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2)

4월은 너무 잔인한 계절이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후보자들에게는. 곧 5월이 온다. 계절의 여왕이…… 온갖 꽃이 만발하고 따스한 햇빛은 눈길이 닿는 곳 어디에서나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작가들 중에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시나 소설에서 문학적 장치를 제거하여 지극히 단순한 스타일인 ‘말년의 양식’을 추구하게 된다고 한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노년에 초등학교 어린 애들에게나 어울릴 그런 단순한, 그러니까 유치한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82세까지 살았다.)

황동규 시인 역시 시인들이 늙으면 시의 힘이 떨어지고 대게 시를 망친다고 했다. (그는 현재 76세이다.)

노인은 두 번째 아이이다. (소포클래스)

1. ‘첫사랑 애인’을 쓸 때 미국 작가 오 헨리를 떠올렸고 아주 단순한 멜로드라마를 만들려고 했다. 이미 발표했지만 다시 그 소설을 읽으면서 충분히 쓰지 못했고 메시지를 담지 못했다고 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가끔 실제 목격하게 되는 사랑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로 이어지는 이야기 말이다. 사랑에도 지극한 인내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늙은 변호사의 인생역정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험난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고치고 고쳤다. 나의 편집광적 고질병. 완성을 위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것이다. 그건 법조계에서 가끔 목도하는 인생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여야 했던 것이다.

2. 중편소설인 ‘달빛 죽이기’ ‘시인의 죽음’ ‘결별의 기억’ ‘인간의 초상’을 다시 수정 보완하였다. 끊임없이 불안 강박에 시달리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인간의 초상’은 내가 (월남전 전쟁이 끝난 지 40여 년이 지나서) 베트남을 다녀온 후 수정 보완하였기 때문에 장편소설이 되었다.

장편소설은 단편소설 (Short story) 및 노블레트 (Novelette)라 불리는 중편소설 (Short novel)과 구별된다. 서양에서는 장편소설은 Roman 혹은 Novel이란 용어로, 단편소설은 Short story란 용어로 표시하여 처음부터 확연히 구분해서 쓰고 있다. 단편소설은 분량이 짧다. 그래서 짧은 길이는 단편소설로 구분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짧은 이야기가 모두 단편소설인 것은 아니지만 장편소설이나 중편소설처럼 분량이 긴 단편소설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애매하다. 오로지 분량을 기준으로 한다면 긴 단편과 짧은 중편을, 긴 중편과 짧은 장편을 구분하는 게 간단치 않다. 가령 최인훈의 「광장」은 내가 보기에는 틀림없이 중편이지만 작가 스스로 장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소설은 당초에 중편으로 발표되었지만 나중에 수정 보완을 거치면서 분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작가의 주장대로 장편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짧은 장편이어서 그 소설은 항상 작가의 다른 소설 「구운몽」과 함께 묶여서 출판되었다.

단편소설은 단일한 사건을 제시하고 단일한 주제를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짜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단숨에 읽혀질 수 있고 유일하고 단일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장편소설은 길고 복잡해서 극도로 압축된 양식인 단편보다 다양한 인물들과 복잡하게 얽힌 플롯, 충분한 배경 설명과 필요 불가결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갈 수 있다. 그것은 모든 걸 포괄한다.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소재란 없다. 그러므로 스토리 라인이 단선적이기보다는 여러 갈래로 흩어져서 복선적이다. 장편에서는 긴 시간적 배경과 광대한 공간적 배경을 중심으로 하여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상호 작용을 하면서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에 역사소설은 필연적으로 장편이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긴 이야기이다.

그러면 중편소설은 어떠한가. 우선 그 길이가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의 중간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단편소설과 장편소설로부터 중편소설을 구분하는 것은 길이라는 애매모호한 기준에 의존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고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편의 경우 장편과 단편소설 사이에 가로놓인 분량의 경계를 엄밀하게 구분해 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편소설과 장편소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단의 특징들이 있다. 단편소설이 흔히 하나의 행위를 통해 인물을 보여주고, 장편소설은 넓은 배경과 여러 인물들, 그리고 흔히 오랜 기간을 사용한 반면, 중편소설은 제한된 인물 수, 비교적 짧은 기간, 그리고 하나의 연속된 사건들에 집중한다. 그러므로 중편소설은 단편소설의 압축성과 장편소설의 장점을 결합시킨 소설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달빛 죽이기’에서 (위대한) 건축가란 무엇인가? 나는 옛날에 건축가가 되는 것이 원대한 꿈이었다. 그러므로 지금도 건축가와 건축에 대해 관심이 많다.

내가 그걸 설계했더라면.

나는 매일처럼 아파트의 뒷 베란다에서 그 흉물스러운 건물을 건너다본다. 백 년을 넘게 지탱해야 할 건물인데 내 눈에는 벌써부터 흉물처럼 보인다. 서울고등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 건물 말이다. 법정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5층 이하 폐쇄적인 창문들은 마치 교도소 건물을 연상시킨다. 나는 30년이 넘게 그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찬란한 햇빛이 찾아드는 남향 건물을 그렇게 고압적이고 폐쇄적으로 지을 필요가 있었을까. 법원 건물이니까 무조건 웅장하게 지어서 어떤 종류의 권위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러므로 건축미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오늘날 건물은 단순하게 비바람을 피하기 위한 안락한 은신처가 아니다. 건축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물리적 공간을 설계하고 건설하는 과정을 통해서 구체화되는 예술이자 기술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다. “훌륭한 건축물에서 받는 인상이란 그 건물이 어떤 하나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건축은 무엇인가를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 무엇인가를 찬미한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찬미하지 않는 건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산가족으로서 분단과 이산 문제에 어쩔 수 없이 관심이 많다. ‘시인의 죽음’에서 진정한 시인은 어떻게 자신의 죽음과 대면하여야 하는가? 나는 진정한 시인은 시인이니까 그렇게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적 감수성이 전혀 없는 내가 시인을 동경한 적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넓은 밭 동쪽 끝으로 /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최후에 관해서는 자진해서 월북하는 험난한 여정에서 미군 폭격에 사망하였다는 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 중 포로 교환 때 월북을 선택했다는 설, 북에 부역한 죄로 오끼나와 미군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되었다는 설, 평양 감옥에 수감 중 미군 폭격에 폭사 또는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자진 월북설에 의하면, 6‧25 전쟁 중인 1950년 9월 25일경 월북하던 중 동두천의 소요산에서 미군의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것이다. 일본 오끼나와 미군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되었다는 설에 의하면, 그는 낙동강 전선 전투에서 북에 부역한 죄로 미군 포로가 되어 오끼나와 형무소로 이송되었는데 어떤 아동문학가가 그 군사재판을 우연히 참관하였다는 것이다. 그때 미군 장교인 재판장이 사형을 선고하고 나서 ‘할 말이 없는가?’하고 묻자 그는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시 하나를 읽게 해 달라’고 간청하면서 자신의 대표시를 나직이 암송했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정지용은 분명히 평양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마지막 행적에 대한 목격자는 없다. 그래서 정치보위부에서 조사받기 위해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했거나, 평양 형무소에 수감 중 미군 폭격에 폭사했거나 또는 총살형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것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 중 포로 교환 때 월북을 선택했다는 설에 의하면, 정지용은 북한 인민군의 문화공작대원이 되어 낙동강 전선에 강제 투입되었는데 어느 전투에서 미군에 의해 포로가 되었고 다른 인민군 병사들과 함께 연대 CP에 끌려가 포로 심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는 갈린다. 국군과 미군의 합동 포로 심문 과정에서 비록 가명을 썼지만 그가 문화공작대로 내려온 정지용 시인이라는 신분이 발각되었고, 그 후 서울에 있을 당시 북에 부역한 중대한 반역죄가 인정되어 오끼나와 미군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되었다는 설과 그는 운 좋게도 신분이 발각되지 않고 부산 임시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1951년 봄쯤 LST를 타고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다시 이송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1953년 봄부터 전쟁 포로들의 송환 심사가 개시되었다. 그는 비록 가명을 썼지만 심사 과정에서 결국 신분이 탄로날 것이고 문화공작대원으로 인민군에 복무했기 때문에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북으로 송환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성립된 후인 8월과 9월 사이에 북으로 돌아간 7만여 명의 인민군 포로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모윤숙 시인이 정지용을 찾기 위해 포로수용소를 뒤지고 다녔지만 당시 북한행을 택한 포로 명단에는 그가 1933년생 강원도 출신 Park Chang Hyun (포로 번호 0098017)로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문화관광부가 2003년 발간한 공식자료에는 ‘정지용 시인은 6‧25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했고 정치보위부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납북되었다’라고 되어있다. 이 소설은 나름대로 이 공식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3. ‘가발 권하는 사회’를 다시 손질하였다.

한번 끝난 소설을 또 꺼내서 고치고 보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고, 또한 작중인물이 자신의 이야기가 미진하다고, 빠진 게 많다고 계속적으로 아우성을 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나의 경우에는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60년 만에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나왔다. 만시지탄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변호사를 시작했을 무렵에는 간통죄는 붕어빵처럼 거의 무조건 1년 정도 실형이 선고되었다. 그래서 간통을 한 당사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합의를 해야 했다. 그 시절의 코미디 같은 풍속도는 법제사적으로 기록되어야 할 만하다. 그리고 지독한 위선과 모순이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었단 말인가. 남자들이여 가발을 쓰세요.

여자의 원한이란. 일부함원 오월비상 一婦含怨 五月飛霜

4. ‘찍새와 뽀찌’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신평 교수는, 전관예우와 법조브로커는 한국 법조가 안고 있는 양대 악의 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가 사건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은 채 소송 서류에 도장만 찍어주고 그 대가로 3000만원이나 5000만원을 받는 것은, ‘그것은 허용돼서는 안 되는 뇌물’ 이라는 일본 최고재판소 대법관 출신인 소노베 선생의 말을 전했다.)

그런데 악의 축이라고? 그렇게 심한 말을. 전관예우는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국민들의 그러한 인식이 더욱 문제가 아닐까? 브로커 역시 먹고 살아야 하니까, 배운 게 그것 뿐인데,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까 음으로 양으로 (위대한 전통인)전관예우를 받고 있고 혹은 여전히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기에다 브로커까지 고용하고 있는 일부 변호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네가 따따부따 할 것은 아니라고, 악마의 손에 입을 맞추고 감옥으로 들어가든 말든 너나 잘해, 라고 쏘아부칠 것인가. 묵묵부답일 것인가. 아니면 먹고 살려니까 어쩔 수 없다고…… 조금만 이해해주면 안 되겠나…… 라고 말할 것인가.

나는 지금 ‘척결剔抉’이니 ‘박멸撲滅’이니 하는 어려운 단어들이 떠오른다.

여기에 올리게 될 단편소설 찍새와 뽀찌는 내가 살을 붙이긴 했지만 기본 뼈대는 實話이다. 진짜 실화.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실제 사실을 오용한 것도 있을 수 있다.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비극적 변호사의 그 후 인생역정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들의 불편한 진실이란.

전관예우와 법조 브로커.

그게 얼마나 고질적이고 뿌리 깊은 것인가. 우리 중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돈은 악마인데 악마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는가.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욕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그 심각한 폐해를 인정하고 그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서초3동과 서초4동은 그들의 서식지가 아닌가. 1000명이 넘게 우글거리고 있다고 하니까. 여기저기서 불쾌한 악취가 풍기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적나라한 실상을 똑똑히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대다수 변호사들은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우리들은 참으로 무능하다. 그렇지 않은가.나는 지금 자정 노력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감언이설에 속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5. ‘문화재보호법 제92조’는 인간의 독선과 아집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법과대학의 기말고사나 사법시험에서 중요한 쟁점을 빠뜨리면 낭패를 보게 된다. 합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호사가 중요한 법률상담이나 법률자문에서 핵심 논점을 빠뜨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변호사의 윤리란 무엇인가? 비밀유지 의무와 공공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에 변호사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