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나무 들깨나무



이상화




교실에는 언니의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언니 지원이는 테니스 선수다. 그런데 얼마 전 열린 전국체전에서 최우수 선수로 뽑혀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밥까지 먹고 온 것이다.
“대통령 아저씨와 악수 할 때는 손이 너무나도 많이 떨렸습니다…… 그리고 청와대 식탁에는 제가 처음 구경하는 갖가지 음식들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반 아이들은 모두 눈을 깜박이며 언니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다. 그런데 지혜는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공책에 괜한 낙서만 긁적이고 있다.
언니의 ‘청와대 방문 소감’이 끝나자, 선생님과 아이들은 모두 일제히 큰 소리로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교실에서 언니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는 사람은 지혜밖에 없다.
“지혜는 참 좋겠다. 저렇게 자랑스러운 언니를 둬서. 지혜 너도 언니하고 악수했니?”
“아뇨.”
“그럼 언니 손 씻기 전에 빨리 언니랑 악수해. 그럼 너도 대통령하고 악수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선생님의 농담에 반 아이들은 지혜를 부러운 듯 쳐다보며 ‘맞아, 맞아’라고 맞장구를 친다.
지혜는 언니가 밉다. 언니는 뭐든 못하는 것이 없다.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척척박사 만능 재주꾼 같다. 그런 언니에 비하면 지혜는 뭐하나 제대로 신통하게 해내는 것이 없다. 지혜에게 언니는 아무리 기를 쓰고 넘으려 해도 넘을 수 없는 산 같은 존재다.
“넌 누굴 닮아서 그렇게 달리기를 못하니? 아버지는 너 만했을 때 아주 땅을 다 날라 다녔다. 날라 다녔어.”
운동회가 끝나고 아버지는 어느 나라 것인지 공중에서 떨어진 국기 한 장을 엉거주춤 밟고 서서, 엄마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지혜는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는 키가 아버지 어깨 밖에 닿지 않는다. 언니는 아버지 닮아서 키도 훤칠하게 큰데, 지혜는 엄마처럼 키가 작다. 아버지와 엄마는 초등학교 선후배인데 한 동네에서 살다가 결혼까지 골인하셨다.
“이게 다 니네 엄마 닮아서 그렇지 뭐. 니네 엄마가 학교 다닐 때 달리기를 또 얼마나 못 했게. 내가 보고 있기가 오죽 답답했으면 아주 니네 엄마 대신 달리고 싶드라니까.”
엄마는 아버지를 슬며시 째려본다. 아버지는 신이 나서 언니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고 있다. 언니 손에는 열권도 훨씬 넘는 공책이 들려 있다. 운동회에서 청백전, 동네별 대항전 달리기를 언니가 모두 우승으로 이끈 것이다. 언니는 거의 마지막 주자로 달리는데, 타조처럼 발이 빨라 상대 선수를 쏜살같이 쫓아가 결국 우승 테이프를 끊고 마는 것이다. 아버지 말씀에 지혜는 뽀로통 입을 내밀고, 딸랑 한 권 손에 든 공책을 둥글게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다.
“지혜야, 이 공책 다 너 줄게. 너 가져. 나는 어차피 내년에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됐어, 필요 없어.”
지혜는 손으로 슬쩍 언니를 밀친다. 언니는 고개를 흔들며 지혜를 쳐다본다.
“지혜, 너 언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그럼 못 써.”
가만히 보고 계시던 엄마가 지혜를 나무라신다. 또 착한 언니 때문에 지혜만 못된 애가 된다. 언니는 착하고 성실하다고 동네 어른들에서부터 선생님들까지 칭찬이 자자하다. 지혜는 언니가 착한 게 아니고, 고도의 기술로 단순히 착한 척 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만 봐도 분명히 그런 것이라고 지혜는 뱁새눈을 뜨고 다시 한번 언니를 째려본다.
아버지는 언니 손을 잡고 보무도 당당하게 성큼성큼 운동장을 나선다. 그 뒤를 엄마가 뒤뚱뒤뚱 오리처럼 쫓아간다. 지혜는 그런 엄마의 뒤를 또 새끼 오리처럼 쫄랑쫄랑 쫓아가고 있다. 아버지와 언니는 타조고, 엄마와 자신은 오리 같다고 지혜는 생각한다.
‘치, 오리가 감히 타조와 어떻게 어울리겠어!’
지혜는 길가에 찌그러져 있는 깡통을 발로 뻥 걷어찬다.
“야, 니네 언니 또 기합 받는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 바닥을 쓸고 있는데, 창문을 닦던 은숙이가 외친다. 지혜는 얼른 창가로 다가가 운동장을 내려다본다. 노란색 테니스공이 코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한쪽 귀퉁이에서 테니스부 언니들 모두 엎드려뻗쳐 기합을 받고 있다. 무섭기로 유명한 테니스부 호랑이 선생님이 팔짱을 낀 채 뭐라고, 뭐라고 혼을 내고 계시다.
‘쌤통이다, 쌤통. 기합이나 잔뜩 받아라.’ 지혜는 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지혜가 마을 회관을 지나는데 할아버지들 몇 분이 따듯한 가을햇살을 쬐며 회관 평상 앞에 나와 계신다. 은숙이 할아버지가 안경 너머로 또 지혜를 뚫어져라 쳐다보신다.
“안녕하세요?”
지혜는 인사를 하며 이번에는 제발 할아버지들이 조용히 넘어가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음. 니가 뭐 저 거시기 윗집 공치는 집. 그 애 큰애 맞지?”
“아니에요. 할아버지. 저는 동생이라구요. 동생요.”
“그랴, 느이 언니랑 하두 비슷하게 생겨가지고 자꾸 헤갈려 버리는 구만이.”
“제가 우리 언니랑 비슷하게 생긴 게 아니고, 할아버지들 눈이 자꾸 침침해져서 그러신 거라구요.”
지혜는 뭐 대단한 거라도 가르쳐 주듯이 할아버지들을 삥 둘러보며 또박또박 큰 소리로 말한다. 은숙이 할아버지는 검버섯 핀 얼굴을 긁으며 ‘네 말이 정답이구나’ 라며 ‘허허허’ 웃는다. 지혜는 속으로 벌써 이게 몇 번짼지 모르겠다며, 가방을 신경질적으로 고쳐 멘다.
“거시기, 그 집 할아배 살아있음 그 큰손녀 자랑을 월매나 하고 댕겼을까!”
“그럼, 그럼, 그 영감탱이 아들자랑은 또 좀하고 다녔어.”
지혜 등 뒤로 할아버지들이 두런두런 얘기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둘째 손녀 자랑하고 다녔을 거라는 소리는 귀를 씻고 들을 내야, 들을 수가 없다. 지혜는 학교에서도 선생님들한테 ‘네가 누구 동생 맞지?’, 먼 친척 아저씨들한테는 ‘네가 테니스 하는 애 맞지?’ 그런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들었다. 지혜는 이제 그만 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 언니는 운동 잘 하고 있든?”
마당가에서 엄마랑 같이 들깨를 털고 있던 아버지가 물으신다. 학교에서 운동하고 있는 언니가 궁금해 아버지는 늘 습관처럼 지혜에게 묻곤 하신다. 지혜가 학교에 잘 갔다 왔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으신가 보다. 지혜는 단체기합을 받던 언니를 떠올리며 말한다.
“몰라요 잘, 공 가지고 퉁퉁거리며 노는 것 같기도 하고.”
“니네 언니가 그럴 리가 있니? 운동하기 전에 슬슬 몸부터 푸는 거겠지!”
“그나저나 이제 곧 날도 추워 질 텐데, 우리 지원이 운동하기 점점 힘들어서 어떡한대요.”
엄마가 머리에 쓴 수건을 고쳐 메며 말씀하신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뭐. 어디 국가대표가 맨 입으로 되는 거야? 뭔가 시작을 했으면 또 확실히 끝을 봐야지.”
지혜는 뭔가 확실히 끝을 볼 수 있는 장래가 펼쳐진 언니가 부럽다고 생각한다. 지혜는 자신은 뭘로 끝을 봐야 될지 모르겠다며, 깻단에서 들깨가 쏟아지는 걸 무심히 보고 있다.
‘치, 이름만 지혜라고 저주면 뭐해, 난 하나도 지혜롭지 못한 걸!’
지혜는 부모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 보다, 여름에 깨를 털고 마당 한 귀퉁이에 수북이 쌓아놓은 참깻단을 본다. 지혜 눈에 참깨나무는 들깨나무에 비해 훨씬 더 키가 커 보인다.
“엄마, 참깨랑 들깨 중에 뭐가 더 비싸요?”
“당연히 참깨가 비싸지. 참깨에서는 참기름이 나오고, 들깨에서는 들기름이 나오는데 그럼.”
“그렇군요. 모든 이치가 다.”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모든 이치가 다 그렇다니?”
“그냥 저 혼자 한 생각이에요.”
“넌 가끔 보면 뚱딴지같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구나.”
“그러게 말야. 우리 지원이는 장차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가 될 텐데, 우리 지혜는또, 뭐가 될지 궁금하다니까.”
지혜는 아버지가 자기한테 궁금해 하는 것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작게 중얼거린다.
“그래도 최소한 들기름은 돼 있게죠 뭐.”
부모님은 지혜가 엉뚱하다며 웃으신다.
교실 스피커에서 4학년 학생들은 모두 6교시가 끝나고 운동장으로 집합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또 운동장 청소라도 시키려고 그러나, 암튼 제일 만만한 게 4학년이야.’
지혜는 투덜거리며 운동장으로 나간다.
운동장에는 호랑이 선생님과 테니스부 선수들이 일렬로 서 있다. 지혜는 언니와 눈이 마주친다.
“오늘 너희들을 운동장에 집합시킨 이유는 단 한 가지, 앞으로 우리 학교를 대표할 테니스 선수를 뽑기 위해서다.”
호랑이 선생님의 말에 순간, 지혜의 눈이 커진다.
“긴 말은 하지 않겠다. 우선, 꼭 테니스 선수가 되고 싶은 사람 한번 손 들어봐라.”
애들은 두리번두리번 서로를 쳐다볼 뿐, 아무도 손을 들지 못한다. 운동이 힘들다는 것과, 호랑이 선생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애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흠흠’ 선생님은 헛기침을 한차례하고, 애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신다.
“저요, 저 꼭 하고 싶어요.”
조용한 침묵을 깨고, 소리가 난 쪽으로 모든 시선이 쏠린다. 언니가 깜짝 놀라는 걸 지혜는 보고 있다. 손을 든 주인공이 바로 지혜이기 때문이다.
“음, 강지혜? 넌 강지원 동생이 아니냐?”
호랑이 선생님은 지혜와 지원이를 번갈아 쳐다보다 고개를 갸웃거리신다.
“그런데 넌 체구가 너무 작아. 평소에 운동 신경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아니에요, 선생님. 저도 언니 닮아서 잘 할 수 있어요. 정말 열심히 할게요.”
“그래?”
선생님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진다. 분명, 호랑이 선생님이 자신을 기특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지혜는 생각한다.
“안돼요. 선생님. 지혜는 절대…….”
“안 되긴 뭐가 안 된다는 거냐?”
언니가 소리 지르듯 외친 말에 선생님이 이마에 ‘콕’ 꿀밤을 놓으신다. 언니의 미간이 찡그려진다. 지혜는 ‘고것 참 잘됐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언니가 지혜를 보며 계속 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를 흔든다. 지혜는 언니의 눈길을 못 본 척 피한다.
선생님은 지혜 뒤로 생긴 지원자 너 댓 명과, 운동신경이 좋아 보이는 애들 몇 명만 남겨놓고 말씀을 이어 하신다.
“운동은 너희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다. 여기서 태반은 분명 중도 하차할 것이다. 나는 살아남는 사람하고만 같이 간다. 훌륭한 선수가 되고 안 되고는 모두 다 너희들의 몫이다.”
지혜는 금메달과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공항을 빠져 나오고 있다. 지혜 앞으로 수많은 카레라 불빛이 정신없이 터지기 시작한다. 지혜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마이크를 잡은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려고 지혜 앞을 막아선다. 지혜는 기자들 사이를 뚫고 아버지와 엄마 품에 안긴다. 지혜는 금메달을 아버지 목에 걸어준다.
“아버지가 얘 좀 말려주세요. 제 말은 아예 들으려고도 안 해요.”
지혜는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행복한 상상에 빠져있다, 순간 놀라 들고 있던 깍두기를 밥상 위에 떨어트린다.
“그냥 놔둬봐라. 분명 지혜 쟤 일주일도 못하고 나 죽었소 하고 포기 할 테니.”
“그렇게 포기할 걸 처음부터 뭐 하러 시작해요. 몸만 고생하지, 그럼.”
엄마가 말씀하신다.
“괜찮아. 그런 것도 다 정신 교육이야… 혹시 알아? 이번 기회에 쟤 게으름이라도 고칠 수 있을지.”
아버지는 ‘가방 사러갔다가 가방 끈이라도 구해오면 다행이지’ 하는 표정으로 지혜를 쳐다보신다. 지혜는 그럴수록 점점 오기가 생긴다.
‘언니는 분명 내가 자기처럼 유명해지는 게 싫은 거야.’
지혜는 어금니로 깍두기를 아작아작 힘주어 씹어 먹는다.
지혜는 아침 일찍 등교해서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테니스의 기본 폼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울지 마.”
“걱정 마,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언니는 지혜 손에 라켓을 지워준다. 그리고 다리 각도부터 발동작, 라켓이 이동하는 방향까지 자세히 가리켜주고, 당분간은 그 폼만 연습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럼 공은 언제부터 칠 수 있는 거야?”
“폼이 완전히 다 잡히고 나서.”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언제까지냐고?”
“그건 네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달려있지.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니?”
지혜는 라켓으로 바닥에 공을 자유자재로 튕기고 있는 언니를 보며, 역시 얄밉다고 생각한다.
언니는 지혜가 한 방에 ‘쓍’ 하고 날린 골을 받아내지 못하고 무릎 꿇는다.
‘내가졌어. 지혜야, 네가 나보다 나아.’
언니가 바닥에 주저앉아 지혜를 올려다본다.
‘언니 실력이 많이 약해 졌는데.’
지혜가 언니에게 손을 내민다.
“야, 너 연습 안 하고 뭐해. 정신 차려.”
지혜는 번쩍 정신이 들어 언니를 쳐다본다. 언니는 여전히 바닥에 공을 튕기며 몸을 풀고 있다. 행복한 상상은 역시 잠깐이라고 지혜는 생각한다.
하루밖에 연습하지 않았는데 지혜는 온 몸이 쑤씬다.
‘그래도 이쯤이면 뭐.’
지혜는 이 정도 힘든 건 얼마든지 견뎌내야 된다고 생각하며 스르르 눈을 감는다.
“지혜야 일어나, 일어나. 지금 안 일어나면 완전 지각이야.”
어느새, 아침이 되서 언니가 지혜를 흔들어 깨운다. 평소보다 두 시간씩 일찍 일어나는 게 지혜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지혜의 몸이 천 근 만 근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안 되겠다. 나 먼저 갈 테니까, 넌 빨리 뒤 쫓아와.”
언니는 가방을 챙겨 먼저 학교로 간다.
지혜가 지각해서 테니스부 전체가 토끼뜀으로 운동장을 두 바퀴 돈다. 테니스 부 애들이 모두 지혜를 째려본다. 지혜는 애들이 째려보건 말건 다리가 너무 아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싶다.
지혜는 식구들 몰래 안방 서랍에서 파스를 꺼내 다리에 부친다. 운동에 비하면 일년에 한번 하는 체력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들깨나무가 참깨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참아야 된다고 지혜는 이를 악문다.
“지혜야, 너 벌써 운동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 구나. 다른 애들은 벌써 반 이상 포기했다면서…… 그래, 앞으로도 잘 할 수 있겠어?”
“그럼요.”
지혜는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지만 사실,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공칠 기회는 한 번도 주지 않고 매일 폼 연습만 시켜 재미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또, 몸이 너무 피곤해서 수업 시간에 졸기 일쑤고, 숙제도 못해가서 담임선생님께 혼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운동한다고 공부를 게을리 하면 너 속 빈 깡통 밖에 안 되는 거야. 속 빈 깡통, 알겠어?”
선생님이 삼십 센티미터 자의 두꺼운 모서리로 지혜 손바닥을 때리신다. 손바닥에 잡힌 물집이 톡하고 터질 것 같아, 지혜는 콧등을 찡그린다.
“강지혜, 너 폼 연습한지가 얼마나 됐는데 여태 폼이 이것밖에 안 돼? 응. 몸이 이렇게 둔해 가지고 무슨 운동을 하겠다는 거야. 응?”
호랑이 선생님이 지혜 손에서 테니스 라켓을 확 뺏어버린다. 안 그래도 담임선생님한테 맞아 아픈 손바닥이 쓰라리게 아려온다. 찔끔찔끔 지혜 눈에서 눈물이 솟으려고 한다.
“강지원, 넌 도대체 동생을 어떻게 가리키는 거냐. 응?”
바닥에 흩어진 공을 바구니에 주워 담던 언니가 푹 고개를 숙인다.
“아무래도 강지혜 쟤는 운동할 몸이 아닌 것 같다고, 내가 너한테 몇 번을 말했어.”
“죄송해요, 선생님. 동생이 하두 열심인 것 같아서 차마 말할 수가 없었어요.”
“오늘 쟤네 담임선생님이 그러더라. 수업시간에도 완전히 엉망이라고. 괜히 자질 없는 애 운동시킨다고 공부도 못하게 하는 거 아니냐고 응.”
지혜는 언니와 눈이 마주친다. 언니를 보자 지혜는 참았던 눈물이 봇물 쏟아지듯 막 쏟아지기 시작한다. 지혜가 훌쩍훌쩍 우는 걸 보자 선생님은 뺏었던 라켓을 다시 지혜에게 주고, ‘흠흠’ 헛기침을 하며 코트 밖으로 나가신다.
“울지마.”
언니는 지혜 볼에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훔쳐 준다. 지혜가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자 언니도 눈물을 쏟을 듯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진다. 언니는 지혜를 다독거려 운동장 벤치로 데려간다.
“운동이 얼마나 힘든 줄 이제 알겠어?”
지혜는 설움에 겨워 울음이 그쳐지지 않는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돼서 지혜 입속으로 짭조름하게 들어온다.
“그만 울래도 바보같이.”
언니는 운동복 호주머니를 뒤지다 손목에 보호대를 풀어 지혜 얼굴을 닦아준다.
“너두 나처럼 힘든 운동을 한다길래 나는 그것이 싫었어. 운동이 얼마나 힘든 줄 내가 너무나 잘 아니까.”
지혜는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는지 훌쩍훌쩍 콧물만 목안으로 삼킨다.
“그래도 지혜 너 제법이더라. 난 네가 일주일도 못하고 포기할 줄 알았거든!”
지혜는 울음이 잦아져서 언니의 손목 보호대를 잠자코 만지작거리고 있다.
“나두 정말 운동하기 싫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어. 특히 너처럼 폼만 연습할 때는 지루해서 혼났어. 언제쯤이면 공을 칠 수 있나 나두 그 궁리만 했었지. 그래도 그 시기를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디면…….”
언니는 말을 멈추고 멋쩍게 웃는다. 지혜는 언니도 자기랑 똑같이 그렇게 어리광스런 생각들을 했다는 게 반갑다. 그리고 그런 언니가 정말 친근하게 느껴진다.
“난, 그래도 꼭 뭐 한 가지라도 언니를 이겨보고 싶었어. 언니는 나보다 뭐하나 못하는 게 없잖아… 치, 거기다 착한… 척까지 하고.”
지혜가 뻘게진 눈으로 언니를 슬금슬금 째려보며 말한다.
“뭐 착한 척?”
언니가 피식 웃는다.
“그래도 넌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졌잖아.”
“그게 뭔데.”
지혜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진다.
“넌 항상 누구 앞에서나 말도 재미있게 하고, 상상력도 풍부하잖아…… 난 너한테 항상 그게 부러웠어.”
“치, 난 또 뭐라고.”
지혜는 운동화 끝으로 바닥을 긁적거리며, 입을 삐죽거린다.
“그래서 내 생각에, 지혜 너는 나중에 작가가 됐으면 좋겠어.”
“작가?”
“그래 작가. 넌 상상력이 풍부하니까 분명,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을 거야.”
작가라? 작가 선생님? 지혜는 이번에는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만년필을 들고 있는 미래의 자기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본다. 테니스 선수보다는 작가가 더 멋있는 것 같아 지혜는 슬며시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훔쳐보듯 언니를 잠깐 쳐다보고 ‘씨익’ 웃음을 머금는다.
“내가 작가가 되면 언니는 꼭 들깨나무로 그려 놀 거야.”
“뭐, 들깨나무?”
“그래, 그런 게 있어. 언니는 몰라도 돼.”
지혜는 상상만으로도 통쾌해 ‘픽, 픽’ 웃음이 난다. 그런 지혜를 이번에는 언니가 빤히 쳐다본다.
“너 울다 웃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됐어, 됐어 그런 유치한 표현은…….”
“뭐?”
지혜와 언니는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며 웃는다.
어슴푸레 어둠이 내려앉는 교정을 빠져나오며 지혜는 언니 손을 꼭 잡는다. 굳은살이 백여 딱딱하지만 언니의 손은 크고 참 따뜻하다.




이상화1975년 충남 서산 출생. 2001년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4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마늘 냄새는 언제나 톡쏘지 않는다>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