고 있어요.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을 안하면서 말이에요. 그러니 사람들이 아버지를 좋아할 수 있어요?”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말하고 있다. 아버지가 아니래도 말이다.”

“아버지, 제 말을 좀 마저 들어주세요.”

“듣고 있다.”

“아니에요. 아버진 제 말을 들으시려고 안해요. 그저 아버지 생각만 하고 있어요.”

“너도 내 말을 들으려고 안하는구나. 자기 생각만 말하고…….”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성을 내거나 낯빛이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느슨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 미소가 영순을 더 초조하게 했다.

“아버지, 전 심중하게 말하고 있어요.”

“나도 심중하게 듣고 있다.”

“심중하게 듣는다면서 왜 계속 웃어요?”

“너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 것이 너무 대견해서 그런다. 세월이 빠르구나.”

“농담이 아니에요, 아버지!”

“나도 농담이 아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고 말았었다…….

그후의 몇 차례 이야기도 이렇게 끝났다. 아버지는 영순이 말을 꺼내면 미소부터 짓는 것이었다. 성을 내거나 큰소리를 친다면 울면서라도 끝까지 말해 보련만……. 자식으로서 부모들에 대한 이런저런 뒷소리를 듣는 것은 제일 큰 고통 중의 하나이다.

요즘에 와서 영순의 고민은 더 커졌다. 이제까지는 그 고민이 가정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가정을 벗어나 2중 3중의 의미를 가진 고민으로 된 것이었다.

“아버진 무슨 일을 하오?”

하루라도 못 만나면 자기는 앓아 누울 것이라고 즐겨 엄포를 놓는 돌격대장은 어느 날 영순에게 물었었다. 영순은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이 공장에서 일해요.”

“우리 공장에서?”

돌격대장은 눈이 둥그래서 다그쳐 물었다.

“어느 직장이요? 무슨 일을 하오?”

“저―”

영순은 한순간 당황했다.

“어느 직장이요? 응?”

“그건…… 비밀이에요.”

“비밀?”

돌격대장은 껄껄 웃었다. 총각들은 사랑하는 처녀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흔히 매우 신비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돌격대장도 영순의 ‘비밀’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 비밀을 언제 말해 주겠소?”

“언젠가구요?”

이미 침착성을 되찾은 영순은 꾀바른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가 절 어른이라구 할 때요.”

“그건 언제쯤일까?”

“글쎄요.”

“재미있는데?”

웃고 헤어졌으나 영순의 마음은 편안치 않았다.

어차피 어느 때든 그의 아버지가 공장에서 괴벽하고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돌격대장에게 알려지게 될 것이다.

영순은 그 일로 하여 자기들의 관계에 금이 갈까 봐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일로 흔들린다면 그런 사랑은 없으니만 못할 것이다. 자기들의 사랑이 그런 것이 아님을 영순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면서 베풀 관용과 동정이 싫었다. 그것은 더욱 큰 고통일 것이었다.

그는 결코 아버지를 동정의 대상이 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영순의 존경은 아직 너무도 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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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웅빈(소설가) --------------

줄곧 단편만을 고집하면서 북의 소설계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웅빈은 [딸의 고민]에서 실적주의에 물든 영웅주의의 허구성을 강하게 비판한다. 상부로부터 인정을 받고 이를 발판으로 더 좋은 자리로 이동하기 위하여 오로지 자기 직장의 외형적 실적만을 높이려고 하기 때문에 자재가 필요 이상으로 소모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관료주의자들의 고질적인 병폐를 묘사하는 대목에서 작가의 강한 민주적 지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잘못된 풍토로 인하여 허황한 영웅주의가 횡행하게 되고 이것에 익숙하여 이제 문제점마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둔감해진 관료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부분에서 조작된 영웅을 통하여 인민을 오도하는 것이 야기시킬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는 작가의 성찰을 읽을 수 있다. 영웅을 강조하는 사회가 가질 수밖에 없는 내적 위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실적주의의 영웅주의에 깊이 빠져 그 위험성을 감지하기 힘든 상황에 빠져 있는 애인과 이러한 것에 치를 떨면서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를 고쳐나가려는 아버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처녀를 중심에 놓음으로써 작품이 상투화되는 것을 막고 있는 작가의 기량도 눈여겨볼 만하다.(김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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