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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실천위원회] 강정평화대행진 참가기-홍명진소설가
이름 파문 이메일
첨부 강정 평화대행진 참가기2.hwp (41.5K)



강정 평화대행진 참가기2--박일환 시인에 이어 쓰다

8월 2일-다시 길을 나서다.

길 위에서 나흘째 날이 밝았다. 그늘 한 점 없는 살인적인 폭염 속을 걸었던 것과는 달리 태풍의 영향으로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였고, 바람이 섬을 뒤흔드는 듯했다. 여장을 풀었던 성산국민체육센터를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진행 팀에서 비닐 우의를 나눠줬다. 한 점 그늘과 한 점 바람이 그립다고 시처럼 읊조렸던 시인이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며칠 동안 땡볕에서 고생했던 박일환, 함순례, 문동만, 최명진 시인이 아쉬움과 걱정을 뒤로 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남은 사람들은 빗속에서 걷기 시작했다. 종달리 상도리 구간, 한 시간 30분 남짓은 온통 검은 돌담으로 둘러쳐진 검은 흙의 밭들이 길게 이어졌다. 저 검은 흙 속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강정 평화대행진의 동진 구간에 속한 남원읍은 나의 외가가 있는 곳이다. 1960년대 말 부모님은 자식들을 끌고 40여 년 살았던 고향을 떠나 육지로 나왔다. 먹고살기 힘들어서였다. 친가가 있는 한림을 비롯해 제주시, 모슬포, 조천, 귀덕, 우도엔 아직도 나의 친·외가 일가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원 없이 제주 땅을 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종달교회에서 내준 화장실을 이용하며 잠시 비를 피했다. 사나운 태풍이 불어와도 멈출 수 없는 길, 전국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구럼비에 대한 사랑이,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강정을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을 결속시키고, 그들 안으로 우리들을 불러들였다. 사나운 태풍이 강정 앞바다에 쌓인 인공 구조물들을 깡그리 쓸어가 버리길, 흉물스런 철조망과 펜스와 해군기지 방파제 구조물들만은 뿌리째 뽑아버리기를…. 길 위에 나선 행진 참여자들 모두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빗속에서 이날 잠시 같이 걸었던 김두관 대통령 경선 후보자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사죄하고 미안한 마음에 함께했다고 했지만, 부디 그 말이 진심임을 믿고 싶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강정의 아픔을,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일해주기를!

평대 초등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에 다시 빗속에 길을 나서 오후 6시에 김녕 해수욕장이 보이는 구좌체육관에 행장을 풀었다. 빗속의 강행군에도 사람들은 기친 기색이 없었다. 사랑과 평화를 염원하는 힘은 이토록 강하다.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님은 월정 해수욕장 앞에서 ‘신짜 꽃밴’의 ‘바위처럼’ 연주에 맞춰 춤으로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초등학생 열 명과 지도교사로 구성된 ‘강정사랑 아이’들이 행진팀을 기다리고 있다가 해변에서 노래와 춤으로 힘을 보태줘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이들과 함께 춤추며 어깨동무를 하는 강동균 회장님은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이날 저녁, 서진 팀으로 합류했던 조정 시인이 동진 팀에 잠깐 들렀다. 8월 4일 탑동 총 집결을 위해 전단지 1천 장을 만들어 왔다는 조정 시인은 행진 중간에 전단지로 선전전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변함없이 강정에 정열과 사랑을 쏟아 부으며 동분서주 뛰고 있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날이 어두워진 무렵 도착한 황규관, 이명희, 김성규, 이설야 시인이 떠난 사람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자리를 채웠다.

작가회의 회원들은 김녕 해수욕장 해변에 뒤풀이 자리를 만들었다. 둥근 달이 떠오른 김녕 해변은 아름다웠다. 술을 절제하라는 이시영 이사장님의 당부대로 우리는 유종 시인이 주문한 ‘파닭’ 두 마리가 동날 때까지만 술을 마시고 숙소로 들어갔다. 구좌체육관은 이전의 잠자리에 비할 수 없는 모텔 수준이었다. 빨랫줄이 매여 있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실이 있고, 초반엔 에어컨까지 가동됐다. 집에 당도한 박일환 시인이 걱정이 된다며 저녁에 전화를 걸어오셨기에 “샘, 저희 모텔에 짐 풀었어요.”라고 엉너리를 쳤더니 진짜로 알아들으셨는지, “어떻게?” 하고 놀라셨다. 파란 금 오른쪽은 남성들, 왼쪽은 여성들. “용기 있는 자 금을 넘어오시오!” 라는 우스갯소리에도 텅텅 너른 체육관 가운데를 감히 넘어온 사람은 없었다는 것!

8월 3일-절정에 오르다

7월 30일에 길을 나선 행진 팀은 이날 절정에 올랐다. 태풍은 중국 대륙으로 빠져나가고, 먹구름과 바람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이날은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를 거쳐 함덕해수욕장에서 점심을 먹고 조천체육관 마당에 여장을 푸는 일정이었다.

자고 나면 온몸이 뻐근했다. 엄지발가락에서 새끼발가락까지 몽글몽글 잡혔던 물집이 꽈리처럼 부풀어 그대로는 걸을 수 없었다. 길을 떠나기 전에 의료진이 자리를 펼친 곳으로 가서 물집 치료를 해야 했다. 김희정 시인과 서영인 평론가를 따라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대기자가 많아 자가 치료를 해야 했다. 내 치료는 김희정 시인이 의료진 흉내를 내며 도왔는데 침으로 물집을 찌를 때 어찌나 심하게 건드렸는지 비명이 절로 나왔다. 서영인 평론가는 양 손등에 생긴 발진이 부풀어 올라 몹시 힘들어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팔 토시를 한 부분을 빼고 손등에 벌겋게 발진이 생겨서 따가웠다.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았다.

아침 일찍 구좌체육관으로 이진희 시인이 들어와 힘을 보태고, 이설야 시인과 양은숙 시인이 오전 일정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뭉치면 힘은 살아난다. 기나긴 길을 걷는 일은 모두 함께하는 단결의 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침 7시와 오후 12시, 6시에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새벽 4시부터 700여 명의 하루 세 끼 식사를 준비하는 식사지원팀의 노고로 행진자들은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매 끼니마다 한 그릇 따뜻한 밥, 한 병의 차가운 제주의 물 삼다수가 강정 지킴이들의 노고라는 걸 알기에 생명의 밥과 물을 감사하며 먹었다. 길 위에서 만난 초면의 사람들과 길 위에서 나누는 밥은 그래서 더 맛있었다. 해남에서 배를 타고 건너왔다는 현직 우편집배원 아저씨는 일주일의 휴가를 강정에 ‘투자했다’고 했다. 광주에서 혼자 온 한 여성분은 결혼 20년 만에 받은 휴가라고 했고, 이명희 시인은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흰 테 안경을 낀 ‘까도남’ 청년을 행진 길에서 만나 평화의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내 앞뒤에서 줄곧 며칠을 함께 걸었던 일가족은 네 살, 일곱 살 두 딸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였다. 처음 만났을 때 뽀얗던 네 살배기 상고머리 아이는 온몸이 가맣게 골고루 탔는데도 짜증 한 번 부리지 않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걸었다. 어찌나 잘 걷고,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고 씩씩하게 일어나는지 어른들의 귀염을 독차지했다. 지금 엄마 아빠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걸어야 하는지를 알 리 없는 저 아이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강정송 ‘땅콩강정 깨강정’의 한 소절처럼 아이들의 입에 물려줘야 할 달콤한 ‘강정’ 대신 총칼과 콘크리트 해군기지에 정박한 군함을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들의 ‘강정’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걸어야 하는 길이다. 행진 내내 아싸 아싸 강정을 끊임없이 노래하는 ‘신짜 꽃밴’의 노래처럼 제주는 선사시대 화산폭발로 태어난 신이 우리 모두에게 준 선물이다. 그 유물인 천 년의 구럼비를 가지고 ‘장난’을 쳐서야 되겠는가.

2시간 남짓을 걸어 북촌리 너븐숭이 기념관 앞에 도착했다. 너븐숭이는 제주 4·3의 민간인 대학살의 무섭고도 뼈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역사는 언젠가 만천하에 그 본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오늘의 강정도 반드시 역사가 기억할 것이며 두 번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겨야 하는 게 오늘의 강정 싸움이다. 너븐숭이 기념관 앞터에는 현기영 선생님의 역작 「순이삼촌」의 비석이 서 있고, 누워 있는 돌에는 본문 발췌문들이 새겨져 있다. 그 문장 하나하나에는 4·3 희생자의 피가 맺혀 있었다.

너븐숭이 기념관을 둘러보고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길을 떠났다. 오른쪽으로 길을 틀어 함덕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제주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서자 북촌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이 보였다. 4·3 때 토벌대에게 쫓긴 사람들이 집 한 채도 앉히기 어려운 저 좁은 섬으로 몸을 피했으리라. 척박하고 가파른 산등성이에 이어지는 녹색 물결의 팥밭 돌담에도 그날의 눈물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함덕해수욕장 풀밭에 여장을 풀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3시간여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이국의 풍경 같은 아름다운 해변 함덕에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제주의 바람을 들이마셨다. 잔디밭에 누워 제주의 하늘 아래서 눈을 감았다. 강정에서부터 지나온 길이 내 몸을 밟고 한 걸음씩 걸어온 듯 또렷하게 살아났다. 우리가 한 걸음씩 딛는 이 땅이 다 우리의 몸이었다.

함덕해수욕장을 출발할 때 대열은 더욱 불어나 있었다. 본가가 제주인 홍기돈 평론가가 합류해 한국작가회의 깃발을 들었다. 특히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과 용산 유가족 팀들이 합류해, 비정규직 철폐와 용산참사 진실 규명을 외친 뒤 조천을 향해 힘찬 걸음을 떼어놓았다. 오후 5시 행진 팀은 조천체육관 앞마당에 텐트를 치고 배낭을 풀었다. 이날 저녁 식사는 제주작가회의 초대를 받았다. 한 것도 없이 물회로 저녁 대접을 받았던 터라 고맙고 또 죄송스러웠다. 잘 먹자고 온 것이 아니고, 잘 놀자고 온 것도 아닌데, 아마 염치없이 가장 많이 먹고, 가장 신나게 논 건 내가 아닌가 싶다. 제주 흑도야지쌈을 입이 미어져라 넣으면서 음식보다 고생한다고 우리를 맞아준 그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는 제주작가 회원들과 조천포구에 모여 앉았다. 더위를 피해 포구로 나와 삼겹살을 구워 먹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조용하고 호젓한 포구의 밤은 우리와 더불어 깊어 갔다. 차오른 달이 제주 앞바다를 뭍으로 끌어당기고, 강정 평화대행진 이야기들이 무르익어갔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저물지 않는 밤이었다.

8월 4일- 타오르는 섬을 뒤로 하고

강정을 출발해 동진과 서진으로 한라산을 감싸고 제주 외곽을 행진한 5박 6일 간의 대행진. 연인원 4천여 명에 총 290킬로미터의 거리. 나는 제주에서 6일을 머물고, 5일을 걸었다. 제주 도착과 떠나는 날은 서로 달랐지만, 함께한 작가회의 회원들 하나하나 손을 잡고 걸은 것이나 다름없다. 무거운 깃발을 들고 카메라가방까지 메고 사진을 찍어가며 걸었던 최명진 시인, 배탈에 약까지 먹어가면서도 걸었던 목포의 유종 시인, 등판이 넓적하니 힘들다고 엄살 부리지 말고 걸으라고 내가 매번 약을 올렸던 대전의 김희정 시인, 발의 물집과 손등의 발진에도 전 일정을 다 채워 마지막 날 탑동까지 간 서영인 평론가,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게 걸었던 조동례 시인(마라도 배가 끝내 뜨지 않아 마지막 날까지 걸으셨다), 길 위에서 만나 인사를 텄던 최기종 시인, 이번 강정 대행진으로 알게 된 함순례 시인과 양은숙 시인, 제주에서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청주에서 올라온 내 친구 윤이주 소설가, 익살과 재치로 힘든 우리를 행복하게 웃겼던 김성규 시인, 행진 내내 함께했으나 뒤풀이 자리에서만 인사를 나눴던 제주의 김경훈 시인을 비롯한 제주작가회의 회원들 모두와 함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에서 박일환 시인이 열거한 참가 회원 낱낱의 이름을 다 부르지 못했지만, 속으로 앉은 끈끈한 정은 알리라 생각한다. 사무처를 통해 후원하고 애써 주신 작가회의 회원 모두의 마음에 감사를 전한다. 우리는 다만, 강정 평화대행진에 참여한 수천 명 중에 하나였을 뿐. 그러나 그 하나가 수천을 이루는 소중한 하나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마침내, 탑동으로 집결하기 위한 대행진의 날이 밝았다. 각자의 일정 때문에 탑동 집결지까지 가지 못하는 황규관, 김성규, 이명희 시인과 윤이주 소설가와 함께 조천 출발지에서 얼마간을 걷다 대열에서 빠져나왔다. 조천 버스정류장 근처 길바닥에서 배낭을 놓고 휴식을 취한 뒤에 중앙로로 가는 10번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얼마 후 중앙로 쪽으로 걸어가는 행진팀의 행렬을 보았다. 노란 티셔츠를 입고, 해군기지 결사반대와 강정의 평화를 아로새긴 노란 깃발을 든 대열. 내 몸은 버스에 실려 가나 아직도 거기 있는 듯 행렬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역사의 가운데서 붉게 타오르는 섬, 제주. 광주가 그러했듯이 평화와 진실을 규명하는 일 만 명의 함성이 제주를 가득 메울 것이다. 강정이 이기는 날이 이 땅에 평화가 오는 날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부터 다시 시작인지도 모른다. 강정에 평화가 오는 그날까지, 내 몸 위를 걷고 또 걸어야 할지도!

*PS: 4일 제주를 떠나온 뒤 현기형 선생님과 홍기돈, 서영인 평론가, 김경훈 시인 등이 탑동에 함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날 탑동이 수 천 명의 함성으로 타올랐다는 소식과 아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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