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일본 군국주의 작가의 글을? 힘이 부지면 그만 쓰지!”
“말씀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사과하시죠.”
사과요구 이전에 작가의 의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당대의 ‘태백산맥’은 일제치하에 잇대어 있다.
‘태백산맥’을 이야기하자면 정치적인 문제를 뺄 수가 없다. ‘태백산맥’의 본질은 일제치하에서 전쟁을 거쳐, 오늘을 사는 현재까지 대상을 바꾸어 가는 똑같은 문제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최근 신문을 장식하고 하는 일련의 단어들을 보자.
을지훈련, 대북방송, 발목 지뢰, 국정원 직원 자살, 해킹프로그램, 그리고 박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집안의 친일 부역 행적들, 세월호 반대시위 그리고 꼬리를 물고 터지는 그 외의 일 들.
실마리를 쫓을 필요도 없이, 도망가고 또 도망을 가도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는 지독한 악몽 같은 문제들이다. 과거의 빚을 갚지 않고 이 모든 맥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예 요즘에는 긍정적으로 일본의 이해하고 우리를 탄압한 것이 아니라 도와준 것이라는 쪽으로 문제의 답을 찾고 있는 측도 있다. 그래서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면 나쁘지도 않겠지만,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여기서 오늘 한반도에 사는 작가는 이 고질적인 정치적인 입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국 정치 뿌리에는 일제치하가 있다. 그리고 전쟁.
어제, 페이스북에 김용옥교수께서 쓴 옛글이 올라왔었다.
‘최남선과 같은 일제하 민족 반역 지식인 집단이 저지른 지울 수 없는 범죄 행위 말이다. 사실 그들은 변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 지식인 사회의 풍토를 베껴서 그들의 눈으로 조선을 보았고······.’ 그럼에도 반대쪽에서 많은 작가가 항일투쟁을 하였다.
수난의 역사를 다른 말로 하면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지독한 왜곡의 시대를 거쳐 바로 설 시간도 없이 전쟁이 터졌다.
그러나 전쟁은 휴전선을 중심으로 승자 없는 그야말로 휴전을 하고 말았다. 전쟁은 청산 없이 분단의 역사가 이어졌다. 친일에서 한국전쟁까지, 매듭은 완전히 묶이지도 풀리지도 않은 뜸들이다가 만 설익은 밥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일제치하의 많은 문제가 묻히고 미화되고 용인 되었다.
‘작가들의 선이 민중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악 또한 많은 영향을 끼친다.’ 드골이 한 말이다. 그는 전후 예술가들도 부역행위를 가혹하게 다루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드골자리에 부역자가 차지하고 있었다..
일제의 잔재를 끊어 줄 역사적 계기가 멈추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남한 민중은 부역 예술가들을 일본강점기보다 더 높은 자리에 모시고, 그들의 영향권에서 문화행위를 하며 존경을 보내고 기쁨을 받았다. 우린 부역자들의 문화통제를 통해 어떤 식으로 얼마만큼 오염이 되어 있을까? 우리는 자신을 판단할 눈이나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상식을 떠난 일들이 당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을 보면 특히 그렇다.
그 엄혹한 시기에도 작가정신을 내세운 작품들이 나왔다.
‘태백산맥’은 반공이데올로기가 서슬 퍼런 독재시대 정치적 정점에 서 있었다.
남들도 늘 하는 말이지만, 사람에게는 두 가지 생명이 있다. 자연이 준 것이 있고, 사회가 준 것이 있다. 물질적 생명과 정치생명이라는. 작가에게도 정치생명이 있다고 본다. 글로 쓰든 안 쓰든 책임소재는 발생한다. 옆에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안 한 것이 아니다.
조정래 선생의 일갈에는 정치적 입장에 대한 추궁이 담겨 있지 않나 생각을 한다.
명색이 한국 대표작가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제주도의 노작가께서도 이 사태에 한 말씀을 하셨는데, “작가란, 자고로 흥정이 아니라 문제를 쫓아야 하니라.” 작가의 원고지에서 돈 냄새가 아니라 피 냄새가 나야 한다는 쓴 말씀이 아니셨는지.
우리는 아직도 불편한 자세로 살고 있다. 편하게 살고 있다면 착각이다. 멀리서 보면 상당히 뒤틀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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