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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의 성경 말씀에 기초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이름 백합화 이메일



오늘은 요한의 계시록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해도 되면 내 맘대로 쓰고 안된다고 해도 네 맘대로 쓰나?

왜 하필이면 내가 이렇게 쓰고자 할때 너는 책을 안읽을까?

먼저 뽑는 놈이 오늘 이긴다.


  한칸 건너

왜 이렇게 오늘을 사는 많은 시도교 아니 기도교의 많은 도시 도교는 아니고 제 밥에

개 도토리를 많이 넣어서 먹기 전에 하나님에게 먼저 기도하자.

그럼 빨리 이야기 핼까?

수 천년의 시간을 두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오늘날

매우 많은 발전속에서 하나도 변한게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 내면을

되 짚어 보면 모두 다 하나님에 대한 한 가족의 역사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자세한 내막을 보면 그의 가족에게 전하는 바 또한 많은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지요? 그러나 결국 모든 성경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처음 조상부터

그가 이 세상에서 나고 죽을 때 까지의 역사 외엔 아무것도 우리가 밝혀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은 어떨까요?

그의 말씀 즉은 요한의 말씀으로 썼다는 요한 계시록은 어느 한 왕가의 역사라기 보단

모든 이들의 미래에 대한 것등을 서원한 선언문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요한 계시록으로 인해서 성서는 진정성이 우리 몸과 뼈에 유익한 것으로 되어

던 바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가리쳐서 역시 베스트 셀러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아~!

그러나 오늘날 많은 현대 문학을 거론후에 거의 성경을 기초로 한 예술과 인간의 마음의

평온에 대한 것등을 주제로 인간의 삶의 본질적인 존재의식을 파해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판단 안됩니까?

아니면 확 뒤집어 버릴 무슨 대단한 이야기가 있나요?

마치 부처님의 말씀으로 오늘날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활의 가치관의

무장된 이념등을 말할때에 아직 우린 그를 알기엔 너무 어렵고 또한

어린 것이 아닐까요?

엄나 젖이나 먹고 아직 연약한 이로 무엇인가를 씹을수 없는 때에 그런 것을

논하다간 벌써 날새고 하늘나라 간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겠습니까?

아~! 그래서 먼저 우리가 그런 복잡한 또한 난해한 존재의 본질과 진리로 자신을 무장하는 것 보다는

먼저 이웃과 화평하고 나라에 법을 이해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생활의 윤리관

부터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요한의 계시록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가요?

그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이 요한 게시록은 사실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그 옛날

예언자인 엘리아가 그 사상을 유전한바 그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꼐서

그이 사명된 뜻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삼일후에 다시

나셔서 인간이 육체로 인한 정욕과 욕망을 버리지 못한체 하나님 아버지를 따로

세속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는 많은 잘못을 고쳐서 우리 모든 이들의 믿음된

종교관을 구제하려는 것이였습니다.

아니 개혁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 옛날 엘리아라는 인물은 선인으로서 보시다 시피 큰 뜻으로 이세상을

살아던 선지자로서 그들 예수그리스도의 처음 가계도에서 시작하여 예수그리스도까지의

역사시절에 중간정도 일 것입니다.

막연한 것은 저도 어쩔수 없습니다. 그는 솔로몬 왕의 서거후에

그들의 왕권을 유지하려고 신전을 세우고 나라의 백성들에게 많은 공역을

맡겼던 것인데 그로인해 그것을 토대로 그들은 백성들에게 신권을 보장받으면서

또한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일수 있었습니다.

그때그것을  제도하고 만들어지는 신권의  체제로 세워진 것이 오늘날 예루살렘의

신전이지만 또한 오늘날에는 그 처음의 모든 사실된 것들을 모두 볼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이미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기원후에 7세기경에 로마 황제의 의해 세롭게 성전을 지었다가 나중에 이슬람세력에 의해서

이곳에 이슬람식 성전을 구축하였는데 아름답기는 하지만 역시 모호한 역사의 흐름을  모르겠다.

알아끄사 성전과 황금돔 다시 말해서 이슬람식 성전을 말하는 대목인데

이것은 더 이상 하나님을 위한 성전이 아닙니다.

어찌 되었던 지간에 우린 이로서 통격의 벽 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성전을 그리워 하면서

지금껏 그 때 시절을 추억하려고 하지만 이제는 다시 솔로몬의

성전은 볼수 없습니다.

엘리아는 대체로 월지족에서 떨어져 나온 유량민의 후손이거나 대단한 건축공학자이거나

아니면 선비정도 된답니다.

보통 랍비라고 하는 이 말은 창고지기라고 다시 불러도 될듯 합니다.

갖추어진 인재나 비장된 무기 시스템 갖은 뜻일 것입니다.

그때 그는 까마귀들의 도움으로 요단강 건너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미래를

계획하던 사람이라고 성서에 나오는데

그 기록의 연대는 대체로 이스라엘 역사시절엔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수메루인일까요?

어느 씨족에서 나온 사람인지는 그를 알수 없지만 도데체 신기한 사람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가 솔로몬의 성전을 두루 보면서 이렇게 속으로 언잖게 여기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아~! 인재가 너무나 없는것인가?

도대체 이 정도로 돈을 뿌렸는데 어찌하여 이것을 두고 우리 미래에 많은 성자들과 신도들을

모아서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바르게 살수 있겠는가?

이러면 안된다. 이것은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돈은 돈 데로 들였으면서 진작 마음은 다른곳에 있는 것을 아시고

절대로 먼저 왕궁터에 신전을 지어선 안된다고 생각 하셨던 것입니다

그럼 그곳은 어디가 좋을까?

이 늙은이가  생각한 것이 바로 교활한 수였는데 바로 무역상인이 자주 출몰하고

외교와 교통이 활발한 곳으로 좀 높은 지대가 있는 곳으로서

므깃도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 아테나의 파르테돈 처럼 아마겟돈 이란 그런 것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물론 이 늙은이가 생각한 것은 먼저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멈춰서게 하면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고 그 뜻을 실현하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 때는 가능하지 못했습니다.

참 대단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셨는데 그것을 그 때 당시엔 그저 꿈으로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실현하는 시기가 먼 미래라고는 하셨지만 결코 오늘날은 아닙니다.

그 때로서 지금은 너무 멀고 아마도 대략 새로운 막강한 선진된 사상을 간직한 새로운

정치적인 입지를 간직한 구세주로서 오시는 분의 뜻이라면 가능할 것으로

믿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시대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사상을 갖춘 시기를 논하는 대목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 때하곤 너문나 멀고 먼 시기로 오늘날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 그리스도 시절에도 그 뜻을 알았지만 역시 실현하기가 매우 곤란하였답니다.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다 예수님의 시절을 보냈고 700년 경 되던 초기에 결국 이스라엘 성전의 내부 구조는 하나도 남기지 않은채

역사의 종교적 이념의 혼돈속에서 물론 이 이념은 역시 존재의 가치관이 아니라 신에 대한 우리 인간의 사상적

가치관이 다른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어찌 되었던 지간에 정말 혯갈립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답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 햇갈려~!

그러다 예수님의 희생하신 뜻과 미래에 대한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의 뜻을 필역하실때에

새롭게 하여질 이스라엘 성전의 개막을 알리기 위해서 사도 바울에게 그 임무를 맡길적에 그에게 말하길

너희중에 누구라도 진실된 믿음으로 믿고 하나님을 따르면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서 영원히 살것을

약속하시면서 로마의 타락한 신권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먼 소 아시아에 가서 일곱 교회를 지으라고

명령 하십니다. 이 사업을 위해서 사도바울을 선택하였는데 그는 로마 시민권자이면서 동시에 매우 많은

신화적 사상을 간직한 인물로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역시 이는 건축가라기 보단 신화에 대한 많은 것등을 알고 있는 고고학자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로마로부터 보고  배운 많은 고고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지리적으로도 밝은 지식을 겸비한 인물이였기

때문에 그는 절대로 사도 바을울 적임자로 임명했던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절대로 다 말할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도대체 모를 그 일에 대하여 어떤 순간에 포착된 그들의 행위를 우리가 좀 어느정도까지만

이라도 알수 있어야 할 정도로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

에~! 오늘도 이어서 쓰기 합니다.

자~! 오늘날 이전 글에서 말했지만 본인의 실재로 이곳에서 말하는

내용은 다 실재하는 내용을 떠나서 모두 사설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위한 마음 하나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많은 신성한 성도님들을 위해서 조금은 재미 없어도

계속 적으로 회심의 품은 심기를 풀어드릴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가혹했던 역사에서 이 이스라엘 왕은 오직 한가지 결정권만 남습니다.

그는 결정했습니다. 드디어 칼을 뽑을 때가 되었단 말인가?

사실 이 모든 사설조의 내용은 이미 엘리아가 우리 앞날을 예측한 시공간적인 초 자아의

세계를 뛰어 넘은 새 세대를 위해 기록한 미래 예언서 입니다.

그에 대하여 그 땅의 통치권자이며 백성에 대한 연민을 토대로 새로운 이스라엘의 신성한

역사를 책임지셨던 어진 우리 목자께선 그래도 그 옛날의 또한 현자이였던 또는 성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이 예언서의 모든 간략한 주문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 임하는 24장로들의

마음속에서 머물고 있다가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하여 지면서 그 실체가

세상의 속한 살아있는 영으로 존재하게될 우리 현세에 드러나게 된답니다.

그 첫 번째 페이지가 바로 사도 바울을 일러 묵시로 이야기 하신 말씀 입니다.

그 당시 사도 바울은 잘 몰랐지만 그래도 뭔가 집히는 것이 있기는 했지요?

앞날을 예언하는 그 예언서에 7교회의 모든 앞날에 다가올 시련을 미리 예언하시며 우리 시대에

그 소명된 역사를 다시 상기하게 만들어 습니다.

그 새로운 소명의 기약에 날을 위하여 이 오늘날을 위하여 다시 말씀 하시는 새 역사의

예언의 말씀은 실재론 일어나지 못합니다. 희한한 것은 분명히 있었던 그 7 교회의 유적이 지금은

모두 유물로 흩어진채 파괴되어 있는데 그 모습은  페허 그 자체입니다. 실재로

이 모든 것들을 예언한 예언자는 그시대가 아닌 우리 시대를 나타내는 언어로 우리들의 현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도 다시 우리는 그들의 예언된 생각과 그 사상속에서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간직하는 것이

진정코 새삼 놀랍습니다.

또한 허탄합니다. 일면의 사도 바울 묵시록은 나중에 그의 친구의 노력으로 요한 계시록으로

지금껏 전승 되는 것입니다.

그의 예언에 따르면 로마가 세상을 모두 파괴 시킬 것이고 그들의 육신된 욕망으로 무장된 그들의

정치사가 신과 인간을 모두 파멸시키되 또한 인간을 신의 역사에서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을

염려하십니다. 그 요한 두번째 단락에서 그의 예언은 인간의 마음속의 실재하는 우리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성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것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이제 멀고먼 그들만의 새로운 고향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그의 새로운 소명은 곧 죽음을 의미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는 그곳에서 죽지 못하고

나중에 영혼을 그곳에 묻게 될 것입니다.

주의 약속된 소명의 날을 위해 그곳 성지를 개척하는 첫 번째 소임에 대하여 미래를 묻는

사도 바울의 물음에 24장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지라 과연 하나님의 역사를 그 누군가가

예언하겠는가? 그 사도 바울의 예언하게될 그 날을 그가 스스로 알지 못하자 과연 그것을

누가 공증 할까요?

누가 그것을 공증해 주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은 절대로 단 한발자국도 떠날수 없게 된답니다.

이에 24장로는 말하길 다윗의 후손으로 난 주님의 희생하신 뜻과 함께 우리는 그것을 볼수 있는데

그 약속을 할때 처음 우리 소명된 처음 어린 양 즉은 우리 작은 소명의 선한 인자로 인해 그 맹세를

다짐할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처음 죄 없이 죽은 어린양 바로 카인의 동생입니다.

그들의 처음 죄없는 자의 피로 맹세컨데 앞으로 있을 사도 바울의 여행에대한 예언을 하나님의

공증서에 기록된 것을 미리 볼 자격을 갖게 되므로 인해서 우린 이제 그 의 미래된 역사를

볼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도 바울에게 묵시로 오늘날 우리에게 명한 그 하나님의 예언서엔 7개의  인을 박은 7개의 문서의내용을 하나씩 밝혀지게 되는데 그럴때 마다 우린 새삼 하나님의 역사가 놀랍고 또한 경이롭다는 것을 깨닫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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